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집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집 중앙에 9미터에 달하는 긴 런웨이가 생겼다. 현관으로부터 집의 끝에 걸린 큰 유리창까지 관통하는 좁고 긴 길. 그 길 끝에 걸린 커다란 프레임. 이 장면이 바로 우리집의 첫인상이자 하이라이트다.::김자혜, 하동, 지리산, 시골집, 건축, 레노베이션, 건축가, 집, 엘르, elle.co.kr:: | 김자혜,하동,지리산,시골집,건축

하동집의 중심에는 현관에서 시작되는 긴 통로가 있다. 처음 이 집을 방문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집이 미로같아!” 그도 그럴 것이, 현관문에 들어서 중문을 지나면 집의 구성이 한눈에 보이는 기존 아파트의 구조와는 확연히 다르다. 집의 입구로부터 긴 길이 이어지고, 그 왼편에는 거실과 부엌, 그리고 리딩 누크가 자리를 잡고 있다. 길의 오른쪽에는 욕실과 침실, 드레스 룸이 있는데 각각 여닫이와 미닫이문으로 가려져 외부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욕실과 침실 사이에는 다시 좁은 길이 있어 뒷마당으로 통한다. 집을 설계할 때, 건축가와 건축주는 조금은 다른 꿈을 꾼다. 건축가는 자신이 도전해보고 싶었던 요소들을 마음껏 실현하고 싶지만, 건축주는 모험을 즐기지 않는다. 이건 독특한 디자인의 옷 한 벌을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른 규모의 일이니까. 건축가 강성진((건축사무소 틔움(TIUM), 디자인랩 오사(5osa.com))은 공간활용에 중점을 둔 설계안(기존 아파트와 비슷한 구조)과 긴 통로로 나뉘는 조금 독특한 설계안, 두 가지를 내밀었다. 우리의 선택은 후자였다. 넓지도 않은 집에 긴 통로를 낸다는 건 어쩌면 공간 활용 면에서 어리석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 선택에 대해 건축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집을 설계할 때, 출입구로부터 서쪽으로 보이는 지리산이 보이는 픽쳐 프레임. 그 축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 집이 보여주는 첫인상이죠. 현관에서 시작되는 ‘건축적 산책로’의 끝에 픽쳐 프레임을 마련한 거예요. 산책로를 즐기다가 그 끝에서 지리산 풍경을 만나게 되길 원했습니다. 공간 내부가 한눈에 파악되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시야가 바뀌는 공간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의 대문을 안채의 정면에 두지 않고, 안채 옆쪽에 둔 것도 이 같은 ‘길’의 느낌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대문에서 본 윗채의 모습. 감나무를 지나 돌다리를 건너 중앙의 문으로 들어가면 긴 ‘건축적 산책로’가 이어진다. 그는 서쪽으로 보이는 지리산 풍경을 포기할 수 없었고, 나는 스튜디오 형태의 거실과 은밀한 침실이 구분되는 공간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건축적 산책로’라는 어려운 말이 뭔지는 몰라도, 집을 향하는 좁은 길이라면 잘 안다. 지구에 태어나 첫 8년 동안 어린 시절을 보냈던 단독주택에도 ‘좁은 길’이 있었다. 동네 큰 길에서 벗어나 좁은 길을 한참 걸어 들어가면, 초록색 철문이 나타난다. 문을 열고 들어가 커다란 목련나무와 할머니의 화단을 지나 계단을 두 차례 오르면, 마침내 집 현관에 도달한다. 그 길을 모두 지나야 비로소 실내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오직 우리집으로만 향하는 길. 이 길에 관한 기억은 사소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이다. 길에 깔린 블럭의 색과 모양. 몇 개의 블록이 깨져 이가 빠져 있었던 것. 깨진 부분을 절대로 밟지 않기 위해 깽깽이 걸음으로 뛰어갔던 것, 초록색 철문의 형태와 질감, 철문에 녹이 슬어 풍기던 옅은 피냄새 같은 것들. 그건 아마도 ‘집으로 가는 길’에 느끼는 특유의 정서 때문일 것이다. 동네 언니들과 한참 뛰어 놀다가 해가 뉘엿뉘엿할 때 즈음 마침내 집을 향해 뛰어가는 소녀의 마음 같은 것. 더 놀고 싶은 아쉬움. 약간 허기진 느낌. 저녁식사에 늦어 꾸중을 들을까봐 불안한 마음 같은 것. 복잡하지만 왠지 안심이 되는 심정으로 뛰어가던 길이었다. (윗쪽 왼쪽) 조적(벽돌쌓기)공사와 목공사, 창호공사를 마친 모습. 현관문은 유리를 끼운 철제문으로, 중문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나무문으로 정했다. (윗쪽 오른쪽) 집 입구에서 본 현관문의 모습. (아래쪽) 현관문을 지나 나무로 된 중문을 지나면 문 크기만한 고정창이 보인다. 다시 하동집으로 가보자. 처음 이 길이 생기던 날, 즉 조적(벽돌쌓기)을 하는 장면을 보고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생각보다 높은 벽. 압도적으로 높은 벽면은 묘한 긴장감을 준다. 사실 이 벽은 기존 부분(흙집)과 확장한 부분(벽돌집)의 경계선이기도 하다. 양 벽면은 회색 블록으로 쌓여있지만, 천정에는 기존의 서까래를 그래도 두어 이 집의 특성(옛집과 새로운 건축의 조화)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관에서 바라본 입구 마당의 모습. 구들에서 나온 납작한 돌을 모아 디딤돌로 놓고 잔디를 사다가 직접 심었다. 문득, 삼 년 전 우리의 청첩장 문구 말미에 적었던 문구가 떠오른다. “세상살이 녹록치 않고 울퉁불퉁한 길이 있을지 모르나, 두 손을 잡고 예쁜 오솔길 걷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말, 오솔길. 그 예쁜 길을 찾았다. 우리 집에 있었다. 이미 집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우리의 일상을 디자인하고 있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