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내내 그대로인 김치호의 집
10년째 자신의 공간을 그대로 방치(!)한 디자인 그룹 '치호&파트너스'의 김치호 대표는 "뭐든지 가만 놔두는 게 좋다"고 말하는 혼자 사는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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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자로 생긴 유닛의 전면. 뒤로 돌아가면 침대와 책상이 있다. 가운데로 모든 생활 공간을 몰아 넣어 ‘ㅁ’자로 통로가 뚫려 있다. 바닥에는 스웨덴 바닥재 브랜드 볼론(Bolon)의 PVC를 엮은 신소재를 깔았다.

재미있는 요소가 뭔가 하나는 있어야 이 집에 발을 들일 수 있다. 왼쪽의 테이블은 익스텐션이 가능하고, 임스 체어들은 베를린에서 세컨드 핸드를 구입한 것. 유리 테이블 위에 놓인 오디오 스피커는 수제오디오제작가 유국일이 만들어서 선물했다.

반쪽이 떨어져 나간 여자 오브제는 리버티 시대 어느 대저택의 문 위에 붙어 있던 것. 그가 이탈리아 유학 시절 구입한 것이다.

친구가 선물한 유리섬유 플로어스탠드 옆에 선 김지호.

영국에서 만들어진 홈 바. 남자라면 누구나 괜히 품고 있는 로망을 실현했다. 안을 채운 술잔들 역시 대단한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출장 길에 하나씩 구입해 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상대적으로 매우 소박한 부엌. 요리를 자주 해 먹지는 않지만, “못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어린 시절 집에 놓여 있던 다이얼 방식의 전화기를 중심으로 양 옆에 빈티지 체어를 놓았다.

수년 전 박여숙 화랑에서 구입한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이 걸린 통로. 그 앞의 책장엔 10년도 더 된 리빙 잡지들이 가득 꽂혀 있다.

아버지가 출장용으로 쓰셨던 여행 가방. 지금 만드는 것들을 흉내낼 수 없는 머스터드 컬러의 깊이가 느껴진다.

냉장고 전면을 가득 채운 사진들이 곧 그의 인생.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한 시절도 있고, 파란 알을 넣은 안경을 끼고 다니던 시절도 있다.

