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위대한 유산, 미시아
샤넬 레 엑스클루시브 컬렉션 각각의 이름은 샤넬의 사전과도 같다. 하우스의 무궁무진한 히스토리를 완성하는 위대한 유산. 15번째 단어는 ‘미시아’. 그 이름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에디터가 파리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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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7년,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미시아.
2 친구인 세르주 리파의 어깨에서 포즈를 취한 가브리엘 샤넬.
3 발레 루소의 대모였던 미시아. 바슬라프 니진스키(Vaslav Nijinsky)의 ‘목신의 오후’를 표현한 일러스트레이션 커버.
 
 
 

 
4 샤넬은 말했다. “한 여성에게는 모든 것이 있으며 미시아에게는 모든 종류의 여성이 있다.” 미시아라는 향수를 정의해준다.
5 1920년 파리 페어(Paris Fair)에서 촬영된 미시아와 호세 마리아 세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그리고 샤넬.
6 E′ternite′(Eternity)와 Empreinte(Impression을 조합하여 작업한 콜라주. 1921년, 작가 미상.
7 1917년 장 콕토가 그린 미시아의 프로필.
 
 
지난해 11월, 파리에서 아주 특별한 초대장이 날아왔다. 발신자는 샤넬이었고 내용은 이랬다. 레 엑스클루시브 컬렉션에 ‘미시아’라는 향수가 새롭게 출시될 예정이고, 이에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샤넬의 신임 조향사 올리비에 폴주(Olivier Polge)가 직접 들려준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유일하게 <엘르>가 초대됐고 또 하나의 전설이 될 향수를 누구보다 먼저, 게다가 올리비에 폴주와의 인터뷰를 통해 접할 수 있다는데 그 누가 설레지 않으리. 따라서 <엘르>가 회신한 첫 문장은 당연히 ‘예스!’였다.
 
미시아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떠오른 건 지난 8월 서울 DDP에서 열렸던 ‘컬처 샤넬’ 전시에서 유독 에디터의 눈길을 오래 사로잡았던 한 작품이었다. 1921년 작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모던하고, 유머러스한. 미시아(Misia)라는 다섯 글자가 주사위와 함께 장난스럽게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었던. 맞다. 그 미시아가 바로 이번 샤넬 레 엑스클루시브 컬렉션의 계보를 이을 그 미시아다. 그러고 보니 몇해 전 한정으로 판매된 루즈 코코 샤인의 생기 있는 살구빛 립스틱의 컬러명도 미시아였지. 대체 미시아가 샤넬의 아카이브에서 얼마나 중요한 단어길래?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갔다.
 
드디어 파리. 마치 미시아라는 단어에 숨겨진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는 미션이라도 주어진 기분이었다. 스무고개를 하듯 하나씩 하나씩 던져지는 힌트들. 미시아는 사람이고, 여자이며 가브리엘 샤넬의 ‘베스트 프렌드’였다. 그녀의 풀 네임은 3명의 남편들의 성을 따라 고데브스카(Godebska)에서 미시아 나탕송(Misia Natanson), 에드워즈(Edwards)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르(Sert)가 되었지만 그들의 친구이자 프랑스 소설가였던 폴 모랑(Paul Morand <샤넬의 매력 The Allure of Chanel>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은 “미시아는 미시아다. 그녀를 대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너무 유명해 성이 아닌 고유의 이름으로 불렸던 미시아와 가브리엘 샤넬의 인연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된 걸까.
 
1917년 당시 파리의 스타는 단연 미시아였다. 훗날 전설적인 디자이너가 될 가브리엘 샤넬을 미시아가 특유의 선견지명으로 발굴한 셈. 미시아는 한 저녁 파티에서 샤넬을 만나 금세 친해진 뒤 그녀를 자신의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친구들이라 함은? 이름도 쟁쟁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장 콕토(Jean Cocteau),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에릭 사티(Erik Satie)…. 이들은 서로에게 영감과 자극이 되었고 샤넬이 차츰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당장 샤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코코 샤넬 Coco Before Chanel>과 <샤넬과 스트라빈스키 Coco Chanel & Igor Stravinsky>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분명 노골적이든 은유적이든 미시아라는 인물이 가브리엘 샤넬 곁에 있을 테니까.
 
