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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를 어떻게 해서 만들게 되었나. 이창동: 모든 작품이 그랬지만, <시>역시 도전이자, 새로운 것을 해보는 씨름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얼마나 도전을 잘 치를 수 있고, 이를 관객들이 받아줄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어떤 것들이 사라지는 세태에 관해 관객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시>를 만들게 되었다.
영화제목이 ‘시’다. 과연 관객들이 많이 보러올까. 이창동: 비슷한 질문을 영화 만들 때마다 받았다. <오아시스>때에도 장애인, 사회 부적응자가 나오는 영화를 누가 보러 올까 그랬었다. 근본적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 관객들의 가슴을 두드리고 싶다. 진심이 전달되면 관객들과 소통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창동 감독님 영화의 대부분의 주인공이 전체 영화분량의 90%이상을 소화한다. 주로 일상적인 생활에서 아픔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이번 영화 <시>의 주인공인 미자는 어떤 인물인가. 이창동: 영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이야기를 하려니, 속 시원히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옆에 있는 윤정희 선생은 전설적인 여배우다. 동시에 한 남자의 아내로 뒷바라지 하며 사셨다. 지금도 파리에서 살고 계시는 대단하게 보이는 분이다. 작은 아파트에서 스스로 작은 것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60대의 여인과 다를 바가 없다. 나이는 먹고 주름을 들었지만 내면만큼은 나이를 먹지 않는 그런 여인이다. 달을 보면, 뭐가 그렇게 황홀한지 그런 감정에 젖어 현실을 잊기도 하는 여인이다. 이런 여인이 자기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기가 내려야 하는 어떤 선택을 앞두고 있는 인물이다.
왜 윤정희를 미자로 선택하게 되었나. 평소 잘 알고 있는 인물이라서? 우연찮게 주인공인 미자와 윤정희의 본명도 미자로 동일하다. 이창동: 당연히 원래 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한다. 가끔 부산영화제 같은 데서 시상하다가 뵙기도 했고. 스크린 속의 모습이 실제 모습은 아니지만, 이미지는 그 인물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선생님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당연하게도 윤정희 선생님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가 완성되기 전에 선생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고 선생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셨다. 원래 시나리오가 완성도 되기 전에 배우와 감독이 만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인데도. 선생님의 본명이 미자가 아니었더라도, 배역의 이름은 미자 였을 것이다. 흔한 이름이지만, 이름에 아름다울 美가 있고. 그만큼의 촌스러움과 아름다운 느낌이 함께 들어있는 주인공이었으면 했다.
윤정희 선생님의 오랜 공백 끝에 복귀하신 작품인데, 부담감은 없었나. 이창동: 나는 부담스러운 것이 별로 없었다. 그간 윤선생님이 3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하셨는데 과거에 하신 것이 이미 몸에 배이셨을 것이다. 그냥 연기 경험이 없는 분과는 다르다. 만약 나와 부딪힐 경우에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너무 열려 있었던 분이셨다. 배우로서 갖기 힘든 미덕이다. 흔히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깨는 것에 대한 저항이 생기기 마련인데, 윤선생님은 최대한 열려 있었고 잘 안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속상해하셨다.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하셨는데, 소감이 어떤가. 윤정희: 1년 6개월 전인가. 이창동 감독님이 나를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얼마나 감동적이고 기쁘고 행복했는지. 아직 줄거리도 못 들었는데, 감독님 작품들을 봐왔기 때문에 남편(피아니스트 백건우)과 나는 기쁨으로 잠을 못 이뤘다. 정말 흥분 속에서 촬영을 했다. (이창동 감독에게)굉장히 고맙게 생각한다. 나의 새로운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내가 찾고 싶었던 모습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 현장 분위기, 호흡이 아주 아름답게 진행되었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소녀같이 살고 있다. 촬영하는데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었는지. 윤정희: 배드민턴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팔이 아픈데, 오히려 제작사 쪽에서 병원에 가자고. 나는 그냥 파스를 며칠 붙이고 나니 괜찮아 지더라고. 신나게 그리고 희망을 갖고 즐겁게 일하면 어려운 게 사라지는 것 같다. 이창동: 배드민턴 장면은 꽤 중요했다. 밤에 하는 것이라서 밤새 배드민턴을 하고 있는 모습을 찍어야 해서 걱정이 많이 되었다. 젊은 사람도 힘든데, 오히려 본인이 아무렇지 않다고 하셨다.
