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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희는 끝까지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프로필 by 이마루 2024.01.30
<엘르>와는 첫 만남입니다. 디올 패션과도 첫 작업이죠. 많은 사람이 들뜬 마음으로 기다렸던 오늘 하루가 거의 끝나가요
새해 첫 촬영이라서일까요? 그동안 회피해온 걸 오늘 하루를 통해 이겨낸 기분이에요. 진짜 나는 이렇지 않을 거라며 20대 때 외면했던 제 실제를 인정하게 된 것 같아요. 꼭 쥐고 있던 것을 하나씩 내려놓은 기분, 가벼워진 만큼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이 생긴 기분이죠.
 
 
블랙 컬러 롱 드레스와 턱시도 스타일의 화이트 블라우스는 모두 Dior.

블랙 컬러 롱 드레스와 턱시도 스타일의 화이트 블라우스는 모두 Dior.

무엇을 회피했나요? 또래나 여성 팬들이 가진 불안과 취약함에 공감하면서도 조언과 위로를 건네는 모습이 익숙하게 느껴졌습니다
맞아요. 늘 ‘저는 괜찮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괜찮으셔야 해요’라는 식으로 말하고는 했죠. 그런데 괜찮지 않은 것도 있더라고요. 정작 나는 못 챙겨 먹으면서 “밥 잘 챙겨 드세요” “맛있는 것 드세요”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래도 하루에 한 끼는 먹자. 귀찮아도 한 끼는 밥답게 먹자’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밥 잘 먹으라’는 당부는 그래도 진심이었죠
팬들에게 하는 말이자 저에게 하는 말이었죠. 그러나 정작 나는 지키지 못했던. 올해는 그 약속들을 저도 지켜나가며 함께 성장하고 싶어요.
 
 
롱 슬리브 드레스는 Dior.

롱 슬리브 드레스는 Dior.

오늘 영상 인터뷰에서 “저는 복 많이 받고 있으니 여러분이 제 복까지 다 받으세요”라고 했던 말도 진심이었을 테고요
실제로 큰 복을 받고 있죠! 요즘 드는 생각은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몬다고 해서 계속 밀리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떠밀려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맛있는 밥 먹고, 나를 위해 따뜻한 옷을 골라 입고…. 단 하루가 아니라 내일의 나를 생각하며 열심히 지금을 살잖아요. 오늘도 이 촬영을 잘 마친 뒤 다가올 ‘다음’을 위해 다들 끝까지 열심이었던 것처럼요.
 
 
코튼 포플린 블라우스와 실크 태피터 스커트, 블랙 ‘어도러블(Adiorable)’ 부츠는 모두 Dior.

코튼 포플린 블라우스와 실크 태피터 스커트, 블랙 ‘어도러블(Adiorable)’ 부츠는 모두 Dior.

수많은 사람이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 모이고, 자기 몫을 해내려는 마음과 책임감이 신기하고 애틋할 때가 있죠
심지어 ‘왜 이렇게까지 하지?’ 싶을 정도로 고되게 일하기도 해요. 그렇게 일하고 돌아왔을 때의 만족과 안도감, 그렇게 쌓인 하루가 우리를 성장으로 이끄나 봐요. 거기까지 가는 길이 오르막과 비탈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때로는 그걸 해낼 수 있는 힘이 있는 것도 감사해요. 지금의 나를 일으켜 세울 마음의 힘이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럼요. 저도 그런 힘이 없었어요. 표면적으로는 한소희가 이런 드라마를 찍었네, 광고를 찍었네 하며 제가 해낸 결과물만 보이겠지만 시행착오도 많았거든요. 다 내팽개치고 싶다는 자기파괴적인 생각도 하고요. 하지만 참고, 다그치고, 진정시키고, 제 멱살을 제가 끌고 가는 거죠. 뿌듯한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도록.
 
 
파리 지도를 패턴화한 울 코트와 안에 입은 드레스, 부츠는 모두 Dior.

파리 지도를 패턴화한 울 코트와 안에 입은 드레스, 부츠는 모두 Dior.

디올이라는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와는 어떻게 친해지고 있나요. 평소 보여준 개인적인 스타일과 상반된 면모도 있는데
정제된 디올 룩에서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꼈어요. 브랜드마다 기대하는 태도가 있을 텐데, 함께하는 첫 촬영부터 열린 마음으로 저를 자유롭게 받아줬죠. 오늘 거의 춤추면서 촬영하는 거 보셨죠(웃음)? 내 얼굴이 어떻게 나오는지, 각도에 신경 쓰지 않고 놀아보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자신을 믿으면서.
 
 
비대칭 실루엣의 오프숄더 드레스와 블랙 ‘어도러블(Adiorable)’ 부츠는 모두 Dior.

비대칭 실루엣의 오프숄더 드레스와 블랙 ‘어도러블(Adiorable)’ 부츠는 모두 Dior.

