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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투 비 유연석

유연석이 가장 고요해지는 순간, 무대는 비로소 시작된다.

프로필 by 전혜진 2024.04.05
늘 하이힐을 신었어요. 몇 센티미터쯤 되나요
20cm 정도 되는 것 같던데요? 이렇게 높은 건 처음 신어봐요.

재킷과 슬리브리스는 모두 Versace.

재킷과 슬리브리스는 모두 Versace.


어떤가요? 그 위에 올라가보니
놀이공원에서 이벤트해주시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느낌이더군요(웃음).

방금 요염하게 귀 뒤로 머리를 넘긴 거 아나요? 혹시 3월 22일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을 앞둔 뮤지컬 <헤드윅> 연습의 후유증일까요
어엇, 제가 그랬나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도 모르게 손이….

7년 전 ‘연드윅’ 포스터가 공개됐을 때 충격을 잊을 수 없어요. 그렇게 예쁠 것까지는(웃음)…. 메이크업은 익숙하겠지만 <헤드윅>의 경우 화장보다 분장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분장이 최면 효과를 주기도 하는지
걸음걸이부터 확실히 달라지는 게 있죠. 말투도 자연스럽게 헤드윅화되고요. 매니큐어나 헤어스타일에 따라 캐릭터가 달라 보이는 건 이 공연의 큰 매력이죠. 더블 캐스팅된 배우끼리도 분장의 차이가 확실하잖아요? 분장할 때마다 재미를 느껴요.

셔츠와 팬츠는 모두 Amiri. 부츠는 Rick Owens.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츠와 팬츠는 모두 Amiri. 부츠는 Rick Owens.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7년 만의 귀환을 앞둔 마음은
아무리 경험 있는 공연이라고 해도 개막이 가까워지면 불안하고, 걱정되고, 뭔가 다 부족한 것 같아요. 지금 제가 그래요.

아는 맛이 무섭다고 ‘헤드윅’을 잘 알기 때문에 다시 도전하는 게 두렵지 않았나요
물론 두려움도 있었죠. 두 시간 반 가까이 공연을 이끌어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걱정도 많았죠.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다시 해보고 싶더군요. 당시 <헤드윅> 공연할 때 좋았던 것도 자꾸 떠오르면서 이건 또 해야겠다 싶었어요. <헤드윅>은 확실히 연기했던 배우들이 잊지 못하고 다시 찾는 공연인 것 같아요.

심지어 네 번, 다섯 번 돌아온 배우도 있죠. 왜 그럴까요
콘서트 형식이다 보니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부분이 큰 공연이잖아요. 거기서 오는 희열이나 짜릿함? 제 경우엔 그게 엄청 크게 다가와요. 가수가 아닌 이상 이런 경험은 흔치 않거든요.

레이어드 니트 톱은 Ferragamo.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레이어드 니트 톱은 Ferragamo.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관객과의 소통을 언급했는데, <헤드윅>의 마지막 퍼즐은 관객이 아닐까 싶어요. 상대 배우가 아니라 관객을 향해 감정을 쏟아야 하죠. 어떤 반응이 올지 예상하지 못한 채 말이에요. 관객 자체가 공연의 ‘변수’로 작용하는 셈인데, 그날의 관객 성향에 영향을 받기도 하나요
아무래도 그렇죠. 다른 뮤지컬처럼 제4의 벽을 쳐놓고 하지는 않잖아요? 록 콘서트에 온 것처럼 반응해 주면 저도 더 신나게 몰입하게 돼요. 우리 공연 문화에는 일종의 매너가 존재하는데, <헤드윅> 공연에 올 때는 그런 것들을 좀 내려놓고 놀러 온다는 마음으로 오셨으면 좋겠어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즐겨줬으면 하는 거죠.

배우의 성향과 해석에 따라 대사는 물론 노래와 공연 시간도 달라지는 것이 <헤드윅>의 큰 특징인데요. ‘연드윅’만의 매력을 소개한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확실히 농염한 쪽은 아닌 것 같고요. 제 경우엔 새초롬하고 발랄한 느낌을 많이 가져가려는 편이에요. 7년의 시간이 지난 만큼 초연 때와 다를 거예요.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달라졌고, 그사이 제 작품 경험치도 달라졌으니까요.

코트는 Rick Owens.

코트는 Rick Owens.


헤드윅의 남편 이츠학은 물론 밴드도 무대에 등장하지만, 엄밀히 말해 모노드라마에 가깝다 보니 헤드윅을 연기하는 배우에게 요구되는 게 많은 뮤지컬이에요. 체력이나 연기력, 가창력 중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요? 혹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는지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헤드윅의 감정선이에요.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 사랑에 대한 가치관, 정체성의 혼란과 집착, 불안…. 그런 감정선이 이 공연을 하게 되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애드리브도 중요하고 극을 끌고 나가는 힘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헤드윅의 감정을 잘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초연 때 유연석의 헤드윅은 섬세하다는 평가가 나왔나 봐요. <헤드윅> 원작자 존 캐머런 미첼을 실제로 만난 적 있는 것으로 알아요
제가 공연한 시즌에 <헤드윅>을 실제로 보셨어요. 제가 출연하는 날은 아니었고요. 누구 공연을 봤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뒤풀이 자리에 가서 대화도 나누고 사인도 받았죠. 존이 사인해 준 대본은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어요.

