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누린 럭셔리

자연 속에 들어앉은 건축, 100명을 위한 롱 테이블, 함께 나눈 식사가 더해진 '퍼들 하우스'에서 보낸 하루.

프로필 by ELLE 2015.08.17
DEXT5 Editor

 

카페에 있던 가구를 한 줄로 이어 붙여 마련한 100명을 위한 식탁. 가운데에 커다란 팬 트레이를 놓고 화분으로 장식했다.

 

 

 

 

 

 

‘튀지 않게’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려 설계한 퍼들 하우스.

 

 

 

 

 

 

퍼들 하우스로 들어가는 입구.

 

 

 

 

 

 

(위)니트 브랜드 ‘미수 아 바흐브’가 설치한 위트 있는 인공 정원.    
(아래)톨릭스 웨어하우스의 가구와 박민하 작가의 페인팅, 굵직한 식물들로 꾸민 갤러리 숍.

 

 

 

 

 

 

(왼쪽)베리띵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윤숙경.

(오른쪽)B&A 건축사무소 대표 배대용.

 

 

 

 

 

 

(위)투박한 느낌으로 세팅된 샐러드와 버터.

(아래)오감을 자극하는 식사를 만끽하는 게스트들.

 

 

 

 

 

 

구황작물과 함께 쪄낸 킹 쉬림프, 화분 모양의 로즈마리 치킨 등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

 

 

 

 

 

 

잔디밭 위에서 여름 밤의 정취를 즐기는 모습.

 

 


주말을 맞아 오랜만에 강남을 벗어났다. 목적지는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퍼들 하우스(Puddle House), 이곳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베리띵즈 윤숙경 실장을 통해서였다. 늘 재미난 프로젝트에 둘러싸여 지내는 그녀가 건축가 배대용 소장이 선보인 새로운 공간에서 특별한 디너파티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한 것이다. 100명의 게스트가 똑같은 앞치마를 입고 긴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는! <킨포크>의 한 페이지 같은 아이디어에 궁금증이 피어났고 기꺼이 선택받은 100명 중 한 명이 되기로 약속했다. 6월 27일 토요일, 교통상황을 염려했음에도 40여 분 만에 거뜬히 도착한 곳에는 내가 있던 도시와 전혀 다른 하늘과 땅과 공기가 펼쳐져 있었다. 푸른 산이 두툼한 어깨로 감싸고 있는 듯한 녹지 속에 자리한 2층 건축물이 바로 퍼들 하우스. ‘물웅덩이’이라는 뜻의 이름은 건물의 설계와 인테리어를 맡은 B&A 건축사무소의 배대용 소장이 직접 지었다. 분지처럼 움푹 파인 이곳의 독특한 지형에 착안한 이름이다. “본래의 자연에 손대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웅덩이 같은 지형을 메우지 않고 그 위에 건물을 얹히듯이 설계했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서 늘 자연과 소통하는 작업을 선보여온 배대용 소장의 철학은 이번에도 묵직하게 작용했다. 아래로는 개울이 흐르고, 위로는 그림 같은 산줄기가 보이는 지형을 고려해 ‘투 페이스’ 개념을 적용한 건물은 1층과 2층에서 서로 다른 시선으로 이곳의 자연을 음미하게 해 준다. “나는 건축이 드러나는 게 싫어요. 이곳도 자연 안에 묻힐 수 있는 공간을 의도했어요. 2~3년만 지나도 숲이 더 커지면서 건물은 더 작아 보일 거예요.”


과시하거나 요란하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은 20년 전에 이 땅을 구입하고 지금까지 가꿔온 건축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구 편집 숍 겸 카페로 꾸며진 퍼들 하우스는 올봄 아무런 이벤트나 홍보 활동 없이 조용히 문을 열었고, 그저 알음알음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이 풍성한 자연과 너그러운 휴식 공간을 소수만 알고 있는 건 아무래도 아쉬웠다. 자신이 만든 공간의 ‘쓰임’에 늘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배대용 소장의 제안으로 뒤늦은 오프닝 행사가 계획됐고, 베리띵즈 윤숙경 실장이 총 기획과 준비를 맡았다. 식물과 음식에 관련된 콘텐츠를 창의적이고 모던하게 풀어내는 윤숙경 실장에게 이번 프로젝트는 꽤 설레는 작업이었다. “런던 유학 시절 공원이나 숲에서 재미있는 전시를 많이 했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기회를 갖기 어려웠죠. 성대한 이벤트보다 이곳의 풍경과 이 공간을 만든 분들의 철학에 어울리는 좀더 소박한 식탁을 떠올렸어요. 아기자기한 전시 콘텐츠와 여름 저녁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플랜도 구상했고요.”