어려울 때 곁을 지켜주는 게 진정한 우정이라 했던가. 1919년, 샤넬은 보이(Boy)라는 닉네임으로 익숙한 그녀의 연인, 아서 카펠(Arthur Capel)을 자동차 사고로 떠나 보낸다. 미시아는 상심에 차 세상을 등진 친구를 베네치아로 데려갔다. 호사스러운 금빛 박물관과 교회, 앤티크 숍들을 흡수하며 샤넬은 슬픔을 극복함과 동시에 새로운 영감의 세계에 눈을 떴고 이는 훗날 그녀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베네치아에서 접한 비잔틴 바로크풍의 작품들에 흠뻑 매료된 샤넬은 이를 곧 파인 주얼리 작품들로 재해석해낸 것. 그렇게 그들은 문학, 무용, 음악을 넘나들며 모든 예술적 취향과 활동을 공유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난 그들의 우정의 징표를 파리 캉봉가 31번지에 있는 샤넬의 아파트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디자이너로 큰 성공을 거둔 샤넬은 다양한 구실을 대며 미시아를 자신의 하우스에 고용했는데 이는 미시아에게 경제, 사회적 활동을 하게 함과 동시에 그녀의 취향을 존중해 주며 그간 그녀가 소개해 준 것들에 대한 감사와 우정을 독점하는 절묘한 방법이었다. 그들은 공방이나 아파트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들을 만들어냈는데 특히 미시아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고. 가령 작은 장식용 조각품이나, 코로망델 스크린(중국식 병풍) 같은 오브제들. 캉봉 아파트에 완벽하게 그대로 보존돼 있는 샤넬의 유산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그들이 소파에 한가로이 걸터앉아 삶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풍경이 펼쳐지는 듯했다. 책꽂이에 빽빽하게 꽂혀 있던 수많은 책들을 읽으며 얼마나 많은 지적인 논쟁을 벌였을지, 중국에서 건너온 이국적인 조각품에 어떤 표정을 지으며 감탄했을지!
 
자, 미시아라는 향수가 탄생되게 된 결정적인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어느 날, 미시아는 샤넬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오 샤넬(Eau Chanel 샤넬의 물, 즉 향수)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 아이디어는 즉각적으로 샤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하여 1919년 7월 초 미시아는 샤넬의 이름으로 오 샤넬 브랜드를 등록했고 2년 뒤 바로 전설적인 향수, No. 5가 탄생한다.
 
샤넬의 아파트 곳곳에 놓여 있는 중국식 병풍들엔 아름다운 난초들이 그려져 있다. 이 근사한 병풍(샤넬의 사전에서 ‘코로망델’이라고 불리는)에 유독 탐닉했던 두 여인은 ‘금란지교’라는 사자성어를 몰랐을 테지. 단단하기가 황금과 같고 아름답기가 난초의 향기와 같은 우정. 2015년 샤넬은 다시 둘의 우정에 대한 답례로 ‘미시아’라는 향수를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향기로운 우정의 내음이 궁금해진다고? 그것에 관해선 샤넬 향수 하우스에 조인한 뒤 첫 작품을 만들어낸 조향사, 올리비에 폴주에게 들어보았다. 얼른 그의 인터뷰를 읽어볼 것. 미시아라는 당대 최고 여성의 체취가 풍겨 나올지도 모를 테니까.
 
 
 

 
8, 10 한없이 감성적인 동시에 이성적이기도 한 퍼퓨머, 올리비에 폴주가 No. 5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9 샤넬에서의 그의 데뷔작, 레 엑스클루시브, 미시아, 국내 미출시.   
 
 
너무나 긴장되는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미시아라는 인물을 향기로 표현해 낸 스토리도 기대되지만 심지어 올리비에 폴주가 1:1 인터뷰를 통해 들려준다니. 게다가 이 인터뷰는 그가 샤넬의 향수 크리에이터로서 부임한 첫 공식 인사나 다름없다. 이 멋진 프랑스 남자로 말할 것 같으면? 맞다. 그의 아버지가 바로 1978년부터 샤넬의 향수 크리에이터로 일해 온 자크 폴주(Jacques Polge)다. 좋은 DNA를 물려받아 운 좋게 샤넬 하우스에 몸담게 된 것 아니냐고? 그러기엔 그동안 그가 탄생시킨 유명한 향수들이 너무 많다. 장담하건대 당신 화장대의 수많은 향수 중 한 개 이상은 분명 그의 작품일 것! 방돔광장에 있는 샤넬 화인 주얼리의 우아한 응접실에서, 숨 고름조차 조심스럽게 내뱉으며 그와 나눈 이야기들을 공개한다.
 
