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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창의적이고 시크한 빌 앰버그

클래식이란 엄격하고 무겁고 딱딱하기만 한 걸까? 그렇지 않다. 가방을 만들 때는 옛날 방식을 따르되 가방에 대한 아이디어만큼은 가장 창의적이고 시크한 ‘빌 앰버그’가 그 증거다. 빌 앰버그가 전통과 파격이 공존하는 나라 영국의 브랜드라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프로필 by ELLE 2010.07.02


영국이 보수적이고 전통과 공리를 존중한다는 말은 분명 맞지만, 그것만으로 이 다민족 국가의 본질을 소상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근대적인 국가의 모형을 띤 영국(Britain)은 1707년에 각기 다른 국가였던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가 연합국 형태로 모여 성립되었다. 그러므로 영국과 그 국민성은 하나의 단일한 특성이 아닌, 여러가지 다른 모습으로 그 나라 날씨만큼 변화무쌍하게 도출된다. 즉, 영국은 모든 시민이 본능적으로 침묵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질서를 사랑하는 동시에, 가장 진보적인 형태의 사회 운동인 여성 해방이나 펑크 문화를 통한 질서 해체에도 일가견이 있는 나라다. 그러므로 21세기에도 여전히 입헌군주국의 역사를 유지하면서, 데미안 허스트와 테이트 모던이라는 파격이 출현하는 그 능동성이 침해 받지 않는다. 이 미묘하고도 즐거운 긴장은 하나의 흐름으로 독해되지 않아 매시즌 새로운 해석을 동원해야 하는 영국식 패션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새빌로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공존이 이처럼 자연스러운 곳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브리프케이스를 평생 간직하는 아들이 사는 나라, 다른 한편에서는 펑크와 동성애가 넘쳐나는 그곳에서 나는 영국식 아이콘을 대표하는 가죽 디자이너 빌 앰버그(Bill Amberg)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는 대뜸 물었다.

당신의 가방은 정말 멋지잖아요. 런던에는 멋진 남자도 아주 많구요. 그런데 어딜 가야 진짜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죠?
하하. 내가 한잔 만들어 줄게요. 당신 지금 피렌체에서 오는 길이죠? 하지만 여긴 런던이라구요. 런던식 커피에 익숙해지도록 해요. 공기든 음식이든 어서.

영국엔 인도 식당이 많아 다행이에요. 전 커리 너무 좋아하거든요.
런던은 음식 말고는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주는 도시입니다. 제가 지향하는 클래식 복식의 출발이었고, 아마도 마지막이기도 하겠죠.  런던에는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 영국인만큼 빨간 양말을 사랑하는 신사들이 없습니다. 물론 핑크색도 너무 좋아하죠. 토마스 핑크 셔츠는 잘 아시죠? 하지만 같은 거리에 턴불 앤 아서 셔츠도 있단 말예요. 같은 도시 안의 공간이라고 해도 톱숍이 있는 옥스퍼드 스트리트와 오래 되고 작은 남성복 가게들이 즐비한 저민 스트리트는 전혀 다른 세상이예요. 개인적으로도 그래요. 나는 에드워드 그린의 마호가니색 구두를 좋아하지만, 아장 프로보카퇴르의 파격적인 속옷도 영국을 상징하는 브랜드고, 아주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공존하는 나라가 영국이고 런던이란 도시의 진짜 모습입니다. 

