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나탈리아'의 나날들

‘인간은 누구나 같은 양의 고통 주머니를 안고 태어난다’는 고통 총량의 법칙처럼, 나탈리아 보디아노바에겐 보통 사람이라면 견디기 어려웠을 정도로 불우한 시절이 있었다. 영화처럼 극적인 자신의 삶에 대해 나탈리아는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프로필 by ELLE 2014.08.11


화이트 니트는 Acne Studios. 귀고리와 반지는 Louis Vuitton Jewelry.

 

 

 

 

 

 

 

화이트 드레스는 Nina Ricci. 다이아몬드 링은 Repossi. 브레이슬렛은 De Beers.

 

BEAUTY NOTE
상속자의 약혼녀 격에 맞게 고급스럽고 우아한 룩을 위해서는 ‘부티’ 나는 피부가 관건. 우선 테라코타 졸리 텡 나튀렐(국내 미출시)로 피부 결을 정돈한 후, 메테오리트 라이트 리빌링 펄 파우더 03 미디엄으로 피부에 화사함을 주었다. 그리고 테라코타 포시즌 누드(국내 미출시)를 광대와 이마 등에 살짝 터치해 마치 지중해로 막 휴가를 다녀온 듯 건강하게 빛나는 피부를 연출했다. 제품은 모두 Guerlain.

 

 

 

 

 

 

 

레이스 드레스는 Nina Ricci. 귀고리는 Haute Jewelry Bulgari. 다이아몬드 링은 Cartier. 골드 링은 Bulgari.

 

BEAUTY NOTE
화장하지 않은 듯하면서도 품위를 지닌 룩은 과하지 않은 아이 메이크업과 자연스러운 립 컬러에 달렸다. 더 아이펜슬 01 블랙잭으로 눈매를 또렷하게 표현하고, 눈두덩엔 에끄레 4 꿀뢰르 아이섀도우 04 로즈우드로 음영을 주는 정도로만 살짝 발랐다. 맥시 래쉬 마스카라 블랙으로 풍성한 속눈썹 완성. 사랑스러운 복숭아빛 입술엔 맥시 샤인 립글로스 461 핑크 클립을 바른 것. 제품은 모두 Guerlain.

 

 

 

 

NATALIA'S MAKE-UP ESSENTIALS

 


1 얼굴에 은은한 광채를 부여하는 메테오리트 라이트 리빌링 펄 파우더, 8만원.

2 가루 날림 없이 자연스럽게 발리는 에끄레 4 꿀뢰르, 04 로즈우드, 7만4천원.

3 끈적거리지 않고 빠르게 흡수되는 아베이 로얄 페이스 트리트먼트 오일, 12만8천원대.

4 유혹적인 컬러의 키스키스 립스틱, 302호, 4만5천원. 모두 겔랑.

 

 


나탈리아 보디아노바만큼 많은 수식어를 가진 스타가 있을까? 톱 모델이자 배우이고, 에탐(Etam)의 크리에이터. 겔랑의 얼굴이자 러시아의 빈곤 아이들을 돕는 아동재단 네이키드 하트(Naked Heart) 설립자이자 운영자인 나탈리아. 또 그녀는 LVMH 제국의 상속자 앙투안 아르노(Antoine Arnault)와 사랑에 빠진 여자이자 네 아이의 엄마다. 넷째 막심(Maxim)을 출산하기 전에 만난 그녀는 부풀어오른 배가 살짝 드러나는 베이지색 긴 망토를 입고 나타났다. 촬영과 인터뷰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던 상냥한 나탈리아는 마치 동화 나라에서 잠깐 지구에 놀러 온 착한 요정 같았다.

 

커리어의 정점에 있다. 이제 패션 업계와는 약간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이는데 인생을 패션에 쏟아붓는 사람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삶을 존중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 배경과 유년시절, 내가 중시하는 가치들을 생각하면 난 단지 패션 업계에만 한정된 삶에 만족할 수 없다. 내 삶은 풍요롭고 다채로우며, 내 심장은 다른 곳에서 뛰고 있다.

 

다른 곳이라면 물론 패션 업계가 내게 가져다준 것들에 감사한다. 하지만 러시아 어린이들을 위한 재단 ‘네이키드 하트’를 창립했을 때 비로소 모든 것들이 큰 의미를 가지게 됐고, 삶의 균형을 되찾았다.

 

어느덧 32세, 네 아이의 엄마인데도 어쩜 그렇게 한결같을 수 있나 좋은 유전자를 타고났을 뿐이다! 특히 할머니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내게 여성성에 대해 가르쳐준 분이랄까? 할머니는 꾸미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분이었다. 화장도 정성 들여 화려하게 했고 항상 머리도 단정히 손질했다. 액세서리, 립스틱…. 스타일링에 있어 그녀에게 대충이란 없었다. 지금 80세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변함없다. 믿을 수 있는가?

