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늘 고마운 당신, 감자탕 | 엘르코리아 (ELLE KOREA)

감자탕에 관한 해묵은 논쟁 중 하나. 감자탕에 왜 감자가 안 들었냐? 무슨 소리냐 예전 감자탕에는 감자가 수북했다. 모르는 소리. 감자탕의 감자는 돼지 등뼈에 든 척수를 일컫는 말이다. 참 나, 그게 아니라 감자뼈가 진짜로 있다니깐. 뭐가 맞냐구? 나도 몰러. :: 푸드,감자탕,편안한,친근한,구수한,엘르,엘라서울,엣진,elle.co.kr :: | :: 푸드,감자탕,편안한,친근한,구수한

[Profile]이름: 낭만식객성별: 스테레오 타입을 거부하는 양성성 소유자취미: 한 종목에 꽂히면 석 달 열흘간 한 놈만 팬다.특징: 사주팔자에 맛 미(味) 자가 있다고 용한 점쟁이가 일러줌과제: 어지러운 중원에 맛의 달인, 진정한 고수 찾기몸 안의 알코올기가 다 빠져나가지 않은 아침이면 무의식 중에 찾는 것이 있으니 바로 감자탕이다. 남들은 돈까스, 오렌지 주스, 짜장면으로도 잘만 해장을 한다는데 본인은 단 두 개의 메뉴에서만 고민하면 된다. 감자탕이냐 순대국이냐. 우리나라 모든 해장국집들은 밤새 시달린 간을 달래주기 위한 주당들의 거대한 지원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해장국 메뉴가 이처럼 득세하는 나라도 세상에 우리나라 만한 곳도 없을 게다. 우거지해장국, 선지해장국, 뼈다귀해장국, 소머리해장국 등등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만 있으면 죄다 해장국이란 이름을 붙여 지친 간과 쓰린 속을 달래준다. 감자탕은 해장국계에서도 가장 광범위한 팬을 확보한 지존이었다. 길을 걸으면 발에 채이는 것이 원당, 추풍령, 참이맛, 조마루 같은 감자탕 체인점들이었는데 요즘은 많이 줄었다. 한때 교촌치킨, 안동찜닭과 같이 유행처럼 붐을 이루었다가 이놈저놈 우후축순 생겨나니 시장 원리에 따라 자연 감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못 살고 못 먹던 시대에 감자 뼈 수북이 쌓아 푸짐하게 보이면서 여럿이 둘러먹어도 눈치 보지 않고 양껏 먹을 수 있던 저렴한 메뉴가 요즘 정서에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 적잖이 섭섭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대학교 입학해 처음 신입생환영회 자리라고 불려간 곳이 20여 명은 족히 한자리에 앉아 거국적으로 잔을 부딪힐 수 있는 감자탕집이었다. 개강총회를 끝내고 나면 과 동기들과 별다른 이견 없이 우루루 몰려가던 곳이 감자탕집이었으니 나에겐 추억의 명소라고나 할까. 몇 해 전 찾아간 모교 앞 명물 감자탕집이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었을 때 아, 나는 추억의 한 장이 찢겨나간 것 같은 상실감에 젖었다. 거기서 울고 웃던, 치기 어린 함성과 노랫소리가 귓가에 환청처럼 맴돌았다. 결국 그 상실감을 이기지 못해 근처 작은 순대국집에서 밤새 추억을 꺼내 소주에 흥건히 몸을 적시고 다음날 또다시 감자탕집을 찾아 지친 발걸음을 옮기고 나서야 사라진 감자탕집에 대한 원혼을 달랠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감자탕을 먹다 보면 으레 나오는 얘기가 있다. 근데 왜 감자탕이라고 부르지? 감자도 안 보이는데. 무슨 소리, 진짜 감자탕집에는 감자가 나와. 감자탕에 감자 없으면 앙꼬 빠진 찐빵이지. 그럼, 지금 감자탕은 원조가 아니란 얘기야? 무식한 소리 하기는. 감자는 돼지 뼈 사이에 든 노란 등꼴을 가리키는 거야. 왜 그 '등꼴 빼먹는다'고 할 때 그 등꼴. 등꼴이 얼마나 중요하면 그렇게 얘기했겠어. 그래서 이 감자탕이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원기회복에는 그만이라니깐. 참 나, 그런 줄 알았지? 아니야 사실은 요 돼지등뼈가 잘라보면 가운데가 쏙 비어서 한자의 감(甘) 자처럼 생겼잖아. 그래서 감자탕이라고 부른거야. 무슨 소리, 누가 그러는데 돼지등뼈 중에서 진짜 감자뼈라는 부위가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는데? 요렇게 감자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무수한 '감자론'이 오고가는 사이 부지런히 뼈다귀를 옮겨다가 뼈에 든 속을 쏙쏙 발라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역시 살은 뼈에 붙어있는 게 제일 맛있다니깐. 감자탕 귀신으로 통하는 본 식객은 뼈에 붙은 살을 한 점 남김 없이 발라먹는 특허기술을 갖고 있다. 