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됐다, 임주환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임주환은 어디까지 왔는지 보다 어떻게 왔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남자다. 속도를 재촉하지 않고 묵묵히 정성을 들인 그 과정의 시간이 탐스런 열매를 맺을 계절이다. | 임주환,임주환 화보,인터뷰,함부로 애틋하게,오 나의 귀신님

파자마 셔츠는 CH. by Beaker.임주환에 대한 오해 혹은 착각 많은 분들이 되게 온순하고 따뜻한 줄 안다. 나쁜 남자는 아닌데, 약간 차가운 스타일이다. <오 나의 귀신님>에서 악역을 연기했는데, 그 역할이 내겐 너무 편했다. 캐릭터의 파괴적인 부분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선입견 때문에 평소 참아내는 것들이 가끔 ‘욱’하고 터지는 경우가 있어서.   극과 극 일할 때는 상당히 디테일한 편이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잘 받지도 않는다. 자고 일어나면 다 잊어버린다. 혈액형은 O형인데, B형인 아버지 성격을 닮다 보니 성격이 극과 극이다. 치밀할 때는 말도 안되게 치밀하다가, 풀어질 때는 사람들이 “이걸 그렇게 편안하게 생각해도 돼?”라고 할 정도로 놓아버린다.인생에서 만난 가장 큰 행운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의 제안으로 연극반에 들어갔고, 그게 배우의 길로 이어졌다. 그전까지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연극을 접하면서 내가 갖고 있는 감정이나 에너지를 터뜨려서 하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친구 덕분에 운명이 바뀌었고 지금까지 밥 먹고 살게 된 거다. 그 친구도 연기를 하고 있는데, 늘 고마움을 느끼고 책임감도 갖고 있다. 인생에서 놓친 아까운 행운 그런 생각은 잘 안 한다. 지난 일은 지난 거고, 후회나 아쉬움은 없다. 굉장히 현실적이다. 어떤 일을 할 때 모든 부정적인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한 다음, 그 안에서 최소한의 리스크가 있는 것을 선택한다. 공상과학이나 허무맹랑한 스토리는 안 좋아한다. 다들 좋아하는 <스타워즈>도 끌리지 않더라. 슈퍼맨보다 배트맨이 더 좋고. 직업적 쾌감 촬영장에서 내가 어떤 연기를 했을 때, 스태프들의 반응이 다르다. 현장의 스태프들은 수년 동안 수많은 배우들의 연기를 눈앞에서 봐왔잖아. 연기가 뜨뜻미지근하면 가만히 있는다. 테이크를 다시 갈 줄 아는 거다. 그런데 연기가 좋았다 싶으면 감독의 OK 사인이 나기도 전에 장비를 철수한다(웃음). 연기에 대해 얘기할 때, 조각이나 퍼즐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사랑이나 슬픔, 분노 같은 감정들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거다. 내가 고민해서 세공한 조각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틀 안에 딱 맞아떨어졌을 때, 직업적 쾌감이 느껴진다. 블랙 로브는 Sasquatchfabrix by 10 Corso Como Seoul. 안에 입은 실크 화이트 톱은 Wales Bonner by 10 Corso Como Seoul. 블랙 와이드 팬츠는 Andy & Debb. 플라워 패턴의 로퍼는 Christian Louboutin.톤다운된 그린 컬러의 더블 수트와 안에 입은 브라운 셔츠는 모두 Kimseoryong.거름이 된 작품 사전제작 드라마를 많이 했다. <탐나는 도다>는 방송될 때까지 1년 7개월이 걸렸는데, 스물여섯 나이에 그 작품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3~4개월 동안 잠 못 자고 밥 못 먹어가면서 찍지 않나. <탐나는 도다>의 경우는 여유 있게 대본을 분석하고, 좀 더 나은 표현이 있을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렇게 단련한 덕분에 이후 작품에서도 짧은 시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유익한 만남, 유익한 배움 배성우 선배님, 차태현 선배님, 인성이 형, 기방이 형, 중기, 광수, 우빈이, 경수. 많이 알려진 우리 모임 사람들을 통해서 정말 많이 배운다. 다 같이 모이면 그렇게 토론을 한다. 연기는 물론이고, 사는 일에 대해서. 연예계란 곳이 남에게 쉽게 마음을 열 수 없는 바닥인데, 진짜 마음을 열 수 있는 소중한 형, 동생들이다. 차태현 선배님이 화장실에 가면 인성이 형이 일어나서 에스코트한다. 인성이 형이나 기방이 형이 가면 내가 따라가고. 자동적으로 하나 밑 동생이 따라간다. 재미있다. 끊을 수 없는 것 뭘 하나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다. 미드를 보기 시작하면 며칠 안에 시리즈를 다 끝내야 한다. 아니면 딴 걸 못한다. 요즘은 골프에 빠져 있다. 주변에서 권유해서 시작했는데, 이게 묘하게 오기를 부른다. 