그런데 영국의 신사들은 왜 네이비 수트에 빨간 양말을 신는 거죠? 그리고 온 나라가 그렇게 핑크색에 열광하는 이유가 특별히 있을까요.
하하하. 제 생각에 영국 남자들이 빨간 양말을 신는 건 영국인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영국인은 전통이나 법률을 잘 지키면서 살지만, 개인적인 영역에서는 남의 인생에 침입하거나 간섭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은근하게 무언가 다르게 표현하는 걸 좋아하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네이비 수트를 입고 있어도 자신의 개성을 어딘가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누군가는 양말 색깔로, 누군가는 서스펜더나 파격적인 속옷으로 말이죠. 그리고 핑크색에 관해서는 동성애가 많아서라는 의견도 있지만, 전 영국인들의 밝은 피부톤에 잘 어울리기 때문에 더욱 선호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동성애에 대해서 사회적 마인드가 오픈 되어 있고, 또 그런 가치를 솔직하게 표출하는 브랜드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점에서 런던은 확실히 문화적으로 성숙한 곳이 아닐까 싶네요.
동의합니다. 런던은 다양성을 가진 도시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는 곳이죠. 다른 한편으로 런던이나 영국은 패션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브랜드 가치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나 신화보다는 제품에 담긴 역사나 품질을 더 중시하는 무드가 있기도 합니다. 오르고 내리며 순환하는 경기 흐름에 영향 받을지 몰라도, 사람들은 결국 퀄리티를 찾는 방향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대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돈이나 브랜드가 주는 가치보다는 삶의 퀄리티를 찾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들이 브랜드에 대한 마케팅 정보보다는 생산과정과 기술, 혹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철학 같은 것에 더욱 관심을 보이는 것이지요. 그 점이 지금 이 시대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참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1 빌 앰버그는 창업 10년 만인 1984년, 영국 노팅힐에 매장을 오픈했다.
2 모던한 디자인과 클래식한 감성이 어우러져 단아함이 배어나오는 빌 앰버그 매장 내부.



저는 최근의 경제 위기를 통해 패션 브랜드들이 내상을 줄이면서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규모에 상관없이 많은 브랜드들이 힘들어 하고, 때로는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경제 위기가 결국에는 패션 브랜드 사이에서도 자연 선택(natural select)이 되도록 해주는 기회라고도 생각됩니다. 
맞습니다. 냉정해진 소비자의 시각을 제대로 만족시킬 수 있는 훌륭한 브랜드는 살아남아 더욱 번영할 것이고, 패션 산업의 거품에 편승해 온 브랜드는 결국 사라지게 될 겁니다. 새로운 카테고리가 부상할 것이고, 가치에 비해 헛된 명성을 가졌던 브랜드는 제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폭넓은 시각도 필요합니다. 저도 그동안 가죽제품 리테일 비즈니스에 주력해 왔지만, 최근에는 가죽을 사용하는 인테리어라는 새로운 사업 영역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빌 앰버그’라는 이름에 담긴 가치와 열정을 재기발랄한 가죽 제품들을 통해 판매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영역이고 저의 주된 관심사입니다. 하지만 호텔, 요트, 집, 사무실 등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인테리어 사업은 가죽과 디자인을 결합하는 사업에 대한 시야를 획기적으로 넓혀주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스타나 최고급 호텔에서 오는 요청들을 볼 때 글로벌 비즈니스의 가능성도 매우 높아보입니다.
 
그런 인테리어 사업은 결국 퍼스널 오더의 개념이겠군요. 맞춤과 같은.
네. 개인 저택 인테리어는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요트 인테리어를 몇 건 주문 받았어요. 요트의 외관이 같더라도 그 내부만은 자신의 고유한 취향이 들어가기를 원하는 고객들이 있기 때문이죠. 요트를 즐길 정도로 높은 테이스트라면 그 정도 감각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인테리어 사업 뿐만 아니라, 가방에서도 퍼스널 오더를 진행합니다. 시간은 걸리지만 영원히 차별화 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니까요. 현재 유명한 할리우드 어느 여배우의 여행 가방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다른 여배우들이 들고 다니는 프랑스 가방에 넌덜머리가 난다고 했어요. 젊지만 에너지가 넘쳐 보이는 미국 건축가의 브리프케이스도 제가 직접 디자인해서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개인용 제품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기성품은 언제나 편리하지만, 세상에는 자신만의 것을 원하는 소수가 언제나 그림자처럼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장에서 다수는 아니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분들이죠.

