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만큼은 디자인 피스

“참 무난하네요.” 가구에게 이 말은 결코 칭찬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디자인이 유별나거나 특수하다는 편견만 없애면 그 가구는 어느 집, 어느 공간에 놓여도 빛날 수 있다. 집에 놓을 많고 많은 물건 중에 단 하나만큼은 디자인 피스를, 그것도 꽤 시선을 잡아 끄는 독보적인 가구를 갖고 싶다는 욕심은 당신에게도 있을 테니까.

BYELLE2016.06.21

새로운 디자인과 새로운 에디션이 홍수를 이루는 밀란 가구박람회. 모든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누구보다 눈에 띄는 디자인을 내놓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올해는 그 경쟁범위가 확장됐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아트 퍼니처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아트 퍼니처이고, 어떤 것이 상업적인 퍼니처인지를 정의하는 건 무의미하다. 어디가 앉는 면인지 찾을 수조차 없는 퍼 뭉치 같은 체어(디모레 스튜디오), 만화경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기묘한 샹들리에(마르셀 반더스), 우주에서 운석을 파온 듯한 모양새의 테이블(Bcxsy), 공룡 뼈처럼 생긴 다리를 가진 크리스털 테이블(필립 스탁)…. 이런 가구들이 제품으로 나왔다. 많은 전문가들은 2016년 밀란 가구박람회가 전 세계적인 시장의 침체와는 별개로 생기가 넘쳐난 현상을 고스란히 아트 퍼니처의 공덕으로 돌렸다. 올해 디자인계는 베스트셀링 아이템보다 여기 소개한 7개의 디자인들이 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CACTUS by 귀도 드로코 & 프랑코 멜로 GUFRAM
최근 2~3년 사이 인테리어 잡지를 뒤적거리다 보면 멋 좀 낸 집마다 반드시 놓여 있던 제품. 이탈리아 브랜드 구프람에서 생산한 ‘선인장’은 1972년 귀도 드로코(Guido Drocco)와 프랑코 멜로(Franco Mello)가 디자인한 이래 2000년대에 여러 에디션으로 재조명됐다. 합성수지 소재로 만든 이 선인장의 용도는 원래 옷을 거는 행거지만 코트를 덮어씌워 옷방 구석에 세워두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비앙카(흰색), 로소(빨간색), 네로(검은색), 메타(머리만 빨간 초록색), 르블루(파란색) 등이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출시됐다. 올해는 폴 스미스와 협업한 알록달록 사이키델릭 버전이 한정 판매 중이다. 또 밀란 디자인 위크 기간에는 브랜드의 50주년을 기념해 <구프람 온 더 록스>라는 설치미술 전시도 10 꼬르소 꼬모에서 열렸다.



PALANCO by 로낭 & 에르완 부홀렉 GLAS ITALIA
거울은 거울인데, 움직일 수 있다. 거울 양 옆에 추가 매달려 있고, 블랙 알루미늄 케이블 선이 도르래로 연결된다. 추를 올렸다가 당기면 블라인드처럼 거울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거울을 굳이 움직이도록 설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가질 수 있겠다. 부홀렉(Bouroulec)의 디자인은 늘 장식이 현란하거나 컬러가 유난스럽지 않다. 이 거울도 눈에 띄고 싶어서 어필하는 면모는 없다. 그러나 첫눈에 봐도 갤러리에 걸려 있는 작품처럼 생겼다. 집에 그림을 걸 듯 거울을 걸 수 있다면, 이미 예술성에 대한 논의는 끝난 것이다.



SAM SON CHAIR by 콘스탄틴 그리치치 MAGIS
거의 모든 것을 디자인하지만 디자이너 콘스탄틴 그리치치(Konstantin Grcic)의 의자는 특출하다. 조형미가 남달라 의자의 등받이부터 다리까지 기하학적인 구성이 균형 좋게 삽입된다. 그래서 그에게선 조각가나 건축가의 냄새가 풍기기도 한다. 그런데 의자 ‘삼손’은 만화가가 연상된다. 실제로 만화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팝핑 캔디 같은 컬러도 유별나지만 ‘근육맨’의 팔 같기도 하고 거대한 스파게티 면 같기도 한 등받이 모양에서 귀여움이 뚝뚝 떨어진다. 등받이와 팔걸이 역할을 동시에 하는 봉은(보통 인체공학적이라고 부르는 유선형은 아니고) 균일한 두께의 플라스틱이다. 그러나 한 번 앉으면 엉덩이가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시트가 함께한다.