미자와 윤정희 선생님의 닮은 부분이 있다면. 윤정희: 미자와 비슷한 것이 많다. 들꽃을 봐도 감탄하고 하는 것들이. 요전에 남편이 시나리오를 읽고 나와 많이 비슷하다고 할 정도로. 성격 연기는 걱정이 덜 되었다. 오히려 어떻게 감독님이 원하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평생 처음으로 남편 안에서 연기 연습을 했다. 남편이 감독과 똑 같은 말을 하더라. ‘좀 자연스럽게 할래!’
15년 공백 후 촬영을 하는 건데, 어떤 느낌이 들었나. 윤정희: 옛날 친한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항상 영화 현장을 떠났다는 생각은 안 했다. 그래서 촬영 분위기는 너무 자연스러웠다.
촬영하면서 느꼈던 제작환경의 변화는. 윤정희: 예전에는 모니터로 확인하는 기술적인 환경이 없었다. 그래서 촬영 후 내 연기를 분석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칸의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이번 작품으로 칸에 갈 수 있는 전망은. 이창동: 칸 영화제에는 작품을 보낸 상태다. 위원장과 위원들의 감상에 대한 의견을 들를 수 있었다. 공식 발표 전까지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관례라 지금 기다리고 있다.
영화 포스터의 ‘시’라는 글씨를 직접 썼다고. 이창동: ‘시’라는 글씨는 너무 잘 써도 안 되었다. 미자가 쓰는 시와 같은 느낌이다. 꾸미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는 글씨여야 했다. 그냥 큰 종이에다 썼다. 잘 못 쓰는 사람이 열심히 쓰는 사람 같은 느낌. (포스터 쪽으로 몸을 돌리며)그렇지 않나?
소설가 출신의 영화감독이 시라는 제목의 시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 소설, 시, 영화의 매체가 어떻게 다른 것 같나. 이창동: 세상을 보면서 고민하고 느끼고 소통하고 싶은 것은 똑같다. 생활방식이 동일하다. 하필이면 제목을 ‘시’라고 한 것은 질문 하기 좋은 화두였기 때문이다. 사실 없어도 살 수 있는 그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다. 잊기 쉬운 어떤 것. 돈 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필요한 어떤 것.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삶에 있어야만 하는 것. 그런 점에서는 소설이나, 다른 예술 장르나 똑 같은 것 같다.
영화가 도전이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에선가. 이창동: 항상 영화를 시작하고 매 작품마다 큰 도전처럼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했다. 관객과 만나고 싶은데 쉬운 방법으로 만나고 싶진 않았다. 장애물 경주를 하는 것처럼 그것을 통과하는 어려운 길을 통한 만남의 방식처럼. 이 영화도 그런 점에서 나에게는 새로운 것, 낯선 방식을 통과했던 영화였다.
영화 <시>는 비교적 전작에 비해서는 밝은 영화인 것 같다. 이창동: 내 생각에는 전작들도 어둡지만은 않았는데.(웃음) <시>를 본 주변의 많지 않는 분들은 내 전작들에 비해 덜 불편하다고들 하더라.
미자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했다. 그럼에도 촬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윤정희: 나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이것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느냐, 자연스럽게 표현하느냐 그걸 미칠 때까지 도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특히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꿈을 꿨으면 좋겠다. 꿈꾸는 대학생, 꿈꾸는 중년, 꿈꾸는 노년이 되는 것을 이영화가 도와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