제 마음속 생각을 콕 집어서 말씀하시는군요. 전 역사란 소수의 의견이 다수로 변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브랜드 로고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가방과 구두를 사는 시대지만, 곧 로고가 없는 제품들이 대중적으로도 환영 받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직설적인 로고가 아닌, 제품에 담긴 에센스가 말하는 시대 말입니다.   
빌 앰버그는 실수요자가 원하는 대로 제품을 만든다는 비스포크(bespoke)라는 개념에 지극히 충실한 브랜드입니다. 이를테면 나는 이미 조니워커 블루 위스키와 협업해서 새로운 컨셉트를 전달하는 가방을 디자인했고, 올해 3월에 런던에 오픈하는 사보이 호텔의 객실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모로코에 있는 어느 멋진 호텔의 디자인 작업 요청도 들어왔어요. 그리고 나이키가 후원하는 밴드를 위해 나이키 신발과 기타 스트랩을 커스텀 베이스로 제작해 달라는 주문도 받았습니다. 지난 가을에 롤링스톤스의 기타 스크랩을 제작해줬는데 나이키에서 그 사실을 알고 연락한 겁니다. 그래서 나이키가 후원하는 얼터너티브 밴드 ‘화이트 라이스’의 기타 스트랩을 제작했고, 펑크록 그룹 ‘갤로우스’의 기타 스트랩과 슈즈도 제작하고 있지요. 이런 작업들은 정말 펑키하고 재미있습니다. ‘라파(Rapha)’라는 자전거 용품 회사의 가방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모두 다른 카테고리지만 그들이 원하는, 그래서 마음속으로만 그려왔던 그 무엇을 나는 가죽을 사용해서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우리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모던하거나 클래식하거나 혹은 놀라움을 느끼게 하도록 각각 다르게 디자인되지만, 그것을 만들어내는 정신이나 프로세스는 철저하게 영국식 전통에 입각한 핸드메이드 작업으로 이루어 집니다.

왜 가죽이었던가요. 당신의 일생을 바친 그 하나의 목표가. 
나는 가죽 향기를 사랑합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지는 그들의 색깔도 사랑합니다. 하지만 오직 가죽 하나만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가죽을 근간으로 공간과 미감을 모두 만족시키는 아름다운 형태를 창조하는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가죽 구두와 부츠를 제작하는 법을 배웠고, 그것을 위해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건축가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죽에 심취한 모습도 좋아하셨지만, 가방을 넘어 공간을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공간 속에 담겨 있어야 하는 그 무엇을 숙고한다는 건 나의 잠재적인 능력을 끌어내는 정말 유용한 방법이었어요. 나는 어머니 덕분에 건축과 그림, 그리고 음악이나 와인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런 문화들은 다시 내 작업에 영감을 줍니다.

어머니의 영향에 관해서는 저도 같은 심정입니다. 패션에 아주 민감하셨던 어머니로 인해  저도 패션에 발을 내딛었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까요. 당신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언제나 혼자였습니까? 누군가 의지해 온 파트너가 있었던가요.
올해로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지 26년이 됩니다. 시작한 건 21살이었으니, 무언가를 제대로 알 수는 없는 나이였겠죠. 나는 대학교도 가지 않았어요. 대신 많은 여행을 해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가죽에 관한 많은 일을 배웠고, 자격증도 땄어요. 하지만 런던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이리저리 부딪히며 일했습니다. 자금을 빌리지도 못한 상태에서 아주 작은 공방을 만들어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당연히 매장도 없었습니다. 가방을 만들어서 남성용 제품을 다루는 작은 숍에 판매하면서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성장했습니다. 창업한 지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노팅힐에 첫 매장을 오픈하게 되었지요. 난 외관이나 성장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 남의 돈을 끌어다 쓰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아직까지 투자자도 없고 지원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은 여러 방면에서 들어오는 비스포크 프로젝트들이 많아져서 이제는 새 매장도 열고, 공방도 좀 확대하려고 합니다.