아버지이자 대선배인 자크 폴주와 크리스토퍼 셸드레이크(Christopher Sheldrake 샤넬향수연구소 연구개발 부문 디렉터이자 조향사)와 함께 샤넬 향수 크리에이터가 됐다. 당신이 앞으로 새롭게 그려나갈 샤넬 향수의 미래는 글쎄, 명확한 목표를 설정한다는 건 언제나 어렵지만 내겐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첫 번째는 미래의 샤넬 향수를 만드는 것. 또 하나는 기존의 샤넬 향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
 
처음부터 아버지의 뒤를 이을 생각은 없었던 걸로 보인다. 원래 미술사를 공부했다고 들었는데 청소년 시절엔 아버지가 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대입 시험 후 예술사 공부를 시작했는데 나와 잘 맞지 않더라. 사실 18세 때 적성을 알기란 힘들지 않나. 그러다 20세 여름, 우연히 샤넬프랑스연구소에서 일하게 됐는데 무척 흥미롭더라. 생각에 확신을 얻기 위해 그라스 지방의 샤라보(Charabot)에서 트레이닝을 시작했고 이어 제네바, 뉴욕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제일 처음 접했던 샤넬 향수를 기억하나 코코 마드모아젤. 아버지가 집에 갖고 오셔서 어머니가 테스트 겸 뿌렸던. 1984년에 이 향수가 론칭됐으니 아마 1982년쯤일 거다. 그때 나는 여덟 살이었고.
 
어린 소년의 후각을 자극한 그 향의 느낌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을 나이잖나. 어머니가 좋아했으니 당연히 나도 좋았다.
 
당신의 상상 속 가브리엘 샤넬의 향은 No. 5! 만드는 과정에서 샤넬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잖나. 캉봉 매장에 처음 향수를 갖고 왔을 때도 있었고. 그러니 당연히 내게 가브리엘 샤넬, 하면 No. 5다.
 
샤넬 하우스에 조인하며 방대한 샤넬 아카이브를 다 살펴보았을텐데. 가장 인상 깊은 스토리가 있다면? 혹 그것이 미시아이기 때문에 첫 작품으로 선택한 건가 샤넬은 굉장히 짜임새 있게 조직화된 회사다. 심지어 샤넬의 유산을 찾는 업무만 하는 부서도 있다. 때문에 샤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툴이 아주 많았는데 정말 많은 스토리들이 내게 감동을 선사했다. 샤넬의 삶 속에 미시아라는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더라. 그녀가 샤넬에게 소개해 줬던 20세기 초의 예술가들…. 당시 파리를 풍부하게 채워주던 무대 위의 열기와 향기를 표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향수는 타임머신과 같다. 미시아를 맡는 순간 우리가 어떤 여행을 하길 바라나 미시아는 발레 루소의 탄생에 일조한 숨은 공신이었다. 재정적 지원은 물론 영감의 뮤즈였으니까. 난 당시 미시아와 샤넬이 탐닉하던 발레 루소, 파리 사교계의 삶과 예술, 당시 무용수들의 메이크업 향기를 전하고 싶었다. 무대 위 공기 중에 떠다닐 것 같은 향들을 상상해 봤고 그렇기에 립스틱 같은 부드러운 화장품, 파우더 내음이 날 거다.
 
한국 속담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다. 당신도 그렇겠지만, 그럼에도 유독 애착이 가는 샤넬의 향수를 꼽는다면 No. 5. 샤넬 향수의 토대가 됐으며 모든 유산이 다 들어가 있거든. 그리고 개인적으론 ‘에고이스트’를 꼽겠다. 청소년 시절에 즐겨 사용했던 향수다.
 
당신과의 인터뷰가 잡힌 순간부터 이 질문을 하고 싶었다. 혹시 내게 어울릴 만한 샤넬 향수를 추천해 줄 수 있을까  음, 좀 더 친해져야 알겠는걸. 혹시 샤넬 향수 중 특별히 마음에 드는 향 있나
 
No. 19을 좋아한다. 파우더리한, 여성스럽고도 소녀스러운 그래서 관능적으로 느껴지는 향이라서 아주 좋은 선택이다!
 
 
who?s he?
1978년부터 ‘샤넬의 코(The Nose of Chanel)’로서 ‘코코 샤넬’, ‘넘버 5 오 드 빠르팽’ 등을 창조해낸 전설의 조향사 자크 폴주의 아들. 아버지 명성을 이어받아 여러 브랜드와 협업한 조향사로 활동하다 2013년 가을부터 샤넬 하우스에 공식적으로 합류했다.
 
Credit
- editor 김미구 PHOTO Courtesy of CHANEL Horst P.Horst Estate
- Miami
- Florida
- Brigitte Plante-Moral
- Fondation Paul Sacher
- Igor Stravinsky Collection
- ADAGP
- Paris 2014
- ADAGP
- Paris 2014. With the kind authorisation of Pierre Berge′
- President of the Comite′ Jean Cocteau DESIGN 하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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