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희가 없는 세상을 위해. 배우 배두나와 김시은이 서로를 마주했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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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가 없는 세상을 위해. 배우 배두나와 김시은이 서로를 마주했다

작지만 피어나야 할 이야기들, 그리고 미처 피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 영화 <다음 소희>의 두 사람이 불어넣은 숨결.

이마루 BY 이마루 2023.02.05
 
지난해 초 촬영한 영화가 1년 남짓 시간이 흘러 올 2월에 개봉합니다. 지난겨울이 생각날 것 같아요
두나 둘이 얼굴을 보는 게 거의 10개월 만이에요. 계속 미국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이제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게 될 텐데, 돌아보면 행복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도희야〉를 함께 했던 정주리 감독님과 다시 만난다고 하니까 당시 스태프들도 많이 합류해서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촬영했죠.
시은 저는 진짜 추웠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부터 1년이 지나 비슷한 계절이 됐다는 게 신기해요. 이 경험을 통해 칸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올 수 있다는 사실도요.
 
〈다음 소희〉의 시작은 2017년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사망 사건입니다. 고등학생이  파견됐던 콜센터에서 실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5개월 만에 자살한 사건이죠. 저는 당시 이 일을 몰랐어요
두나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것을 방영 당시에는 몰랐어요.시나리오를 읽고 감독님과 첫미팅 때 알게 됐죠.
시은 저도 시나리오를 통해 알았지만, 몰랐던 게 저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가 가진 힘으로 이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알리면 누군가는 내지 못할 목소리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보러 갔죠. 
 
배두나가 입은 크롭트 셔츠와 맥시 롱스커트, 리본은 모두 Valentino. 링은 모두 Korloff. 김시은이 입은 원피스와 슈즈는 모두 Prada. 이어링과 링은 모두 Stephen webster.

배두나가 입은 크롭트 셔츠와 맥시 롱스커트, 리본은 모두 Valentino. 링은 모두 Korloff. 김시은이 입은 원피스와 슈즈는 모두 Prada. 이어링과 링은 모두 Stephen webster.

노동 현장에 대한 문제가 거론되고, 성인이 어린 소녀에게 손을 내민다는 점에서 〈도희야〉를 자꾸 떠올리게 됩니다
두나 저는 확실히 연장선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감독님도 같은 분이고, 역할도 형사고, 소희도 미성년자니까요. 사회 고발적인 측면도 닮았고요. ‘이런 이야기가 나와야 돼’라는 생각을 했고, 내가 이 역할을 조금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떤 사명감을 띠었다는 점도요.
 
인물 자체에 대해 느낀 매력이 있다면
시은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우선이었어요. 〈다음 소희〉라는 제목처럼 그렇지 않으면 좋겠지만, ‘다음’ 소희는 지금도 존재할 테니까요.
두나 유진이라는 캐릭터에 고민이 없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저는 정주리 감독님의 마음을 자극하는 문체나 서술 방식을 좋아하나 봐요. 7년 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가 시나리오가 왔는데 또 너무 좋은 거예요. 이미 관객이 소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아는 중간부터 등장해서 사건을 파헤치는 관찰자 같은 캐릭터이기에 자칫 지루하지 않을까 우려는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감독님 글의 팬인데 거절할 수는 없더라고요.
 
관객 입장에서는 유진이 계속 화를 내줘서 힘을 얻었어요. 취업률 달성 때문에 학생을 블랙 기업에 취업시키는 학교와 방조하는 교육청, 책임을 회피하는 회사와 본사 등 자칫 잊을 뻔했던 부조리한 상황을 재상기시켜 주니까요
두나 안심이 되는 말입니다. 사실 유진 입장에서는 너무너무 답답해서 울분이 터졌거든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느낌이라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이 답답하기만 하면 어떡하나 싶었어요.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가 한국적인 이야기라고만 생각하지 않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시은  칸에서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어요. 웃고 우는 포인트는 조금 달랐지만 그것조차 재밌었죠. 
 
