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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의 남자, '제이미 도넌'

이 남자 앞에서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여자가 얼마나 될까. 전 세계 여성 독자들에게 과호흡 증상을 일으킨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스크린을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마성의 캐릭터, 크리스천 그레이로 변신한 배우 제이미 도넌을 만났다.

프로필 by ELLE 2015.02.27

 

베이식한 디자인의 울 혼방 톱은 JW. Anderson.

 

 

 

 

 

 

폴리에스터 소재의 그린 컬러 재킷은 McQ Alexander McQueen. 화이트 톱은 Tom Ford. 데님 진은 Calvin Klein.

 

 

제이미 도넌의 인생에서 벌어진 영화 같은 사건 하나. 세 살배기였던 그는 할리우드에서 울부짖는 여자들에 둘러싸여 급박하게 성형수술을 받아야 했다. 아차, 미안하다. 참사가 일어난 곳은 할리우드(Hollywood)가 아니라 그가 자란 북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홀리우드(Holywood)다. “비누 거품에 미끄러져 넘어졌어요.” 웨스트 런던의 한 카페에 앉아 페퍼민트 티를 마시던 그가 말한다. “뒷마당에서 우리가 키우던 보더콜리 강아지를 목욕시키고 있었어요. 비누 거품 속으로 돌진하려던 나는 그만 돌계단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죠. 피를 철철 흘리면서 부엌 조리대에 누워 있는데, 옆에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펑펑 울고 있었던 게 기억나요. 병원에 도착해 수술실로 향하는 승강기 문이 열리던 장면도요. 꿰맨 상처가 커서 성형수술까지 해야 했어요.” 제이미 도넌이 미소 짓더니 앞머리를 들어올려 이마의 상처까지 보여준다. 캘빈 클라인의 섹시한 속옷 모델이었던 그에게 바짝 다가가는 순간, 목구멍에서 절로 흐뭇한 탄성이 흘러나온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개봉하면 수많은 여성들이 그를 향해 더 큰 비명을 지를 것이다. 2012년 발간 이후 전 세계에 뜨거운 신드롬을 일으킨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 이야기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카리스마 넘치는 억만장자 크리스천 그레이, 특별한 성적 취향을 가진 그는 순진무구한 여대생 아나스타샤(다코타 존슨)를 ‘고통의 붉은 방(Red Room of Pain)’으로 유혹한다. 소설은 미지의 영역인 ‘사도마조히즘’을 다루며 에로틱한 상상력을 무한대로 자극한다. 영화화가 발표되고 수많은 감독들이 거론된 끝에, 메가폰을 잡은 이는 샘 테일러 존슨. 주인공 그레이 역에는 찰리 허냄이 물망에 올랐으나 스케줄 문제로 무산됐다는 소문이 들렸다. 제이미 도넌은 이미 캐스팅 초기 단계에 비디오 오디션을 본 상태였다. “오디션 후에 아무런 연락이 없더라고요. 몇 달이 흐르자 ‘이제 그만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아마도 수북이 쌓인 테이프 중에서 제 것에 발이 걸려 넘어졌나 봐요(웃음).” 늦은 밤 샘 테일러 존슨이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아내와 함께 침실에서 TV 경매 쇼 <스토리지 워스 Storage Wars>를 보고 있었다. “평소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에요. 아주 흥미진진해요. 샘이 뭐라고 말하는지 못 알아들을 정도였죠. 하지만 통화가 끝날 무렵엔 요점을 파악했어요. 나를 만나보고 싶다는 거였죠. 당연히 옆에 있는 아내에게 이 소식을 알렸고요.” 추측하건대 한밤중에 낭보를 접한 부부가 곧장 머리를 맞대고 캐릭터 분석에 들어가진 않았을까? 제이미 도넌은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터뜨린다. “새벽 3시였는 걸요. 우린 그대로 잠들어버렸어요. 촬영장에서 만난 샘은 배우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어요. 이번 작품이 여느 촬영에 비해 그렇게 두렵거나 거창한 건 아니라고 안심시켜 주었죠. 우린 외부의 온갖 잡음을 차단하고, 오직 최고의 그림을 만드는 데만 신경 쓰기로 했어요.” 완벽한 그레이가 되기 위한 과정에는 실제로 존재하는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던전을 방문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극장 안에 있는 단 한 명의 관객이 된 기분이었어요. 한 사람이 제게 맥주를 건네주었고…둘은 각자의 역할로 돌아갔어요. 도미넌트(dominant)인 남자는 우리 영화의 중요한 참고인이 돼주었죠.” 그런 은밀한 장면을 코앞에서 지켜본다는 게 당혹스럽진 않았는지 묻자 ‘당연히 그랬다’고 답한다. “그들 역시 내가 있어서 불편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킥킥거리면서 휴식 시간을 많이 갖더라고요. 난 비록 입장료를 내진 않았지만 놀라운 쇼가 펼쳐지길 기대하고 있었고요. 흥미로운 저녁이었죠.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갓 태어난 아기를 안아주기 전에 아주 오랫동안 샤워를 했어요.” 제이미 도넌이 분한 억만장자 사디스트에게는 어린 시절 경험한 트라우마가 있는데, 이 부분 또한 영화 속에서 다뤄진다. “그레이라는 인물의 감정적 배경을 말해주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죠. 우리가 전달하려는 건 사랑 이야기에요. 단지 붉은 방에서 벌어지는 일이 전부는 아니라는 거죠. 훨씬 더 많은 것을 영화에 담아내려고 했어요.” 