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 시간을 달리는 남자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새로운 영역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며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강동원은 차기작을 앞두고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한 편의 영화 같았던 LA에서의 시간과 영화, 연기, 꿈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강동원, 스타, 배우, 가려진 시간, 마스터,엘르,elle.co.kr::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LA 샌타모니카 해변의 베니스 비치 스케이트 파크에는 보드를 타러 온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갈매기 소리, 스케이트보드 휠이 콘크리트 바닥을 긁는 마찰 소리가 캘리포니아 햇살 아래 어우러지고 있었다. 그 아래서 해변의 보드 파크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불과 하루 전에 인천국제공항의 인파 속을 지나 이곳에 도달했다는 사실마저 잊게 된다. 하필 이날은 4월 1일. 만우절스러운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 강동원이 거짓말처럼 보드 파크 라인 위에 앉아 있다. <검은 사제들>에 이어 <검사외전> 등 전작 관련 활동을 마무리하고 차기작 <가려진 시간> 개봉 준비와 새로 몰입할 영화 <마스터>로 쉼 없이 질주하는 스케줄 사이에 겨우 찾아낸 며칠간의 휴식. 어쩌면 그 자신도 16시간 뒤로 늦춰진 시차 속에 느릿하게 흐르는 캘리포니아의 시간과 탁 트인 공간이 모두 비현실적으로 다가왔겠지만, 그는 원래부터 스케이트보더들 틈에 섞여 계속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어느새 자연스럽게 풍경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LA에 도착한 날 밤, 그는 새로 옮긴 소속사 동료이자 음반 작업 차 LA에 와 있던 씨엘과 우연히 만나 심지어(!)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3년 전, 파리에서 <엘르> 커버 촬영을 하던 당시의 보호막을 촘촘히 치듯 낯가림이 심하고 예민한 모습과는 사뭇 달라서 이 모든 변화가 우리 몰래 그가 준비한 만우절 이벤트 같았다. 베니스 비치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그런데 촬영 전날 저녁, 소속사로부터 아주 정중하게 촬영 시간을 30분만 늦출 수 있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할리우드 영화관계자로부터 오디션 제안을 받은 것이었다. 마침 오디션 장소가 <엘르> 촬영장소와 멀지 않은 곳 샌타모니카 해변 근처여서 우리는 흔쾌히 촬영 시작 시간을 살짝 뒤로 미루었고 정확히 30분 후 그는 오디션을 마치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홀가분한 모습으로 <엘르> 코리아 카메라 앞에 섰다. 그렇게 <엘르> 커버 촬영과 LA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내고, 며칠 뒤 서울 한남동 그의 오피스에서 다시 만났다. 새로 단장한 오피스는 직접 가구를 제작할 정도로 인테리어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유명한 강동원의 공간인 만큼 언젠가 <엘르 데코>에 꼭 소개하고 싶을 정도로 감각적이었다. 이곳의 첫 방문자가 되어, 막 새로 들여온 두 개의 1인용 가죽 소파에 마주 앉아 LA에서의 시간과 에피소드부터 영화, 연기,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파인애플 프린트 블루 셔츠와 베이지 컬러 팬츠는 Valentino. 아이보리 슬립온은 Valentino Garavani.





다른 스태프보다 LA에 하루 더 있다 돌아왔는데, 그 하루 동안 뭘 하며 보냈는지 궁금해요. 어디 가고 싶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 갔어요. 거기 너무 좋던데요! 오는 길에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거기가 어떤 느낌이냐면요, 보여드릴게요(그가 보여준 휴대폰 사진은 모하비 사막 부근, 영화 <마션>의 화성을 연상시키는 바위들이 듬성듬성 솟아 있고, 바위 틈에는 캠핑족의 텐트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이런 곳이에요. 정말 캠핑하고 싶은 곳. 공원이 엄청 넓고 끝이 없었어요. 다들 캠핑하고 고기 구워 먹고(또 다른 사진에는 멀리 바위 꼭대기에 누군가 두 팔을 번쩍 들어 ‘만세’ 자세로 서 있었다. 강동원이었다. 또 다른 사진 속에는 강동원, 씨엘 그리고 그녀의 동생이자 스타일리스트인 하린이 일행들과 함께 바위에 앉아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도 있었다).