상상은 현실이 됐다. 퍼들 하우스 1층 야외 데크에는 서로 다른 모양새의 테이블과 의자들을 길게 이어 붙인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약속된 7시가 가까워오자 100개의 좌석이 차차 채워지기 시작했다. 배대용 소장과 건축주의 지인들, 베리띵즈의 초대를 받은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비슷한 기대와 호기심이 읽혔다. 베리띵즈의 고문으로 있는 신서호 이사(매드포갈릭 및 국내 여러 외식 브랜드를 기획하고 이끌었던!)가 주도한 오늘의 디너 컨셉트는 ‘자급자족’. 격식을  차린 디너보다는 자유롭게 제 손으로 나누고 다 함께 즐기는 식사를 구상했다. 재미를 더하기 위해 모든 이들에게 특별 제작한 미니 에이프런을 나눠주고, 모든 메뉴들은 위트 있고 생동감 넘치는 형태로 제공됐다. 화분처럼 토기에 담겨 나온 치킨 요리에 이어 등장한 메인 디시는 옥수수와 감자, 고구마와 함께 쪄낸 해산물. 윤숙경 실장과 스태프들이 직접 커다란 들통을 들고 나와 팬 트레이에 놓인 그물 위로 음식을 쏟아 붓자 사람들의 입에서 즐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자연스레 테이블을 둘러싼 낯선 이들과도 이야기가 트였다. 내 오른편에는 니트 브랜드 ‘미수 아 바흐브’의 디자이너 김미수가 앉아 있었다. “저에게도 평소 자연이 중요한 모티프 중 하나인데, 서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이런 장소가 생겼다는 게 반가워요. 영감이 필요할 때 찾게 될 것 같아요.” 첫인상이 유쾌한 푸드 스타일리스트 민경윤과도 이 색다른 끼니에 대한 소감을 나눴다. “저 역시 음식을 다루지만 오늘 이 자리에 깃든 감각이 보통이 아니네요. 공간과 음식, 테이블 세팅부터 액션을 유도하는 프레젠테이션까지 모든 것에서  일관된 주제가 느껴져서 좋았어요."      


어느덧 해가 진 하늘에는 푸르스름한 어둠이 돌았다. 식사를 마무리한 게스트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산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를 걸어 올라가니 불빛이 새어 나오는 또 다른 건물이 보였다. 골조를 드러낸 미완성의 파티 하우스에서 아름다운 조형미가 느껴지는 원석 사진들이 라이트박스 위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 역시 배대용 소장이 설계한 곳으로, 앞으로도 몇 개의 공간이 더 들어설 예정이다. 배대용 소장의 귀띔에 따르면 그것은 갤러리일 수도 있고, 독채 형식의 부티크 호텔이 될 수도 있다. “가장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은 가족과 친구, 그리고 자연이 있는 삶이에요. 한국엔 이렇게 모여서 전원을 즐기는 문화가 별로 없어요. 퍼들 하우스가 그런 문화를 체험하고 전파할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파티 하우스에서 나와 이번에는 들려오는 음악을 좇아 검게 물든 산이 품고 있는 잔디밭으로 이동했다. 손님들을 위해 곳곳에 깔아둔 블랭킷에 등을 대고 누우니 땅에서 올라오는 촉촉한 풀 냄새가 느껴졌다. DJ 마지코가 준비한 섬세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울려 퍼지자 어느 산골 마을에서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휴대폰은 꺼져 있었지만 서울의 시끌벅적한 사연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청담동 어디서도 사지 못할 럭셔리한 휴식이 거기 있었다.

 

 

Credit

  • EDITOR 김아름
  • PHOTOGRAPHER KIM S. GON
  • DIGITAL DESIGNER 전근영

이 기사도 흥미로우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