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없는 신기한 동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다 같은 헤어 스타일, 패션은 거부한다! 뭐 하나 같은 게 없는 뚜렷한 개성 세대가 사는 동네, 나홀로 뚝심 있게 90년대를 사는 포틀랜드에서 발견한 유일한 유행::포틀랜드,포틀랜디아,미국,문신,피어싱,요가,트렌드,선현경,이우일,시트콤,뉴욕,유행,엘르, elle.co.kr:: | 포틀랜드,포틀랜디아,미국,문신,피어싱

 <포틀랜디아>라는 미국 시트콤이 있다. 서울에서 포틀랜드로 떠나기 전, 뉴욕에서 꽤 오랫동안 살다 온 친구가 꼭 보고 가야 한다기에 의무감으로 봤다. 포틀랜드를 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했고 꽤 재미있었다. 코미디와 풍자가 섞여 웃겼고, 생각할 거리도 던져줬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세상엔 그보다 더 재미있는 게 널려있으니까. 우린 그 시트콤에서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네 다섯 편의 에피소드만 보고 이곳에 왔다. 그런데 포틀랜드에서 지내는데, 문득 <포틀랜디아>의 한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대형마트에서 시장 가방을 준비해 오지 않은 손님에게 “지구를 생각하지 않는 그런 행동을 정말 할 거냐?”며 일회용 봉투를 사용할지 말지 묻는 장면이었다. 좀 과장되긴 했지만,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염화나트륨만 몇 포대 뿌리면 순식간에 녹을 눈을 두고 며칠씩 학교며, 회사를 쉬는 포틀랜드 사람들을 보니 이해가 가는 장면이었다.  얼마 전, <포틀랜디아>의 시즌 7회가 막 시작됐는데, 아직도 인기라면 봐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첫 시즌부터 차례대로 보기 시작했는데, 빠져든다. 이곳에서 지내며 알게 된 일과 만난 사람들이 오버랩 되면서 요사이 우리에겐 하루를 마감하는 드라마가 되었다. 그중 가장 공감했던 첫 오프닝 에피소드에서 포틀랜드에 대한 묘사를 보자면 이렇다.“90년대 생각나? 다들 피어싱을 하고 트라이벌(부족들의 문양 같은) 문신을 하던 그 시절? 다 같이 힘을 모아 지구를 지키자고 외치던 그 시절? 아직도 그런 곳이 있어! 포틀랜드는 90년대의 꿈이 살아있는 곳이야. 다들 피어싱을 하고 문신의 먹물이 마를 날이 없지. 야망 없는 사람들이 오전 11시까지 자는 곳. 젊은이들이 은퇴하러 오는 도시. 예쁜 여자들이 안경을 쓰는 곳. 플란넬 체크 셔츠를 입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는 곳. 새를 그리면 예술이 되는 곳. 부시가 한 번도 정치를 안 했던, 앨 고어만 있었던 그때 같은 곳이지. 자동차 대신 자전거나 이중 자전거(또는 외발자전거)를 타는 곳.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곳. 레코드가게에서 CD를 되팔 수 있는 곳. 포틀랜드는 대체 우주 같은 곳이야.” 살아보니 그렇다. 사실이다. 바로 그런 곳이 포틀랜드다.   한국에서 지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유행이다. 패션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도 홍대 앞이나 강남역에서 한 시간만 사람들을 지켜보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헤어 스타일과 패션 그리고 화장법을. 거리의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하다. 처음엔 유행이지만, 좀 싫다고 했던 차림도 어느새 익숙해진다. 아무 느낌 없이 바라보다 슬슬 좋아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여기 포틀랜드에서는 그게 잘 안 보인다.  <포틀랜디아>에서도 말했듯이 이곳은 90년대가 생각나는 도시다. 아무리 21세기가 17년이나 지났어도 90년대를 사랑하는 곳이다. 근데 그게 1990년대인지 1890년인지도 헷갈리게 만드는 곳이 이곳 포틀랜드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고, 개인이 드론을 날릴 수 있는 시대에도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무인 주유소를 거부하는 곳이 바로 이곳 포틀랜드다. 그래도 이곳에서 일 년 남짓 살다 보니 극히 일부분에서 유행이 보이긴 한다. 일단 옷은 각자 개성이 너무 강해 유행을 찾기가 쉽지 않다. 바로 산으로 걸어가 캠핑을 해도 좋을 복장과 어디에선가 마차를 잡아탈 것 같은 서부시대 복장이 공존하는 곳이니까. 그런데 피어싱만큼은 확실히 유행이 느껴진다. 나는 사실 문신도 좋고 염색도 좋고 수염도 좋다. 그런데 아직 피어싱은 어쩐지 좀 꺼려진다. 그게 예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배꼽이나, 귀에 살짝 하는 피어싱은 귀엽다. 그런데 혀와 코, 얼굴 주변은 왠지 무섭다. ‘할 때 얼마나 아팠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현재 시점, 포틀랜드에선 귀에 큰 구멍을 뚫는 피어싱이 유행이다. 보통 귀에 구멍을 뚫어 링을 끼우고 조금씩 링을 크게 바꿔가며, 그 원의 지름을 넓힌 커다란 피어싱이다. 어쩐지 입술에 접시를 끼우려고 구멍을 뚫어 조금씩 늘리는 에티오피아의 어느 원주민의 입술이 생각난다. 접시만큼 늘어난 귀의 피어싱은 아직 목격하지 못했지만, 주먹만 한 피어싱 구멍을 흔드는 남자들은 여럿 보았다. 며칠 전, 요가원에서도 보았다. 내 앞에서 요가를 하던 남자였는데, 그 피어싱 구멍을 통해 다른 사람의 동작이 온전하게 보일 정도였다. 흔들거리는 그의 피어싱 구멍을 통해 보는 요가는 어쩐지 요가원을 우주 공간처럼 만드는 마력이 있긴 했다. 정신이 멍해지면서 무중력상태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였달까.  포틀랜드는 포틀랜드만의 유행이 따로 있는 곳이다. 세상의 유행이 어찌 되었든 포틀랜드만의 시간을 가진 채 따로 흘러가는 기분이다. 시간의 개념을 다시 세운다. 시간은 모두에게 다 같이 흐르지만, 그 시간을 쓰는 건 온전히 각자의 몫이다. 스스로 시간을 살 수 있는 곳. 이곳에서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쓸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는 중이다. PROFILE 동화 작가 선현경(@sunny_7008)은 만능 재주꾼으로 지난해 포틀랜드로 긴 여행을 떠났다. 포틀랜드에서도 변함없이 만화가 남편 이우일(@i00111)과 딸 은서(@e_eunseooo), 고양이 카프카를 관찰하면서 별탈 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전편 보러가기 >  다음편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