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영의 술권하는 사회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지금의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이었다. 사내연애백서 제1항. ‘남 모르게 만나라!’ 세상 천지에 우리만 알고 남들은 모르는 비밀을 공유한다는 건, 꽤 스릴 넘치고 짜릿한 경험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연애를 알고 있는 사람이 또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오뎅야구시야덴(일본식 선술집)의 사장님이었다. 한 달에 두세 번 꼴로 둘이 나타나 새벽 2~3시까지 술을 희롱하다가 갔으니, 캐묻지 않아도 뻔한 사이였던 것이다. :: 훈훈한,정겨운,구수한,푸드,일본식 선술집,엘르,엘라서울,엣진,elle.co.kr :: | :: 훈훈한,정겨운,구수한,푸드,일본식 선술집

지금의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이었다. 사내연애백서 제1항. ‘남 모르게 만나라!’ 세상 천지에 우리만 알고 남들은 모르는 비밀을 공유한다는 건, 꽤 스릴 넘치고 짜릿한 경험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연애를 알고 있는 사람이 또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오뎅야구시야덴(일본식 선술집)의 사장님이었다. 한 달에 두세 번 꼴로 둘이 나타나 새벽 2~3시까지 술을 희롱하다가 갔으니, 캐묻지 않아도 뻔한 사이였던 것이다. 나중에는 다른 동료들과도 이 집에 갔다. 우리 둘과 사장님 셋이 눈을 맞추며 동료들을 속이는 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진미성찬보다도 더 맛있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었을까? 어느 술자리든 냄새 잘 맡는 눈치의 대가가 있는 법. 세 사람이 즐기던 은밀한 눈빛은 거기까지였다. 오뎅야구시야덴은 우후죽순 생긴 일본식 선술집들의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무표정한 얼굴에 베이스 톤으로 흐르는 주인장의 포스도 그렇거니와, 코에 훅 끼치는 오뎅 국물의 잔향이 구수하다. 나무로 짠 테이블과 의자, 무엇보다 오뎅 국물이 끓고 있는 바는 정겹다. 일본의 조그마한 사케집에서 느낄 수 있는 정감, 바로 그거다. 또 반 지하 층에 있어 안락하다. 추운 겨울, 골목길과 같은 높이로 나 있는 창문을 통해 들여다본 술집 정경은 더욱 훈훈하다. 뿌연 김이 서린 창문에 반해 이 집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때론 손님들이 술집의 분위기를 결정 짓는 법. 오뎅야구시야덴을 찾는 손님들의 얼굴은 늘 밝다. 정으로 넘친다. 술도 즐겁게, 적당히 마신다. 이 집에서 늘 튀는 테이블은 우리 패거리의 테이블이었다. 오뎅야구시야덴에 가면 일단 미소라멘을 먹어줘야 한다. 담백하고 구수하고 깔끔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이 그만이다. 김치도 감칠맛이다. 라멘으로 시장기를 속인 후엔 장르별 대표 안주를 주문해야 한다. 오뎅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시미로부터 구이, 튀김, 샐러드까지 안주 순례를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굴 고로케, 두부 스테이크, 마구로 다다끼, 연어 샐러드, 시샤모 구이는 강추다. 일본 건강식의 상징, 나또 요리도 좋다. 술은 물론 정종이 맛나지만 각종 사와(일본 소주에 과일즙을 섞은 칵테일)도 일품이다. 연애 상대를 무너뜨리고 싶은 사람은 사와, 이거 십분 활용해야 한다. 다시 아내 얘기로 돌아오자면, 이렇다. 일식 좋아하고 해산물 즐기고 정종까지 좋아하니, 게다가 정 넘치는 분위기까지, 이 집에서 내게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주인장님의 은근한 응원도 한몫 거들었다. 결혼 날짜를 잡고 나서는 일부러 들러 결혼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활짝 웃으며 축하하던 주인장 말씀, “저도 갑니다.” 아내가 될 분은 술집에 늘 함께 있던 분이었다. 아뿔싸! 우리 부부가 모르던 주인장만의 비밀이 있었던 것이다. 그 양반 참... “우리 집에서 만나 결혼한 커플 되게 많아요. 축하합니다.” 오뎅야구시야덴은 연애를 부르는 곳이다. 결혼을 부추기는 술집이다.*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3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