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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빌 앰버그의 기술과 사상을 보여주는 가죽 아이템들. 4 빌 앰버그는 자신의 구상을 스케치하고 그것으로 소통한다. 5 한정판 문구류. 6 다양한 아이폰 케이스. 7 ‘로켓’ 가방을 설명하는 빌 앰버그. 8 고전적인 공간에 재미있는 소품을 툭 던지는 빌 앰버그의 재치.
한국에선 서류 봉투가 가방 대용으로 유명합니다. 하하하. 나는 당신의 가방을 좋아하고 실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로켓(rocket)’ 모델은 왕진 가방을 닮은 그 매력적인 보디와 직선과 곡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실루엣으로 내 주변의 지인 십여명이 자기한테 달라면서 떼쓰는 제품이기도 하죠. 당신이 만드는 가방에서 중요하게 천착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나는 영국인들이 전통적으로 가죽을 다뤄온 방식을 좋아해요. 그 위에 입혀지는 아이디어는 언제나 달라지지만, 제작 과정만은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과거와 현재를 혼합해 또다른 무엇으로 창조하는 것, 바로 그것이 제 가방이 지향하는 포인트라고 하겠습니다. 나는 언제나 기능과 아름다움의 조화, 디자인과 실용의 믹스 같은 주제에 큰 관심을 둡니다. 외관만 화려한 제품을 디자인할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당신이 들고 있는 그 로켓 가방은 아주 오래 전 의사들이 쓰던 왕진 가방에서 모티브를 따 온 제품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가방은 미적인 가치는 있었지만, 비서나 조수가 없는 의사라면 절대 못 쓸 정도로 무거웠어요. 나는 그 실루엣은 그대로 살리면서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내부 공간이 넉넉하도록 그 가방을 새롭게 재해석했습니다. 직선과 곡선을 함께 배치한 건 이 가방이 포멀과 캐주얼에 모두 어울리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블레이저를 입은 당신에게도 혹은 블루진을 입은 누구에게도 평등하게 이 가방이 아름답기를 바라니까요. 물론 제 가방에는 나이라는 문제가 개입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씩씩하게 사는 25살 젊은 남자에게도, 멋진 추억을 많이 가진 65살 노신사에게도 잘 어울리거든요.
어제까지 제가 머물렀던 피렌체는 에스프레소 뿐만 아니라 가죽으로도 유명하죠. 당신 가방을 위한 가죽은 어디서 공급받나요. 나는 모두 5개의 공급업체에서 각기 다른 가죽을 마련합니다. 영국, 스웨덴, 독일,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조금씩 다른 가죽을 사는 것입니다. 각국의 가죽이 다른 건 음식 문화의 영향이죠. 이를테면 프랑스는 송아지 요리를 많이 먹기 때문에 송아지 가죽(calfskin)이 많고, 독일과 영국은 보통의 소고기를 좋아하니까 좀 무겁고 견고한 소가죽이 많은 것입니다. 스웨덴은 날씨가 추운 편이라 해충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가죽의 품질이 아주 좋습니다. 빌 앰버그의 가방은 대부분 소가죽 혹은 송아지 가죽으로 만들어요. 상황에 따라 물소나 염소 가죽도 쓰죠. 물소 가죽은 독일 회사에서 공급하는데, 주로 태국에서 가죽을 받아 독일에서 마지막 가공처리를 합니다. 소의 부위중에서도 나는 어깨와 목 부분의 깨끗한 가죽으로 가방을 만듭니다. 패턴이나 질감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어떤 종류의 가방인지, 혹은 어떤 고객을 위해 만드는지에 따라 가죽 종류를 세심하게 고릅니다.
고객에 따라 다른 가죽을 쓴다는 점이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훌륭한 제품이란 그처럼 사상과 기술이 능숙하게 어우러진 결과일 것입니다. 브랜드 오너의 철학과 생각이 제품의 외관을 결정짓지만 그 안에 담긴 품질이나 실용성 같은 부분은 그것을 만드는 장인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겠습니까. 그들과 생각이 다르면 정말 괴로워지니까요. 제가 핸드메이드 맞춤복을 하면서 결국 제 아이디어와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공방을 새로 만든 이유도 거기 있었습니다. 이렇게 멋진 가방을 만드는 당신의 공방도 궁금해지는데요. 우리 공방에는 8명의 장인이 있습니다. 물론 작업자들은 더 많구요. 나는 그들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나와 그들은 상하관계가 아니니까요. 우리 장인들은 모두 평생 가죽만 다뤄온 사람들은 아닙니다. 어떤 분은 가구를 디자인했고, 휴대전화기나 카메라 같은 제품 디자인이 전공인 분도 있으며, 이란에서 마구를 전문적으로 제작한 장인도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영화 세트를 제작했던 젊은 장인도 들어왔구요. 그들이 모여서 내는 결과물은 정말 환상적입니다. 그럴 것으로 보이는, 예측 가능한 제품들이란 우리 사전에는 없어요. 어딘지 미소 짓게 만들고, 어딘가에서는 유머가 번득이는 영국 코미디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창의적이고 틀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생각하는 건 디자이너의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떤 주제가 주어지면 우리 장인들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학습하지 않고, 전혀 다른 시각에서 그것을 분석하고 최초의 생각을 넘어선 결론을 내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제작 방식만은 핸드메이드를 고수하죠. 내가 어떤 가방을 만들고 싶다는 아이디어를 내면 그들은 절대 ‘노’라고 말하지 않아요. 내 생각을 넘어서는 더 멋진 의견을 내고, 기어이 샘플까지 만들어냅니다. 그들은 정말 빌 앰버그라는 브랜드의 힘이죠.