뼈들이 연결되어 있는 약한 연결 부위에 젓가락을 찔러넣어 묶여있는 죄수 무릎 사이로 장대 넣어 고문하듯이 양 옆으로 벌리면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뼈들이 손쉽게 해체되어 맘 놓고 살점을 발라먹을 수 있다. 감자탕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가다 보니 탐욕스럽게 살을 발라먹는 모습에 놀라서 수저 놓고 멍하니 제 모습을 관람하던 예전 남자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한참 바라보면 친구는 놀란 입을 다물고 조용히 관전평을 고했다. "아귀 같애." "아기?" "아니, 지옥의 아귀" "맛있잖아." 친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뭐 그 이후 연애는 시들해졌다. 다행이 지금의 남편은 내가 감자탕 뼈 핥는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섹시하다고 말한다. 종종 그의 독특한 취향에 놀라곤 하는데, 역시나 그런 걸 연분이라고 하나. 함께 술을 먹은 다음이면 별다른 고민 없이 감자탕 먹으로 직행하는데 메뉴 선정으로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내겐 참 고마운 감자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거리에 수많은 감자탕집들이 조정기간을 거치는 동안에도 녹번동, 응암동, 용산의 감자탕촌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다들 원조에 원조, 원조에 원조원조, 원조에 원조원조원조를 붙여가며 자신들이 감자탕 정통임을 내세우지만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맛의 충격과 감동을 준 경우는 고백하건데 없었으니 참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감자탕이란 종목에 그토록 열정과 사랑을 다 바쳤지만 결국 내 인연을 못 만난 것인가. 그저 뼈가 수북이 쌓이고 적당히 얼큰한 국물이라고 모두 제 맛이 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재료와 양념의 조화도 훌륭해야 하고, 우선 뼈에 붙어있는 살도 고기로서의 직분에 충실해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돼지뼈로 치면 그 어느 부속보다 저렴한 가격을 보장하지만 질 좋은 돼지뼈를 구하는데 경쟁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무조건 살이 많이 붙어있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수입 돼지뼈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본인이 가장 높게 치는 점수는 바로 육질이다. 해서 그 많고 많은 감자탕집 중에 영예의 면류관을 씌워준 곳이 바로 양재해장국이다. 겉보기로 치면 여느 감자탕집과 다를 바 없지만 이곳의 돼지뼈는 확실히 다른 곳과 차별된다. 부드러우면서도 적당히 쫄깃한, 여느 감자탕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확실한 육질을 보장한다. 살코기가 왜 이렇게 맛있냐고 물어보면 주인장은 자신있게 받아오는 뼈가 아니라고 한다. 직접 손질해서 내는 뼈란다. 그거야 보지 않았으니 모르는 일이지만 아무튼 그 살코기 때문에 골수 팬들을 다수 확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국물 맛이 상대적으로 깊이가 없다는 것. 오래 우린 돼지 육수라기보다는 흡사 라면국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 새벽녘 얼근히 취해 여기 라면스프 넣는 거 아니예요?라고 물어볼 뻔하다가 주변의 만류로 차마 물어보지 못한 경험이 있다. 그리하여 나는 아직 이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감자탕을 먹어보지는 못한 감자탕 귀신이다. 내 인생의 진정한 감자탕은 언제쯤 만나게 될 수 있을까.Information양재해장국 575-5668. 양재꽃시장과 aT 센터 맞은편 길가에 노란색 간판이 달려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입구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24시간 영업이라 점심, 저녁, 1차 술자리 이후 해장을 빙자한 2차 장소로도 적당하다. 물론 새벽까지 먹다가 아침 해장으로도 그만이다.*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3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