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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민, 벌써 10년

한지민은 시간을 기다려왔다. 자신에게 날개를 달아줄 시간이 올 것라고 생각했다. 기다림은 충분했다. 이제 서서히 날개를 펼 때다.

프로필 by ELLE 2014.01.20

 

화이트 원피스와 화이트 쇼츠는 모두 Andy & Debb.

 

 

 

 

메시 디테일의 블랙 원피스는 Ted Baker.

 

 

 

 

블랙 재킷은 Moon Young Hee, 망사 베일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커팅 장식의 네이비 드레스는 H&M

 

 

 

벌써 10년이다. 한지민이 배우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가 말이다. 우연히 발을 들였던 일이 10년을 결정 짓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인생은 정말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 시작되는 일의 연속인 것 같아요.” 중학교 3학년 시절에 다니던 여자중학교가 남녀 공학으로 바뀌면서 평범한 여학생의 삶에 변화가 깃들기 시작했다. 남자 학교에서 새롭게 온 한 선생님이 매니저 일을 하던 친척에게 그녀를 추천했고, 결국 TV CF 모델로 데뷔하게 된 것.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될 거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학교 1학년 시절이었던 2003년, 얼떨결에 오디션을 보고 출연하게 된 미니시리즈 <올인>은 배우 한지민의 인생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송혜교의 아역으로 출연한 <올인>의 촬영 분량은 단 2회뿐이었지만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를 한다는 건 대단한 부담이었다. “사실 연기를 한다기보단 반복 학습에 따른 결과였죠. 정말 연습을 많이 했거든요. 2회 분량밖에 안 되는 대본을 몇 달간 외운 거니까 툭 쳐도 대사가 나올 정도였죠.”

 

그토록 기다렸던 1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한지민은 영화 <플랜맨>의 주연 배우로 대중 앞에 설 채비를 하고 있다. “작품과의 인연도 때가 있잖아요. <플랜맨>도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바랐던 것처럼 10년이란 시간은 그녀에게 배우라는 정체성과 연기에 대한 열정을 가르쳐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나 보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은 누구나 갖고 있고, 누구나 열심히 하잖아요. 결국 잘해야 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똑같은 열정을 갖고 있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니니까 기회에 감사해야죠. 그리고 분명한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플랜맨>은 초 단위까지 계획을 세울 정도로 강박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한 남자가 발랄하고 엉뚱한 여자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코미디다. “단순히 웃기는 장면이 많은 코미디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유발되는 코미디라서 좋았어요. 캐릭터가 저마다 살아 있고, 여자 캐릭터에게서도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느꼈거든요.” 대답에서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변화가 느껴졌다. 캐릭 터에 대한 욕심과 작품에 대한 기대감. 지난 10년이 그녀를 위한 약속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녀에게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지 궁금해졌다. “예전에 출연했던 단막극에서 어떤 한 신을 찍고 나니까 그게 너무 후련했어요. 조금이나마 연기의 쾌감을 느꼈죠. 그리고 첫 영화였던 <청연>의 윤종찬 감독님을 만난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어요. 저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주시고, 대화를 통해서 감정선을 찾아가는 걸 많이 도와주셨거든요. 덕분에 용기를 얻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는 성장 드라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절은 성장기일지도 모른다. 한지민도 비로소 배우의 성장기를 만났다. ‘피하고만 싶었던 자리’였던 촬영 현장이 ‘부딪쳐 보고 싶은 자리’가 되는 순간 연기는 운명이 됐다.

사실 한지민에게 촬영 현장이 무서웠던 건 어쩌면 가족 탓이다. “부모님에게 혼나본 적이 없어요. ‘졸리면 그냥 자라’ 이런 분들이거든요. 공부하라고 강요하신 적도 없어요. 그리고 조부모님들도 뭔가를 할 때마다 칭찬만 해주셨어요. 그렇게 칭찬받기 좋아하는 아이로 자란 저에게 촬영 현장이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건 아니다. 지금도 그녀의 인터뷰 기사를 꼼꼼히 살펴보신다는 할머니는 언제나 손녀에게 ‘책임감을 가져야겠다’고 일러주신다. 그리고 그녀에게 책임감이란 과거가 아닌 현재 혹은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 같다.

 

 “돌아봤을 때 남는 아쉬움은 앞으로 채워나가야겠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물론 작품에 대한 책임감은 점점 커지겠죠. 그러니까 그때마다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미 선택한 건 뒤도 돌아보지 말고 해야죠. 왜 했을까를 생각하기보단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야 할 거 같아요.” 무책임한 낙관이 아닌 책임감 있는 긍정이 느껴진다. 한지민은 좀처럼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녀가 후회하는 일이 있다. “연기는 좀 달라요. 뭔가 연기를 못했다고 생각하게 되면 계속 남는 거 같아요. 그리고 오히려 이런 생각이 연기가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대사를 잘못하면 며칠이나 그 대사를 계속하게 되는 것도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정재영 선배님이 배우는 다 그렇대요.”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현장에서의 성장을 믿는 배우다. “현장에선 항상 배우는 게 많아요. 만약 때론 어떤 배우가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걸 보는 것조차도 배울 점이 있는 거 같거든요.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좋은 선배님들은 말할 것도 없죠.” 한지민은 <플랜맨>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가 상대역을 맡은 배우 정재영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저 배우와 함께 작품을 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상대 배역이 정재영 선배님이라니 너무 좋았죠. 그래서 선배님 때문에 이 작품 하는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어디서 책임 전가하냐’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에서 차갑고 섹시한 이미지를 선보였을 때 많은 사람들은 ‘변신’이란 단어를 프리즘 삼아서 한지민의 스펙트럼을 다시 살폈다. 그녀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에 충실해야 함을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제가 한 작품 중에서 소중하지 않은 작품은 없어요. 지금 해나가는 작품이 있기 때문에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러고 그녀는 거듭 그래왔던 것처럼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밝은 미소에 깃든 긍정적인 에너지는 어쩌면 그녀가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믿어온 덕분에 얻은 결실 같다고, 문득 생각했다.

 

 

 

Credit

  • EDITOR 민용준
  • PHOTO 목정욱
  • DESIGN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