CASABLANCA by 에토레 소트사스 MEMPHIS MILANO
이 물건의 정체는 선반이다. 실용을 우선한 시스템 선반이나 얌전하게 네모반듯한 책장과는 태생부터 다르게 더듬이형의 팔이 사방으로 뻗어 있다. 건축가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가 80년대에 주도한 디자인 혁명 ‘멤피스’에서 가장 아이코닉한 디자인으로 불리는 이 책장은 ‘급진적인 디자인도 제품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디자이너의 실험이었다. 그래서 선반은 작품이 아니라 제품으로 판매된다. 멤피스 트렌드는 최근 다시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 많은 아티스트가 멤피스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면서 그에 대한 오마주로 실험적인 디자인을 내놓았다.



Melt by 톰 딕슨
톰 딕슨(Tom Dixon)이 이전에 내놨던 ‘에치 셰이드’ 펜던트는 전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왔으나, 그것은 우연한 행운이 아니라 세상에 없었던 것을 정조준한 결과물이다. 코퍼 컬러가 ‘핫’한 컬러로 등극한 것조차 그의 영향일 거란 생각도 든다. 그가 새로 내놓은 ‘멜트’ 시리즈는 기존과 완전히 똑같은 재료를 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모험적이다. 그러나 고온에 녹아내린 금속을 일그러진 모양 그대로 굳힌 듯한 디자인은 그간 그가 만져온 금속의 속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작품이 됐다. 각진 면 없이 전면에서 빛이 투과돼 자연광처럼 공간을 폭넓게 비춘다.



ANIMAL LAMP by 프런트 MOOOI
이 디자인은 한국에서 마르셀 반더스의 작품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마르셀 반더스가 아트 디렉터로 있는 브랜드 모오이에서 출시했을 뿐 스웨덴 디자인 듀오 프런트(Front) 그룹의 디자인이다. 프런트는 동물을 본뜬 ‘애니멀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실제 토끼 크기의 래빗 램프와 돼지 크기의 피그 테이블, 종마 사이즈의 홀스 램프가 그것이다. 무형의 철학으로부터 영감을 받는 게 아니라 생물에서 탄생한 직관적 디자인은 무미건조한 사람도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GLIDER SOFA by 론 아라드 MOROSO
무엇을 디자인하든 항상 유기적인 형태로 미래적인 분위기를 기가 막히게 창조하는 론 아라드(Ron Arad)의 최신작. 그는 중년을 훌쩍 넘었어도 여전히 애들 같은 장난을 디자인에 반영하는 악동 디자이너이다. 산업적으로 해석하면 자신만의 생각을 용기 있게 밀어붙인 개척자 역할도 했다. 론 아라드 덕분에 편안하고 무난한 가구들에 재미와 파격이 끼어들 틈새가 조금은 더 벌어진 셈이니까. 대담하기만 한 게 전부라면 그에게 거는 기대는 항상 자극적이었겠지만 이 글라인더 소파를 보면 그가 기능도 대단히 고민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소파가 그네처럼 앞뒤로 흔들리기 때문이다! 3인용 흔들의자 소파라니. 산업디자인과 예술의 경계에 선 작가는 이 제품에 가죽을 씌울(더 잘 팔릴 수 있도록) 생각은 없다. 올해부터 판매가 시작된다니 시장에서 뚜껑을 열어볼 일만 남았다. 

Keyword

Credit

  • editor 이경은
  • photographer carl bengtsson, cesare chimenti/courtesy of gufram, magis, memphis milano, moroso, tom dixon
  • digital designer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