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정규 앨범 <칼리파>로 돌아온 위즈 칼리파는 약속한 시각보다 20분 정도 늦게 도착했지만, 이 정도면 잘나가는 힙합 스타치고 양호한 편이다. 옷차림은 다른 래퍼들과 좀 달랐다. 깡마른 체구에 끝부분만 금발로 물들인 레게 머리. 올드 스쿨 패션의 전형으로 통하는 래퍼 아이스 큐브보다 쿨한 밴드 보컬 믹 재거에 더 가까웠다. 생 로랑 데님 팬츠에 빈티지 반스 슬립온을 신은 칼리파는 “패션을 좋아해요. 하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아요. 편하게 뒹굴 수 있는 옷이 좋아요”라고 말했다. 장 폴 고티에 안경을 쓰고 있지만 그건 단지 눈이 나빠서다. “시력이 마이너스 4.5예요. 제기랄, 뭐가 제대로 보이질 않아요.”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스물여덟 살 래퍼 위즈 칼리파는 ‘Black And Yellow’ ‘We Dem Boyz’ 그리고 지난해 개봉한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세븐> OST이자 ‘유튜브에서 10억 뷰를 기록한 최초의 힙합 영상’이란 타이틀을 얻게 된 ‘See You Again’까지 다양한 히트곡을 만들었다. ‘짝꿍’처럼 붙어 다닌 스눕독,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마일리 사이러스와의 컬래버레이션도 성공적이었다. 그래미상 후보에 열 번이나 올랐고, 빌보드 어워즈에서 세 차례나 수상한 그는 이제 힙합계의 신흥 거물이 됐다. 사실 칼리파가 음악을 시작한 건 한 곳에 정착해서 살 수 없었던 성장 환경 때문이다. “부모님이 군인이어서 이사를 자주 다녔어요. 두 분이 이혼한 후에도 독일, 영국, 일본 등 세계를 돌아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죠.” 학창 시절 내내 ‘새로 전학 온 아이’로 불리던 칼리파는 늘 불안했다. “다른 아이들은 서로 친했지만, 전 이방인이었어요. 아이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게 불편했어요. 어차피 곧 헤어질 것도 알았고.” 그런 그의 유일한 도피처는 음악이었다. 여덟 살 때부터 랩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린 시절에 쓴 가사의 대부분은 칼리파가 생각하는 ‘쿨’함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왜 이제 시대를 역행하는 여성 혐오적 단어들로 가사를 채우는 걸까? 한 예로 2014년 발표한 ‘Hustlin’이란 곡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쁜 X, 내가 마리화나를 말고 있을 때 그녀는 계속 핥아대네. 엉덩이를 들이밀면서. 돈 대신 몸으로 갚으려는 걸까(Bad bitch, She sucks me while I'm rollin'up, throw a stack at that bitch ass, and make her pay her rent with it).’“그런 표현을 쓴 건 맞지만 모든 여자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그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좀 더 분명하게 말했다. “난 여성을 사랑해요. 여자들을 우러러보고, 똑똑하다고 생각해요. 여성은 지구상에서 가장 영리한 생명체죠. 남자들과 공평하게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존중받을 권리가 충분히 있어요.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중요해요. 제가 사는 ‘힙합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은 일부 여성들을 곡의 소재로 써요.” 다른 사람들이 인터뷰 도중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대신에 칼리파는 잠시 담배를 피웠다. 그리곤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힙합 아티스트들은 가사를 쓸 때 평소보다 거칠게 표현하고 극대화해서 설명해요. 저 역시 제가 만난 사람 중에 나쁜 짓을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가사로 푸는 거죠. 세상에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위로 올라가려는 여자들이 있어요. 가령 자신의 몸을 성공의 수단으로 사용한다거나…, 그녀들을 우리 언어로 말하는 거예요. 이해되나요? 결코 엄마나 여동생을 ‘나쁜 X’라 부르지 않아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경멸하려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단순히 아티스트의 ‘표현의 자유’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여성들을 무턱대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문화가 싹틀 수 있고, 칼리파의 음악을 듣는 청소년들이 그가 의도한 미묘한 뉘앙스를 전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이건 그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무렇지 않게 성차별적 뉘앙스를 띤 가사를 쓰는 몇몇 힙합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다. 힙합이 인종차별, 빈곤, 무지, 경제·사회적 좌절, 대학보다 감옥을 택할 수밖에 없는 흑인 청년들의 처절한 현실을 음악에 담아내면서 시작된 건 사실이다. 최초의 힙합 아티스트들은 여성을 포함한 모두에게 분노를 품었다. 그런 의미에서 칼리파가 힙합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 분야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여성을 경멸하는 표현을 남발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그에게 혹시 힙합이 특유의 공격적인 화법을 버린다면 인기 없는 음악이 될까 봐 두려운 건 아닌지 물었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표현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어요. 거침없이 누군가를 디스하고, 저주의 말을 퍼붓는 것이 힙합 리스너들에게 ‘먹힌다’고 생각했으니까. 사람들은 정제되고 부드러운 것보다 날것의 느낌을 더 좋아하는 게 사실이잖아요.”‘날것’을 표현하는 데 누구보다 능숙한 그는 음악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여과 없는 발언을 자주 해 왔다. 무슬림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위즈 칼리파란 이름처럼 말이다. “삼촌은 저를 위즈덤(Wisdom)이라 부르길 원했어요. 거기에 아랍어로 계승자라는 뜻의 ‘칼리파’를 덧붙였더니 지혜의 말을 전파하는 위대한 계승자가 된 거죠.” 칼리파와 그의 삼촌이 바라던 대로 그의 거침없는 발언은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SNS를 타고 퍼져 나갔다. 힙합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카니예 웨스트와 칼리파의 트위터 설전(카니예가 칼리파의 말을 오해해 자신의 전 여자친구이자 칼리파의 아내였던 앰버 로즈까지 비난했다)의 결말은? “그를 한 번 마주친 적 있는데, 제가 먼저 자릴 떴어요. 카니예는 개인적으론 ‘쿨’한 사람이지만, 나에 대해 마음대로 떠드는 건 싫거든요.” 공공연한 대마초 마니아로 독자적인 대마초 브랜드까지 가지고 있는 그는 ‘대마초 합법화를 약속하는 사람에게 투표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힌 적도 있다. 칼리파는 미국 내에서 젊은 흑인 남성들이 정치적 색채를 띠지 않는 게 더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비무장 흑인 청년들이 사망한 사건이 잇따른 상황에선 더더욱. 칼리파 역시 피부색으로 차별당하는 건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 “흑인들은 언제든지 내가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아야 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라며 분개하기 전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부터 터득할 필요가 있어요. 어느 누구도 얼굴을 땅에 처박힌 채 수갑이나 차는 꼴을 당하고 싶지 않으니까.”위즈 칼리파는 ‘나쁜 X’나 ‘매춘부’라는 표현을 왜 쓰냐는 물음에 대체 뭐라고 변명할지 지켜보는 페미니스트 에디터 앞에서 솔직하고 정중하게 자신의 이론을 풀어놨다. 그에겐 분명 칼리파식 플로가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