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데코1/17분량_Itaewon freedom

뉴욕에서 활동하던 작가 니키 리는 한국에 산 지 5년 만에 원하는 집을 지었다. 이태원 골목 안의 오래된 주택가에 정체 모를 철문을 열고 들어가 희한하게 구조를 바꾼 집을 구경했다.

프로필 by ELLE 2015.01.09

 

 

 

겨울만 아니라면 언제든지 파티를 할 수 있는 옥상. 나무 데크를 깔아 편안하게 마감했지만 방수공사 때문에 무척 고생한 게 기억에 남는다고. 여기서는 남산이 시골 뒷산처럼 보인다.

 

 

 

 

 

 

테이블은 장민승 작가 작품, 조명은 체크 메이트 제품으로 인다디자인에서 구입했다. 의자들은 각각 구입했는데, 카르텔고스트 체어는 가짜가 널렸지만 진품이라고. 오른쪽의 검은색 의자는 싸구려지만 너무 편해서 절대로 버릴 수 없다. 바닥에 깔린 양탄자는 올케의 아버지가 오래전 중동에서 사온 것을 니키 리가 남동생 집 창고에서 ‘발굴’해 왔다.

 

 

 

 

 

 

조명은 체크메이트. 변기 위에 쿠션은 이 집 전체에 놓인 거의 유일한 소품이다.

 

 

 

 

 

 

소파는 보컨셉트(BoConcept)에서 수년 전에 구입했다. 테이블 위 펠트 바구니는 리모컨 전용이다. 콘크리트 벽면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바닥을 모두 나무 패턴으로 깔았다.

 

 

 

 

 

 

거실 가운데 있는 꽃잎 같은 조명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케네스 코본푸(Kenneth Cobonpue)가 디자인한 판당고 라이트, 인다디자인에서 구입했다.

 

 

 

 

 

 

(왼쪽) 현관 입구에 놓인 미니멀한 테이블과 볼. 장식이 요란한 가구는 찾아볼 수 없다.
(오른쪽) 침실이라는 목적에 충실하도록 침대 두 개를 이어 붙여 벽 끝에서 끝까지 모두 베드로 채웠다.

 

 

 

 

 

 

(왼쪽) 이 집을 구하는 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가족은 거북이 모모.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1천 명도 넘는 유명한 분이다.
(오른쪽) 집 방향은 그대로 두고 발코니만 콘크리트로 지어 올린 외부 전경.

 

 

 

 

 

 

옥상에 선 니키리.

 

 

어떤 가장이 여기서 자식도 낳고, 애들 대학도 보내고, 인생을 다 지냈다는 평범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빨간 벽돌집은 서울 시내 안에 수백 채도 넘을 거다. 그런 집들 중에서 하나였을 이태원 골목 어귀 한 2층집이 나무와 콘크리트로 둘러진 3층집으로 변신했다. 작가 니키 리가 서울로 돌아와 정착한 지 5년 만에 마음먹고 얻은 집이다. “그전에는 그냥 오피스텔, 주상복합건물에 살았어요. 전 어릴 때도 강남에서만 살았거든요. 그런데 더는 재미가 없더라고요. 강북을 좋아하니까 강북으로 왔지만 완벽히 내 스타일로 꾸밀 수 없다면 집을 사는 건 무리이니, 그냥 ‘빌트인’으로 갖춰진 데서만 살았어요. 신경 써서 얻은 집은 처음이에요.” 그녀는 코너에 있는 집을 좋아한다. 앞에 걸리적거리는 게 없어야 한다. 이태원에 정착하기로 했을 때, 조금만 내려가면 시끌벅적한 경리단 길이지만, 언덕 위는 조용한 주택가인 데다 바로 옆에 대사관이 있어 정원과 녹지가 서울치곤 꽤 남아 있는 이 코너 집을 발견했다. 한 층을 올려 3층을 만들었고, 그래서 옥상에 올라가면 서울 시내가 엽서 사진처럼 펼쳐진다. 그런데 이 집에 들어온 결정적 계기는, 그녀의 말에 의하면 거북이다.