헤드윅이 헤드윅을 만난 셈이니 감회가 새로웠겠어요
영광이었죠. 너무 ‘스위트’한 분이었어요. 그리고 한국 <헤드윅>을 굉장히 좋아하더군요. 다른 나라에서도 <헤드윅> 공연을 올리지만,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이어온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했던 기억이 나요. 아마 해외보다 국내 공연 규모가 더 클 거예요.

니트 톱은 We11done. 팬츠는 Dolce & Gabbana.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니트 톱은 We11done. 팬츠는 Dolce & Gabbana.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국내 <헤드윅>이 원작보다 재밌다는 해외 평도 있었죠. 일련의 행보를 보면 새삼 대단한 공연이구나 싶어요
맞아요. <헤드윅>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시기가 이런 소재를 다룬 뮤지컬이나 공연이 주류를 이루지 못했던 시대였잖아요. 그렇다 보니 관객이 더 열광했던 것 같은데 <헤드윅>의 생명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헤드윅> 초연 이듬해에 국내에서 초연된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에 출연했어요. <헤드윅>처럼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으면서 이미지가 형성된 작품에 자신의 영역을 만드는 것과 <젠틀맨스 가이드>처럼 제로 베이스에서 뮤지컬 이미지를 구축해 내야 하는 작품을 하는 건 배우로서 완전히 다른 경험일 텐데, 어땠나요
(오)만석 형, (이)규형 형 등 경험 많은 배우들과 시간을 많이 할애해서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며 공연을 준비했던 기억이 나요. 초연 공연 참여는 처음이어서 겁도 났는데 베테랑 배우들과 함께해서 든든했죠. 초연은 첫선을 보이는 자리인 만큼 의미가 남다르더라고요. 애착이 커요, 그 공연에.

2015년 <벽을 뚫는 남자>를 통해 뮤지컬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그때의 선택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뮤지컬을 하기로 한 건 잘한 선택 같아요.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도전을 즐기고 새로운 걸 찾아가는 배우란 이미지를 주기도 하죠. 실제로 저는 도전을 즐겨요. 2015년을 돌아보면 그런 생각은 들어요. 어떻게 겁 없이 ‘송스루’, 대사 없이 노래로 이뤄진 극 뮤지컬을 골랐을까(웃음). 모르니까 했던 것 같고,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베스트와 슬리브리스, 팬츠, 슈즈, 링은 모두 Dolce & Gabbana.

베스트와 슬리브리스, 팬츠, 슈즈, 링은 모두 Dolce & Gabbana.


알고 돌아가도 송스루 뮤지컬을 선택할 것 같나요
알면서 어떻게? 하하. 누군가에게 송스루를 데뷔 무대로 추천할 것 같진 않아요.

긴장해서 무대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있었는지
있죠. 크고 작은 실수들은 항상 있으니까. 그리고 한번 틀린 부분은 왜 자꾸 생각이 나는지, 왜 다음 공연할 때도 생각나는지(웃음)…. <헤드윅>은 실제로 백지장이 돼 노래를 통으로 넘긴 배우들도 있어요. 그래서 항상 긴장하면서 무대에 오르죠.

실수했을 때 가장 필요한 건 임기응변일까요
그보다 지나간 건 잊고 남은 분량에 집중하는 게 맞아요. 실수에 연연하면 또 다른 실수가 연차적으로 나올 수 있거든요. 실수를 인정하고 남은 신을 해나가는 자세, 그게 중요해요.

우리 인생과 같군요
맞아요. 실수한 걸 계속 잡고 있으면 그로 인해 흐름이 망가지니까요.

셔츠와 팬츠는 모두 Amiri.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츠와 팬츠는 모두 Amiri.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헤드윅>은 불완전한 자신을 완성해 줄 반쪽을 찾아 끝없이 헤매는 인간의 보편적 갈망을 그린 뮤지컬이라고 생각해요. 유연석을 완성해 줄 반쪽이 세상에 있다고 믿나요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은데…. <헤드윅>이 보여주지만 반쪽을 찾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런 인연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거고요. 지금 떠오르는 건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한 반려견 리타. 제 소중한 인연이죠.

‘청룡영화상’ MC를 도맡으며 ‘청룡의 남자’로 6년간 활약했는데, <헤드윅>으로 축하 공연을 하면 어떨까요
저는 시상식에서 축하 무대를 펼치는 아티스트들을 존경합니다. 관객과 배우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죠. 저는 그렇게 잘해내지 못할 것 같아요. 일단 사회 보는 것만으로도 벅찬데요(웃음).

<헤드윅>이 그랬듯 당신의 인생을 풀어내는 뮤지컬을 무대에 올린다면 첫 장면이 어땠으면 좋을까요
개똥벌레 분장을 하고 연극하는 장면이요. 초등학교 학예회 때 개똥벌레 연극을 했거든요. 그때부터 배우의 꿈을 꿨기에 그 순간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싶어요.

만약 헤드윅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무슨 이야길 해주고 싶나요
그냥 조용히 안아주고 싶어요. 그 어떤 말보다 따스한 포옹.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사진가 안주영
  • 글 정시우
  • 스타일리스트 지영미
  • 헤어스타일리스트 태현
  • 메이크업 아티스트 하나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