지난 1월 5일 파트2까지 공개된 <경성크리처> 시즌1 이야기를 해볼까요. 보는 내내 한소희가 가진 눈빛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보기에는 어땠을지
오랜만의 작품이기도 하고,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인 만큼 (윤)채옥과 교집합을 만들려고 했어요. 내가 집중하지 못하면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어 주변 신경 쓸 여력 없이 오로지 채옥만 생각했죠. 사라진 엄마를 찾는 무려 10년의 시간이 매일 슬프고 그립기만 했을까? 충격과 걱정, 나를 보러 오지 않는 것에 대한 원망과 분노… 엄마를 잊지 못하는 이유가 시대를 향한 반항심이나 자신의 삶에 대한 적개심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모든 것을 겪은 채옥의 눈빛은 어떨지 생각했어요. 아마도 채옥은 엄마를 누가 어디로 데려가서 내 인생을 이렇게 짓밟았는지 끝끝내 확인하고 싶었을 거예요.
 
 
울 블레이저와 화이트 포플린 블라우스, 플라워 패턴 ‘레이디 디 조이(D-Joy)’ 백은 모두 Dior.

울 블레이저와 화이트 포플린 블라우스, 플라워 패턴 ‘레이디 디 조이(D-Joy)’ 백은 모두 Dior.

일본군의 생체 실험으로 괴물 세이신이 된 어머니와 만났을 때 보여준 연기도 인상 깊었어요
“어머니 맞아?” 뒤에 대사를 사실 현장에서 하나 더 넣었어요. “어머니 맞아? 왜 이렇게…”까지. 그렇게 해야 울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엄마가 사람 모습이었다면 화를 냈을 거예요. 마치 마트에서 아이를 잠깐 잃어버렸던 아이 엄마가 아이를 찾았을 때 밀려오는 안도감에 “너 어디 갔었어!” 소리부터 치게 되는 것처럼. 그런데 기껏 찾은 엄마가 괴물의 형태라면, 처음 엄마가 사라졌을 때만큼 충격받지 않았을까요.
 
 
불에 탄 듯한 디테일의 오버사이즈 재킷과 블랙 탱크톱, 미디스커트와 부츠, 그라데이션 컬러 ‘레이디 디 조이(D-Joy)’ 백은 모두 Dior.

불에 탄 듯한 디테일의 오버사이즈 재킷과 블랙 탱크톱, 미디스커트와 부츠, 그라데이션 컬러 ‘레이디 디 조이(D-Joy)’ 백은 모두 Dior.

그렇게 도달한 윤채옥과 한소희의 교집합은
삶을 대하는 태도. 제가 꼭 하고 싶은 것, 해야 된다고 생각한 게 있으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거든요. 그래야 직성이 풀려요.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성격 중 마음에 드는 부분이긴 해요. 최근 얼굴에 피어싱을 시도한 것처럼요.
 
 
블랙 울 블레이저는 Dior.

블랙 울 블레이저는 Dior.

30만 원을 들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던 스무 살 때도 그런 추동력이 발휘된 거겠죠
강북이 어딘지, 논현동과 역삼동이 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서울에 왔죠(웃음). 야근 수당이 포함된 시급 높은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공과금을 내면 생활비가 어느 정도 남을지, 저렴하지만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어느 정도 살 수 있는지를 따져 보고요. 그때는 무조건 미술로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차츰 꿈이 바뀌었어요. 저는 스스로를 표현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더라고요.
 
 
개인 블로그 속 기록처럼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을 종종 따라 그렸다는 고등학생 한소희를 상상해 봅니다. 프리다 칼로는 10대 시절 겪은 전차 사고 이후 평생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었죠. 왜 그의 자화상에 끌렸나요
직면한다는 게 무엇인지 일차원적으로 보여준 사람이니까. 부서진 몸으로 침대에 누워 천장의 거울을 보며 자신을 그렸잖아요. 교통사고와 남편의 끝없는 외도. 그런 트라우마를 그림으로 그려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저는 상상도 할 수 없어요. 그럼에도 그걸 그려냈다는 건 진정으로 자신의 상황과 직면한 거죠. 자신의 상처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남긴 거예요. 끝까지.
 
 
테크니컬 스웨터와 메시 스커트, 메시 브라톱과 하이웨이스트 브리프, 부츠는 모두 Dior.

테크니컬 스웨터와 메시 스커트, 메시 브라톱과 하이웨이스트 브리프, 부츠는 모두 Dior.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도 그렇지만 누군가의 고통과 괴로움에 깊게 감응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는 건 어떤 의미가 되나요
감정의 결이 풍부해져요. 저는 최대한 많은 물감을 챙겨서 다양한 색으로 저를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어떤 삶이나 사람은 옆에서 봤을 때 굳이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런데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는, 그런 삶이 정말 있거든요. 색이 입혀졌다가 벗겨지는 것처럼 저도 나를 배출한 뒤에 다시 새 인물을 입힐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최대한 많은 색을 챙기려고 해요. 더 많은 색을 보여주고 싶으니까.
 
