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남자, 그 철없음의 함정

남자는 나이를 먹어도 ‘애’라 했던가. 아무리 넓은 어깨를 가진 듬직한 남자친구라도 이럴 때만은 철부지 어린아이로 보인다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프로필 by ELLE 2015.06.30



남자친구와 공동 통장을 만든 적이 있다. 돈이 생길 때마다 차곡차곡 모아서 데이트 자금으로 쓰기 위해서. 그런데 그가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면서 고향인 청주로 내려가게 됐고 그새 바람이 났다. ‘미안하다’ ‘그렇게 됐다’는 말과 함께 그는 모은 돈을 반으로 나누자고 했다. 그 순간 이별의 아픔 대신 ‘내 돈’이 떠올랐다니. 최소한 어른이라면 좀 더 책임감 있고 성숙하게 행동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2세, 대학원생

대학 새내기 때 만난 남자친구는 술과 친구를 유독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많았지만 한 치 앞밖에 보지 못하는 어린애 같았다. 방학 내내 막일해 모은 돈으로 후배들과 술을 마셨고 계산은 항상 그가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번은 술값이 모자라 전당포에서 40만원을 받고 커플 링을 맡긴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반지를 다시 찾기 전까지 나를 계속 피해 다녔다. 남자가 철이 든다는 건 나이와 상관없는 것 같다.
-33세, 영상편집 기사

남자들이 기계와 로봇을 좋아하는 건 알지만 서른이 넘은 어른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시작은 20만원대 미니 드론이었다. 그는 애완견 다루듯 하루에도 몇 번씩 드론을 면봉으로 닦았고 드론을 조종하며 “슈웅” “피해라” 같은 말을 했다. 얼마 안 가 50만원이나 주고 실외용 드론을 샀고 주말이면 한강으로 나갔다. 초등학생들이 다가와 “아저씨 이거 뭐예요, 어디서 팔아요?”라고 물으면 으쓱해 했다. 이젠 영상 캠이 달린 500만원짜리 드론을 살 거라며 돈을 모으고 있다. 이 어린이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33세, 경제부 기자

서른 중반에 걸 그룹에 열광하는 남자친구. 삼촌 팬을 자청하고 나선 그는 걸 그룹의 모든 신곡을 꿰고 있다. 차에서도 늘 걸 그룹 노래만 듣는다. 가요 프로그램을 함께 볼 땐 내가 여자친구라는 사실을 잊은 채 걸 그룹 멤버에 대한 칭찬과 평가를 늘어놓기도 한다. 가끔 안무도 따라 한다. 수지와 이민호가 공개 연애를 선언한 날엔 왠지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음악과 연예인을 좋아하는 데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건 좀 아니잖아.
-35세, 화가

우린 둘 다 가난한 유학생, 직업도 모아둔 돈도 없다. 하지만 그는 결혼을 원한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결혼하냐고 물으면 사랑하는 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반응. 처음엔 이 남자가 나를 정말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체적인 계획 없이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그가 어리게만 느껴진다. 결혼은 현실이고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고!
-29세, 유학생

남자친구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모르고 항상 어리광만 부린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기차표를 출발일로 예약한다거나 전날 과음한 탓에 어른들과의 식사 약속을 잊는 등 애교라고 봐 주기엔 무책임한 행동을 하고도 대충 넘어간다. 문제의 원인을 해결해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게 성숙한 행동 아닌가? 믿음직한 구석이 전혀 없는 그를 보면 남자친구를 만나는지 아이를 키우는지 가끔 헷갈린다.
-33세, 언론사 회계사원

내 남자친구는 농구화 마니아다. 새 신발이 출시되는 날을 달력에 기록해 놨다가 전날부터 매장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 가끔씩 인터넷 카페 멤버들과 모여 새로 구입한 농구화를 자랑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미 자취방은 사람이 아닌 신발이 사는 집으로 변한 지 오래다. 신지도 않을 거면서 비싼 운동화를 계속 사는 이유를 물으면 ‘건전한 취미’라고 대답한다. 자기합리화가 일상인 남자친구를 보면 정말 철없다는 생각뿐이다.
-29세, 주얼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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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보라 PHOTO GETTY IMAGES
  • 멀티비츠 DESIGN 최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