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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를 사랑하세요? 몸을 낮추자 보인 각각의 초상과 고유함

고라니의 몸길이는 약 90cm. 사진가 문선희는 무릎을 굽혀 고라니들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췄다. 그러자 완전히 새로운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요하고 순한 그의 사진이 선사하는 이토록 소란스럽고 강렬한 각성의 순간.

프로필 by 이마루 2023.09.26
문선희 작가에게 처음 마음을 열었던 아기 고라니, 초코와 도도. 책에는 게재되지 않은 이 사진을 엘르를 위해 특별히 보내왔다

문선희 작가에게 처음 마음을 열었던 아기 고라니, 초코와 도도. 책에는 게재되지 않은 이 사진을 엘르를 위해 특별히 보내왔다

 
 수트세트업은 Beyond Closet.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수트세트업은 Beyond Closet.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Profile 문선희

 
서정적인 시선과 수행적 태도로 현실을 포착하는 사진가. 교직에 있다가 30세부터 사진과 글 쓰기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2015년 구제역 · 조류 독감 매몰지 100여 곳을 방문해 찍은 <묻다> 연작을 선보였고, 다음해에는 광주 5·18항쟁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 80명을 인터뷰해 사진으로 엮은 전시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를, 2019년에는 지난 15년간 고공 농성이 일어났던 장소를 담아낸 <거기서 뭐 하세요> 전시를 했다. 연간 25만 마리가 로드 킬과 포획으로 생명을 잃는 고라니들의 초상 사진과 글을 엮어 올해 7월 펴낸 책 <이름보다 오래된>은 2022년 전시 <널 사랑하지 않아> 작업을 밑바탕으로 탄생한 것. 2021년 제22회 광주신세계미술제 대상, 2023년 제13회 일우사진상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했다.

 
문선희 작가가 목격한 고라니. 10여 년간 만난 100마리의 고라니 중 50마리의 정면 초상이 사진집 <이름보다 오래된>으로 엮였다.
 
10년간 전국의 야생동물구조센터와 국립생태원 오가며 담은 고라니 50마리의 사진과 이야기가 <이름보다 오래된>이라는 책으로 엮였다. 왜 이런 제목을 붙였나 
출근길에 처음으로 사슴과 마주쳤을 때 강렬한 느낌에 휩싸였다. 사람들이 내가 본 게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묻었고, 그때 알았다. 고라니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모두 ‘고라니’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얼굴을 보여주는 순간 놀란다. 처음 고라니 초상 작업들을 모아 전시를 열었을 때 가장 놀랐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야생동물구조센터 직원과 수의사들이었다. 고라니를 구조하고 치료하며 가장 가까이에 있었음에도 몸을 낮춰 제대로 얼굴을 본 적이 없어, 얼굴 생김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각각의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찾아오는 각성의 경험. 그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초상 작업을 시작했다. <이름보다 오래된>이라는 제목은 우리가 고라니라고 이름 붙이기 전부터 존재했던 생물을 보여주는 작업이기 때문에 선택하게 됐다.
 
사진집 <이름보다 오래된>에 실린 어른 고라니들의 사진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라니 101> <라니139> <라니 134> <라니115>

사진집 <이름보다 오래된>에 실린 어른 고라니들의 사진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라니 101> <라니139> <라니 134> <라니115>

