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파리지엔으로 사는 법

‘파리지엔’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되는 법은 간단하다. 눈치 보지 않고 진짜로 내가 되면 된다.

BYELLE2016.08.24

얄팍한 사전적 의미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단어들이 있다. ‘집밥’이 그렇다. ‘집에서 해 먹는 밥’이라는 손쉬운 해석은 파편적인 이미지에 불과하다. 밥 먹으라는 엄마의 부름과 손맛, 투박한 담음새, 가족, 그리움. 이 두 글자에는 레스토랑과 편의점의 기성품 냄새 나는 집밥 메뉴가 모방할 수 없는 어떤 맛이 잘 담겨져 있다. ‘파리지엔’이라는 단어도 비슷한 맥락이다. ‘파리 여성’이라고 단순하게 해석한다면 오역이다. 파리의 낭만을 느끼게 하는 파리지엔이라는 단어에는 많은 것들이 내면화돼 있다. 만인이 워너비로 삼는 스타일, 특유의 감성과 태도. 그건 집밥처럼 모방을 통해 습득할 수 없는 어떤 멋이기도 하다. 머리를 헝클어뜨린 채 오버사이즈 재킷을 어깨에 걸치고 담배를 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별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시크하고 멜랑콜리하게 보이는 파리지엔의 매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캐롤린 드 메그레(Caroline de Maigret)의 주위에도 이 질문이 끈질기게 서성거렸다. 모델과 음반 제작사 대표, 샤넬과 랑콤의 뮤즈라는 직함을 떼어놓고 보더라도 그녀는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채는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이었으니 말이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질문에 파리지엔으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이 들었을까. 아니면 할 말이 무궁무진했을지도. 캐롤린 드 메그레는 파리에 살고 있는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본인들에 관한 탐구서이자 자조적인 고백서 <How To Be Parisian Where You Are : Love, Style and Bad Habits>를 내놓았다. 파리지엔에 대한 동경을 반영하듯 이 책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36개국으로 전파됐다. 최근 국내에도 <파리지엔은 남자를 위해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주방에서 친구들과 레드 와인을 마시며 쉴 새 없이 쏟아낸 대화에서 시작됐다는 책은 그 기원 그대로 파리지엔의 원칙과 습관, 생활의 기술, 연애론, 프렌치 시크의 비밀 등을 솔직하고 수다스럽게, 때로는 아찔하고 적나라하게 들려준다. 인터뷰 내내 캐롤린 드 메그레가 보여준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몽마르트르 지역에 자리한 호텔 아무르에서 만난 그녀는 이곳이 자신의 아지트라고 소개한 뒤 가장 편한 자세로 생각과 의견을 유려하게 풀어냈다. 물론 차갑고도 냉소적인 파리식 유머도 곁들이면서.

 

 


오늘의 룩은 물 빠진 청바지, 검정 카디건, 바시티 재킷. 거의 매일 이렇게 입어요.

 

외출 때마다 꼭 챙기는 건 휴대폰과 열쇠, 지갑 그리고 여권. 언제 어디서나 떠날 준비가 돼 있어요. 가방을 들고 나가진 않아요. 모두 손에 쥐거나 주머니에 넣고 다녀요. 그래야 뛰기에도, 춤추기에도 편해요.

 

얼마 전까지 파리에 비가 끊이지 않았어요. 날씨에 기분이나 무드가 영향을 받나요 꼭 그렇진 않아요. 다른 나라로 자주 여행해서 그런가 봐요. 가는 곳마다 날씨가 제각각이거든요. 비 내리는 날에는 우산을 쓰지 않아요. 그냥 머리가 젖는 게 좋아요. 나갈 일이 없으면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비를 맞을 정도로요(웃음).