여자는 가방을 아주 좋아합니다.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는 느낌이예요. 그런데 한국 남자는 아직 무언가를 들고 다니는 데 익숙하지 않고, 또 옷과 가방의 매치에 깊은 관심을 두지도 않습니다. 수트와 구두로 유명한 영국이지만 가방이라는 문제는 어떻습니까.
대부분의 영국 남자는 자기가 선호하는 수트 브랜드가 있고, 그 밑에 신을 구두도 의지를 가지고 선택합니다. 지나가다 충동적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일은 그다지 흔하지 않습니다. 우린 영국인이잖아요. 수트나 재킷을 입는 남자라면 거의 모두 자신의 기호에 맞는 가방을 가지고 다닙니다. 특히 영국의 수트 패턴을 자세히 떠올리면 이해가 될 겁니다. 몸에 빈틈없이 밀착되고 아주 슬림하지요. 그런 수트를 입고 주머니에 어떤 물건들을 넣고 다니면 당연히 그 아름다운 라인을 망치고 말아요. 특히 요즘은 디지털카메라, 아이폰, 혹은 블랙베리, 선글라스 등등 남자들도 정말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생활해야잖아요. 여자들은 예전부터 가지고 다닌 물건들이 많았단 말예요. 남자들도 더 이상 수트나 바지 주머니로 수납을 해결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기 때문에, 가방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진 것입니다. 여행이라는 라이프스타일도 한 가지 이유라고 봅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런던에서는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기 위해서라도 가방은 참으로 유용한 제품입니다.




3 빌 앰버그의 기술과 사상을 보여주는 가죽 아이템들.
4 빌 앰버그는 자신의 구상을 스케치하고 그것으로 소통한다.
5 한정판 문구류.
6 다양한 아이폰 케이스.
7 ‘로켓’ 가방을 설명하는 빌 앰버그.
8 고전적인 공간에 재미있는 소품을 툭 던지는 빌 앰버그의 재치.


한국에선 서류 봉투가 가방 대용으로 유명합니다. 하하하. 나는 당신의 가방을 좋아하고 실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로켓(rocket)’ 모델은 왕진 가방을 닮은 그 매력적인 보디와 직선과 곡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실루엣으로 내 주변의 지인 십여명이 자기한테 달라면서 떼쓰는 제품이기도 하죠. 당신이 만드는 가방에서 중요하게 천착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나는 영국인들이 전통적으로 가죽을 다뤄온 방식을 좋아해요. 그 위에 입혀지는 아이디어는 언제나 달라지지만, 제작 과정만은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과거와 현재를 혼합해 또다른 무엇으로 창조하는 것, 바로 그것이 제 가방이 지향하는 포인트라고 하겠습니다. 나는 언제나 기능과 아름다움의 조화, 디자인과 실용의 믹스 같은 주제에 큰 관심을 둡니다. 외관만 화려한 제품을 디자인할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당신이 들고 있는 그 로켓 가방은 아주 오래 전 의사들이 쓰던 왕진 가방에서 모티브를 따 온 제품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가방은 미적인 가치는 있었지만, 비서나 조수가 없는 의사라면 절대 못 쓸 정도로 무거웠어요. 나는 그 실루엣은 그대로 살리면서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내부 공간이 넉넉하도록 그 가방을 새롭게 재해석했습니다. 직선과 곡선을 함께 배치한 건 이 가방이 포멀과 캐주얼에 모두 어울리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블레이저를 입은 당신에게도 혹은 블루진을 입은 누구에게도 평등하게 이 가방이 아름답기를 바라니까요. 물론 제 가방에는 나이라는 문제가 개입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씩씩하게 사는 25살 젊은 남자에게도, 멋진 추억을 많이 가진 65살 노신사에게도 잘 어울리거든요.