경쟁이나 팀워크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내가 잘하면 이기는 게임인데, 그것도 움직이는 공도 아니고 바닥에 가만히 있는 공인데! 인생을 즐기는 데 꼭 필요한 세 가지 첫 번째는 가족. 재작년에 처음으로 내가 번 돈으로 가족 여행을 갔는데 되게 좋더라. 두 번째는 친구.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휴대폰 목록에 ‘배우’ ‘가수’ ‘형’ ‘동생’ 이런 식으로 저장돼 있는데 ‘친구’라는 말을 쓰는 건 고등학교 친구밖에 없다. 그 친구들이랑 있을 때 가장 편하고 재미있다. 세 번째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아직까지 인생을 즐길 여유가 부족하다.   사랑에 빠졌을 때 조심성이 많아서 연애를 쉽게 시작하는 편은 아니지만, 한번 좋아지면 올인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연애할 때 많이 차인다. 왜냐고? 밀당이 없으니까! 나는 무조건 ‘그래 그래’ ‘OK’거든.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여자친구가 생일 모임에 갔는데, 밤에 전화해서 친구들이랑 클럽에 가도 되냐고 묻더라. 알겠다고, 갔다 오라고 했더니 나한테 화를 냈다. 그럴 거면 왜 전화해서 물어본 건지! 결혼 솔직히 나이가 들면서 연애에 대한 흥미는 줄어드는데,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환상은 있다. 서른아홉, 마흔에는 결혼하고 싶다. 애기도 많이 갖고 싶고. 일단 목표는 네 명이다. 딸, 아들, 아들, 딸. 순서도 정해놨다. 물론 가능하다면(웃음). 광택 있는 소재의 다크 오렌지 톱은 Kimseoryong. 패치워크 디테일의 오리엔탈풍 데님 팬츠는 Junya Watanabe Comme des Garcons by 10 Corso Como Seoul.너바나 프린트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남몰래 부러워하는 것 인성이 형의 외모, 중기의 피부, 경수의 가창력? 이건 그냥 하는 말이고, 누가 부럽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부럽다면, 연예인이 아닌 직업에 종사하며 살아가는 내 친구들이 부럽다. 보통의 친구들이 누리는 보통의 삶.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별로 안 했는데, 요즘 따라 직업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수지 씨의 키다리 아저씨 같은 역할이다. 미련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모든 걸 다 받아내는 캐릭터다. 극 속에서 모든 연결 고리의 중심이 되는 인물. 일반적인 키다리 아저씨 역할은 아니다. 나름대로 좀 다른 마음을 갖고 다른 해석으로 연기했는데, 그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우빈이랑 친해서 내가 뒷받침을 잘할 수 있는 선배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경희 작가님과 친분도 있어서 좀 더 신경 쓰이는 면이 있다. 현재 나에게 주고 싶은 점수 고등학교 2학년이면 열여덟인가? 서른여섯, 지금 내 나이에서 빼면 18이니까 18점? 현재 내 위치나 인지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냉정한 평가로 봤을 때 그 정도밖에 안 될 것 같다. 내가 좀 짜다(웃음). 10년 전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싫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다. 어차피 후회하는 선택도 없고, 그때그때마다 나름대로 충실히 해서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지금 잘하면 미래는 당연히 좋을 것이고, 과거도 떳떳해지는 것 같다. 10년 뒤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를 찍을 때, 이하늬 씨랑 얘기를 나누다가 충격을 받은 적 있다. “나는 출연작 중에 시청률 10%가 넘은 드라마가 이번이 처음이야”라고 했더니, 하늬 씨가 깜짝 놀라면서 말하더라. “오빠가 연기를 잘하긴 잘하나 보네. 몇 년 동안 10% 넘는 작품이 없는데도 계속 주연급으로 출연하고 있잖아.” 그 얘기를 듣고 잠시 그대로 멈췄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포인트라서. 사실 그때 자존감이 바닥일 때였거든. ‘어 그러네, 내가 그래왔구나. 내가 잘하고 있었구나’라는 또 다른 자극제가 됐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만족하는 부분도 있고,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적어도 부끄러운 일은 없으면 좋겠다. 조금씩이라도, 0.1mm라도 계속 발전해 나가는 모습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