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분 동갑이죠? 촬영하면서 알게 된 상대는 첫 느낌과 많이 다른가요
소니 형식이는 좋은 쪽으로 똑같았어요. 처음 만났을 때, 살갑고 예의 바르고 자기 일 분명히 할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그대로였죠. 1년 가까이 촬영하다 보면 지치는 날도 있고, 생각처럼 안 굴러가는 날이 있는데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어요. 한결같달까.
형식 저는 성격상 분위기가 안 좋은 걸 못 견뎌요. 그럴 땐 자리를 피해버리는 스타일인데, 드라마 현장은 피할 수 없잖아요? 좋은 분위기에서 촬영하고 싶으니까 농담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소니 정말 짜증 한 번 내는 걸 본 적 없어요.
형식 소니는 처음에 무뚝뚝하고 도도해 보였어요. 속으로 ‘어, 쉽지 않겠다’ 했죠.
형식 모를 때니까. 그런데 그게 얼마 안 갔어요. 대사 주고받을 때마다 새로운 모습이 계속 발견되더라고요. 결정적으로 서로 고민을 공유하면서 금방 친해졌어요. 그리고 현장에서 ‘또래’ 만나기는 쉬워도 ‘동갑’ 만나기는 어렵거든요. 이번 현장은 소니를 비롯해 91년생이 많아서 신기하기도 하고 반가웠죠.
박형식이 입은 수트와 셔츠는 모두 Alexander Mcqueen. 전소니가 입은 드레스는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박형식 배우는 〈화랑〉에서 왕위 계승자 삼맥종을 연기했어요. 〈청춘월담〉의 이환도 왕세자라는 점에서 캐릭터적으로 교집합이 있어 보입니다. 이환을 연기하면서 신경 쓴 게 있다면
형식 〈화랑〉은 신라시대가 배경이고, 〈청춘월담〉은 조선시대 이야기라서 일단 의상이 완전히 달라요. 캐릭터도 포지션만 놓고 보면 언뜻 비슷해 보이는데, 결 자체가 많이 다르고요. 삼맥종이 화랑이라는 집단에서 친구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라면, 이환은 조금 더 어른스럽달까요. 왕세자로서 지켜야 할 것과 해나가야 하는 것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춰서 이환을 풀어가려고 했어요.
민재이(전소니)가 내관복을 입은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그런데 ‘남장여자’ 컨셉트는 많은 사극이 사용해 왔어요. 특별히 차별화를 둔 게 있다면
소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남장여자 설정의 그 어떤 드라마와도 달라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었어요. 어떤 역할이라도 카테고리화하다 보면 한곳에 묶일 수밖에 없잖아요. 직업으로 묶을 수도 있고, 성격으로 묶을 수도 있고, 가정환경으로 묶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기본적으로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다른 사람이 이 역할을 할 때와는 달라야 한다는 욕심이 있어요. 그러니까 민재이로서 차별화를 두려고 한 것이지 남장여자여서는 아니었던 거죠.
블랙 컬러 점프수트와 샌들은 모두 Hermès.
연기라는 건 액션과 리액션의 충돌이기에 어떤 상대가 오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지점이 있을 텐데요. 파트너가 박형식, 전소니인 것이 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형식 옛날엔 대본 연구하면서 온갖 상상을 했어요. 세트가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데도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계획을 짠 거죠. 그렇게 준비해 갔는데, 상상과는 완전히 다른 현장을 겪으면 ‘멘붕’이 와요. 그런 순간을 몇 번 겪고 난 후, 뭔가를 확정해서 현장에 나가지 않게 됐어요. 좋게 말하면 유연함이 생긴 거죠. 액션과 리액션도 마찬가지예요. 현장에서 상대와 함께 느끼는 호흡을 중시하게 됐어요. 소니는 리액션이 좋은 친구예요. 덕분에 액션이 자신감 있게 나온 지점이 있었죠.
소니 이 얘기가 너무 공감되는 게 드라마 처음 했을 때 저도 엄청 당황했거든요.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펼쳐진 현장이 무섭기도 했고요. 그런 상황에서 중요한 건 상대 배우와의 신뢰인 것 같아요. 형식에게 고마웠던 건, 내가 미처 기대하지 않은 신에서 이 친구 리액션 덕분에 완전히 집중해서 연기한 순간이 있었어요. 그걸 처음 경험한 날엔 고맙다고 문자도 남겼죠.
