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와슨이 생각하는 페미니즘
'여성의 날'을 기념해 되새기는 페미니즘과 양성평등의 의미! 최연소 UN 여성친선대사이자 이달 <엘르> 커버걸로 활동 중인 엠마 와슨이 남다른 총기와 기백으로 외치는 페미니즘의 말랑말랑한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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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튼 톱과 스커트는 모두 J.W. Anderson. 약지에 낀 골드 링은 Dina Kamal. 중지에 낀 골드 링은 Marla Black. 골드 이어링은 Katrine Kristensen.
 
 
 
 
 
 
 

 
블랙 울 점프수트와 화이트 실크 톱은 Ce′line. 골드 네크리스는 Marla Black. 약지에 낀 골드 링은 Dina Kamal. 중지에 낀 골드 링은 Marla Black.
 
 
 
 
 
 
 

 
컷아웃 디테일의 톱과 팬츠는 모두 Stella MacCartney.
 
 
뉴욕 센트럴 파크의 공기는 습하고 끈적였다. 강하게 내리쬐는 9월의 햇살 아래서 엠마 와슨과 난 어딘가 앉을 곳을 찾아야 했다(그녀와 만난 건 지난해 9월 20일, 뉴욕 UN본부에서 연설이 있던 날이었다). 마침내 찾아낸 벤치는 빗방울로 젖어 있었고, 나는 와슨의 아름다운 크림색 3.1 필립 림 드레스가 망가질까 봐 걱정됐지만 정작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벤치에 앉으려 했다. “오, 잠깐만요.” 난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몸값과 존중을 받고 있는 이 젊은 여배우에게 티슈를 내밀었다. 빗방울을 닦아내는 동안 행인들은 이 풍경이 흥미롭다는 듯 참견했지만 이미 아홉 살 때부터 군중에 둘러싸이는 데 익숙한 그녀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와슨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상 깊다. 예쁘장하면서도 지적인 눈매와 날카로운 안목, 여기에 새로운 자신감까지 덧붙여져 세상을 바꿀 만한 기백이 넘친다. 아마, 당신이 이미 와슨의 UN ‘히포시(HeForShe)’ 캠페인 연설을 봤다면, 그녀가 충분히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내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이런 일을 오랫동안 기다려왔어요. 대학 졸업 후(그녀는 브라운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지난해 5월에 졸업했다) 뭔가 아쉬운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연기도 계속하고 싶지만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으면 했거든요. 유명세는 늘 감정적으로 부대끼는 것이었어요. 지금은 이걸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냈지만요.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채널을 찾아내고 싶었는데 UN 친선대사가 된 것을 계기로 드디어 확고한 뭔가를 발견했어요. 여성 인권과 페미니즘에 관해서는 몇 시간 동안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요.” 엠마 와슨은 여덟 살 때 ‘보시(Bossy 우두머리 행세를 하거나 남자처럼 나대는)’라고 불리는 것에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부모 앞에서 선보일 연극을 직접 감독하고 싶어 했던 그 순간 붙여진 이 수식어는 그녀가 남자아이였다면 덧붙여지지 않았을 말이었다. 와슨이 14세 때 언론은 부쩍 성숙해진 그녀의 성적 매력을 부각시키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그녀의 또래 친구들은 좋아하는 스포츠 팀을 그만두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근육질 몸매가 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자발적이었지만 결국 자발적이지 못한 여성들의 행동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 그녀는 18세에 비로소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결정했다. 23세, 드디어 자신의 생각을 발현시킬 기회가 얻은 그녀는 열의에 찬 모습으로 페니미즘, 페미니스트, 여성 아티스트들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받아쓰기가 아니에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의 지시가 아니죠. 규범적이거나 독단적이지도 않아요. 페미니즘은 우리에게 ‘자유로운 선택’을 주는 범위예요. 만일 당신이 영국 수상직에 출마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되고 출마하는 게 싫다면 그것도 좋아요. 겨드랑이 셰이빙은 해도 되고 안 해도 상관없어요. 플랫 슈즈를 신든, 힐을 신든 상관없는 것처럼요. 불필요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한 거죠.” 와슨은 단호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성 파워는 정확히 그들이 원하는 걸 하는 것에 깃들어 있어요. 먼저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 대상에 솔직해야 하며 다양한 기회들을 갖는 거죠. 우리는 자유로워야 해요. 전형적인 페미니스트라는 건 없고, 특정한 기준을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사실 이번 인터뷰를 구상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엠마 와슨의 진정성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예전에 그녀를 만났을 때는 이 여배우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헤르미온느’라는 역할로 스타덤에 올랐고 수많은 셀러브리티가 그러하듯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UN의 여성친선대사로서 국제적인 리더들 앞에서 성의 불평등에 대한 연설을 하고, 기금을 모으고, 의사결정자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은 확실히 다른 문제였다. 성 불평등에 관한 이슈는 여러모로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어느 정도까지 감정이입을 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는데, 나는 인터뷰를 시작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엠마 와슨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막 친선대사가 됐을 땐 여성 문제와 관련된 통계 수치와 정보들을 모두 암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죠.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문제가 무엇인지 알리는 게 더 강한 설득력을 지녔다는 걸 알았거든요. 솔직히 이 과정에선 유명세가 많은 도움이 됐어요. 경제학자나 정치가처럼 굴 필요도 없었죠. 전 여성 문제에 관한 지식이 해박한 사람은 아니지만 열심히 배우는 자세로 이 일에 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뉴욕 UN본부에서 연설을 위해 단상에 오른 엠마 와슨의 손을 약간 떨었고 처음엔 울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녀에게 “초조해 보였다”고 말하자 웃음을 터트렸다. “맞아요. 연설하는 건 결코 쉽지가 않으니까요. 게다가 이런 생각까지 들었어요. ‘혹시 이 사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야 하는 걸까? 내가 도마 위에 오르는 건 아닌가?’ 하지만 전날에 읽은 연설문을 떠올리면서 내가 여성 인권 문제에 얼마만큼 확신을 갖고 있는지 되새겨봤어요. 많이 긴장하긴 했지만, 사람들이 저의 약한 모습을 통해 인간적인 부분을 봐주길 바랐어요.” 와슨은 연설을 마친 후 엄마에게 받은 축하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그러고는 너무 격식을 차린 수트는 입지 않으려 했다는 것과 연설 내용을 접근 불가능한 것들로 구성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얘기를 열심히 전달했다. “전 오랫동안 기다렸고 드디어 말하고 싶은 주제를 찾아냈어요. 페미니즘만을 위한 연설이나 단지 연설을 위한 연설이 아니길 바랐죠. 100% 확신에 찬 내용인 동시에 UN에서 내 역할과 자연스럽게 들어맞았으면 했어요. 연설자로서 뻔한 설교를 멈추는 대신, 페미니즘과 여성 권리 그리고 성 평등이 남자를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어요. UN 담당자가 히포시 캠페인에 대해 설명해 주었을 때 전 ‘바로 이거야. 우리가 100% 확신을 갖고 움직여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네 명의 남동생이 있는 엠마 와슨은 페미니즘에 관해 남자들을 설득한 만한 충분한 환경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 살 어린 남동생 알렉스 그리고 부모님의 재혼으로 생긴 이복 남동생들 토비, 앤드루, 데이빗이 그들이다. 변호사인 부모는 와슨이 다섯 살 때 이혼했고 그녀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이혼 후 아버지는 저와 남동생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아버지가 선택한 해결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우릴 참여시키는 것이었죠. 이를테면 낚시, 크리켓, 테니스, 독서, 야외활동을 우리와 함께 하는 거예요. 덕분에 전 ‘소년들을 위한 활동’과 ‘소녀들을 위한 활동’에 제약이 없었어요. ‘이건 엠마를 위한 것이고 이건 알렉스를 위한 것’이라는 구분이 없었으니까요. 미끼 끼우는 법이나 볼링 치는 법 등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볼링 치기에 제격인 건강한 팔까지 얻었죠.”
 
