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을 다시 맞이하며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흐른다. 지난 주말 신해철이 남긴 명곡들로 꾸며진 음악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가 떠난 지 벌써 1년이 됐다. 추억이라 부르기엔 신해철의 목소리가 우리 가슴에 선명하게 멍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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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이라는 가수를 좋아하게 된 건 조금 머리가 굵어진 중학생 시절이었다. 넥스트의 2집 앨범인 <The Being>은 내 인생에서 가장 처음으로 접한 명반이었다. 록이 뭔지 잘 몰랐고 그냥 넥스트의 음악이 좋았다. 그리고 가사를 정말 좋아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좋아했던 신해철의 가사를 보면서 당시 그가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생각했다.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이게 열네 살짜리 중학생이 즐겨 부를 만한 노래가사인가. 확실한 건 그의 언어가 학창시절부터 나를 움켜쥐고 흔들었다는 사실이다.
신해철은 항상 자신의 존재적 가치에 대해서, 자신이 취해야 할 삶의 노선에 대해서 노래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잘 알게 됐을 때 그것을 방해하는 세상과 맞서서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직접 최전선에 서서 자신을 짓누르려는 사회의 편견과 맞서 싸우면서도 스스로를 보존해 낼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람이었다. 그건 선생님도, 부모님도 알려주지 않던 삶의 방식이었다. 오히려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겐 쳐다봐서도 안될 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신해철은 기성세대에게 내 자식을 이상하게 물들이는 나쁜 친구 같은 취급을 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흔히 신해철을 독설가라고 말한다. 그는 항상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선 어떤 것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신해철의 독설이란 그런 자유를 억압하는 집단이나 힘을 향해 있었다. 불법 다운로드를 받았으면 음악적 평가를 ‘닥치라’고 일갈했고, 동방신기와 비의 노래를 유해 매체로 지정하지 말고 국회를 유해 매체로 지정하라고 주장했으며, 사회적 환경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백수가 일방적으로 게으르다고 비난받아선 안 된다고 충고했다.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지성을 바탕에 둔 예리한 주관을 정확하게 빼들었다. 말을 아끼지도, 몸을 사리지도 않았다. 불합리하게 권력을 휘두르며 개인의 권리를 억압하거나 집단 논리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대해 결코 참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개인을 대상으로 말을 걸 땐 격려와 위로를 전하는 사람이었다. 흔히 독설이라 일컬어지는 그의 언어가 대부분 기득권의 폭력과 불합리에 맞섰다는 건 그것에 억눌린 개인의 편에 선 목소리이기도 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말은 동일한 의지를 표명한 이들과의 연대이자 응원이며 위로였다. 트위터에서 음악을 한다는 후배가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다고 하소연하자 신해철은 이렇게 답했다. “세상을 바꿀 힘은 없어도 세상의 일부인 자신을 바꿀 힘은 있지 않겠냐.” 신해철은 강자에겐 강자의 언어로, 약자에겐 약자의 언어로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었다. 다만 이 모든 언어가 자신의 내면을 향한다는 점에서 그는 건강한 자아 보존을 통해 건강한 세계의 형성을 추구했던 이상주의자였다.
그런 목소리가 사라졌다. 신해철의 노래는 이 세상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지만 결국 이 세상에 속한 나와 당신에 대한 고민이었다. 정당한 언어로서 세상의 부당함에 맞서고, 공정하지 못한 기준에 저항하고, 불합리한 윽박을 위트 있는 유머로 대항함으로써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노래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드물고 귀하다. 안녕, 마왕.
Credit
- EDITOR 김영재
- WRITER 민용준
- PHOTO 이수현
엘르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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