어제까지 제가 머물렀던 피렌체는 에스프레소 뿐만 아니라 가죽으로도 유명하죠. 당신 가방을 위한 가죽은 어디서 공급받나요.
나는 모두 5개의 공급업체에서 각기 다른 가죽을 마련합니다. 영국, 스웨덴, 독일,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조금씩 다른 가죽을 사는 것입니다. 각국의 가죽이 다른 건 음식 문화의 영향이죠. 이를테면 프랑스는 송아지 요리를 많이 먹기 때문에 송아지 가죽(calfskin)이 많고, 독일과 영국은 보통의 소고기를 좋아하니까 좀 무겁고 견고한 소가죽이 많은 것입니다. 스웨덴은 날씨가 추운 편이라 해충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가죽의 품질이 아주 좋습니다. 빌 앰버그의 가방은 대부분 소가죽 혹은 송아지 가죽으로 만들어요. 상황에 따라 물소나 염소 가죽도 쓰죠. 물소 가죽은 독일 회사에서 공급하는데, 주로 태국에서 가죽을 받아 독일에서 마지막 가공처리를 합니다. 소의 부위중에서도 나는 어깨와 목 부분의 깨끗한 가죽으로 가방을 만듭니다. 패턴이나 질감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어떤 종류의 가방인지, 혹은 어떤 고객을 위해 만드는지에 따라 가죽 종류를 세심하게 고릅니다.

고객에 따라 다른 가죽을 쓴다는 점이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훌륭한 제품이란 그처럼 사상과 기술이 능숙하게 어우러진 결과일 것입니다. 브랜드 오너의 철학과 생각이 제품의 외관을 결정짓지만 그 안에 담긴 품질이나 실용성 같은 부분은 그것을 만드는 장인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겠습니까. 그들과 생각이 다르면 정말 괴로워지니까요. 제가 핸드메이드 맞춤복을 하면서 결국 제 아이디어와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공방을 새로 만든 이유도 거기 있었습니다. 이렇게 멋진 가방을 만드는 당신의 공방도 궁금해지는데요.   
우리 공방에는 8명의 장인이 있습니다. 물론 작업자들은 더 많구요. 나는 그들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나와 그들은 상하관계가 아니니까요. 우리 장인들은 모두 평생 가죽만 다뤄온 사람들은 아닙니다. 어떤 분은 가구를 디자인했고, 휴대전화기나 카메라 같은 제품 디자인이 전공인 분도 있으며, 이란에서 마구를 전문적으로 제작한 장인도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영화 세트를 제작했던 젊은 장인도 들어왔구요. 그들이 모여서 내는 결과물은 정말 환상적입니다. 그럴 것으로 보이는, 예측 가능한 제품들이란 우리 사전에는 없어요. 어딘지 미소 짓게 만들고, 어딘가에서는 유머가 번득이는 영국 코미디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창의적이고 틀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생각하는 건 디자이너의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떤 주제가 주어지면 우리 장인들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학습하지 않고, 전혀 다른 시각에서 그것을 분석하고 최초의 생각을 넘어선 결론을 내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제작 방식만은 핸드메이드를 고수하죠. 내가 어떤 가방을 만들고 싶다는 아이디어를 내면 그들은 절대 ‘노’라고 말하지 않아요. 내 생각을 넘어서는 더 멋진 의견을 내고, 기어이 샘플까지 만들어냅니다. 그들은 정말 빌 앰버그라는 브랜드의 힘이죠.   

그들에게 영감을 주고,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은 당신의 몫이겠지요. 혹시 그런 아이디어를 얻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나는 여행과 미술을 좋아합니다. 음식과 정원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모든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군요. 호기심은 제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에너지입니다. 자연을 좋아하면 정원 가꾸는 일을 즐기게 됩니다. 영국은 비가 많이 와서 사람은 좀 불편하지만 식물이 자라기에는 좋은 환경을 가졌어요. 거리에 공원이 많다는 것도 정원이 영국 남자들의 취미가 된 이유 중의 하나겠죠.