짧지만 재충전은 됐을 것 같네요 재충전요(웃음)? 저 완전 방전하고 왔어요. 그래도 좋은 경험을 많이 해서 좋았어요. 저는 무작정 쉰다고 해서 재충전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좋은 것도 보고, 제가 영감 받는 것들이 있어야 재충전된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시간이 짧아서 힘들었지, 진짜 좋은 시간이었어요.


LA에서 씨엘과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네, 씨엘은 처음 만났어요. 예전엔 사람을 잘 못 만났는데, 어느 순간 제가 단단해지는 느낌이 드니까 그 다음부터는 새로운 사람들, 괜찮은 사람들을 만나 영감을 받을 때가 많더라고요. 그러기 시작한 게 아마 소집해제하고 난 뒤부터인 것 같아요. 오픈 마인드가 되기 시작하니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걸 보면 굉장히 배우는 게 많더라고요. 요즘엔 ‘이 사람 괜찮은 사람이다’ 싶으면 만나보고 싶어요. 억지로 만나진 않아요. 그날처럼 LA에 있는데 마침 각자의 매니저들이랑 친한 사이기도 하니 그럼 한번 보자 해서 만난 거죠. 만나고 보니 씨엘은 진짜 사람이 좋더라고요. 영감을 많이 주는 친구였어요.


‘스케이트보드 좀 탄다’는 소문을 듣고 촬영 시작을 스케이트 파크에서 했어요. 정말 보드 잘 타던데요 못 타진 않아요. 그렇다고 보드 파크에 들어갈 실력은 안 되고요(웃음). 전 아마 들어가자마자 자빠질 거예요. 전 이것만 해봤어요. U자만. 근데 이것도 힘들더라고요. 점프 5cm 정도 하는, 딱 그 정도 수준이에요. <검은 사제들> 보면 그레고리안 성가도 잘 부르고, <검사외전>에선 붐바스틱 춤도 잘 추고, <군도>에선 승마도 잘했죠. 액션은 물론이고 못하는 게 뭘까요 볼링 못하고, 탁구 못 치고. 대부분의 공놀이를 잘하는 편인데 볼링은 무거워서 못하겠더라고요(웃음). 제가 근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힘을 필요로 하는 건 좀 약해요. 밸런스와 스피드, 순발력 쪽으로는 좋지만 힘으로 하는 것들은 잘 안 되고.




프린트 셔츠와 스카프, 팬츠, 스트랩 샌들은 모두 Louis Vuitton.




강동원 하면 예전엔 ‘작품을 골라서 하는 배우’라는 이미지가 강했다면, 요즘엔 ‘쉬지 않고 일하는 배우’라는 얘기가 많이 들리는 것 같아요 최근 영화들은 대부분 놓치기 싫은 작품들이었어요. 그래서 세 작품을 연속으로 했어요. <검사외전>에 먼저 캐스팅됐는데 <검은 사제들>이 먼저 치고 들어오면서 <검사외전> 개봉이 뒤로 밀렸고. <가려진 시간>의 경우는 <검사외전>을 찍고 있는데 부산으로 엄태화 감독님이 찾아왔어요, 하자고. 하고는 싶었지만 스케줄상 조금 미룰까 하다가 제작사에서 좀 더 빨리 들어갔으면 해서 촬영하게 됐죠.


그러고 보면 감독의 네임 밸류로 작품을 선택하는 배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 선택 기준은 시나리오인가요 아니면 다른 게 있나요 저는 주로 감독님의 관상을 보고 선택해요. 제가 관상을 좀 보거든요.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눠 보고, ‘이분은 눈빛이 살아 있구나’ 싶으면 같이 하죠. 윤종빈 감독님도 만나보고 ‘이 사람이랑 해야겠다’ 싶었는데 말이 정말 잘 통하고 지금은 너무 친한 동료 같죠. 관상으로 운명이 보이진 않지만 사람의 성격은 보이니까, 거의 다 맞죠. <검은 사제들> 장재현 감독님도 그랬던 경우고, <검사외전> 이일형 감독님은 <군도> 연출부였을 때부터 같이 하고 싶었어요. 그 다음이 엄태화 감독님이었죠. 보자마자 ‘음. 사람 괜찮네(웃음)’. 이번 영화 <가려진 시간>은 엄태화 감독님의 상업 작품 데뷔작이에요. 전에는 독립영화를 했죠. 최근작들은 다 성공적이었어요.