‘파리지엔 안내서’와 같은 책을 쓴 내적 동기는 5년 전이었을 거예요. 샤넬 패션쇼에 선 뒤 쇼장을 나서는데 수많은 카메라들이 저를 향해 플래시를 터트렸어요. 6개월 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렇게 찍힌 사진들은 ‘파리지엔’이란 제목과 함께 각종 매거진과 미디어에 실렸어요. 제 스타일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처음 느꼈지요. 가장 많이 받은 질문도 “파리지엔 스타일이란 뭔가?”였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에 정형화된 이미지들을 갖고 있었어요. 외국인일수록 더욱 그랬죠. 그 뻔한 클리셰를 깨고, 파리지엔은 완벽한 여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책을 만드는 과정은 파리지엔에 관한 총체적 탐구 작업이었을 텐데 내용을 구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자유’와 ‘나 자신’이었어요. 남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만족을 실현할 수 있는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라고 권하고 싶었어요. 어쩌면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상에 반할 수 있어요. 하지만 결코 나쁜 일은 아니죠.

 

한국에는 <파리지엔은 남자를 위해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출간됐어요. 이 말에 동의하나요 처음 들었을 때 숨이 멎는 듯했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목이었죠. 신선하고 강렬했어요. 남자를 뒤흔드는 기술이 아니라 여성의 자유의지를 이야기하려는 게 느껴졌어요. 100% 동의해요.

 

한국의 많은 여성들은 가정에서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위해 재능과 커리어를 희생하고 있어요 문화적인 차이 같아요. 무엇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순 없어요. 저는 엄마로서 일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없어요. 한 번뿐인 인생이니 원하는 삶을 사는 게 현명하고 행복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엄마부터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어요. 엄마가 불행하면 아이는 스펀지처럼 그 기분을 빨아들이죠. 결국 여자로서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야 해요.

 

어머니는 어떤 멘토였나요 어머니뿐 아니라 할머니와 집안의 여자들은 거리로 나가 여권 신장을 위해 투쟁했어요. 투표를 하고 은행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권리와 낙태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섰어요. 당시 모든 파리지엔들이 그랬을 거예요. 이런 역사적 사실이 오늘날의 여성들에게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게 해요. 앞선 세대가 이룬 업적이 헛되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게 되죠. 프랑스 여성들은 화장에 크게 신경 쓰거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죠. 외모를 치장하는 일보다 훨씬 가치 있는, 현실적이고 낭만적인 것들이 많아요.

 

 

 


‘예쁘다’ ‘아름답다’ ‘멋지다’ 중에서 듣고 싶은 칭찬은 ‘멋지다(Cool)’. 예쁘다, 아름답다는 외모에 대한 표현 같아요. 그에 반해 멋지다는 성격을 지칭해요. 저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네가 입은 그 드레스 정말 예쁘다’보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라는 말이 더 듣기 좋아요.

 

책을 통해 ‘늙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고 충고했는데 과연 나이가 들어서도 ‘쿨’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타고난 외모와 성격, 스타일을 그때까지 유지한다면 가능해요. 사실 나이가 든다는 건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죠. 피부 노화와 늘어나는 주름을 지켜보기란 무척 괴로워요. 한국에선 성형수술이 대중화됐다고 들었어요. 프랑스에서도 성형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다만 티가 안 나도록 해요. 주름 제거 정도는 괜찮아요. 눈과 코의 모양을 변형하고 얼굴에 유니폼을 입듯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외모를 갖는 건 반대해요.

 

파리지엔 중에서도 가장 파리지엔다운 여자로 제인 버킨을 꼽았어요. 수긍이 가면서도 의외였어요 잘 알려졌다시피 그녀는 영국 출신의 가수이자 배우예요. 파리지엔은 프랑스 여자로 한정 지을 수 없어요. 그건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배우고 익히는 일종의 태도와 같아요. 그런 점에서 1960년대를 대표하는 제인 버킨은 파리지엔을 대표하는 완벽한 모델이에요. 그녀의 자유분방한 감성과 솔직함은 제게 큰 영향을 미쳤어요.


파리지엔은 왜 특별하다고 생각하나요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 행복한가요? 그런 모습을 보는 타인도 불편함을 느낄 거예요.