 
매년 20만 마리 넘는 고라니가 로드 킬과 유해동물 포획 사냥으로 죽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2018년에 사살된 고라니들은 1만4869원어치의 농작물을 먹어 치운 혐의로 목숨을 잃었다. 고라니를 유해동물로 지정한 대부분의 지자체가 내건 현상금은 3만 원인데 매년 현상금으로 지급되는 비용이 농작물 피해액보다 크다는 것, 그 현상금이 피해 농민에게 지급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많은 문제의식을 갖게 한다. 실제로 현장을 다니며 본 사람들의 고라니에 대한 인식은 어떤지 
유해종이라는 인식이 크다. 특히 일정 연령대 이상의 사람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다. 작업할 때 조사를 많이 하는 편인데 고라니에 대한 순수한 연구를 찾기 어려웠다. ‘유해동물’ ‘피해방지’ 같은 부정적인 키워드를 사용해야 관련 기사나 보고서가 검색되더라. 먹고 살 것을 찾았을 뿐인데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이 되고, 길을 건너다 로드 킬을 당하는 데도 교통사고 주범으로 묘사된다. 존재 자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시골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부모님 댁은 산과 인접해 있어 고라니가 종종 출몰한다. 취미로 농작물을 키웠던 아랫집이 집을 비운 사이 전기 펜스에 감전돼 죽은 고라니를 아버지와 묻어준 기억이 난다 
시골에 사는 분들도 고라니 뒷모습만 보지 얼굴은 거의 본 적 없다. 워낙 경계심이 강한 동물이니까. 전시장에서 고라니 사진을 본 아이들은 “얘도 사슴이야? 귀여워!”라고 반응한다. 반면 성인들은 고라니라는 것을 아는 순간 ‘해를 끼치는 동물인데’라는 생각에 다시 사진을 본다. 일차적인 거부감, 그러나 이 생물의 얼굴을 본 경험은 없다는 놀라움, 모두 다르게 생겼다는 것에 충격받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라니 35><라니 15><라니 08>
어른 고라니와 아기 고라니의 정면 초상은 대체 불가능한 각자의 고유성으로 가득하다. ‘고라니’라는 단어가 가진 선입견에서 벗어나 친근하게 바라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각각의 초상에 ‘라니’라는 명칭을 붙였다.  
 
 
동물원에서 고라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가 한국동물원에는 고라니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가 주요 서식지일 뿐 전 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 동물인데 왜 전시될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분류될까 
자본주의 사회의 기준은 명확하다. 흔한 포유류이기에 진귀한 동물이 전시되는 곳에 들어갈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 같다. 고라니라는 종의 습성 자체가 동물원에 맞지 않는 면도 있다. 사슴은 대부분 경계심이 강하지만 그래도 무리 생활을 하는데 고라니는 단독 생활을 하기에 운집한 모습조차 보기 힘들다. 사슴생태원이 있는 서천 국립생태원도 처음에는 관람객들에게 항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도무지 고라니가 보이지 않으니까(웃음).
 
졸업 앨범처럼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 각각의 개체가 가진 개성이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귀가 쫑긋한 정도, 얼굴 형태, 속눈썹 길이와 입매 등 하나하나가 상상 이상으로 다르더라. 작업을 시작할 때 이토록 다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나 
그런 확신과 기대는 없었다. 일단 고라니를 정면으로 보는 게 너무 어렵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린 고라니들을 직접 찍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고라니 없는 고라니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전에 고라니를 한 번이라도 직접 보고 싶었다. 그래서 동물원을 찾아보다가 실패하고, 지역 야생동물구조센터의 존재를 알았다. 처음에는 고라니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금방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기 고라니 두 마리가 내게 몸을 비비고 핥기 시작했다. 희망이 보였다.
 
구조센터의 아기 고라니들은 자립할 수 있는 순간 야생으로 돌려보내야 하기 때문에 사람과 친밀하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번째로 간 구조센터에서 만난 ‘초코’는 정말 사람을 잘 따랐다. 그러나 나는 초코를 쓰다듬으면 안 됐다. 그럼에도 온기를 느끼고 싶은 초코는 내 발을 베고 잠이 들었다. 그런 초코의 맥박이 느껴졌다.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바닥에 누워 손으로 꽃받침을 한 상태에서 초코에게 눈을 맞췄다. 그리고 놀랐다. 아이가 갖고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이, 몸을 낮추니 비로소 보였기 때문이었다. 고라니를 ‘못생긴 사슴’이라고 부르는 데 내심 동의해 왔는데 사람 시선에서 내려다보고 못생겼다니! 그 기준이 황당하게 느껴졌다. 초코의 얼굴이라는 기준점이 생기고 나니까 다른 고라니들의 개성이 보였다. 이토록 얼굴이 다르다는 것에 1차 충격, 이토록 다를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다는 것에 2차 충격, 그 생생한 고유성이 갖는 무게감에 3차 충격…. 이들은 서로 완전 다른 생명체이며 한 마리가 다른 고라니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와닿았다. 우리도 모두 다른 존재인데, 왜 나는 사람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까 싶기도 했다.
 
