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만난 창조적인 듀오 크리에이터 M/M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최고의 비주얼리스트이자 크리에이터. 지금 이순간에도 아이디어를 찾아 헤매는 창조적인 듀오 M/M(Paris)을 그들의 파리 스튜디오에서 직접 만났다. :: 미카엘 암잘락,마티아스 오귀스티니아크,MM(Paris),공공미술 프로젝트,전시,아트 디렉터,엘르,엣진,elle.co.kr :: | :: 미카엘 암잘락,마티아스 오귀스티니아크,MM(Paris),공공미술 프로젝트,전시

1 M/M(Paris)의 두 주인공. 미카엘 암잘락(Michael Amzalag 왼쪽)과 마티아스 오귀스티니아크(Mathias Augustyniak 오른쪽). 두사람이 평소 작업하는 파리의 스튜디오 모습.가끔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듯 얼얼해지는 비주얼. 한 번 보고 흠칫했다가 두 번째 다시 볼 땐 아이디어와 재능에 감탄하고 세 번째 볼 때는 대체 이런 걸 만들 생각은 누가 했을까, 자연스레 만든 이를 궁금하게 만드는 작업들. 그 호기심의 끝에 다다르면 항상 만나는 이름이 있었다. MM(Paris). 단순히 이미지와 타이포 위치를 재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과 그래픽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마술을 부리는 그들의 작업을 담기엔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분명 그릇이 너무 작다. 이제는 히스토리로 남은 발렌시아가와 질 샌더, 스텔라 맥카트니 등 숱한 패션 하우스들의 광고 비주얼에서 아트 디렉터로 모범 답안을 보여줬던 , 파리 등의 매거진과 스탠리 큐브릭의 나폴레옹을 감각적인 형태로 구현한 팝업 북, 도시를 넘나드는 다양한 설치작업과 비욕에서 마돈나에 이르기까지 이미지 변신을 위해 기꺼이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스타 클라이언트들. 장르도 형태도 제각각이지만 한 번 마주하면 뇌리에 남는 강렬한 비주얼은 MM(Paris)이라는 이름을 서서히 가장 확고한 브랜드로 전 세계에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생각의 경계를 뛰어넘는 독특한 아이디어야말로 그들이 오랜 기간 동안 최고로 인정받는 이유이자 경쟁력이다. 미카엘 암잘락(Michael Amzalag)과 마티아스 오귀스티니아크(Mathias Augustyniak)는 각각의 이름보다 MM(Paris)이라는 브랜드로, 세트로 기억될 때가 더 많다. 파리의 유명한 아트 스쿨인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Arts Decoratifs)에서 만나 1992년 M/M(Paris)을 결성해 여태껏 무한한 상상력의 한계를 넘나드는 두 명의 아티스트. 그들의 이름도 발음도 아직 낯설 수도 있다. 괜찮다. 여기, 더 확실하고 분명한 실체가 있다. 1 비욕을 표지 모델로 아트 디렉팅 작업을 했던 매거진과 다양한 시도로 몹시 애착이 갔던 요지 야마모토의 카달로그들.2 나폴레옹에 대한 큐브릭의 집착은 유명했다. 일생 동안 나폴레옹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모았지만 결국 영화는 그의 생전에 탄생하지 못했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탄생한 책으로 M/M(Paris)이 디자인을 맡았다.요즘도 다양한 영역을 분주히 넘나들고 있다. 타센에서 발행한 작업이 책의 미래를 보여준다면 카무플라주 작업에 참여한 2009 F/W 마크 제이콥스 컬렉션이나 향수 디자인으로선 처음 시도인 APC 향수 디자인 작업까지. 정말 바빴겠다. 한국에서 어떻게 우리의 최신 작업까지 다 알고 있는 건지 신기하다. 정작 프랑스 기자들은 그런 것도 했냐며 매번 놀라는데. 하하. 우선, 부터 하나씩 이야기해보자. 이게 정말 대장정이었다. 우리가 관여한 기간만 해도 2년이었고 작업을 의뢰한 에디터는 이미 큐브릭의 자료들을 갖고 4년여 동안 작업에 몰두해왔거든. 어느 날 그녀가 우리에게 전화를 해선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지 물었다. 자료는 충분히 갖고 있지만 타센(Taschen) 출판사를 설득할 만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부족하다는 거였다. 그렇게 그녀가 출판사와 우리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했다. 고장 난 기계처럼 진행이 꼬여버린 어려운 프로젝트를 만난 거라 정말 특별한 아이디어를 내야 했다. 이거 정말 미친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원래 타센이 좀 그렇다. 그래야 오케이를 하거든. 하지만 아이디어가 극적일수록 작업은 더 현실적이고 만족스럽다. 처럼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거대 프로젝트는 진행 기간 내내 새로운 난관들이 새로 생겨날 것 같다. 의사소통 과정에서 별다른 오해는 없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믿기지 않을 만큼 참신한 아이디어를 찾아내야 한다는 대목이었다. 