최근 들어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난 건가요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엔 다 잘 맞아떨어진 거죠. <검사외전>의 경우, 중간에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살짝 일긴 했는데 사실 스크린이 없는 영화배급사라서, 그런 상황을 우리가 컨트롤할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저도 여러 다양한 영화들이 극장에 걸리는 걸 원해요. 근데 당시에 독과점으로 너무 몰아가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었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 다 같이 고생한 배우와 스태프들로선 힘이 살짝 빠지더라고요.


지난달 <엘르>에서는 배우 오달수 씨와 인터뷰할 때 “희극배우의 프로포션을 타고난 게 아니냐”는 좀 실례되는 우스갯소리에 “꼬라지대로 살고, 연기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하시더군요. 강동원은 어떤 프로포션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나요 사실 제가 데뷔하자마자 해 온건 그걸 계속 깨는 작업이었어요, 항상. 저는 있는 그대로 살고 싶지 않더라고요. 남들이 ‘너는 다음에 이런 거 하게 될 거야.’ 이러면 그런 거 안 하려고 해요. 남들이 예상하는 대로 하는 것도 싫고. 원래 타고난 성격인 것 같아요. ‘쟤는 이런 애겠지.’ 이러면 ‘난 그런 애 아닌데?’ 그러는 성격이요. ‘얘는 못 웃길 거야.’ 이러면 웃겨 보려 하고, ‘얘는 어리버리하고 힘이 없을 거야’라고 하면 액션 보여주는 식의, 매 작품마다 그런 작업이었죠.




체크 셔츠와 스트라이프 티셔츠, 레오퍼드 스카프, 블랙 진, 화이트 스니커즈, 스케이트보드는 모두 Saint Laurent by Hedi Slimane.




실크 셔츠와 캐멀 컬러 스웨이드 팬츠는 모두 Kimseoryong.




아이보리 컬러의 실크 스카잔 재킷과 이너 웨어로 입은 그레이 실크 집업 셔츠, 네이비 팬츠는 모두 Louis Vuitton.




이제 많이 깨진 것 같지 않나요 어느 순간이 되니까, <검은 사제들>부터 대중적으로는 인정해 주시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쟤는 맨날 놀면서 광고 찍으면서 쉽게 돈 버는 애야.’ 이러기도 하는데, 사실 저는 광고도 거의 안 찍고, 항상 작품만 하고 쉬지도 않았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안 알아주시더라고요. 업계 사람들은 원래 인정했던 부분인데, 한 10년 꾸준히 작업을 하니까 관객들이 ‘아, 얘는 이런 애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언젠간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알아주시더군요.


출연한 영화 중 속편 얘기가 나오는 작품들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검사외전>이랑 <검은 사제들>이 잘돼서 앞으로 일하기가 편해졌어요. 하고 싶은 걸 좀 더 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나온 영화 중에 속편 얘기 나온 영화가 많아요. 만들어놓은 캐릭터들이 좀 있어서. 예를 들어 <전우치> 속편 얘기 나온 지도 오래됐고, 특히 <검은 사제들>은 좀 할 만하죠. 장르적으로 마니아들도 있고, 재미있으니까. 일단 최부제가 등장을 했으니 앞으로 할 일이 무궁무진할 텐데. TV 시리즈로 만들어도 되겠어요(웃음).


<마스터>에는 이병헌, 김우빈, 오달수 등 캐스팅이 좋은데 이들과의 호흡이 어떨지 궁금한데요 오달수 선배님과 이번 작품을 같이 하게 되면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제가 되게 좋아하는 분이거든요. 기대하고 있어요. 영화에서 저는 지능범죄수사대 팀장. 그리고 이병헌 선배와 김우빈. 셋 다 머리가 좋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사는 게 모두 다르죠. 두 배우 모두 아직 잘 몰라요. 이병헌 선배님은 술자리에서 한 번 뵌 적은 있는 것 같은데, 김우빈 씨는 아직 만난 적이 없어요. 호흡? 각자 자기 일 하는 거죠, 뭐(웃음). 맞으면 맞는 대로 가는 거고 안 맞으면 안 맞는 대로 가는 거고. 그런 거죠(웃음). 왜냐하면 한쪽에서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안 맞아요. 그럼 안 맞는 대로 재미있게 가는 거예요. 맞아서 재미있는 것도 있고, 안 맞아서 재미있는 것도 있어요. 그게 영화의 운명인 것 같아요.




새로운 영역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며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강동원은 차기작을 앞두고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한 편의 영화 같았던 LA에서의 시간과 영화, 연기, 꿈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강동원, 스타, 배우, 가려진 시간, 마스터,엘르,ell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