형식 기억나. 신 끝나고 갑자기 “아, 형식아… 방금 너무 좋다” 이러는 거예요(웃음). 깜짝 놀랐죠.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배우는 처음이어서. 사실 저도 같은 걸 느꼈거든요. 캐릭터 안으로 갑자기 ‘확’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 매 신이 그럴 수는 없겠지만, 연기하다 보면 가끔 그런 순간이 와요. 사실 그 한순간이 연기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런 마법 같은 순간을 느낀 현장이라는 것 자체가 소중해 보이는군요. 그러지 못하고 끝나는 작품도 있을 테니까. 두 분의 기질과 노력이 서로를 알아본 덕도 있겠죠
소니 그런 게 있어요. 작품 들어가기 전부터 형식 배우에 대해 인간적으로 좋은 이야길 많이 들었어요. 연기하는 걸 좋아한다는 말도 들었어요. 저는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신의 마음이 끌려서 하는 건 따라갈 수 없으니까. 그래서 함께 연기하게 됐다는 이야길 들었을 때 안심이 됐죠. 정성과 마음으로 연기하는 사람인 게 느껴져서요.
소니 아니야. 힘들어하면서 연기할 수도 있고, 상황상 연기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형식 그럴 수 있겠다. 저는 어릴 때부터 고집이 있었어요. 부모님이 “이거 해라” 하면 “싫어 싫어!”해서 별명이 ‘노(No)맨’이었어요. 뭘 하라면 싫다니까.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걸 만나면 거기에 푹 빠져 끝장을 봤어요. 나중에 들은 얘긴데, 그런 저를 보고 부모님이 그러셨대요. “그래도 쟤는 뭐라도 하겠다.” 성향이 그래요. 제가 좋아하지 않으면 잘 못해요.
플라워 패턴의 드레스는 Leey.Leey. 원석 디자인의 링은 Alexander McQueen.
형식 연기는… 재밌어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 새로운 감정을 표현한다는 게. 상대방도 항상 다른 에너지와 다른 성격으로 오잖아요? 그 충돌에서 생기는 또 다른 새로움이 있죠. 그렇다 보니 이번엔 어떤 게 올까 궁금하고요. 물론 좋은 결과물만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 과정 자체가 좋아요.
전소니 배우는 어떤가요. 아까 “연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는데, 본인을 대변하는 말 같기도 하네요
소니 네, 연기를 애처럼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요. 선배나 동료도 저보고 그래요. “너는 참 신기하다. 아직도 연기가 그렇게 좋다니”라고. 그런 말을 듣다 보니 ‘나중에 안 좋아지는 게 정해진 수순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장혜진 선배님 만나고 큰 위로를 받았어요. 연기를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이 생겼거든요. 저는 제가 10~20년 후에도 연기를 신나 했으면 좋겠어요. 연기에 연연했으면 좋겠고요. 그러니까 계속 연기에 휘둘리고 싶은 거예요. 제가 그런 마음이다 보니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는 배우를 만나면 반가워요. 뭐라도 될 것 같은 희망이 느껴진달까? 저 사람도 연기를 좋아하니까, 내가 가서 먼저 애정을 내비치면 함께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란 희망이요.
전소니가 입은 원형 디자인의 톱 드레스는 Saint Laurent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박형식이 입은 프린트 수트와 셔츠는 모두 Alexander McQueen.
늘 느끼지만 전소니 배우는 무표정일 때와 웃을 때의 낙차가 큽니다. 무표정일 때는 한없이 차가워 보이지만, 웃는 순간 한없이 사랑스럽달까요. 본인이 어떤 ‘뉘앙스’의 배우라고 생각하나요
소니 뉘앙스라는 단어가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실제로 저는 그 뉘앙스 정도만 정해두는 것 같은데, 제 작품을 보고 이런 얘길 해주신 감독님이 계세요. “분위기와 뉘앙스를 남기고 사라지는 사람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 네가 그것보다 더 분명하게 존재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처음엔 ‘나는 뉘앙스 정도밖에 안 되나?’ 싶었는데 생각할수록 마음에 들더라고요. 알겠는 사람 혹은 모르겠는 사람보다 알 듯 말 듯해서 더 알고 싶은 사람이 좋은 것 같아요. 지금은 그래요.
반면 박형식 배우는 외모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비트는 방식으로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필모그래피에서도 예측을 거스르는 다양한 선택을 해온 게 보여요
형식 저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에요. 주위에서 자꾸 착하다 착하다 하니까, 그게 족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캐릭터는 좀 달랐으면 하는 것 같아요. 어떤 이미지가 생기면 그 역할만 계속 들어올 것 같아서 다양하게 해보고 있어요. 성격상 도전을 즐기기도 하고요.