영화 구조가 특이해요. 두 사람은 만나지 않습니다. 유일한 접점인 댄스 학원에서도 소희는 유진의 존재를 거의 알아채지 못하죠. 배우 입장에서는 이 구성이 어떻게 느껴졌을지
시은 저는 신선하다고 느꼈어요.
두나 저도 응원했어요. 소희와 유진이 회상 속에서 스쳐 지나거나 환상 속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다면 또 이상하지 않았을까요(웃음).
 
서로가 출연한 장면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고른다면
시은 시나리오를 읽을수록 유진과 소희가 겹쳐 보였어요. 그런데 선배님의 연기를 보고 나니까 소희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유진같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상 속에서만 닮았다고 느낀 게 스크린에서도 느껴지니 신기했어요.
두나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부분부분 모니터했거든요. 소희가 친구와 저녁을 먹다가 남자들과 시비 붙는 장면이 너무 인상 깊고 재미있었어요. 저는 〈복수는 나의 것〉을 찍었던 스물두 살 때 욕을 못해서 박찬욱 감독님이 앉혀놓고 가르쳤거든요. 그런데 시은이는 그 장면을 엄청 시원시원하게 잘하는 거예요. 박수를 쳤어요.
시은 저도 재밌게 연기한 장면이에요. 저는 정말 놀랐던 대사 한 줄이 있어요. 형사팀 과장이 뭐라고 할 때 유진이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한마디하고 가는데 ‘와! 연기는 저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싶었죠. 집에서 혼자 봤더라면 서른 번은 돌려봤을 것 같은 장면이에요.
 
플라워 프린팅 옐로 톱과 드롭 이어링은 모두 Dries Van Noten.

플라워 프린팅 옐로 톱과 드롭 이어링은 모두 Dries Van Noten.

소희의 어떤 면을 가장 잘 표출하고 싶었나요
시은 콜센터에서 일하는 소희의 모습이 초반부와 후반부에 완전히 달라 보였으면 했어요. 처음에는 버벅대지만 열의 있는 모습이라면 나중에는 로봇처럼 자동으로 나오도록. 그래서 일상에서도 대사를 계속 연습했어요.  
 
배두나 씨가 표현하고 싶었던 유진은
두나 〈그것이 알고 싶다〉 PD의 앞모습을 우리는 보지 못하는데도 그 사람이 던지는 질문을 통해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오롯이 느끼잖아요. 저는 유진이 PD의 앞모습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그 모든 표정을 제가 만들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냥 대범하게 가자. 느끼는 대로 연기했죠.
 
플라워 프린팅 원피스는 Zimmermann by G.street 494.

플라워 프린팅 원피스는 Zimmermann by G.street 494.

배두나가 이렇게 소리 지르는 걸 본 적 있나 싶었습니다. 〈비밀의 숲〉의 여진도 정의로운 형사지만 항상 그 감정을 억누르고, 〈도희야〉의 영남이는 보는 사람이 억울할 정도니까요
두나 관객으로서의 저는 배우가 특정 감정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에요. 배우가 ‘나 이만큼 화났고, 슬퍼!’라고 연기함으로써  관객의 상상력을 한정 짓게 될까 봐요.
 
소희에게 ‘유별나다’ ‘이런 애를 파견하면 어떡하냐’고 말한 사람들처럼 환경에 의해 반짝였던 누군가가 생기를 잃어가는 것을 본 적 있나요.  스스로 나다움을 잃어간다고 느꼈던 순간일 수도 있고요
두나 저는 뭐 많이 잃었죠, 생기(웃음). 40대잖아요.  이 나이쯤 되면 사회생활도 제법 하고, 뭔가를 희망적으로 해보려다 실망하고 포기하고, 그래서 마음을 비우게 되는 수순을 누구나 밟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데뷔 당시 저는 ‘독특하다’는 분위기로 포장돼서 보여지는 면이 있었잖아요. 저보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게 생긴 것 같다’는 사람도 있었고요. 나는 어쩔 수 없었지만  우리보다 어린 사람들에게는 이걸 조금 덜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다음 소희〉에 나오는 어른들이 더 열받았던 것 같아요. 유진도 그런 마음이었겠죠.
 
셔츠와 리본은 모두 Valentino.

셔츠와 리본은 모두 Valentino.