가장 큰 책에서 가장 작은 책, 가장 재미있는 책 등등 온갖 종류의 책을 발행하는 타센의 상상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로 그들을 설득하는 작업 말이다. 사실, 이 책에 관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파리~서울을 잇는 비행기 안이었다. 안양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할 무렵이었다. 비행기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아! 이거다!’ 한 거지. 결과에는 만족하나? 매우 만족한다. 많이 엉뚱하고 기이한 생각이었다. 독자들의 관심과 환심을 얻는 게 목적인데 어느 땐 오히려 우리가 만든 책을 보고 스스로 반하곤 한다니까. 하하. 프로젝트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한 첫날 첫 순간으로부터 벌써 2년이 넘었다. 아이디어를 찾고 난 이후는 항상 긴 여정이 지속될 뿐이다. 어떻게든 계속해야 하지만 어떨 땐 목적지를 잃기도 한다.‘Tree of Signs’ 프로젝트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비욕닷컴(http://bjork.com/special/treeofsigns)에서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당신들에게 그 트리는 어떤 의미인가?그건 시작하게 된 계기도 흥미롭다. 어느 날 아트 갤러리의 디렉터가 주최하는 식사 모임에 갔는데 뜻밖의 수확이랄까 여러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곤 했다. 그날도 아이슬란드 출신의 젊은이를 한 명 만났다. 그는 우리 프로젝트를 관심이 많아 잘 알고 좋아한다며 소위 ‘프랑스?아이슬란드 페스티벌’ 프로젝트에 함께할 생각이 없냐고 했다. 솔직히 그런 프로젝트는 잘 안 하는 편이다. 겉으로 보기엔 그럴싸해 보여도 결과적으론 별 것 없기 일쑤거든.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기꺼이 하고 싶지요. 우리에게 나무를 하나 만들게 해준다면야!” 그를 자극할 양으로 내뱉은 다분히 도발적인 발언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반전이었다. 그는 진취적이고 추진력이 강한 청년이었다. 결국 프로젝트가 가능하도록 모든 걸 다 해냈다. 이틀 후에 우리 사무실에 들리더니 결국 아이슬란드에 나무를 심을 도시를 찾아냈다. 우리에겐 한 도시의 중심에 아이디어가 담긴 나무를 심는 것이 중요했다. 단지 조형물을 만든다는 것 이상의 의미였거든. 그 나무에 관한 아이디어는 사실 비욕을 위해 디자인한 알파벳들로부터 시작됐다. 비욕의 재킷에 있는 사인들을 실제로 현실의 어느 장소에서 상상의 나무로 발견하게 만드는 작업이었던 셈이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 나무의 형태로 전설을 현실이 되게 하는 거다. 스테파니(Stefanie)라는 작가가 따로 있고 그림은 아이슬란드 아티스트인 가브리엘라(Gabriela)가 맡았다. 비욕을 위해 가사를 쓰기도 하는 아이슬란드 작가도 함께 참여했다. 마지막 여정은 책을 만드는 것이다. 이번엔 우리가 에디터가 돼 나무의 전설을 얘기하는 책을 준비 중이다. 이름은 , 아마 내년 초쯤에 출간될 것 같다. 패션 얘기로 넘어가보자. 요지 야마모토나 발렌시아가와 함께했던 이미지들이 초기부터 워낙 인상 깊었고 그 후론 매 시즌 거의 빠지지 않고 다양한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패션은 특히 디자인과 결합할 수 있는 요소가 무한한 영역인 만큼 즐거움도 더 클 것 같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패션이 즐겁고 재미있던 시대에 일을 한 것 같다. 그땐 우리의 흥미를 끄는 예술적이고 시적인 독립적인 아티스트들이 많았거든. 요지 야마모토와 일을 했던 건 그래서였다. 독립적이었다. 질 샌더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에선 마틴 싯봉이 그랬다. 그래서 창의적인 작업이 가능했던 거다. 발렌시아가와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도 놀라웠다. 같은 비전을 가진 아티스트들과의 종합적인 협동 작업은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예를 들어, 요지와는 1994~2001년까지 6년동안 함께 일했다. 그동안 우리에게도 수많은 작업이 남았다. 책을 낼 수 있을 만큼. 솔직히 지금은 그러기 어렵지. 자본이 많이 작용하고, 사람들은 점점 위험을 안고 일하려 하지 않거든. 마크 제이콥스와의 최근 작업만 봐도 우리 작업은 전체에 있어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개입하는 정도랄까. 그래도 재미있는 일도 여전히 있다. 얼마 전엔 그리스의 현대미술 컬렉셔너 한 명이 패션과 관련한 현대미술 컬렉션을 구성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가 패션 의상과 액세서리 등을 컬렉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달라는 거였다. 