 

패션과 친숙하도록 도와준 분도 할머니인가 어느 정도는 그렇다. 원래 내 취향은 괴상한 편이었다. 학창 시절 주변 친구들이 끔찍이도 옷을 못 입는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당시 우리 집은 새 옷을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난 할머니의 오래된 옷들을 고쳐 입었다. 내가 바느질하면, 할머니께서 자수를 놓아주셨다. 그렇게 리폼한 스커트나 셔츠처럼 생긴 원피스들을 입고 다녔다.

 

아웃사이더였나 그런 편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날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또 알려진 대로 난 자폐 장애가 있는 여동생과 함께 자랐다. 그래서 집에 아무도 데리고 올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저 열심히 공부하는 성실한 학생이었던 것 같다. 때때로 엄마와 일하러 가거나 시장에서 야채 장사를 하기 위해 학교에 빠지는 날도 있었지만.

 

모델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16세 때 만난 첫 번째 남자친구가 모델 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가 내게 같이 다니자고 제안했다. 심지어 3개월에 300루블이나 하는 학원비를 내주겠다며!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 그러다 어느 날 대형 에이전시 관계자가 나를 눈여겨봤고, 캐스팅을 위해 모스크바로 오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가족들이 기뻐했겠다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떠나는 걸 반대했다. 나는 어머니의 유일한 버팀목이었기 때문에 어려움 속에 홀로 남겨진다는 걸 두려워했다. 다행히 할머니께서 나를 지지해 줬다. “이건 너에게 찾아온 기회야! 내가 다 알아봤는데 잘못될 일은 하나도 없더구나! 여기서 네게 무슨 미래가 있겠니? 가렴, 어서 가!” 그리고 할머니는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모스크바행 기차표를 사주셨다. 파리행 비행기표도. 그리고 모든 일이 잘 풀렸다.

 

그러곤 온갖 잡지 커버를 휩쓸었지 처음에는 주당 100달러를 벌었다. 지하철 표와 먹거리를 산 후, 고향의 가족에게 25달러를 보냈다. 그러다 처음으로 200달러를 보냈을 때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더라.

 

그 나이에는 모든 것이 아찔하고 정신없이 다가왔을 것 같다 나는 일중독에 걸린 사람처럼 일했다. 하지만 비교적 냉철한 이성을 유지했다. 어떤 인생이든 불평할 만한 이유가 항상 수천 가지가 있지만, 난 항상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했다. 내 유년시절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더 이상 어떤 것에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렇진 않다. 가까운 지인을 잃는다거나, 그들의 건강이 나빠질 때는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 외에는 무서울 게 없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감을 갖고 평화로운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런 인생사를 아이들에게 들려줄 건가 글쎄. 우리 아이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게 되겠지. 내 인생이 그 일부분을 차지할 테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을 것이고, 아이들의 유년시절을 내 유년시절과 비교하지도 않을 것이다. 후원하는 고아원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는데, 그 자체가 좋은 인생 수업이 되더라. 아이들이 고아원을 나올 때면 약간 진지해진다. 그래서 다시 어리광을 부리는 장난꾸러기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네이키드 하트’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러시아에는 놀이터가 거의 없다는 것에 착안해서 처음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내 여동생을 떠올리며, 장애 아동들이 놀이공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한 결과다. 아무것도 없는 변변찮은 도시에서는 내가 마치 디즈니랜드라도 가져다놓은 듯 좋아해 주더라. 그러다 최근에 뭔가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래서 지금은 아동정신기관에도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당신의 유년기를 '수리하고' 싶은 건가 어머니가 여동생 옥사나를 집에서 돌보기 위해 어떤 것들을 견뎌내야 했는가를 최근에 이해했다. 그녀에겐 일상이 전쟁이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집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우리 가족에게 어떤 일이 생겼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가족을 구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이다! 어머니는 무너지는 중이었다. 내가 집을 떠날 때 어머니는 36세였는데 60세는 돼보였다. 얼마나 삶에 지쳐 있었겠나! 내가 떠난 후에도 어머니는 10년 동안이나 더 어두운 삶을 사셨고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내 재단에서 고향에 주간돌보미 기관을 개관했고, 여동생이 지원 센터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 당연히 어머니의 삶에도 빛이 생겼고.

 

네 아이의 어머니가 된다는 걸 상상해 본 적 있나 앙투안 아르노와 함께 새 가정을 꾸린다는 건, 더 많은 아이들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행복할 뿐이다.  함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갖고 싶게 만드는 남자를 만난 건 내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니까.

 

출산이 임박했다. 어떤 기분인가 우리의 ‘넘버 4’는 크나큰 행복이다. 앙투안은 아이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아이에게 폭 빠진 아빠가 돼버렸다! 앙투안은 내 아이들에게도 멋진 새아빠다. 앞으로도 모든 일들이 잘될 거라는 확신이 든다.


 

 

Credit

  • editor 강옥진
  • writer MARINE BRAUNSCHVIG
  • hair seb bascle
  • make-up lily choi
  • photo NICO
  • design 하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