걸쇠를 채우는 방식으로 문을 여닫는 빈티지 수납장. 아무런 장식이 없어 고리가 더 멋스럽다.
김치호 designer
공간을 만드는 사람의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호텔의 호화로운 라운지, 화려한 클럽, 우아하고 거대한 홀 등 글래머러스한 디자인으로 거대한 프로젝트를 차곡차곡 진행해 온 디자인 그룹 ‘치호&파트너스’의 김치호 대표는 그의 직업 때문에 품은 괜한 기대에 크게 손사래를 친다. “이 집에 산 지 벌써 10년째예요. 사는 내내 거의 그대로였고, 한쪽 벽에 페인트칠만 직접 다시 했어요. 일은 일이고 집은 사는 데라, 막 대단하게 고치고 싶지 않기도 했고요. 요즘은 온갖 게 너무 차고 넘치는 세상이라, 뭐든지 가만히 놔두는 게 더 좋아요.” 누구보다 트렌디한 감각에 날을 세운 남자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의 집은 몇 년간 물건 배치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처음엔 이 건물에 사무실을 보러 왔어요. 주인이 옥상에 있다고 해서 올라왔더니, 기가 막힌 거예요. 옥탑방이 있길래 관심을 보이니까 세 놓는 데 아니래요. 우겨서 들어가 보고는 한 달 내내 주인을 조르고 졸라 결국 세를 얻었어요. 그러곤 내 맘대로 다 고쳤죠.” 배관, 배수 시설도 없던 옥탑방은 4면 중 3면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통유리로 된 아담한 공간이었다. 김치호는 한강 다리들과 쭉 뻗은 강변북로가 내려다보이는 엄청난 뷰를 가리지 않기 위해 공간을 방으로 분할하지 않는 대신 집 한가운데에 네모난 유닛 형태의 파티션을 직접 디자인했다. 전면에서 보면 책장인데 뒤로 돌아가면 침대, 옷장, 책상이 붙어 있는 형태다. 면적이 넓지 않은 원룸 형태의 집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김치호의 묘안이었다. “가구를 따로 사지 않기로 했어요. 정돈도 잘되고, 사방이 다 트인 구조 덕분에 넓어 보이는 데다 다니기도 편하고요.“ 직업도 직업이지만, 타고난 성격이 사람 만나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 그는 이 장소를 혼자서 쓰기 좋게 꾸미기보다는 ‘놀기 좋게’ 만들었다. 실제로 한번 파티를 했다 하면 친구들이 몇 십 명씩 모여서 전망을 보며 스탠딩으로 와인을 마시곤 했다고 한다. 그렇게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온 김치호의 지난 10년은 이 집에 차곡차곡 쌓였고, 그 사이 하나씩 늘어난 가구들조차 그냥 숍에 가서 주문해 온 것은 하나도 없다. 1950년대 즈음에 만들어진 영국 술장, 인사동에서 사온 약장, 300년 된 제주도 반닫이, 베를린에서 산 빈티지 임스 체어, 미군 부대에서 쓰던 소파 등이 그렇게 ‘입양’된 아이들이다. 더 놀라운 것은 소품 컬렉션인데 해외 출장이 잦았던 아버지의 트렁크와 서류 가방, 아버지가 선물한 쌍안경과 워크맨의 최초 모델, 부모님 댁에서 사용했던 다이얼식 유선 전화기… 모두 어머니가 버린다는 걸 굳이 그가 이 집에 가져다 놓았다. 한쪽 벽에 걸린 여자 얼굴 오브제는 이 집에 있는 물건들 중 가장 오래 전에 산 아이템이다. “이탈리아에서 유학할 때였는데, 학교 가는 길에 골동품 가게가 있었어요. 쇼윈도 안에 있는 이 여자 오브제가 왠지 끌려서 사고 싶은데, 한 6개월 왔다 갔다 해도 문을 안 여는 거야. 하도 궁금해서 전화를 해봤더니 80세쯤 되는 할아버지가 그냥 개인적으로 모은 물건을 파는 덴데, 약속을 해야지만 와서 문을 연대요. 그 물건을 왜 사고 싶냐고 묻길래, 한쪽이 떨어져 나간 게 꼭 니케 여신상 같기도 하고, 불완전한 매력이 있다고 했죠. 할아버지가 너 뭘 좀 볼 줄 아는구나 하시면서 기분 좋게 팔았어요.” 이런 이야기가 온 집을 가득 채운 램프, 액자, 소품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보따리처럼 끝도 없이 나왔다. 빈티지 촛대는 처음 살 때 꽂혀 있던 눌어붙은 양초까지 그대로 두었고, 10년 전 리빙 잡지들이며 얼굴이 거의 지워져 버린 폴라로이드 사진까지 온 집을 빽빽이 채우고 있다. “전 버리는 걸 싫어해요. 추억을 그냥 내치는 것 같아요. 옛날 잡지를 보면 그때 트렌드는 이랬었지, 새로 공부하게 되는 게 많아요. 오래된 사진 속 저의 패션 같은 것도 다 변하는 거니까 그게 재미죠. 내가 저러고 다녔구나 하며 웃기도 하고.” 이 집에서 보낸 시간을 버리기 싫어서일까, 그는 더 넓은 집도 필요 없고 이사 계획도 없다고 한다. 넓은 집이 굳이 싫을 건 또 뭐냐는 반문에 혼자 사는 남자의 다소 주부(?) 같은 면이 툭 튀어나온다. “방 많아 봐야 치우기만 힘들죠 뭐. 전 누가 제 물건에 손대는 게 껄끄러워서 가사 도우미는 한 번도 고용해 본 적이 없어요. 사지가 멀쩡한데 왜 누굴 시켜요? 그리고 청소하면 얼마나 스트레스가 풀리는데요. 깨끗하게 쓸고 닦으면 마음까지 정화되는 것 같아요. 빨래 싹 해서 탁탁 털어 너는 것도 되게 기분 좋잖아요? 아직 그 정도 기운은 있어요(웃음).”
Credit
- EDITOR 이경은
- 정승혜 PHOTOGRAPHER 김상곤 DIGITAL DESIGNER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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