그에게 큐레이터를 통해 매해 컬렉션마다 다섯 가지 아이템(옷이든 액세서리든)을 선택해 다섯 가지 다른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이다.일종의 아트 어드바이저 역할인데 컨셉트가 분명하다. 그렇지. 한 번은 꼼 데 갸르송 의상에 마크 제이콥스 모자와 액세서리, 발렌시아가의 신발, 이브 생 로랑과 지방시의 재킷으로 다섯 가지의 다른 이미지를 만들었다. 봐서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컨셉트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설명이 있는 작업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apc를 위해 티셔츠 프린트 디자인한 적도 있는데 그들은 버짓이 크지 않아서 이미지 두 개가 전부다. 구찌나 프라다와 달리 예산 제한이 많았거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있다면? 발렌시아가도 좋아하고, 꼼 데 갸르송의 작업도 항상 인상적이지. 보통 우리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작업방식을 존중한다. 예를 들어 요지 야마모토, 굉장히 인상적인 작업을 하잖아. 좋은 디자인이란 뭐라고 생각하나.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남겨주는 것. 그걸 바라보거나 직접 디자인 제품을 사용하는 이들이 ‘아 이건 내 것이구나’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아닐까. 물론 작업을 한 사람은 따로 있을지언정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여러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고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뜻인가. 꼭 그렇진 않다. 반드시 보기 좋은 걸 만들어내고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상대방에게 자리를 남겨놓는다는 건 자신을 많이 반영해야 하는 것인데. 아. 모르겠다. 디자인이 무엇인가에 관해 정의하는 건 복잡한 일이다. 그래도 재미있는 건 우리 작업엔 늘 얽혀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거다.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들이 있다. 좋은 디자인이란 것도 아마, 어쩌면 이렇듯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게 아닐까. 1 발렌시아가 F/W 2001/2002. M/M(Paris)이 아트 디렉션과 일러스트레이션을 담당하고 Inez Van Lamsweerde & Vinoodh Matadin 이 사진을 담당한 대표 케이스. Courtesy Art+Commerse / M/M(Paris)2 마티아스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인터뷰 분위기를 화기 애애하게 만들었다.3 독특한 감각을 가진 비욕은 가장 죽이 맞는 파트너다. 볼타 앨범 비주얼. Bjork : Volta. Art direction and fire letter : M/M(Paris). Photo : Inez Van Lamsweerde & Vinoodh Matadin. ⓒ2007 One Little Indian/Wellhart Ltd.4 지방시 오트 쿠튀르 인비테이션. S/S 2009. Art direction, design, photography and illustration : M/M(Paris).5 안양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M/M(Paris)의 설치 작업. Enamel plates, steel, LED lighting system. Permanent installation located in Hakuicheon bank towards Hakun Park. Part of Anyang Public Art Project 2007. Photo : M/M(Paris). Courtesy : Haunch Of Venison, London.6 스텔라 매카트니 F/W 2007 2008. Art direction and design by M/M(Paris). Photography by Inez Van Lamsweerde & Vinoodh Matadin. 모델은 앰버 발레타.7 프랑켄푸르트 쿤스트페어라인에서 열렸던 전시. Installation view : The Art Posters. In Zugabe!, Frankfurter Kunstverein. 2004. ⓒ M/M(Paris), courtesy Air de Paris.8 말수가 적은 미카엘. 하지만 작업 이야기가 나오면 어느샌가 일어나 이미 자료를 가져다 주는 섬세함이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메일로 지난 자료들을 모두 챙겨준 것도 그였다.현실적으로 다른 대상들 사이를 말인가?