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지현우, 티 없이 맑은 고민 중

“일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10년 차 땐 어땠어요?” “지금 하는 일에서 목표가 있어요?” “어떨 때 긴장감을 느껴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감사해서 오히려 절박한 질문을 던지는 남자가 있다. 20대를 너무 티 없이 당당하게 넘어서였을까, 미뤄진 고민들을 숙제처럼 하고 있는 배우 지현우를 만났다.

프로필 by ELLE 2015.04.22

 

아방가르드한 네이비 스트라이프 셔츠와 팬츠는 모두 J. W Anderson by Mue. 롱 부츠는 Ann Demeulemeester. 실버 링은 모두 Justin Davis.

 

 

 

 

 

 

 

 

레드 블루종과 에스닉한 베스트, 스트라이프 셔츠 모두 Dries Van Noten by Boon the Shop. 투 톤 선글라스는 Balenciaga by Sewon ITC. 루스한 블랙 팬츠는 Lanvin.


 

 

 

 

 

 

 

 

 

오간자 소재 블랙 베스트는 Ann Demeulemeester. 베이지 & 블랙 체크 셔츠는 Damir Doma by Mue. 블랙 배기 팬츠는 Rick Owens. 실버 브레이슬렛과 링은 모두 Justin Davis.

 

 

 

 

 

 

 

 

 

 

실키한 롱 재킷과 루스한 수트는 모두 Kimseoryong Homme. 화이트 슬리브리스는 Lanvin. 블랙 스트랩 샌들은 All Saints.

 

 

 

 

 

 

 

 

 

블랙 메시 스웨트셔츠는 Maison Margiela. 실버 링은 모두 Bulletto by Unipair.

 

 

 

드라마 <앵그리맘>에서 순정남을 연기한다고요 박노아는 순정남이라기보단 화를 낼 줄 모르는 남자예요.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고 판사인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걱정의 96% 정도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사람이에요. 근데 세상을 밝게 보려니 쉽지만은 않아요. 어려워요(웃음).

 

왜 그래요 음, 잘 모르겠어요. 근데 일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두 자리 숫자예요 그럼 10년 차쯤엔 느낌이 어땠어요?

 

음, 터널 속에 있는 느낌 그런 느낌이에요, 저도.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안 보이고 이게 맞나 싶은 그런 시기요.

 

생각을 확장해 나가는 시기여서 그런 것 아닐까요 뭔가 정답 없는 주관식 같은 질문들만 생각나서 오락가락해요.

 

참, 군 복무할 때 치아 교정하는 사진 봤어요 군대에서 교정하는 친구들 많아요.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귀여운 이미지로 승부할 수는 없겠다 싶어서 덧니 교정을 했어요. 8~9개월쯤 걸렸는데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하려고 무리했더니 치과 가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던지. 고통스럽게 이미지 변신을 꾀했는데, 착한 남자 박노아는 너무 안전한 선택 아닌가요 그게…. 전역하고 연기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했는데 극중 인물의 캐릭터나 성격을 표현하는 데 답이라는 게 없어요. 시청자들이 보기에 발 연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 딴엔 저 상황에선 저래, 우리 가족은 저런 반응을 보였어 식의 보편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연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말 어렵구나 싶어요.

 

고민 많이 하는 것 치곤 얼굴이 굉장히 밝아 보여요. 근데 웃을 때 확실히 주름이… 네, 늙었어요(웃음). 받아들여야죠. <앵그리맘> 촬영 들어가기 전에 <올드 미스 다이어리> 감독님을 만났는데 어설프게 설정해서 연기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최대한 너를 입혀서 연기해 보라고. 박노아는 거기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상대역인 김희선 씨가 무섭진 않았나요 그런 소문은 있었는데(웃음). 겪어 보니 김희선 씨는 밝고 해피한 사람이에요. 가식이 없는 느낌? 할 말이 있을 땐 그 자리에서 다 얘기하는 쿨함도 있고 우리나라 드라마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분다운 포스도 있어요. 부담은 촬영하면서 없어진 것 같아요.

 

선입견이 심한 편은 아닌가 봐요 어쨌든 사람은 겪어봐야 아는 거니까요. 저도 어릴 때 워낙 싸가지 없다는 소문 많이 나기도 했고요(웃음).

 

그 소문은 어쩌다 났어요 생각해 보니 고민이나 걱정이 없던 시절의 거칠 것 없는 애티튜드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이런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전혀 고려하지 않던 시절이었거든요. 예전에 써놓은 일기장만 봐도 그래요. 20대 나름의 고민이 있었겠지만 생각에 깊게 빠지는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일기를 쓰나요 정말 답답할 때 써요. 그런데 일기를 많이 안 써본 사람이라 티가 나요. 나중에 들춰보면 ‘아 이 새끼 가식적이네’ 하는 느낌이 들거든요(웃음). 꼭 자신을 사랑하자, 내일은 더 멋진 삶을 살 거야 식으로 마무리하게 되거든요.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드나요 들죠. 근데 그 시절로 되돌아가 살고 싶다는 뜻은 아니에요. 제3의 인물이 돼서 내 어릴 때 행동을 지켜보고 싶어요. 과거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있는데 못 돌아온다면요 아우, 안 되죠(웃음).

 

얼마 전에 ‘화성행 편도 티켓’ 응모가 있었잖아요 정말요? 그럼 못 돌아오는 거잖아요. 그걸 지원하는 사람이 있대요?