 
포플린 블라우스와 블랙 스커트, 자수 장식의 ‘레이디 디올(Lady Dior)’ 백은 모두 Dior.

포플린 블라우스와 블랙 스커트, 자수 장식의 ‘레이디 디올(Lady Dior)’ 백은 모두 Dior.

<마이 네임>에 이어 <경성크리처>에서도 훌륭한 액션을 보여줬어요. 코멘터리 영상을 보니 현장이 녹록지 않았을 것 같더군요
즐겨요, 저는(웃음). 몸으로 부딪히는 게 재미있어요. 리허설도 수십 번 했고, 안전장비와 매트가 준비돼 있지만 촬영장에서는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거든요. 정말 상대방을 믿고 하는 거예요. 서로 제대로 때려줄 것을 믿고, 맞을 때는 또 제대로 맞아야 하죠. 그걸 완벽하게 합을 맞춰 끝냈을 때의 쾌감. 몸이 이미 알아요. 이 장면은 ‘오케이’라는 걸.
 
리넨 메시 드레스, 테크니컬 브라톱과 브리프, 리본 장식의 ‘어도러블(Adiorable)’ 부츠는 모두 Dior.

리넨 메시 드레스, 테크니컬 브라톱과 브리프, 리본 장식의 ‘어도러블(Adiorable)’ 부츠는 모두 Dior.

극의 주요 배경인 전당포 ‘금옥당’에서 실존 인물들의 물건이 언급될 때, 이 이야기가 역사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어요
채옥과 장태상(박서준)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기도 하죠. 덕분에 한결 이입할 수 있었어요. “우리에게도 그 시절이 오겠소?”라는 태상의 대사처럼 독립의 순간을 보지 못하고 떠난 분들을 생각하게 됐거든요. 옹성병원에서 차량을 타고 탈출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도 떠올라요.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일부러 잔치를 열잖아요. 밖에서는 꽹과리와 징 소리가 들리고, 얼핏 차창 밖을 보는데 정말 그 시절로 잠시 간 듯한 기분이었어요. 함께 차량에 탄 보조 출연자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그들도 똑같이 벅차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죠. 머리가 주뼛 설 정도로 황홀하고 엄청난 경험이었어요.
 
 
코튼 메시 드레스와 실크 메시 브라톱, 브리프와 ‘어도러블(Adiorable)’ 펌프스는 모두 Dior.

코튼 메시 드레스와 실크 메시 브라톱, 브리프와 ‘어도러블(Adiorable)’ 펌프스는 모두 Dior.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 것도 이 이야기의 새로운 지점이었어요. 작품이 전하려는 주제의식 중에서 한소희가 동의하고 지지하는 부분은
실제로도 촬영장에서 배우끼리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 안에 모든 군상이 다 있잖아요. 외면한 사람, 방관자, 부역한 사람, 밀고한 사람, 뛰어든 사람…. “그거 아시오? 그 사람들 모두 이런 세상이 아니었으면 겪지 않았을 일들이오”라는 장태상의 대사가 <경성크리처>를 관통하는 대사라고 생각해요. 나월댁(김해숙) 또한 갑평(박지훈)에게 말하죠. 끌려 들어가면 생지옥 같은 고문받지 말고 말하라고. 아무도 그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없다고.
 
 
블랙 메시 드레스와 브라톱, 브리프는 모두 Dior.

블랙 메시 드레스와 브라톱, 브리프는 모두 Dior.

한소희라면 어땠을까요
그래도… 저는 채옥 같지 않았을까요? 죽을 때 죽더라도 내가 뭘 하다 죽었는지, 누군가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는지도 모르는 채 죽는 것은 좀 무서운.
 
 
꽃잎 자수를 놓은 코튼 톱과 스커트, 니트 테크니컬 브라톱과 하이웨이스트 브리프는 모두 Dior.

꽃잎 자수를 놓은 코튼 톱과 스커트, 니트 테크니컬 브라톱과 하이웨이스트 브리프는 모두 Dior.

“둘 중 하나가 먼저 죽는다면 기억해 주는 거요. 내가 살아간 흔적조차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그건 좀 쓸쓸한 것 같아서”라는 대사처럼 말이죠
우리가 꿈을 갖고 이루려는 것에는 자기만족도 있지만 인정 욕구도 있잖아요. 그런데 내가 열심히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도 되지 못한다면, 내가 어떤 것에 치열했던 사람인지 아무도 모른다면….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싶어요.
 
지금은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많은 것 같나요
그럼요. 일단 나 자신이 알고 있죠. 오늘 나 좀 기특했어, 이렇게(웃음). 

Credit

  • 패션 에디터 이하얀
  • 피처 에디터 이마루
  • 사진가 김신애
  • 패션 스타일리스트 조보민
  • 헤어 스타일리스트 수화(제니하우스)
  • 메이크업 아티스트 강예원(제니하우스)
  • 매니큐어리스트 이지희(제니하우스)
  • 세트 스타일리스트 전예별
  • 아트디자이너 이소정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어시스턴트 김민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