 

‘세상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 골라서 그것을 몹시 싫어해 보라’고 쓴 게 기억나요. 당신의 삐딱함은 무엇인가요 저는 프랑스인이에요. 그러니까 싫어하는 게 한두 개가 아니겠죠(웃음). 지금 생각나는 건 영국의 록 밴드 퀸(Queen)과 더 폴리스(The Police).

 

살면서 타협하고 싶지 않은 것은 무료하게 보내는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해요. 스마트폰 탓에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보고 있어요.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죠. 제 경험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료함 속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발휘된다고 생각해요.

 

 

당신의 인스타그램에서 ’10 Ways to be Parisian’ 영상 시리즈를 재미있게 봤어요. ‘약속 시간에 늦은 뒤 바빴다고 핑계 대기’ ‘점심에 와인 주문하기’ ‘반대 의견을 내기’ 그리고 ‘전화가 왔을 때 받지 말고 벨이 울리도록 그냥 놔두라’는 내용이 있던데 하루에 몇 번이나 이런 일이 있나요 제 휴대폰은 늘 무음으로 설정돼 있어요. 아, 에이전트의 연락 외에는 받질 않아요. 휴대폰에 시간을 저당 잡히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가령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조차 들여다보지 않죠. 저녁 6시부터 8시까진 무슨 일이 있어도 전원을 꺼놔요. 아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거든요.


아들 안톤(Anton)에게 좋은 남자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무엇을 가르치나요 독립적인 삶을 살라고 조언해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상사나 부하 직원이 없는 일을 하라고 말하곤 해요. 또 인내심을 가지라고 엄격하게 가르쳐요.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마무리를 지어야 하죠. 도중에 포기하는 건 가만두지 않아요. 배움은 큰 즐거움이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하기도 해요. 옷이 더러워지고 찢어지는 건 개의치 않아요. 호기심을 갖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길 원해요.

 

파리지엔이 본 파리지앵(파리 남자)은 사람마다 달라서 딱 하나로 정의할 수 없어요. 제 남자 말고는 다른 남자에게 관심이 없기도 하고요.

 

‘어느 날은 이 남자를 사랑했다가 다음 날은 저 남자를 사랑하게 되더라도, 사랑의 감정은 여전히 계속된다’ ‘내면에 표현하지 못한 욕구가 넘치는데 왜 한 사람에게서만 만족을 구해야 하는가’ ‘새벽에 이별한 상대를 출근길에 바래다줄 수 있는 관계’ 책에서 묘사된 파리지엔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글쎄요. 그보단 자기애가 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요.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이상적인 남자를 만날 수 있거든요.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남자가 있다, 그러면 다가가서 말을 걸어야 해요. 망설일 이유는 없어요.

 

애정이 식었어도 함께해 온 시간과 의리에 얽매여 헤어지지 못하는 커플도 있어요. 그들을 위해 ‘파리지엔 식’으로 쿨하게 이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면 남의 애정사에 이러쿵저러쿵하기 싫지만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요. 사랑이 끝났는데도 함께 지내는 건 불가능해요.

 

사랑과 우정 사이에 놓인다면 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Caroline de Maigret’s Short Cut

시그너처 아이템 페펙토 가죽 재킷.
옷장에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 아이템 버뮤다 팬츠.
최근 관심을 자극한 인물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
궁극의 와인과 치즈 와인은 보르도, 치즈는 리바로(Livarot).
오랜 시간 수집해 온 것 휴대용 LP 플레이어.
소개하고 싶은 뮤지션 Bon Voyage Organisation.
요즘 손에서 놓지 못하는 책 미국 소설가 잭 런던의 <Martin Eden>.
운동은 일주일에 얼마나 두 번.
나만의 히어로 원더우먼.
이상형의 조건 유머, 지적인 매력.
섹스 에티켓 콘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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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otographer MARGAUX GAYET
  • correspondent 김이지은
  • editor 김영재
  • digital designer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