그중에서도 와슨에게 주어진 가장 큰 행운은 자신의 의견이 존중되는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도 예전과 다름없이 엄마와 남동생들과 함께 시끄럽게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인정받고 있다. “엄마는 한동안 싱글 맘으로 일했는데 그때 제게 우리가 100%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려주셨어요. 자신의 가치를 세워 나갈 줄 아는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거였죠. 엄마 덕분에 목표를 갖고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여성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내 생각에 와슨은 페미니스트가 확실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에 너무 특별한 삶과 너무 많은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다는 점이 다소 걱정스러웠다. 아홉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는 촬영장에서 살다시피 했고, <해리포터> 시리즈에 출연한 세 명의 어린 스타 중에서 유일하게 부모가 곁에 없었다. 더욱이 해외에서 혼자 공부를 했고 사생활을 지키려고 애썼기 때문에 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겪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런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온 그녀였기에 와슨이 ‘여성’을 탐구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녀에겐 이번 기회가 큰 ‘변화’를 의미하겠지만. “페미니즘은 성 중립적인(Gender-Neutral) 단어가 아니라는 걸 이해해요. 역사적으로 페미니즘은 주로 공격적인 성향으로 이해됐기 때문에 남자들이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정작 페미니즘엔 ‘여성들의 자유로운 선택권’ 외에 다른 의미는 없다는 거예요. 난 사람들이 ‘페미니즘’이란 말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없애고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길 바라요.”
 