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아주 비현실적인 ‘현실과 상상의 적당한 조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너무 현실적이면 통하지 않을 것이고, 너무 상상에 의존하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결국 이야기가 다시 돌아오는데 결국 누군가 이해하고 집착할 수 있는 무언가가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 같다. 당신의 클라이언트 리스트에는 우리 시대의 가장 화려한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종종 등장한다. 유난히 특별했던 누군가가 있다면? 비욕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일하는 방식이 놀랍다. 여러 매체를 통해 이렇게 확고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작업 과정에서 이렇게 차분하고 심플하게 작업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것이 그녀의 놀라운 점이다. 의 마지막 표지도 그녀였고 우리가 처음 제대로 벌린 프로젝트의 주인공도 그녀였다. 요지 야마모토와 함께 와서 우리와 일하고 싶다고 했던 게 벌써 10년 전이니까. 마지막으로 우리가 만든 표지는 그녀와 함께한 모든 것에 대한 마무리이자 오마주로서 의미가 있다. 게다가 편집장 등쌀에 밀려 가장 잘 안다는 이유로 직접 인터뷰까지 했으니까. 패션 사진가 커플, 이네즈 반 람스베르드(Inez Van Lamsweerde)와 비누드 마타딘(Vinoodh Matadin) 과는 오랜 파트너십으로 모두의 부러움을 사고있다.그들과 함께 참 많이 결과물을 만들었다. 소개로 만났다가 그 후로는 죽이 맞아 되도록이면 작업을 함께 해 왔다. 발렌시아가 광고나 요지 야마모토 비주얼도 그 중 하나다. 아주 오래전부터 대화와 감성이 통하는 우리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처음 미카엘이 음악 잡지로 일을 시작했던 것도 그렇고 이전에도 잡지와 인연이 매우깊다. 잡지를 위한 디자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라 생각하나? 음. 가족이 없어야 한다. 엄청난 시간 투자를 요구하거든. 하하. 첫째, 독자를 바보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건 특히 프랑스 잡지들의 문제점이긴 한데 독자들을 믿지 않고 수준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거다. 하지만 절대 독자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 둘째, 잡지의 존재감이 중요하다. 늘 현재에 충실하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오늘 날 잡지의 문제는, 경제적 압력과 많이 관련돼 있어서 정말로 원하는 것과 생각하는 걸 말하지 못한다는 거다. 이건 좀 복잡한 문제지만 셋째, 혹시 스스로 잡지에 지루해진다면 일을 빨리 그만둬야 한다는 거다. 솔직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당신들이 만들어낸 멋진 작업들과 이미지들뿐이다. 프로페셔널로 일하면서 당신들이 겪었던 실패가 있다면?겉으로 드러나는 건 모두 쉬워 보이기 마련이고 좋은 이미지들만 기억되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가 작업한 세월만 벌써 16년이 넘는다. 그 시간 동안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지만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모든 작업들은 실상 끝을 모르는 긴 여정이거든. 트리 오브 사인(Tree of Signs)만 해도 나무 하나를 만들기 위해 1년 넘게 작업을 진행했다. 일상이란 건 그렇다. 조금씩 조금씩 버티고 지켜나가면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성공과 실패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균형의 문제다. 어쩌면 는 결과적으로 실패였다고 해야 할까. 끝까지 가지 않았고 예정보다 빨리 그만뒀으니까. 늘 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작업할 시간이 많이 없어 힘들었고 계약이 지켜지지 않아서였다. 그래도 우리가 작업하는 동안은 하고 싶은 걸 했다. 1988년에 처음 만나 1992년에 MM을 시작했으니 두 사람이 알고 지낸 세월만 해도 벌써 30년이 넘는다. 가장 가까이 있는 만큼 서로가 알고 있는 특별한 점이 있다면? 누군가와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일상이란 게 다 비슷할 거다. 어려울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고 그렇지. 오래된 커플처럼. 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인데 여러 면이 있겠지. 예를 들어 공동작업을 하는 것으로 본다면 우리 세대에는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모여 함께 작업하는 걸 우러러보고 그러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었다. 