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하게 일하는 당신, 배드애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우리 주위의 유능하고도 독한 철의 여인들은 겉으로 보기에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데다 원래 그런 종족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파워풀한 여성이 되려면 꼭 그래야만 하는 걸까. 그녀들은 과연 누구를 위해 ‘독한 년’이 된 걸까? | 철의 여인,여성,우먼,배드애스 우먼,독한년

한때 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배드애스 우먼(Badass Woman), 즉 유능함을 겸비한 끝내주는 여자가 되기 위해 부단히 애썼던 적이 있다. 스물 아홉 살에 잡지의 편집국장이 되면서 여러 기획안에 책임을 져야 했고 후배 에디터들의 모범이 되고자 노력했다. 난생처음으로 느껴지는 책임감 탓에 아침마다 위가 따끔거리기도 했지만 몸의 신호나 감정을 묵인한 채 ‘모든 걸 해낼 수 있다’는 유능함을 포장하는 데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질문을 받고 선뜻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당당하게 명확한 해답을 내놓으려 애썼고, 저녁엔 위스키 잔을 기울이며 실전 무술을 배울 거라며 큰소리쳤다. 솔직히 무술은커녕 운동할 시간조차 없었으면서. 그런 내 모습들은 모두 허세이자 위선이었다. 겉으론 멀쩡해 보였지만 속으론 심각한 스트레스에 싸여 있었고 외로움과 절망이 점점 커져만 갔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남을 의식해 울거나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결심은 꽤 효과가 있었다. 어느새 난 사람들에게 ‘독한 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꿈꾸던 여성상이었고, 냉철하고 유능하고 강인한 여성 그룹에 꼈다는 사실에 고취됐다. 심지어 독한 년이란 얘길 들을 때마다 쾌감이 넘쳤다. 더 이상 내가 스테레오타입의 연약한 여성이 아니라는 묵은 감정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으니까. 보통 독한 여자들은 실패하더라도 결코 울지 않는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늘 당당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 땐 사회적 시선이나 예의상 하는 일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한다. 또 가죽 재킷이 잘 어울리고 또래 여성에 비해 훨씬 터프하고 용감한 것이 특징이다.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타이틀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는 거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난 감정도 없는 ‘철의 여인’을 가장하고 있나?’ 고민을 거듭할수록 지금껏 숭배해 온 여성상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강인한 여성은 감정을 포용하는 것이지 감추는 것이 아닐 테니 바로잡아야 한다는 문제 의식이 생겼던 거다. 여러 자료들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우리에게 씌워지는 굴레를 이해할 수 있었다. 먼저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맥 맥클리랜드(Mac McClelland)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감정을 드러내고 공유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강인한 여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쟁 범죄자들을 추적했고, 루이지애나 주 기름 유출 사건을 취재했으며, 자경단 인터뷰를 끌어내는 등 위험을 무릅쓰고 기자 정신에 충실했던 저널리스트 맥클리랜드야말로 독한 년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이리터블 하트 Irritable Hearts: A PTSD Love Story>를 통해 2010년 아이티 대지진을 목격한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린 심경을 털어놓았다.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난 그렇게 강인한 여성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기자로서 끔찍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그저 감정을 억누르고 냉철함을 보여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고. 또 <마더 존스 Mother Jones>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늘 독한 년이라는 꼬리표에 우쭐해 있었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해 주는 데 자랑스러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그 정의는 다시 쓰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간 그녀는 감정이 없는 철의 여인으로 알려졌다. 이런 식이었다. ‘난 개의치 않는다. 그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으며 오직 내가 원하는 바를 헤쳐 나갈 뿐이다!’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해 버린다면 그 사람은 두꺼운 가죽 재킷에 늘 감정을 숨겨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드애스 증후군은 깊은 내적 갈등을 일으킨다. 마치 섹스 심벌이라는 이미지에 갇혀버린 여성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감정 차단과 비정함이라는 굴레에 갇힐 가능성이 높다. 보도사진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린지 아다리오(Lynsey Addario)는 저서 <왓 아이 두 What I do>를 통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의 분쟁 지역을 취재한 몇 년간의 고통스러운 스토리를 회상했다. 그녀는 이라크에서 취재 도중 피랍됐다가 풀려난 후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커리어를 완전히 포기할 준비가 되지 않은 탓에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분쟁 지역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죄책감에 시달렸다. 전쟁과 기아, 인권의 위기를 다루는 것이 내 일이자 책임이었고, 그걸 멈추는 건 나를 죽이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은 후 아다리오는 세상의 열악한 환경들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을 계속했지만 <뉴욕 타임스>에 실린 그녀의 사진집 기사 아래엔 ‘비겁하다’는 악성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용기 있게 이렇게 적었다. ‘난 린지 아다리오를 충분히 지지한다. 자신의 꿈을 넘어 아이 엄마가 된다는 건 또 다른 신념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저널리스트이자 전쟁특파원 알렉스 크로퍼드(Alex Crawford)와 루스 셜록(Ruth Sherlock) 역시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강인한 여성으로서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그녀들의 활약을 보면 당장 전쟁특파원이 되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하지만 강인한 여성이 되기 위해 굳이 위험한 시리아 지역의 리포터가 될 필요는 없다. 남자만큼 유능해야 살아남을 수 있지만 남자만큼 감정을 호쾌하게 드러내는 여성에겐 인색한 사회에서 우리는 여성 특유의 감성과 감정을 유연하게 드러내야 한다. 더 이상 지나친 감성주의로 비난받을까 봐 북받치는 감정들을 무조건 억누를 필요도 없다. 일례로 온라인에서 회자되는 성적 학대나 희롱에 대해 일침을 가하거나 소소한 이야기에 공감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강인해질 수 있다. 우리가 찾아가야 할 진정한 강인함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도 솔직한 것이다. 나의 일을 하되 악성 댓글 따윈 무시하고 남자 동료들의 험담에는 귀 기울이지 말 것. 정당한 자기방어를 주장하고, 매일매일 용감하게 고개를 들어야 한다. 꽁꽁 동여매온 감정적 희생을 저 멀리 던져버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센 척할 필요도 없다. 여린 감정들을 무 자르듯 잘라낼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않을뿐더러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당신이야말로 끝내주는 여자니까. Who's she?앤 프리드먼은 매거진의 편집장으로 일하다 2012년 동료들과 함께 해고 됐다. 이후 그들과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매거진 를 창간했고, <뉴욕 타임즈> 북 리뷰 코너와 <로스앤젤레스 타임즈> <엘르> <가디언> 등 다수의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는 제대로 독한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