동일한 원인으로 100명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그것은 단일한 하나의 사고가 아니라 100개의 고유한 세계가 사라진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은연중에 우리 모두가 대체 가능한 부속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개별성에 대해 잊고 있다가 고라니 얼굴과 대면하면서 생명의 무게까지 와닿았다. 이 강렬한 체험을 사람들과 공유해야겠다, 정면 초상을 찍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다.
 
흑백으로 사진을 작업한 이유도 그 고유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일까 
촬영하고 맨 처음으로 한 작업은 배경을 지우는 것이었다. 그래야 고라니에게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고라니들은 자신을 강인하게 어필하지 않는다. 그 성정에 맞게 일관된 사진 톤을 정하고 섬세하게 초상작업을 시작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약간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낯설고 불가해한 존재들을 천천히 들여다볼 시간’. 책에 쓴 표현이다. 도시생활을 하다 보면 몇몇 반려동물 종과 소수의 조류를 제외하면 살아 있는 다른 생명을 만나기 어렵다. 어떤 식으로 생명들과 자연스럽게 접촉면을 넓히면 좋을까 
야생동물에 관해서는 접촉면을 좁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불가피하게 만나는 지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만약 고라니의 정면 얼굴을 보는 것이 쉬운 일이었다면, 대리 체험에 가까운 이 작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살면서 나는 한 번도 내가 강자라고 생각한 적 없다. 변방의 나라 한국, 그곳에서도 지방에서 여자로 살고 있기에 약자라고 여겼는데 동물들을 만나며 인간이라는 종에 속해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최상위 포식자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저 산에 노루와 고라니가 산다는 상상을 하며 행복해하고, 우연히 야생동물과 마주친다면 그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정도는 어떨까.
 
추천사를 쓴 정혜윤 PD가 본인의 교통사고 경험을 ‘많은 고라니들처럼 차에 부딪힌 뒤 붕 날아올랐다’고 표현한 게 인상 깊었다. 실제로 많은 수의 고라니들이 로드 킬로 죽는 현실을 알기에 생겨난 연상 작용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다른 생명, 촬영 대상과 일체되는 느낌을 받은 적은 
일체감까지는 아니더라도 깊이 연결되는 느낌이 들어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것 같다. 처음 구조센터에 갔을 때, 막막하게 고라니들이 마음을 열길 바라며 앉아 있었다. 원래 잘 놀라는 편이다. ‘빵’ 하는 경적 소리를 비롯한 소음에 깜짝깜짝 내가 놀랄 때마다 고라니들도 놀랐다. 나도 뭔가 경계하고 있음을 고라니들이 알아차리면서 차츰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겁쟁이끼리 통했달까(웃음). 신비한 경험이었다.
 
한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활동가는 고라니를 왜 구조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고라니를 유해종으로 지정한 지자체는 일부다. 유해동물이든 멸종위기종이든 법정보호종이든 다 똑같은 생명의 무게로 구하겠다는 게 우리 센터의 취지”라고 답한다고 하더라. 한편 책에는 전남야생동물구조센터는 한 해 180마리의 고라니를 구조했지만 구조센터의 허가 하에 300마리가 사살됐다는 내용도 나온다. 각기 다른 환경을 가진 야생동물구조센터는 이 작업의 어떤 취지에 공감했나  
취재를 거절당한 적도 많다. 구조해야 할 동물은 많은데 지원은 부족한 구조센터의 환경상 카메라를 든 외부인의 존재는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만남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해서 작업할 때는 만남의 성사 여부에만 집중했다. 돌아보면 내가 누군가를 설득해서 문이 열린 적은 없는 것 같다. 이미 자기 안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맡은 업무 때문에 이런저런 일을 하지만 고라니를 대하는 방식에 불편한 마음이 있었던 사람들이 문을 열어줬다. 누군가가 이 문제를 위해 뭔가 하려는 희망을 봤을 때, 스스로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돕고 싶었던 마음 덕분에 센터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문선희의 연작 <묻다>. 수많은 생명이 매몰된 이후, 그 땅의 표면을 담았다