창의적인 생각이나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거지. 그 외 개인적인 것은 노 코멘트.처음 당신들이 스튜디오를 오픈했던 1992년과 지금을 비교한다면 일하는 환경에 있어서 어떤 부분이 가장 많이 달라졌나? 세상 많이 변했지. 당연히 사람도 변했고. MM도 변했나? 아니. 처음 공동 작업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가졌던 생각들, 현실에 유토피아적인 것을 창조한다는 생각과 태도엔 변함이 없다. 마치 게임의 법칙처럼 지켜오고 있는 원칙이다. 지금도 여전한 것 같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란 무엇일까? 필드에서 오래 일할수록 더 느끼게 되는 어떤 지점은 없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계속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들에게 가장 자주하는 충고가 있다면. 최대한 공부를 많이 하라고 잔소리한다.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공부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는 거지. 결국 기적 같은 건 없고 획기적인 해결책이 따로 어디선가 튀어나오지도 않는다. 결국 공부하고 생각을 하는 것밖에 없다. 이 분야엔 전문가들이 수두룩하다. 어느 날 아침 ‘아 나는 모든 걸 알고 있어’라고 선언하는 날이 오긴 솔직히 어렵지. 자신이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아는 것만도 충분히 의미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많이 하고 있는데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는 성급히 언급하지 않으려는 편이다. 가끔은 그런 것들을 잊고 싶기도 하고. 일 외에 당신들을 즐겁게 하는 것 혹은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있다면? 간단하지 않은 질문이다. 사적인 부분은 생략하는 걸로 하고. 우선 우린 일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열정과 흥미로 그 일이라는 걸 지속해오고 있는 것 같다. 열정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최근 가장 흥미로웠던 건?마이클 잭슨에 관한 영화 을 봤는데 몹시 인상 깊었다. 그의 팬은 아니지만 아주 창의적인 일을 하는 훌륭한 인재를 뒤늦게 발견한 기분이었달까. 매체를 통해서만 대하던 모습과는 달리 몹시 정확하고 노력을 많이 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런가 하면 철학 책도 열심히 읽고 있다(마티아스). 라는 책이다. 마이클 잭슨과 철학 책 사이에 간극이 큰 것처럼 우리가 하는 일도 결국 마찬가지다. 미디어에 크게 노출된 프로젝트도 벌이지만 아주 소소한 작업에 몰두할 때도 많다. 중요한 건 디테일인데 디테일이야말로 무한한 거여서 아주 흥미롭다. 영화 를 보면 디테일이 끝없이 진행되잖아. 프로파간다 같긴 하지만 결국 디테일에 끌리게 되지. 서울에 다녀갔던 걸로 알고 있다. 서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세 번 다녀왔다. 인사아트센터에서 작은 전시회도 했고 안양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매우 인상적이었고 아시아를 이해할 수 있는 도시라는 느낌이었다. 중국은 아직 이해가 안 된달까, 어렵고 늘 조금은 겁이 나고 일본은 어딘가 너무 추상적이다. 그에 반해 한국 서울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도시 같다. 소통이 잘된다. 영어도 잘 통하지만 유머가 유럽 정서와 맞는달까. 사람 사귀기가 좋았다. 하여튼 흥미로운 도시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부분이 사라지고 새로 지어진 점이 아쉽긴 한데 또 그래서 어찌 보면 무게감이 덜해 좋기도 했다. 처음, 어려워 보이는 인상과 달리 희한한 매력이 있었다. 이상하지. 다시 서울에서 전시를 해볼 생각은?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하고 싶다. 크고 아름다운 공간들이 많잖아. 일본에서도 전시회를 한 적 있는데 예쁘긴 했는데 공간이 너무 작아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걸 다 보여주지 못했다. 그에 비해 서울은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두 사람 머리 속에 있는 MM의 미래? 미래를 보는 능력은 없어서 그건 이야기를 못해 주겠다. 미래를 볼 줄 알면 이런 일을 하겠나. 하하. 이야기하면 거짓말이니까. 가까운 미래에 관해서는 템스 앤 허드슨(Thames and Hudson)에서 우리 작업에 관한 책을 준비하는 중이다. 우리 작업의 큰 부분을 요약하는 거지. 아마 1년이나 1년 반 정도 걸릴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2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