그들에게 영감을 주고,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은 당신의 몫이겠지요. 혹시 그런 아이디어를 얻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나는 여행과 미술을 좋아합니다. 음식과 정원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모든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군요. 호기심은 제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에너지입니다. 자연을 좋아하면 정원 가꾸는 일을 즐기게 됩니다. 영국은 비가 많이 와서 사람은 좀 불편하지만 식물이 자라기에는 좋은 환경을 가졌어요. 거리에 공원이 많다는 것도 정원이 영국 남자들의 취미가 된 이유 중의 하나겠죠.
영국은 모던아트의 본거지라고 생각되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는지요. 홀랜드 밀러라는 영국 아티스트를 좋아합니다. 그는 그림, 사진, 단편소설, 설치미술 등 정말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 입니다. 한가지를 제대로 하기도 힘든데, 다재다능한 사람은 정말 부럽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사진과 그림, 그리고 주얼리를 수집하는 편입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일러스트레이터 사이먼 그린의 놀라운 비주얼들, 그리고 션 더글래스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어요.
디자이너 빌 앰버그는 어떤 워드로브를 입는지 궁금한데요. 당신의 가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나 엑세서리가 무엇인지 늘 생각해보거든요. 나는 화이트 골드의 오메가 시계를 차고 있습니다. 영국의 시계 장인 조지 다니엘이 개발한 코악시알(Co-Axial) 탈진기를 탑재한 모델이죠. 마흔 살 생일 때 나를 위해 구입한 시계예요. 이 블레이저는 뉴욕에서 산 폴 스튜어트입니다. 출장에선 아주 클래시컬한, 그래서 어디서든 입을 수 있는 재킷이 필요한 법이잖아요. 바지는 인코텍스입니다. 피트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셔츠는 예전에 함께 일했던 알프레드 던힐에서 맞춰 입어요. 커프링크스를 할 수 있는 스타일로. 평소에는 새빌로의 테일러에게 맞춘 수트를 주로 입습니다. 미스터 쿠파라고, 숍은 특별히 없고 그의 작은 사무실에서 사이즈를 재고 가봉을 하죠. 그는 샘플이나 패턴, 피트가 아예 없고, 오직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만들어 줍니다.
한국을 몇번 방문하셨잖아요. 일본도 자주 가시고. 굳이 두 나라의 모습이나 사람을 비교해 보자면 어떤 느낌이셨나요. 일본은 자주 갔고, 그래서 익숙해졌고, 유럽인이지만 어느 정도는 그 나라를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영국 브랜드에게 비즈니스상 아주 중요한 클라이언트이며, 영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아주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영국 브랜드가 많이 진출해 있고, 규모도 상당하죠. 시장은 크지만 사람들만 생각해보자면 좀 조용한 편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한국은 다이내믹한 곳입니다. 한국에서 느끼는 에너지는 정말 대단해요. 긍정적인 에너지,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즐기는 에너지 같은 것. 일본에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거든요. 또 한가지 한국 사람들은 즐겁고 유쾌합니다. 특히 일본 여자에 비해 한국 여자들은 마인드가 오픈되어 있고 친절해요. 그리고 예쁘고.
정말 한국 여자들은 일본 여자보다 세 배쯤 아름다운 것 같아요. 솔직히 영국 여자들은 잘 모르겠어요. 하하하. 어느 정도는 동의. 아내가 한글을 모르는 게 다행이네요.
클래식은 소비자에게 정보를 알려주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브랜드 오너로서 빌 앰버그가 한국에 어떻게 소개되길 바라시나요. 멋진 에너지를 가진 한국 남자들이 영국식 장인정신의 뿌리에 대해 먼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브랜드나 가격표보다는 전통과 품질을 가진 제품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빌 앰버그처럼 전통을 중시하는 제품이 보수적이거나 고답적이지 않고, 오히려 더 창의적이고 ‘시크하다’는 점을 보다 많은 분들이 느끼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정론입니다. 제가 당신의 가방을 들고 다니며 많이 알렸으니 앞으로는 가격 좀 깎아주세요. 하하하. 생각해 볼게요. 빌 앰버그를 한국에 제대로 소개해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피티 워모에서 다시 만나죠. 인터뷰, 글/ 남훈(란스미어 브랜드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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