 

전 세계에서 20만 명 이상이 신청해서 남녀 각 50명씩 후보가 선발됐어요. 화성행 티켓이 주어진다면 떠날 마음이 있나요 굳이…. 가고 싶으세요? 저는 그냥 작품 끝나면 여행을 좀 다녀볼까 해요. 패키지 여행 상품 같은데 껴서. 사람들 관찰하는 재미가 있대요.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지PD는 만인의 연하남이었어요 다 만들어주셨으니까요. 그땐 새로운 환경이 마냥 재미있던 시기였어요. 이제는 드라마 환경도 다 알고 비슷한 환경에서 작업하다 보니 권태기 아닌 권태기가 온 것 같고 과연 나의 쓰임은 뭔가 하는 물음표와 내 쓰임이 제대로 되고 있나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드는 거죠.

 

가장 많은 물음표가 생기는 지점은 어디에요 관객들이 내 작품을 봤을 때 그 작품에 방해가 되는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부분이요.

 

 

방해가 된 적이 있었나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누군가의 허심탄회한 얘기를 들어본 게 아니라서요. 왜 있잖아요. 영화나 뮤지컬, 드라마를 보다 보면 ‘와 재밌다, 정말 천재적이다!’ 싶은 포인트가. 최근에 <킹스맨>을 보면서 머리 폭파시키는 장면은 정말 천재적이다 싶더라고요. 진짜 꼴통이다, 대박이네 그랬어요. <이미테이션 게임>의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지난해 <킹키부츠>라는 뮤지컬을 준비하면서 뉴욕에서 만난 게이들의 섬세하고 따뜻하면서도 여린 느낌이랑 되게 비슷하더라고요. 셜록이 저런 연기를 하다니, 놀랐죠. 나도 저 사람들과 같은 직업인데 관객들에게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나 하는 물음표가 생기더라고요.

 

한번 꼴통처럼 놀아보는 건 어때요 어릴 때 부모님께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남들 놀 때 똑같이 놀면 성공 못한다는 거였어요. 영화판에 계신 분들은 주로 이래요. 마셔, 놀아, 뭘 걱정해(웃음). 저는 그쪽으로는 잘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아요. 뮤지컬을 해보니 이 친구들은 정말 학교 다니듯이 연습하고 준비하거든요. 아침에 연습실 도착해서 3시간 노래 연습, 3시간 발성 연습, 3시간 연기 연습, 그렇게 두 달을 해요. ‘아 저렇게 해야 하는데’와 ‘너무 저렇게만 하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텐데’ 하는 생각이 핑퐁핑퐁 하는 거죠(웃음).

 

만날 노는데 성적 잘 나오는 얄미운 타입보단 열심히 하면서 그만큼 해내는 사람인가 봐요 그래서 약간 짜증나기도 하고 과연 재능이 있는 걸까 하는 질문도 하게 돼요.

 

뮤지컬 커리어는 2005년에서 2013년으로 껑충 뛰어요. 공백이 길었는데 다시 뮤지컬을 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자기반성을 위해? 뭔가 배울 것도 있고요. 고창석 선배가 그런 얘길 하시더라고요. 배우로서 장르를 넓혀가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일반 배우가 뮤지컬 배우들과 한 무대에 서면 부족한 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요. 뮤지컬 무대는 그런 문제점들과 부딪치면서 자신을 채찍질하는 동시에 부족한 나 자신을 명확하게 바라보려는 시험대예요.

 

정체기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렇죠. 성장 그래프가 있다면 평형일 때가 가장 고민이 많아지는 시기인 것 같아요. 예전에 운동하면서 매일매일 사진을 찍어봤거든요. 초반에 운몸이 막 변하는 게 느껴져요. 그런데 어느 정도 근육이 형성되면 열심히 했는데 뭐지, 라는 생각이 들 만큼 변화가 없어요. 그 관문을 지나야 더 몸이 좋아지는 거죠. <부자의 탄생>이라는 드라마를 했을 때 “부자가 되고 싶어? 그럼 부자가 하는 것처럼 행동을 해”라는 대사가 있었어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시절마다 치러야 할 것들이 있나 봐요.

 

궁극적으로 ‘연기를 잘하고 싶다’가 고민이자 목표인가요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 예요. <변호인> 같은 작품을 보는 어머님들은 극장에서 막 박수를 치시거든요. <국제시장> 같은 영화는 우리나라의 과거와 부모님 세대를 돌아보게 만들잖아요. 뭔가 사람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 향수를 떠올릴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트렌디한 건 해볼 만큼 해봤으니까? 전 트렌디 드라마보단 어른들에게 초점이 맞춰진 작품에 더 맞는 것 같아요. 아니면 <미생> 같이 평범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소재면 좋겠어요. 아마 제가 역할에 동화되는 타입이라 그럴 수도 있고, 예전과 달리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작품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앵그리맘>은 엄마 입장에서의  이야기에요. 딸들이 엄마의 마음을 좀 알아줬으면 해요.

 

사춘기에 그게 되던가요 안 되죠. 그래도 한 번쯤 생각할 수 있는 화두를 던지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현우 씨는 화두를 제안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거네요. 사랑받고 싶어서,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미움 받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무엇보다 쓰임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배우로서의 바람이 숙제로 이어지고 있는 거죠.

 

 

 

Credit

  • editor 채은미
  • stylist 정석
  • photo 목정욱
  • make-up 강미(Soonsoo)
  • hair 정미(Soonsoo)
  • assistant 임세은
  • design 하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