재킷과 코트, 위빙 디테일이 돋보이는 옐로 팬츠와 화이트 톱은 모두 Bottega Veneta.
시기마다 인생의 테마가 달라질 텐데요. 2023년 현재 두 사람의 인생 테마는 무엇일까요
형식 얼마 전에 여행을 다녀왔어요. 온전히 나만을 위한 여행을 다녀온 건 처음이었어요. 어딘가를 가도 스케줄로 가거나, 스케줄 끝나고 조금 더 머물다 왔거든요. 여행하면서 여태까지 왜 이걸 안 하고 살았나 싶기도 하고, 나에게 좀 무심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제는 쉬는 시간을 나를 위해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니 저는 요즘 경험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내가 직접 보고, 듣고, 겪은 것들에 대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린 타인이 경험한 것에 너무 의지하며 살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맛집도 그렇고 여행지도 그렇고, 하다못해 영화마저 후기를 찾아보고 결정하죠.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렇게 미리 찾아보게 하는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그게 우릴 똑같이 살게 만들죠. 나도 그런 삶에 익숙해져 있는 게 아닌가란 자각. 요즘은 직접 겪어봐야지, 좋은 것도 겪어보고 안 좋은 것도 겪어봐야지 해요. 온전히 내 경험이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요.
형식 저는 원래 그런 성격이었어요. 일례로 제국의 아이들(ZE:A) 멤버들과 태국에 간 적 있는데, 요리 중 하나로 얌꿍이 나온 거예요. 다들 낯설다며 안 먹는데 제가 기미상궁처럼 한 숟가락 푹 퍼서 먹으니까 다들 그제야 먹더라고요. 저는 늘 그러거든요. 뭐든 일단 도전해 보는 스타일이에요. 후회하는 게 싫어요. 해보고 판단하자는 주의죠.
〈청춘월담〉 티저 포스터 카피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누구를 믿어야 하고 누구를 의심해야 하는가.’ 두 분은 어떤 사람을 신뢰합니까
형식 내 모든 걸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경계가 있긴 한데, 그 기준이 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떤 기준이 있다기보다 어떤 마음인 것 같아요. 이상하게 마음이 동하는 사람이 있어요.
소니 저는 일관성 있는 사람.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이 같은 사람을 신뢰해요.
브라운 원피스는 Prada. 골드 이어링은 Joy Gryson.
형식 당연히 해야 하는 것. 그 대상이 반려동물이 됐든, 가족이 됐든, 연인이 됐든 사랑이라는 건 항상 가슴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랑에 있어선 가족의 영향이 큰데, 제가 “사랑해”를 일상처럼 말하는 집에서 컸어요. 형과 통화하면서도 “알라뷰~” 이러죠. 사랑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것 같아요. 당연한 것이라서요. 그러다 크면서 인색한 세상을 알았고, 사랑이 당연하게 곁에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소니 사랑을 준 만큼 돌려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란 게 있잖아요? 제가 그랬어요.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게 싫어서 ‘돌려받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만 줘야지?’ 했어요. 그러다 보니 괜히 계산적인 마음이 됐고요. 그러다가 ‘내가 어디까지 사랑을 줄 수 있는지 그냥 가보자’라는 마음이 변한 시기가 있었는데, 그러면서 계산하는 것도 사라지고 주는 마음이 얼마나 행복한가도 알게 됐죠. 요즘 되게 좋아요. 가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제가 그런 사랑을 하고 있어서요.
박형식이 입은 프린트 수트와 셔츠는 모두 Alexander McQueen. 전소니가 입은 원형 디자인의 톱 드레스는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마지막 질문입니다. 2023년 새해를 맞으면서 본인에게 한 약속이 있나요
형식 저도 스스로와 약속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즉흥적이기 때문에. 나와의 약속이라는 게 족쇄처럼 느껴질 것도 같고요.
소니 저는 즉흥적인 사람은 아니고, 말하면 꼭 지켜야 하는 사람이라 일부러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는 ‘안 지키는 게 너무 싫어서’.
형식 저는 ‘어차피 안 지킬 거라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겠습니다(웃음)!
전소니가 입은 플라워 패턴의 드레스는 Leey.Leey.
박형식이 입은 셔츠와 팬츠, 재킷과 슈즈, 타이는 모두 Prada. 전소니가 입은 화이트 타이와 셔츠, 비즈 장식의 드레스는 모두 Rokh. 슈즈는 Vet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