지난 2010년 와슨은 친환경 공정무역 브랜드 ‘피플 트리(People Tree)’와 함께 방글라데시를 방문했고, 자선단체 ‘COMFED(소녀들의 교육을 통해 아프리카의 빈곤을 구호하는 비영리단체)’와 잠비아를 여행했다. 또 연설이 있기 1주일 전에는 UN과 함께 우루과이를 방문해 남성 위주의 정치 구조 속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행사할 것을 독려했다. 그녀는 여성, 정치, 교육, 고용 등에 관심이 많았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여전히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이 언제든지 비평의 칼날을 들이댈 수 있는 여배우다. 다만 그녀가 선택한 이 새로운 역할은 그녀가 선택한 삶의 중요도가 변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작품 활동 역시 멈추지 않는다. 차기작 <리그레이션 Regression>에서 엠마 와슨은 아버지의 성적 학대라는 트라우마와 싸우는 딸로 분했다. 또 <해리 포터>의 제작자 데이빗 헤이먼(David Heyman)과 다시 호흡을 맞춘 <더 퀸 오브 더 티어링 The Queen of the Tearling>의 촬영도 진행 중인데 베스트셀러 판타지 3부작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왕좌의 게임> 여성 버전에 가깝다. 극중 와슨은 혼란스러운 왕국의 통치권을 두고 치열하게 싸우는 공주 역을 맡았다. “에이전트가 ‘솔직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3부작’이라고 하더군요. <해리 포터> 시리즈를 했던 터라 망설여졌지만 원작을 읽고 난 후 앞으로 3년간은 이 세계에서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엔 물론 그 세계에 살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무던히도 열심히. “영화를 위해 몸과 마음 모두를 강하게 단련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근육도 만들어야 하고 칼을 능숙하게 휘두르는 법도 배워야 하는 캐릭터니까요.”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엠마 와슨은 “요가에 대한 사랑이 치유책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지난여름엔 로마를 여행하면서 시간을 보냈고(그녀는 “버킷 리스트에 있던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런던에선 새 집으로 이사했다. “전 집에 머무는 걸 좋아해요. 많은 시간을 안전한 곳에서 머물고 싶어 하죠. 불면증이 있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잘 케어하려고 해요. 제가 ‘천하무적’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거든요. 여행도 하고 요리도 하고 고양이 두 마리를 돌보고 있어요. 요가랑 독서도 변함없이 즐기면서요.” 여분의 시간에 우린 마음속의 헤로인이나 롤 모델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데 그러던 중 우연히 헤르미온느 얘기로 넘어갔다. 와슨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신중하게 얘기를 이어나갔다. “상대를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의 실제 모습과 만들어진 이미지 사이를 구별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저는 만들어진 이미지로 존중받았어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해요. ‘어떻게 그렇게(헤르미온느답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 정말 놀라워요!’라고요.’” 그녀의 말엔 뼈가 있었다. 사람들이 그녀가 오랜 시간 연기해 온 헤르미온느라는 캐릭터 때문에 정작 자신의 유쾌한 유머 감각을 놓치고 있다는 점과 헤르미온느로 인정받을 뿐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 헤르미온느 속에 자신이 깃들어 있다는 점을 어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그녀를 만나오면서 나는 사람들이 추앙하는 헤로인과 실제 엠마 와슨 사이의 벽은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싹싹하고 씩씩한 엠마 와슨은 여전히 많은 걸 배우며 노력하려 애쓰고 있다. 그녀는 이 새롭고 자유로운 페미니즘 시대에 검을 높이 치켜든 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고의 여배우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녀에게 늘 행운이 함께 하길 기원할 수밖에.
 
지난 엠마 와슨의 연설 전문을 읽어보고 싶다면 유엔 홈페이지(un.org)를 방문해 보길. 캠페인에 참여하고 싶다면 허포시 캠페인 홈페이지 (heforshe.org)를 방문하거나 트위터 계정(#HeForShe)을 팔로잉해도 좋다.
 
 
 
Credit
- fashion editor ANNE-MARIE curtis
- writer LORRAINE CANDY
- photo KERRY HALlIHAN
- hair Vi Sapyyapy
- make-up Dotti
- nail Welsh
- set designer Alexandra Leavey
- design 하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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