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 킹덤’ 포틀랜드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도시를 활보하는 동물들. 이곳은 동물원인가?! 자연 그리고 동물이 생활 반경 안에 자연스럽게 놓인 포틀랜드의 동물원 설::포틀랜드,선현경,이우일,일러스트,동물원,엘르,elle.co.kr:: | 포틀랜드,선현경,이우일,일러스트,동물원

포틀랜드는 길 한복판에서 많은 동물을 만나게 되는 곳이다. 시내 길을 걷다 보면 큰 나뭇가지들 사이사이로 다람쥐가 뛰어다니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월러밋 강가 공원에는 오리와 갈매기, 기러기들도 떼를 지어 서성인다. 공원을 걷는 대부분의 사람은 개 한두 마리쯤은 데리고 산책을 하고 도로 한복판에서 경찰관들은 말을 타고 다닌다.주택가로 들어서면 고양이들도 많다. 처음 동네를 산책할 땐 ‘배고픈 길고양이들은 어디에나 많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들여다보니 이곳의 ‘길냥이’들은 때깔이 다르다. 전혀 불쌍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을 보고 도망치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하다. 쫓아와서는 배를 보이며 벌렁 눕기도 하고 졸졸 뒤를 따라오기도 한다. 알고 보니 대부분 집이 있는 ‘외출 냥이’들이었다. 한번은 길에서 우연히 만난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는데 지나가던 동네 주민이 그 아이 이름은 ‘키아’라면서 친절히 알려준 적도 있다. 부러운 환경이다. 서울에서 고양이를 외출냥이로 키우는 건 위험한 일이다. 집에서 생활하는 집고양이와 마당에서 밥만 먹고 사라지는 길고양이가 늘 따로 존재했다. 길에서 만난 고양이가 다가온다면 혹시 누군가 버리고 가서 사람 손을 타는 건 아닌지 의심하기 바빴다. 하지만 포틀랜에서 배고픈 고양이는 없다고 했다. 슈퍼의 고양이 사료 판매대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가 그랬다. 그만큼 동물 보호소 시설도 잘 갖추고 있고 주민들도 관대하다. 사람을 피해 다니는 한국의 길냥이들을 생각하니 이곳의 고양이들 팔자가 부럽기만 했다.담이 없는 미국 집들이라 주택가 마당에선 닭도 꽤 많이 보인다. 달걀을 직접 받아먹기 위해 키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 년에 한 번씩 미인 닭 콘테스트도 열린다. 여름에 열리는 대회로 참가자들이 닭 문양 원피스를 입고 닭 인형까지 들고 가는, 열기가 대단한 대회다. 대회에 직접 가보지 않았지만 후보에 오른 닭들과 우승한 닭을 사진으로 보았는데 닭 볏과 날개 색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화려하고 다양했다.운이 좋으면 올빼미나 너구리도 길에서 만날 수 있다. 남편은 새벽 달리기를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뚱뚱한 너구리와 눈이 딱 마주쳐서 서로 부끄러워하면서 각자의 길을 갔다고 얘기해준 적이 있다. 너구리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은 처음이라면서 좋아했다. 딸은 학교 가는 길에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올빼미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낮 올빼미가 다들 신기했는지 출근 시간인데도 다들 모여 한참이나 앉아 나무 위의 부엉이를 쳐다보고 있었다고 한다.부럽다. 운이 없는 나는 길을 걷다 ‘로드 킬’을 당한 너구리 사체만 봤을 뿐이다. 생각해보니 거대한 쥐 사체를 본 적도 있다. 나도 살아 있는 멋진 다른 생명체를 보고 싶은데 운이 없다. 그나마 길에서 새똥을 안 맞고 이곳에서 일 년 넘게 살아온 것에 위안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게 무슨 위안이냐고 생각하겠지만 여긴 정말 까마귀가 많아서 그동안 새똥을 안 맞고 살았다는 게 꽤 위로가 될 정도다(그냥 많은 게 아니라 히치콕의 영화 <새>에 나오는 무시무시한 장면처럼 많다!) 포틀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까마귀 똥을 한두 번쯤은 맞아봤을 게 분명하다. 자주 다니는 요가원 앞길의 가로수길이 바로 까마귀들의 쉼터 나무라 길을 걷다 몇 번이나 내 발 바로 앞에서 새똥이 떨어진 적이 있었다. 다행이다. 새똥은 아무래도 싫다. 있는 동안 쭉 새똥은 안 맞고 사는 행운을 바랄 뿐이다.하지만 일 년 내내 까마귀 떼가 오는 건 아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 가을쯤 몰려들어 여름이 오기 전까지 머물다 떠나는데 오후 네 시경에는 우리 집 앞 나무에도 한 시간쯤 머무르다 간다. 똥은 싫지만 하루라도 안 오면 괜히 궁금해진다. 이번 겨울엔 어마어마한 눈이 와서 세상이 온통 하얘진 날이 있었는데 하얀 나무들 위에 까만 까마귀들이 점처럼 앉아있는 흑백의 광경은 꿈처럼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해마다 오는 이 까마귀 떼로 포틀랜드 주민들은 골치를 썩이고 있다고 들었다. 배설물도 배설물이지만 쓰레기를 파헤치는 데다 시끄럽기 때문이다. 왜 까마귀들은 그렇게 다 같이 모여 날면서 깍깍 소리를 지르는 걸까?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수다스러운 새들이다.올해엔 포틀랜드 시에서 훈련받은 매를 풀어 까마귀 떼를 막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까마귀는 매를 무서워해 매가 날면 까마귀가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덕분에 매를 자주 보았다. 도심 한복판에서 높은 하늘을 유유자적 맴도는 매를 구경하는 건 참 근사했다. 맹금류의 큰 새답게 날개를 크게 펴고 원을 그리며 나는 매는 멋지고 위엄 있게 보였다. 까마귀들의 푸드덕거리는 날갯짓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까마귀가 줄어든 것 같지는 않았다. 매와 까마귀가 서로 다른 하늘을 날고 있는 광경만 목격했다. 까마귀는 똑똑하다 더니 인간의 계획 따위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까마귀 떼가 포틀랜드의 하늘을 까맣게 물들이면 이 도시가 인간들만 사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항상 인간 위주로 생각하는 우리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함께 지구를 나눠 쓰는 처지라고. 자연 안에서 같이 생활하는 작은 구성원이라고. 포틀랜드 도시 동물들을 이야기를 듣는다.PROFILE 동화 작가 선현경(@sunny_7008)은 만능 재주꾼으로 지난해 포틀랜드로 긴 여행을 떠났다. 포틀랜드에서도 변함없이 만화가 남편 이우일(@i00111)과 딸 은서(@e_eunseooo), 고양이 카프카를 관찰하면서 별탈 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전편 보러가기 >  다음편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