제이미 도넌은 이미 그레이에 견줄 만한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한 바 있다. BBC가 제작한 수사 드라마 <더 폴 The Fall>의 ‘폴 스펙터’. 겉으로는 자애로운 남편이자 아버지, 카운슬러인 그는 여성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연쇄 살인마로, 질리언 앤더슨이 분한 베테랑 형사의 추격을 받는다. 심중을 알 수 없는 무자비한 사이코패스 역을 통해 제이미 도넌은 2014년 BAFTA(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됐다. “둘 다 여성을 침대에 묶어두는 건 똑같지만, 완전히 다른 이유에서죠. 만일 사람들이 내가 똑같은 연기를 한다고 생각한다면 굉장히 언짢을 것 같아요.” 그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페미니즘 정신에 반대된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물론 여성을 강제로 결박하거나 때리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해요. 하지만 연인끼리 스스로의 의지로 참여한다면 상황은 달라지죠. 일종의 합의인 셈이죠. 그리고 ‘도미넌트’가 아니라 ‘서브미시브(submissive)’ 성향을 가진 남자들도 많아요. 당신의 친구나 직장 동료 중에도 이런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기꺼이 회초리를 맞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죠.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고 해서 화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연기를 시작하기 전, 제이미 도넌은 모델로서 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에바 멘데스, 케이트 모스 같은 스타 모델들과 함께 디올, 아르마니 등의 광고 캠페인에도 등장했다. 그러나 그는 모델 활동을 하면서 자신을 대상화하는 시선에 불편함을 느낀 듯하다. 특히 키이라 나이틀리의 남자친구였던 시절(그녀 이름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다), 파파라치에 둘러싸여 곤혹스러운 유명세를 치렀을 때는 배우의 꿈에 의문을 품기까지 했다. “매일 우리 집 현관 앞에 카메라를 든 일당이 진을 치고 있었어요. 나도 모르게 매사에 조심스러워지고, 일상적인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샌드백처럼 두들겨 맞는 기분이었죠. 모자와 후드 스웨터를 잔뜩 사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상황이 생겨도 나름대로 대처할 자신이 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확신도 있고요. 어쨌든 처음 출전하는 경기는 아니니까요.” 2013년 제이미 도넌은 동료 배우인 아멜리아 워너(Amelia Warner)와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아멜리아가 낳은 딸은 어느덧 세 살이 되어 매일 토스트에 마마이트(효소 잼)를 발라 먹는다. 그는 아빠가 된다는 건 ‘엄청나게 경이로운 사건’이라고 말한다. “촬영 때문에 한 2주 정도 떨어져 지낸 적 있어요. 집에 돌아와보니 딸이 놀랄 만큼 컸더라고요. 날 못 알아보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어요. 수염까지 면도한 상태였거든요. 실제로 몇 시간 동안은 아이가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았어요. 나를 쳐다보는 표정이 딱 이랬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가? 아무래도 좋아해야 할 거 같은데(웃음).” 제이미 도넌의 딸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촬영이 시작되기 이틀 전, 촬영지인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조금 난감하기도 했어요. 나중에 딸아이가 친구들에게 ‘캐나다 여권을 갖고 있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내와 얘기를 나눴죠.” 세 가족은 현재 이스트 런던에 살고 있지만, 아주 오랫동안 머물 계획은 아니다. 북아일랜드 해변가에서 자란 제이미는 비록 고향으로 되돌아가진 않더라도 언젠가 아이에게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 한다. “런던에서는 운동을 하려면 체육관에 등록해야 해요. 공간은 비좁고 비용은 많이 들죠. 축구를 하려고 예약을 6개월이나 기다린 적도 있어요.” 집에서 다소 거리가 떨어진 체육관을 다닌다는 그는 와일드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택시에 몸을 싣고 집으로 향한다. “새벽에 홀로 택시를 타면 조금 우울한 기분이 들어요. 그럴 때는 기사와 대화를 나누거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죠.” 얼마 전 그는 런던에서 꽤 떨어진 노퍽(Norfolk) 주에서 친구들과 남자들만의 회동을 가졌다. “상상하는 것처럼 아주 ‘수컷스러운’ 모임은 아니었어요. 에드워드 왕조풍의 별장에서 활쏘기를 하고 밤에는 모닥불을 피웠어요. 솜씨 좋은 셰프가 만든 맛있는 음식도 있었고요. 비록 노퍽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오기까지 다섯 시간이나 걸렸지만.” 잠깐, 지금 천하의 그레이가 무료 셔틀버스를 탔다고 말하는 건가? “차를 집에 두고 왔거든요. 아내가 외출할 때 필요할지 몰라서.” 폭풍 같은 유명세? 이런 믿음직한 남자라면 거뜬히 헤쳐나갈 것이다.

 

 

 

Credit

  • writer SOPHIE HEAWOOD
  • photographer JEFF HAHN
  • stylist MICHELLE DUGUID
  • editor 김아름
  • DESIGN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