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로맨틱의 정수

아일랜드 출신의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시몬 로샤. 아버지 존 로샤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제 런던의 초신성으로 떠오른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프로필 by ELLE 2015.01.26

 

1 2015 S/S 컬렉션의 화사한 베일을 쓴 모델들.

2 시몬 로샤 컬렉션의 특징은 섬세한 소재의 믹스다.

 

 

 

 

 

 

 

3 시몬 로샤 (가운데 아래) 스튜디오 팀. 볼드한 러플이 강조된 시몬 로샤의 2014 F/W 컬렉션과 제이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 의상을 입었다.

4 2015 S/S 컬렉션의 하이라이트인 화이트 시리즈.

 

 

시몬 로샤의 컬렉션은 아일랜드 민속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스퍼레이션 보드엔 외딴 교회의 문 앞에 있는 러플 드레스 차림의 아이들 사진이 가득하다. 한 번도 더블린에 가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자, 로샤는 열정적으로 설명을 시작한다. “진짜 놀라운 곳이에요. 정말 작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죠. 비록 지금은 그 반대편에서 살고 있지만 전 아일랜드의 라넬라(Ranelagh) 마을에서 자랐어요. 모두가 친숙한 그곳에서 스누커(당구 게임의 일종) 게임을 즐기곤 했죠. 23세 때까지 머물렀는데….”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일랜드는 이제 28세가 된 디자이너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다. 그녀는 평소에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을 입고 다니고, 런웨이에서도 그렇듯 로샤 특유의 유니크한 감각을 선보이고 있다(걸리시한 러플 드레스와는 대조적인 투박한 플랫 슈즈를 신고 활보하는 모델들을 생각해 보라). “몸에 꼭 달라붙는 섹시한 드레스는 아니지만 상당히 여성스러워요.” 로샤는 자신의 옷을 이렇게 평가한다. “하지만 결코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만족시킬 순 없어요.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아일랜드 악센트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런던에 머문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신진 디자이너들이 모여 있는 이스트 런던의 달스턴(Dalston) 외곽에 있는 한 스튜디오, 그녀의 작업 공간은 세련되면서도 자유분방한 느낌이다. “우린 이곳에서 정말 행복해요. 침수 걱정도 없죠!” 로샤가 말한다. 참고로 지난번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2012년 F/W 쇼 몇 달 전 도로 침수 때문에 애를 먹었다. 물론 당시에도 시몬 로샤의 스타성은 확고했지만 지금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로샤는 런던 패션위크의 떠오르는 별로, 전 세계 90개가 넘는 스토어에 옷을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엔 브리티시 패션 어워즈의 ‘주목할 만한 디자이너(Emerging Talent)’ 상을 거머쥐었고, 크리스토퍼 케인프로엔자 스쿨러의 뒤를 이어 제이 브랜드(J Brand)와 컬래버레이션도 성사시켰다.

 

2014년 F/W 컬렉션에 대한 평가가 말해주듯,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차세대 신예가 아니다. “모던함을 가미한 엘리자베스 시대의 드레스예요.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1세와 그녀의 사람들 Elizabeth I & Her People> 전시회를 봤어요. 당시의 화려한 휘장과 볼륨, 텍스처의 마력에 사로잡혔죠. 이후 요즘 세대를 위한 디테일은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이를테면 화려한 장식의 울이 아닌, 미래적인 플라스틱 소재를 활용하는 방법이에요.” 그 결과는? 호화로운 장식 없이도 충분히 임팩트 있는 컬렉션이 탄생했다. 히프와 어깨에서 풍성한 볼륨을 만들어 마치 화가 홀바인(Holbein)의 위풍당당한 모델들을 보는 듯하다. 그녀 옷의 특징으로 솔기마다 장식적인 스티치를 들 수 있다. 게다가 솔기뿐 아니라, 자수 장식부터 크로셰나 도네갈 트위드(Donegal Tweed)에 이르는 각 패브릭에서도 세심한 디테일이 묻어난다. “손뜨개 방식은 아일랜드에서 완성한 것이에요. 코바늘로 뭐든지 만들 수 있어요. 노부인들은 늘 집 안에서 손뜨개를 하는데, 아일랜드 북부에서는 흔한 풍경이죠.” 로샤는 패브릭의 영감을 얻기 위해 자주 부모님 집에 들른다고 한다. “불과 한 시간 거리에요.” 또 디자이너인 아버지(존 로샤)의 쇼를 위해 손뜨개로 양말을 만들기도 하고, 사진가 브루스 웨버와 함께 부모님의 아일랜드 집에서 근사한 파티를 열기도 한다.

