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결혼식
오랜 연애 기간과 3년간의 동거, 뜻밖의 임신. 결혼 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홍보 에이전시 비엔비엔의 이자영 대표와 영화미술감독 이태훈이 완벽한 두 번의 결혼식을 올린 사연.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뜨거운 연애가 권태로워질 때쯤 반려동물 칸(사모예드종 세 살)과 가족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동거를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물론 딸을 둔 세상의 많은 이들처럼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가 있었지만 밤마다 칸을 보려고 몰래 나가는 내 모습을 보고 서서히 포기하신 것 같았다. 그렇게 양가 부모들의 성화 속에 사귀는 7년 동안 두 차례나 공식적인 상견례를 했음에도 각자 일에 몰두해야 하는 타이밍이 너무 달랐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결혼을 서두르진 않았다. 게다가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동거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결혼에 대한 갈망이 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올 초 양가 부모들이 나서서 우리 사주를 풀어 결혼식 날짜를 잡아왔다. 7월 31일, 둘의 기가 너무 세 남들이 하지 않은 날을 골라온 날짜가 운명의 날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우리에겐 어떤 결혼식이 어울릴까? 많은 생각들이 오가는 중에 꼭 하나 이루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오랫동안 동거해 온 딸을 이해해 준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결혼식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곧 부모님과 얘기를 나눈 후 이런 결심은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원하는 결혼식과 내가 원하는 결혼식이 너무 달랐다. 동시 예식을 원하는 우리와 달리 부모님은 멀리서 오는 손님들을 위해 음식은 뷔페로 하고 싶어 했고 원하지 않는 식순은 제외하고 싶었지만 어릴 적부터 이바지 음식 회사를 운영하던 어머니는 폐백을 직접 만들고 꼭 진행해야겠다니 도저히 합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 한 번뿐인 결혼식인 만큼 평소 친구들과 지인들을 초대하고 싶은 컨셉트가 있는데 어떡하지? 고민 끝에 두 번의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둘과 부모님이 만족할 수 있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결혼식 말이다. 그때부터 온종일 예식을 할 수 있으며 뷔페와 코스 요리가 가능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여의도 글래드 호텔로부터 원하는 모든 조건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고 주저 없이 확정. 장소를 정한 뒤 바로 웨딩 컨설팅 컴퍼니 제인마치를 찾아가 전체적인 예식 컨셉트와 드레스, 헤어 &메이크업을 의뢰했다. 웨딩 테마는 ‘서머웨딩’. 블랙이 베이스인 호텔 상황에 맞춰 포인트 컬러를 화이트와 그린으로 정한 뒤 그에 어울리는 예복을 찾아 40벌이 넘는 드레스를 입어보며 최종적으로 선택을 마쳤다. 두 번의 결혼식이 좋은 이유는 바로 본식 드레스도 두 벌을 고를 수 있다는 점. 웨딩드레스 로망에 젖어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예상하지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혼.전.임.신. 결혼식을 두 달 앞둔 시점에 임신 초기임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10kg 감량이 목표였던 다이어트부터 이미 몇 회씩 끊어놓은 마사지와 에스테틱 등 준비해 온 것들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속상한 마음이 앞섰다. 특히 헤어 염색. 밝게 염색한 머리를 결혼식 바로 전까지 염색하기 위해 버티고 있었는데(결국 투 톤 헤어스타일을 하고 식장에 들어갈 수밖에 었었다). 심지어 아기를 위해 좋은 음식들을 이것저것 챙겨 먹다 보니 체중 유지는커녕 살이 쪄서 결혼식 하루 전날에 드레스를 바꾸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들이 당황스럽고 속상했지만 결국 개인적인 문제이며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양가 부모님들과 지인들의 축하를 받다 보니 결혼식에서 바랐던 많은 걸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소중한 아기를 위해 행복하게 생각하기로 다짐했다. 두 번에 걸쳐 진행된 예식은 1부는 양가 친척들과 부모님들의 지인들을 위해 최대한 예의 바르고 정중한 분위기 속에 치러졌고 축가도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트로트 가수를 섭외했다. 엄마가 직접 만든 폐백 음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도록 식장 무대 위에서 공개 폐백을 했는데 부모님 지인들이 가장 좋아했다. 반면 2부는 친구들과 우리 지인들을 초대해 편안하고 즐겁게 진행했다. 무거운 주례사 대신 우리를 가장 잘 아는 지인에게 사회, 주례, 축가를 맡겼는데 결혼식 축하 메시지를 SNS에 올릴 때는 뚱뚱한 신부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혼전임신이라는 해시 태그를 달아달라고 하는 바람에 지인들의 타임라인에는 #혼전임신이라는 태그가 달린 사진이 도배가 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하객들에게 줄 선물로는 로또 1등이 3번이나 나온 로또 명당을 찾아가 350장의 로또를 산 후 정성스럽게 비닐 포장을 했다. 결혼식에 와준 모든 이들이 1주일만이라도 희망의 마음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았다. 이렇게 탈 많았던 결혼식을 끝낸 소감은? 주변에 이미 결혼한 사람들의 ‘허무하다, 다시 한 번 더 결혼식을 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듣곤 했는데 나는 전혀. 두 번의 결혼식으로 몸은 조금 힘들었지만 후회 없이 행복한 결혼식을 했다는 것이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만약 예식의 주체가 두 사람이 아닌 부모님에게 치우치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럴 땐 우리처럼 과감하게 두 번의 결혼식을 하는 건 어떨는지.
Credit
- editor 황기애
- photo THE THIRD MIND
- digital designer 오주희
엘르 비디오
엘르와 만난 스타들의 더 많은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