 

“이상하게 들리죠? 광고 찍는 박명천 감독이 거북이 마니아로 유명해요. 그 집에 가면 뜰에 이따 만한 거북이 두 마리가 딱 있고, 방에 들어가도 수족관에 거북이가 가득해요. 자기가 땅을 산 건 다 거북이 덕분이래요. 거북이가 자꾸 크니까 큰 집이 있어야 될 것 같고, 때문에 땅을 사고 집을 샀대요. 저도 집을 살 계획이 없었는데, 청계천에서 손가락 만한 애를 데려온 다음에 집을 사게 된 거죠. 옛날부터 거북이가 부의 상징이잖아요? 이게 뭔가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웃음).” 뉴욕에서 주로 활동하는 건축사무소 매니페스토의 이상화 소장이 집 외관을 디자인했고, 내부 구조는 니키 리의 남편이, 인테리어는 니키 리가 했다. 1층은 주차장과 창고,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간 2층에 그녀의 집이 있고, 3층은 두 채로 나눠 싱글인 세입자를 들였다. 아티스트 하면 왠지 세상 물정에 둔감할 것 같고 어딘지 이치를 따지는 데 서툴 것 같은데, 그녀는 “회사원을 했어도 잘했을 거라고, 나 같은 사람이 작가를 하고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할 만큼 효율을 좋아한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집을 둘러보는 내내 어떤 곳에서도 소품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테이블 위에 날짜 지난 고지서 한 장 없고, 소파 위에 널브러진 담요 한 장 없는 집은 당황스러웠다. 이 집에서 목격한 잡동사니는 TV 리모컨뿐이었다. “너무 깨끗해서 일부러 치운 것 같죠? 그런 게 아니고 제가 물건을 이고지고 사는 걸 싫어해요. 기본적인 것만 충족되면, 별 상관 없다고 생각해요. 그릇도 몇 개 가지고 이가 다 빠질 때까지 쓰고, 예쁜 캔들 같은 건 평생 사본 적 없어요. 만약 테이블을 10년 썼어도 소멸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하면 가차없이 버려요. 어차피 죽으면 가는데, 시간 지난 게 뭘 그리 소중해. 쓰는 동안 아끼고 좋아하며 추억을 공유했다면 그걸로 우리 인연은 끝인 거예요. 그게 30년 가면 좋은 거고, 3년 가면 할 수 없는 거고. 사람도 물건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비싼 물건, 좋은 인테리어에 대해서도 소유하려고 욕심을 부린 적이 없다. “외국에서 집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부잣집에도 많이 가봤지만, 그게 행복의 조건은 아니었어요. 돈이 너무 없으면 불행해도, 많은 건 행복에 영향을 주지 않아요. 서민 변기나 부자 변기나, 물 내려가는 건 똑같아요. 수압이 중요하지(웃음). 시각적으로 예쁜 걸 고르는 취향은 존중할 수 있지만, 좋은 거니까 갖고 싶고, 그걸로 장식하며 사는 건 제게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그녀는 공간을 철저히 편의적으로 디자인했다. 거실은 편해야 하니까 두 사람이 누울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소파를 크게 놓았고, 침실은 자는 곳이니까 양쪽 벽에 딱 맞게 큰 침대 두 개를 이어 붙였다. 요리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라 부엌은 작게 만들었고, 샤워실과 화장실은 외국생활을 오래한 부부인 만큼 두 공간으로 분리시켰다. 벽은 온통 콘크리트로 했고, 발코니와 바닥에만 나무 데크를 깔았다. 갤러리 공간에 익숙하기 때문인지 쿨 톤의 인테리어를 좋아해서인지 몰라도 살던 집마다 콘크리트를 꾸준히 썼다. “뉴욕에 있을 때도 로프트를 사서 다 고쳐 살았어요. 복층집이었는데 이층 침실로 가는 콘크리트 다리를 만들었죠. 뭔가 묵직한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아요.”여기까지 둘러보니 그녀의 집에는 어긋남이 없다. 말한 그대로 니키 리의 정체성으로 채워진 빈 틈없는 디자인이다. 이상한 구석을 찾아내려고 이것저것 뜯어보는 데 질문이 날아든다. “제 작품이 안 걸려 있죠? 전 작가라고 해서 자기 작품을 집에 걸어두는 것 좀 이상해요. 나르시시즘 같아서. 집은 내가 사는 곳이지, 누구 보라고 분위기 잡는 데가 아니잖아요.”

 

 

 

Credit

  • editor 이경은
  • writer JDZ chung
  • DESIGN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