 

그렇다면 패션은 그녀에게 불가피한 운명 같은 것일까? “말 그대로 내 인생의 100%예요.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다른 부모들과는 달리, 아버지와 어머니(아버지를 돕다 지금은 로샤와 함께 일한다)는 집에서 늘 많은 일을 했으니까요. 디자인 스케치가 집 안 곳곳에 자연스럽게 펼쳐져 있었지만 어린 시절의 내 눈에는 ‘패션’처럼 여겨지진 않았어요. 하지만 런던으로 이주해 패션 디자이너가 된 지금은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져요. 난 그야말로 가족적이고 히피-디피(hippy-dippy 인습을 거부하는)한 환경에서 자라난 것에 감사해요.” ‘인습을 거부하는’ 또는 ‘예술적인’이라는 단어는 패션이 뭔가 거창한 것이 아니었던 집안 환경에 대한 로샤의 애정 어린 표현이다. “아주 당연하게 여겨졌어요. 10대가 됐을 때 비로소 패션을 이해하기 시작했죠. 매거진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는 뭔가를 만들고 완성하는 독창성과 기교에 대해 많은 걸 배웠어요. 상상력을 펼치기 시작한 건 좀 더 나중의 일이고요.” 오늘날 로샤의 작업은 상상력과 기교의 혼합이 완성한 결과다. 그녀의 옷은 소박한 홈스펀 느낌이 아닌, 수공예의 감수성을 담고 있다. “손으로 만든 느낌을 정말 좋아해요. 아버지의 컬렉션에는 늘 이런 감각이 담겨 있죠. 제 경우엔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활용하고 있지만요.” 라텍스와 크레이프 저지, 레이스와 PVC 등 로샤는 남들이 쉽게 생각해 낼 수 없는 특이한 소재의 조합을 선호한다. 기퓌르 레이스로 장식한 섬세한 바이커 재킷은 일반적인 섹시함의 경계를 허물고, 슬립 드레스 혹은 러플 스커트는 매니시한 브로그와 매치한다. “우린 진짜 많은 슈즈를 팔았어요.” 로샤가 웃음을 터트린다. “브로그는 이젠 자체적으로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죠!” 그녀는 퍼스펙스(투명한 아크릴) 밑창이나 힐을 단 다양한 버전의 브로그를 선보이며 빅히트를 기록했다. 이 슈즈들은 스튜디오의 라디에이터 옆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지금 로샤는 꼼 데 가르송 러플 드레스에 맨발 차림이긴 하지만. 초창기부터 그녀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온 꼼 데 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는 런던 엠포리움과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의 전시 그리고 로샤의 첫 컬렉션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새로운 컬렉션이 숍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녀의 컬렉션의 전 아이템을 주문했다! 신진 디자이너가 안정적인 기반을 갖추기까지는 10년 이상 걸리는 전형적인 코스와는 달리, 로샤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의 졸업 쇼를 마친 후 불과 세 시즌 만에 이름을 떨쳤다. “루이스(지난 5월에 사망한 루이스 윌슨(Louise Wilson) 교수에게 경의를 표하며)는 제 삶을 바꾸어 놓았어요. 그녀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커리어도 없었을 거예요. 21년간의 교육 과정을 통틀어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자였어요.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 루이스는 다른 길로 가지 않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요.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어주었죠.” 로샤는 지금까지 꿈꿔오던 일들을 현실로 옮기고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지나치게 ‘패션’스러운 걸 원하지 않았어요. 다들 제가 존 로샤의 딸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은 남동생 맥스가 모든 쇼의 사운드트랙을 맡고 어머니는 시몬의 쇼룸을 책임지는 등 패션 가문으로서 초행길을 걷고 있다. “어머닌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지지해 줘요.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죠.” 이런 든든한 유대감은 마치 패션계에서 파트너십을 자랑하는 미우치아 프라다 파트리지오 베르텔리 그리고 레이 가와쿠보애드리언 조프를 연상시킨다. 세계적인 브랜드의 성공 뒤엔 가족의 아낌없는 지원이 있듯, 시몬 로샤는 이미 그 리그를 만들어가는 법을 터득한 듯하다.

 

 

 

Credit

  • writer ALEXANDER FURY editor 방호광 photo KASIA BOBULA(인물)
  • COURTESY OF SIMONE ROCHA DESIGN 하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