영국은 모던아트의 본거지라고 생각되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는지요.
홀랜드 밀러라는 영국 아티스트를 좋아합니다. 그는 그림, 사진, 단편소설, 설치미술 등 정말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 입니다. 한가지를 제대로 하기도 힘든데, 다재다능한 사람은 정말 부럽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사진과 그림, 그리고 주얼리를 수집하는 편입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일러스트레이터 사이먼 그린의 놀라운 비주얼들, 그리고 션 더글래스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어요.

디자이너 빌 앰버그는 어떤 워드로브를 입는지 궁금한데요. 당신의 가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나 엑세서리가 무엇인지 늘 생각해보거든요.
나는 화이트 골드의 오메가 시계를 차고 있습니다. 영국의 시계 장인 조지 다니엘이 개발한 코악시알(Co-Axial) 탈진기를 탑재한 모델이죠. 마흔 살 생일 때 나를 위해 구입한 시계예요. 이 블레이저는 뉴욕에서 산 폴 스튜어트입니다. 출장에선 아주 클래시컬한, 그래서 어디서든 입을 수 있는 재킷이 필요한 법이잖아요. 바지는 인코텍스입니다. 피트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셔츠는 예전에 함께 일했던 알프레드 던힐에서 맞춰 입어요. 커프링크스를 할 수 있는 스타일로. 평소에는 새빌로의 테일러에게 맞춘 수트를 주로 입습니다. 미스터 쿠파라고, 숍은 특별히 없고 그의 작은 사무실에서 사이즈를 재고 가봉을 하죠. 그는 샘플이나 패턴, 피트가 아예 없고, 오직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만들어 줍니다.

한국을 몇번 방문하셨잖아요. 일본도 자주 가시고. 굳이 두 나라의 모습이나 사람을 비교해 보자면 어떤 느낌이셨나요.
일본은 자주 갔고, 그래서 익숙해졌고, 유럽인이지만 어느 정도는 그 나라를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영국 브랜드에게 비즈니스상 아주 중요한 클라이언트이며, 영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아주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영국 브랜드가 많이 진출해 있고, 규모도 상당하죠. 시장은 크지만 사람들만 생각해보자면 좀 조용한 편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한국은 다이내믹한 곳입니다. 한국에서 느끼는 에너지는 정말 대단해요. 긍정적인 에너지,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즐기는 에너지 같은 것. 일본에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거든요. 또 한가지 한국 사람들은 즐겁고 유쾌합니다. 특히 일본 여자에 비해 한국 여자들은 마인드가 오픈되어 있고 친절해요. 그리고 예쁘고.

정말 한국 여자들은 일본 여자보다 세 배쯤 아름다운 것 같아요. 솔직히 영국 여자들은 잘 모르겠어요.
하하하. 어느 정도는 동의. 아내가 한글을 모르는 게 다행이네요.

클래식은 소비자에게 정보를 알려주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브랜드 오너로서 빌 앰버그가 한국에 어떻게 소개되길 바라시나요.
멋진 에너지를 가진 한국 남자들이 영국식 장인정신의 뿌리에 대해 먼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브랜드나 가격표보다는 전통과 품질을 가진 제품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빌 앰버그처럼 전통을 중시하는 제품이 보수적이거나 고답적이지 않고, 오히려 더 창의적이고 ‘시크하다’는 점을 보다 많은 분들이 느끼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정론입니다. 제가 당신의 가방을 들고 다니며 많이 알렸으니 앞으로는 가격 좀 깎아주세요.
하하하. 생각해 볼게요. 빌 앰버그를 한국에 제대로 소개해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피티 워모에서 다시 만나죠.
인터뷰, 글/ 남훈(란스미어 브랜드 매니저)




1,2 조니워커 블루 위스키의 컨셉트를 비스포크 개념으로 재해석해 제안한 ‘디아지오 VIP’ 가방
3 직선과 곡선의 믹스 매치를 실현한 ‘로켓 백’은 왕진 가방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 자세한 내용은 루엘 본지 1월호를 참고하세요!

Credit

  • EDITOR SONG WON SEOK
  • PHOTOGRAPHER SHIN SUN H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