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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생긴일

북한 하면 으레 통제되고 억압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북한에도 나름 트렌드가 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다니엘 튜더가 자신이 목격한 북한의 오늘을 말한다.

프로필 by ELLE 2014.11.20

 

최근 북한 여행을 다녀왔다. 평양에서 활동할 미래의 사업가들에게 마케팅 강의를 해줄 비즈니스 그룹의 일원 중 하나로 초청됐다. 나로선 이런 교류 자체가 흥분되고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북한 정부를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런 말은 가능할 것 같다. 지금 북한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고. 북한의 경제적 시스템 붕괴에 대해 언급하려면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동안 정부 배급에 의존해 살았던 주민들은 갑작스럽게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했다. 이는 북한 주민들이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을 통해 번 돈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엘리트층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중국과의 수출입 등의 비즈니스를 택할 수도 있었지만 불운한 대다수는 그저 물건들을 이리저리 운반하거나 고장난 자전거를 수리하거나, 거리에서 과일이나 채소를 파는 허드렛일로 먹고사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평양의 엘리트층 사이에서 자본주의 체제로의 변화는 아주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평양 거리에 벤츠 자동차가 급증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막상 내 눈으로 직접 렉서스, BMW, 아우디 등이 돌아다니는 걸 본다는 건 낯설고 놀라운 광경이었다. 식당은 늘 열려 있었고, 피자와 스테이크의 가격도 남한과 큰 차이가 없다. 외국 대사관 직원들이 농담 삼아 맨해튼을 빗대서 ‘평-해튼(Pyong-hattan)’이라 부르는 만수대엔 이미 거대한 현대식 아파트 복합단지가 치솟아 있었다. 물론 평양을 벗어나면 완전히 동떨어진 풍경이 펼쳐진다. 우리가 잠시 들렀던 ‘평성’이라는 작은 도시에서는 수많은 빈민들이 뭔가를 얻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도로변에서 담배를 파는 할머니들과 자전거로 물건을 이리저리 실어 나르는 이들까지, 국가의 배급 체제에서 자본주의 삶으로 튕겨나듯 내몰린 이들은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손에 잡히는 건 뭐든지 하는 것 같았다.

 

북한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사업 아이템 중 하나는 맥주다.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인해 전국적인 유통이 어려운 탓에 북한에선 도시마다 독자적으로 맥주를 제조하고 유통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북한의 맥주 제조업체는 10여 개에 이른다. 남한보다 많다. 대부분의 맥주 회사는 바와 레스토랑을 동시에 운영하는데 늘 젊은 사업가들로 북적거린다. 짐작컨대 이들이 마시는 술의 양은 서울 사람들 못지않을 것이다. 유일한 차이라면 술잔을 부딪치면서 ‘축배’라는 단어를 외친다는 것. 실제로 내가 “건배!”라고 말하자 누군가가 “아, 당신은 서울에 다녀왔군요!”라고 했다. 만일 통일이 된다면 남한과 북한의 미묘한 언어 차이가 어떻게 해결될지 사뭇 궁금해졌다. 돌고래는 북한에선 ‘곱등어’이고, 삼겹살은 ‘세겹살’이다! 그렇다면 요즘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겹살은 ‘다섯겹살’쯤 될까?

 

 

 

 

 

 

평양의 패션은 여전히 보수적이다. 사람들의 옷차림과 전반적인 생활방식이 중국 본토의 내륙 도시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결코 패션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엄격하게 통제된 탓이 크다. 섹시하게 차려입은 여자나 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가 경찰에게 연행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통제’가 여전하다는 건 아쉽게 느껴진다. 흥미로운 건 평양 외곽에선 이런 일들이 자유롭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함경북도에 있는 청진은 일종의 ‘패션 도시’다. 평양보단 통제가 약한 덕에 청진에선 스키니 진을 입거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들을 볼 수 있다. 청진은 중국 국경과 가까운 항구 도시여서 북한 내의 어떤 곳보다 빠르게 수입품을 접할 수 있다. 특히 거대한 박스에 담긴 일본 중고 의류들이 청진으로 들어온다. 게다가 중국을 통해 유입된 BB크림의 유통도 급증했다. 최근에 나는 북한의 사회적 변화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인데 탈북자들을 통해 ‘젊은이들의 트렌드’에 관한 인터뷰를 할 때 어느 한 젊은 여성이 이렇게 말했다. 김정은의 아내, 그러니까 리설주의 스타일은 청진 토박이인 그녀의 관점에서는 ‘좀 촌스럽다’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평양의 관점에서 그녀는 아주 패셔너블한 사람이다. 평양의 수많은 중산층 여성들은 이미 리설주의 헤어스타일과 드레스 스타일을 따라 하는 걸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남한을 휩쓸었던 성형 열풍은 북한에선 막 시작 단계이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 부유한 젊은 평양 여성 중 한두 명 정도에게서 의사가 손본 듯한 코 성형의 흔적을 발견했다. 특히 쌍꺼풀 시술은 인기가 높아서 북한 어디서나 2달러 정도면 가능하다고 한다. 이는 성형외과 전문 의사가 아니라 아마추어 시술가들을 통해서 받는 것이다. 이는 북한에 등장한 자본주의 활동의 또 다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의 대부분은 한류에서 비롯됐다. 수많은 아시아의 팬들이 열광하는 것처럼 북한 사람들 역시 한국 드라마의 배우와 가수들에게 매료되기 시작했다. 남한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들은 중국을 거쳐 DVD, USB, SD 메모리 카드 등의 형태로 북한에 유통된다. 북한 정부에선 이를 차단하려 애쓰지만 이미 한류는 북한에 널리 퍼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막을 수 있는 별다른 방도가 없어 보인다. 한 탈북자는 남한의 드라마나 영화를 본 북한 주민들이 적어도 전체인구의 절반 이상은 넘을 거라고 했다. 심지어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 관계자들은 압수된 한류 물품들을 접하는 게 어렵지 않기 때문에 남몰래 이를 즐기고 있을 거라고까지 했다.

 

이 모든 변화가 북한의 정치적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평범한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선택을 위한 옵션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큰 물음에서부터 먹고사는 방식이나 엔터테인먼트에 이르기까지 이들에겐 전에 없이 다양한 선택지가 생긴 셈이다. 어쨌든 권력 지배층이 모든 미디어와 공적인 담론을 통제하는 북한의 밑바닥에서 새로운 문화적 열망이 생겼고 그런 변화가 탄생할 수 있는 시점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런 변화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닐까.

 

 

 

Credit

  • writer Daniel Tudor
  • editor 민용준
  • illustrator 김현경
  • design 하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