그런 게 말들이 상처가 됐나요
두나 당연하죠. 저 엄청 상처 잘 받는 스타일이에요. 상처에 딱지가 앉아 딱딱해지고 무뎌지게 갑옷을 입을까 하다가도 저처럼 직관적으로 연기하는 배우는 무뎌지는 순간 배우로는 끝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을 열고 ‘몰랑몰랑’한 상태로 상처받을 준비를 하죠.
 
시은 씨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내 공감하네요
시은 요즘 고민하던 것의 답을 들은 느낌이에요. 나다운 건 뭘까 한창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두나 그 기분 뭔지 알아! 〈SNL 코리아〉에 나온 에어팟 낀 신입사원처럼 다들 그렇게 안 들으면서 살고 싶거든요. 그렇게 못 사는 거지.
시은 누가 너는 어떤 성격이냐고 물었을 때 항상  “밝고 긍정적이며, 에너지가 넘쳐요!”라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인간관계에서 회의감을 느끼고,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나를 조금 더 보호하려고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나다움을 잃고 있구나. 나도 결국 변하는구나’ 하고 자책하다가 마음을 정했어요. 이런 내 모습도 좋아해주기로.
 

김시은이 입은 플라워 프린팅 원피스는 Zimmermann by G.street 494. 배두나가 입은 플라워 프린팅 옐로 톱과 시스루 팬츠는 모두 Dries Van Noten.

김시은이 입은 플라워 프린팅 원피스는 Zimmermann by G.street 494. 배두나가 입은 플라워 프린팅 옐로 톱과 시스루 팬츠는 모두 Dries Van Noten.

각자도생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요즘은 타인의 고통에 이입하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 점점 ‘오지랍’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에 참여하는 게 배우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면
시은 관심을 갖는 게 쉽지는 않아요. 내가 충분히 이타적이어야 사회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저 같은 사람들이 ‘쫌쫌따리’ 많아지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확고한 주관을 갖고, 떳떳할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꼭 스무 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의 좋은 어른에 대한 생각은
시은 항상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 생각은 들지만 내가 어른이 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좋은 어른이 아닐까요. 그래야 내가 주는 사랑도 건강하게 전달될 테고요.
두나 30대에도, 40대인 지금도 내가 좋은 어른이 되고 있나?  좋은 어른은 뭘까? 계속 생각해요. 결국은 뭔가를 책임져야 할 때 어른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돼죠. 나도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 않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칭얼대고 싶은데 내가 더 힘을 내야 하는 상황이 오니까요. 어쩌면 이 영화도 그래요. 약자를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누군가 썼잖아요. 그렇다면 나도 함께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고, 또 책임을 지는 거죠.
 

레이스와 플리터 장식의 드레스는 Rokh. 링은 Stephen webster.

레이스와 플리터 장식의 드레스는 Rokh. 링은 Stephen webster.

문득, 시은 씨가 가장 처음 본 배두나의 작품은 무엇일지
두나 요즘은 〈비밀의 숲〉이던데.
시은 말하기 쑥스럽지만, 〈괴물〉이에요. 아주 어릴 때 봤는데도 남주가 활 쏘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두나 벌써 15년 전 영화인데, 지금 봐도 잘 만들었죠. 웃기고, 슬프고 다 해요.
 
그럼에도 세상이 아름답고 따뜻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시은 올해 처음으로 남한산성에 올라 해돋이를 봤거든요. 그런데 학생 한 명이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외치니까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더라고요. 정말 행복하고 따뜻했어요.
두나 당황스러울 만큼 따뜻한 이야기인데요(웃음). 저 또한 계속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이에요. 저는 성선설을 믿나 봐요. 아이들처럼 선하고 따뜻하고 착한 존재는 없는 것 같아요. 그들이 소희처럼 되어갈까 봐 그게 불안하고, 그걸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어요. 그들이 부드러운 행복을 계속 느낄 수 있길 바라요.
 
스터드 포인트의 그레이 컬러 재킷과 톱, 스커트는 모두 Rokh.

스터드 포인트의 그레이 컬러 재킷과 톱, 스커트는 모두 Ro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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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마루
    사진 장덕화
    스타일리스트 박세준/부지연
    헤어 스타일리스트 손혜진(배두나)/박창대(김시은)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준성(배두나)/장해인(김시은)
    네일 아티스트 허진희(배두나)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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