문선희의 연작 <묻다>. 수많은 생명이 매몰된 이후, 그 땅의 표면을 담았다

 
2015년에 열린 <묻다> 전시를 통해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졌다. 2010~2011년 조류독감과 구제역 발생 때 가축들이 매립됐던 땅 표면을 담은 작업은 2019년 같은 제목의 책으로도 출간됐다. 당시 살처분당했던 648만 마리의 가금류 중 실제로 조류독감에 걸렸던 것은 오리 54마리, 닭 34마리, 메추리 2마리, 꿩 1마리, 총 81마리뿐이었다는 건 충격적이다. 분노와 무력감을 느낄 만한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은 이유는 
처음으로 매몰지를 찾았을 때는 작업을 하기 위해 간 건 아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찾아간 첫 번째 장소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고, 그것을 목격한 이상 시민으로서 책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표지판에 적힌 엄청난 숫자를 보고 작업을 결심했다. 이 죽음들이 처리된 방식에 무릎이 절로 꺾였다. 나는 작업 주제를 고른 적이 없다. 어떤 현상이 마음으로 왔고, 온전히 해결하기 전까지 마음 밖으로 떠나지 않는 것들을 사진에 담았다. 그 물컹한 땅을 밞고 악취를 느꼈을 때, 그리고 어떤 감정이 모든 고통을 뛰어넘었을 때 도망 가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나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인한 살처분이 이후에도 반복될 줄은 몰랐다. 이런 일이 있었고, 사람들은 차츰 잊겠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기억하고 미안해하는 사람이 되리라는 마음으로 땅을 찍고 들여다본 건데 자꾸 반복됐다(올해 5월에도 충북에서 한우로 키워지던 총 1300여 마리의 소가 살처분 됐다. 그중에서 구제역 양성 판정을 받은 소는 네 마리뿐이었다).
 
전시와 북 토크 등을 통해 관람자 혹은 독자를 만나는 건 어떤 경험인가? 개인적으로 ‘이 책은 전 국민이 다 봐야 한다’는 한 온라인 서점의 후기에 크게 동감했다(웃음) 
그렇게 훌륭한 분이 있었나(웃음). 처음 시작해서 오랫동안 몰두한 것은 고라니 초상 작업이지만 세상에 먼저 선보인 건 <묻다>였는데, 그러다 보니 내 체험이 보는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묻다’라는 중의적인 제목, 추상적인 땅 사진과 그 옆에 쓰여진 숫자들을 보며 의문을 갖던 관람객은 전시장 출구에 쓰인 설명 글을 보고서야 깨닫는다. 이 사진들이 3년간의 발굴 금지 기간이 해제된 이후 전국 구제역 · 조류독감 매몰지 중 100여 곳에서 촬영된 것이며, 작품 제목으로 쓰인 숫자는 그 땅에 묻힌 동물들의 숫자라는 사실을. 누군가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다시 전시장을 둘러보기도 하고, 공감의 말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묻다> 작업을 하는 동안 내내 마음이 어두웠다. 깜깜한 밤길을 혼자 걷는 기분이었는데 사람들이 마음을 보여주기 시작하자 내 마음에도 막 불이 켜졌다. 그런 경험을 하다 보면 꿈과 희망은 사라질래야 사라질 수가 없다.
 
희망이 사라질래야 사라질 수 없다니   
당연히 현장은 절망적이다. 20대의 나는 염세주의자였다.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건지 생각했는데 서른을 기점으로 마냥 원망하고 투덜거릴 수만은 없겠더라. 나도 어른이 됐으니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구조는 필요에 의해 만든 것일 뿐 완제품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달라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한다면,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힘을 보태고 싶다.
 
<2312-02><11800-03><84879_04>
발굴 금지 기간이 해제된 전국 구제역과 조류독감 매몰지 중 100여곳의 땅을 촬영한 <묻다> 연작들. 숫자는 이곳에 묻힌 생명들의 수를 의미한다. 언더 바 뒤에는 방문한 회차를 표시했다. 
 
