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털과의 전쟁! 어디까지 깎아봤니?

마일리 사이러스가 겨드랑이를 공개하며 ‘겨털의 해방(Free the Armpit)’을 외치는 세상이 왔어도 내겐 들리지 않는다. 온갖 도구를 섭렵하며 실수를 거듭했던 학창 시절의 흑역사부터 다리를 벌리고 수줍은 그곳(?)을 영구 제모하기까지. 매끈한 피부 로망을 이루기 위한 제모의 역사를 지금 고백한다.

프로필 by ELLE 2015.06.15


셰이빙 첫 경험
첫 경험은 무려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중학교 1학년, 체육복을 갈아입으려 탈의하던 도중 몇몇 여자친구들의 겨드랑이가 새하얀 것을 발견했다. 순간 멀끔한 엄마의 겨드랑이가 떠올랐고, 갑자기 그 친구들이 ‘어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구령대 그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체육 선생님을 기다릴 때도, 시선은 그 어른 친구들의 맨 다리로 향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쬔 종아리에는 털 오라기 하나 없었고, 내 털을 감추고 싶은 마음에 다리를 휙휙 휘저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사춘기 소녀는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엄마의 1회용 면도기를 훔쳐(?) 작업에 돌입했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샤워기를 틀어두고 흐르는 물줄기를 맞으며 면도를 시작했다. 어라? 분명 TV 광고 그대로 따라 했는데, 피가 나기 시작했다. 면도날도 교체해 보고 비누 거품을 내는 등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셰이빙 크림을 듬뿍 바르고 털이 누운 반대 방향으로 밀어야 자극이 덜하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제모 관심 부위가 허벅지, 팔까지 확대됐지만 면도 후 이틀만 지나면 다시 거뭇하게 올라오는 게 영 거슬리기 시작했다. 조물주를 탓하던 어느 날, 즐겨 보던 잡지에서 제모 크림의 존재를 알게 됐다. 모근 가까이에서 털을 녹여 면도기보다 오래간다니, 면도날과 헤어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결과는? 도포, 방치 후 닦아내는 제모 크림은 간편하긴 하지만 털을 일부 놓치기 일쑤였다. 또 화학 성분으로 모발을 녹여내는 원리 때문인지 간혹 울긋불긋한 염증이 올라오기도 했다.