 
생명을 살리자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감성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숫자와 통계,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찰이 이뤄지기 마련이다. 당신 작업도 수많은 자료와 논거로 가득한데   
개인 이야기를 주제로 작업하면 아무에게도 공격받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 문제를 작품으로 다룰 때 가장 어려운 지점은 이게 모두의 일이고, 전문가는 물론 이해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책임한 발언을 하지 않으려면 자연스럽게 공부를 많이 하게 된다. 누군가는 예술은 감성의 영역이라지만 모든 예술가는 이성과 감성을 총동원해 작업한다고 믿는다. 나도 내가 사유할 수 있는 최대 폭으로 이 문제를 전방위적으로 조사하고, 현장 이야기도 귀담아듣는다. 누군가를 비난 혹은 원망하려고 작업하는 게 아니다. 나는 걱정을 하는 것이다. 걱정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어떻게든 끌어안고, 사람들의 사랑과 연민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분노하고 지쳐서 포기하는 게 아니라, 너무 사랑해서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것. 뭘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대상을 향한 사랑에서 시작하는 것.
 
말을 할 수 없는 동물들의 입장을 작업으로 대변하지만 작품을 보다 보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건 분노나 원망의 감정만은 아니었다 
동물에 대한 사랑도 있지만 그 동물들을 구덩이로 넣어야만 했던 사람을 향한 사랑도 있다. 따뜻한 체온이 있는 동물을 밀어넣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서 자신의 역할이 그것이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내가 싸우고자 하는 것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다. 우리의 영혼을 훼손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다. 사진작가니까 사진으로만 결과를 보여줘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작업 과정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인간이 살아 있는 생명을 이렇게까지 대해도 되는가?’라는 문제의식, 생명을 대하는 우리 시각 중에서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다면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공존해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부도 야생동물 보호 정책을 펴다가 돌연 총을 들기까지 고민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공존에 비용이 든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은 금방 공존을 포기해버린다. 우리 사회가 말하는 ‘공존’의 속뜻은 인간에게 필요 없는 땅에서, 필요 없는 것만 먹으라는 것인 듯하다.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다시 한번 공존의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보면 좋겠다.
 
성공적인 공존의 예를 경험한 적도 있을까 
한 지자체가 여름 철새인 백로의 소음과 배설물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폭발하자 아파트와 기숙사 앞의 숲을 없앴던 사례가 있다. 한편 매년 겨울이 되면 떼까마귀 수십만 마리가 울산을 찾는다. 그러자 울산시는 태화강 옆에 거대한 대나무숲(태화강국가정원)을 조성해 새들을 도심 밖으로 유인했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까마귀 똥을 맞는 것이 ‘운수가 좋은 것’이라며, 똥을 맞거나 까마귀와 함께 인증 샷을 찍으면 지역상품권을 증정하는 이벤트까지 열었다. 지금 떼까마귀는 생태도시 울산의 상징이다. 같은 일이 일어나고, 비슷한 예산을 갖고 있어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이렇게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선택에 관여할 수도 있고, 그것이 전혀 다른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여전히 시각예술의 힘을 믿나 
너무나 신뢰한다. 경험은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깊게 체험한 것은 결코 말로 전할 수 없다. 언어로 표현하려고 할수록 모호하고 희미해지는 것, 강렬한 체험을 이미지로 전달하는 것이 시각예술이 가진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 밭에 오는 고라니를 할아버지를 괴롭히는 동물이라고 생각해 막연히 미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본 전시 때문에 고라니라는 단어가 내 안에서 갑자기 눈 코 입을 갖게 됐다’는 감상을 인스타그램 DM으로 받은 적 있다. 그게 각성이다. 10월 18일부터 광화문 일우 스페이스에서 전시를 갖는다. 모처럼 서울에서 한 달이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만큼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좋겠다. 고라니의 얼굴 하나하나와 마주하게 되면, 그 얼굴이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고라니라는 이름 석 자만 알았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

Credit

  • 에디터 이마루
  • 사진가 정지은(인물)
  • 스타일리스트 이현지
  • 헤어 & 메이크업 아티스트 장하준
  •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 디지털 디자이너 장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