왁싱의 신세계
처음은 족집게였다. 본격적으로 슬리브리스를 입기 시작한 대학 시절. 여름이면 어김없이 3일에 한 번꼴로 제모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시달렸다. 엄마의 화장대에서 족집게를 발견하고는 “한번 뽑아볼까?” 싶었고, 한 올 한 올 뽑기에는 많은 겨드랑이 털을 정말 한 올 한 올 100% 뽑아냈다. 깨처럼 거뭇한 모근을 남기지 않는 점도, 오랜 유지력도 마음에 들었다. 이후 털이 조금씩 자랄 때마다 땅에서 풀 뽑듯 겨털을 뽑아냈다. 하지만 오래 걸리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보다 넓은 부위를 신속하게 제거해 주는 스트립 타입을 구매했고, 설명서대로 털이 자라는 방향으로 붙인 뒤 반대 방향으로 ‘쭉’ 뜯어냈다. “악!”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예상했던 딱 그만큼 아팠다. 끈끈이와 친해지지 않은 몇몇 아이들이 살아남은 게 보였지만 해당 부위에 가볍게 한 번 더 붙였다 떼어내면 그만이었다. 고통은 점차 익숙해졌고, 체모 길이를 다듬거나, 떼어내는 반대 손으로 피부를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등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문제는 비키니 라인이었다. 아침 수영을 등록하고 언제 수영복 밖으로 탈출할지 모르는 그곳(?)의 털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 것. 우리 몸에서 가장 민감한 부위인 만큼 셀프로 다가가는 게 걱정스러웠고, 고민 끝에 왁싱 숍을 방문했다. “비키니 라인만 제거하지 말고 중급으로 해보는 건 어때요? 위생과 직결되는 부위거든요. 습한 환경으로 인한 질염을 예방하고 냄새와 가려움이 완화되는 효과도 있죠.” 무무 스튜디오 이로다 실장의 제안이었다. 앞부분만 남기고 음부와 항문, 그 사이에 이어지는 털까지 모조리 제거하라니! 당황스러움을 눈치챘는지, 산부인과 진료와 다름없다며 말을 이었다. “숍에 오는 10명 중 4명은 남자예요. 위생과 성적 만족도를 이유로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거나 반바지 핏을 위해 다리를 왁싱하는 사람들이 많죠.” 듣고 보니 <마녀사냥>에서 브라질리언 왁싱을 고백한 유세윤과 허지웅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왁싱 마니아임을 밝혀 ‘제모돌’로 거듭난 FT아일랜드 이재진도, 남친과 함께 올 누드로 왁싱한다는 지인도 떠올랐다. 결국 머리가 크고서는 엄마에게도 보이지 않은 그곳을 난생처음 본 여자에게 활짝 오픈, 초조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따뜻한 왁스가 떨어져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덩굴 숲 대신 잘 정돈된 잔디밭으로 변한 듯한 그곳은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확실히 비데 없이도, 생리 중에도 훨씬 청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영구 제모로 털에게 이별을 고하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왁싱을 했느냐고? 쿠폰을 끊고 다니는 회사 동료도, 호기심에 얼마 전 브라질리언 왁싱을 했고 앞으로 계속할 예정이라던 남자 사람도 있었지만 목욕탕 가기도 부끄러워하는 성격에, 아랫도리를 남 앞에 다시 드러낼 자신이 없었다. 왁싱을 거듭했다가 모공이 넓어지거나 피부 탄력이 떨어지진 않을지 걱정도 됐다. 문득 가정용 레이저 제모기가 떠올랐다. 몇 해 전 피부과에서 겨드랑이와 다리에 레이저 제모를 5회 시술받은 후 아직 남아 듬성듬성 힘없이 자라는 체모를 제거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사용했던 트리아뷰티. 겨드랑이 100회, 허벅지와 종아리 합쳐 1200회인 권장조사 횟수를 채우는 게 쉽지 않았지만, 한동안 인내심을 갖고 관리했다. 다시 펼친 사용설명서에는 비키니 라인도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떨리는 마음으로 테스트용 레이저를 조사했다. 모발이 더 굵고 튼실하게(?) 자라는 부위인 만큼 다른 부위보다 고통이 컸지만 참을 만했다. 권장조사 횟수는 200회. 막상 시작하려니 아픔은 둘째치고 예쁘고(?) 자연스러운(!) 모양으로 다듬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차라리 피부과에 가는 게 낫겠다고 결심한 건 그때였다. “비키니 라인은 피부색이 어둡고 예민하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해요. 그렇다고 너무 약하면 제모가 되지 않고, 강하면 화상이나 염증이 생길 수 있죠. 시술자와 충분히 상담한 후 시술 장비와 강도, 횟수를 선택해야 합니다. 시술 후에는 털의 빈 공간 주변에서 세포가 차올라 오히려 모공이 수축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죠.” 리치미클리닉 이치훈 원장이 말했다. 커튼처럼 열리는 치마와 1회용 팬티로 갈아입고 시술대에 누우니 여의사가 들어왔다. 진짜 민망한 중요 부위가 보이지 않을 만큼 팬티를 내리고 눈썹 칼로 슥슥 털을 깎기 시작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지 컨펌을 요청했고, 자로 잰 듯 똑떨어진 삼각형이 어색해 모서리를 둥글려 달라고 말하며 실소를 터뜨렸다(비키니 라인만 시술하니 중급의 퓨빅 왁싱보다는 확실히 덜 민망하더라!). 지금까지 2회 시술을 받았고 아직 몇 회 더 남아 있긴 하지만 올여름은 물놀이를 편히 즐길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다. 검색해 보니 요즘은 비키니 라인을 넘어 브라질리언이 가능한 레이저 장비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고! 혹시 아나? 올 누드까진 아니더라도 중급 레이저를 받으러 다시 병원을 찾게 되는 날이 올지. 당분간은 몸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는 체모를 목적에 따라 각종 방법으로 제거할 예정이다. 오버 왁싱이라 해도 어쩌겠나? 인어처럼 매끈한 몸을 갖고 싶은 것을! 고달픈 털과의 전쟁이 끝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1 부드러운 셰이빙을 돕는 디’플러프, 70g 1만7천원, 150g 3만원, 러쉬.
2 진동 효과로 물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여성용 제모기 ES-WR40, 가격 미정, 파나소닉.
3
샤워하는 동안 신속하게 털을 제거해 주는 내츄럴 인샤워 제모 크림, 1만6천9백원, 비트. 
4
굵은 털도 잘 잡아내는 헤어리무버 왁스스트립 포 비키니 & 겨드랑이 오키드 12+2, 9천원, 바디네이처.




5 전자레인지로 데워 쓰는 포에틱 왁싱 키트, 6만6천원, 블리스.
6
버튼을 누른 채 미끄러지듯 옮기면 연속해서 레이저가 조사된다. 컴팩트한 사이즈의 실큰 글라이드 150K, 39만원, 실큰.
7 디스플레이 창으로 레이저 조사 횟수를 확인할 수 있는 트리아 플러스 4X, 59만9천원, 트리아뷰티.
8
교체 가능한 넓은 조사 창을 이용하면 더욱 빠르게 제모할 수 있다. 루메아 에센셜, 59만9천원, 필립스.

Credit

  • editor 천나리
  • photo 전성곤
  • design 최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