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수’라는 이름의 미열과 성장통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지금 이 순간에도 ‘아홉 수’라는 이름의 미열과 성장통을 앓고 있는, 세상 모든 현재진행형의 찬란한 청춘에게 바침.::에스까다,디올,제이미 앤 벨,벨앤누보,에릭슨 비몬 by 디테일,성장통,엘르,엣진, elle.co.kr:: | ::에스까다,디올,제이미 앤 벨,벨앤누보,에릭슨 비몬 by 디테일

이유 없이 아팠다는 말은 사실 거짓말이었다. 돌아보면 항상 이유가 있었다. 애쓴 만큼 알아주질 않는 야속한 세상이 있었고, 모질고 서러운 말을 쏟아내는 친구가 있었다. 이별을 선언하는 연인도 있었고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채우지 못한 내가 있었다. 그 모든 일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곤 했다. 공교롭게도 늘 아홉 즈음이었다. 어쩌면 애꿎은 숫자에 책임을 떠넘기려 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아홉 수’라는 말은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우리 안의 오래된 ‘집단 믿음’에 가깝다. 스물아홉 살이라고 해서 결혼을 망설이거나 서른아홉 살이라고 해서 이사를 미루는 일은 거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튀어나오곤 하는 ‘이왕이면’이라는 한마디에 담긴 뚝뚝 묻어나는 미련들. 하지만 그보다 더 보통의 우리를 멈칫하게 하는 건 재수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1에서 2로, 다시 2에서 3으로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데서 오는 은근한 파장이자 부담감일 때가 더 많다. 인생에 어떤 마디가 있어 때론 넘어지고 때론 급격히 바뀌기도 한다면 그 숫자들이야말로 가장 직접적으로 삶을 나누기도 하니까. 늘 단단하게 버티고 있던 대학이라는 문, 불안하기만 한 직장과 아득한 남의 이야기처럼 요원한 결혼. 거미줄처럼 방사선으로 뻗은 채 얽혀 나가지만 언제 툭 끊겨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얇아지는 관계들. 지루함. 방황. 고민. 좌절. 단절. 그래서 어느덧 각각의 아홉은 성인들이 겪는 제2의, 제3의 사춘기가 됐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 날카롭게 몰아세우는 것이다. 열아홉 살을 지나 스무 살이 되면, 스물아홉 살을 건너 서른 살이 되면, 서른아홉 살을 넘어 다시 마흔 살이 되면 어제 느낀 감정이 더 이상 그대로일 것 같지 않아서 말이다. 이 모든 실타래의 근본을 묻는다면 나이어야 할 것만 같아서. 그래서 아홉은 단단하게 속이 찬 어느 시기의 정점이자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도전의 숫자다. 우울하게 바닥을 보고 걸을 이유도, 서러워할 이유도 없다. 아홉은 꾹 이를 악물고 뛰어넘어야 할 산이 아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자 오늘과 같은 내일의 연속이다. 아홉이라는 숫자와 함께 겪게 되는 잠깐의 미열은 마땅히 아름다워야 할 열아홉 살의 봄과 스물아홉 살의 여름과 서른아홉 살의 가을을 맞기 위한 성장통일 뿐이다. SWEET NINETEEN BLUES19 열아홉 살과 스무 살 사이의 강19세 겨울, ‘20세’이라는 말이 거느리는 수많은 의미들의 조합 속에서 나는 당혹스러웠다. 20세는 닿을 수 없는 나이 같았고, 그 세계에 진입한 순간 무엇인가가 아주 달라지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었다. 문단 선배인 모 시인은 “우리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거나 야동을 보기 위해 19년을 기다려야 하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야. 세상 모든 경험을 해보기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을 참아내야 하다니”라고 했었다. 물론 그 전에도 성인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 이를테면 화장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는 일들을 하지 않고 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의 화장이나 옷은 물리적으로 더욱 성숙해 보이기 위한 것들이었다. 지금은 바르지도 않는 파운데이션에 세미 정장 같은. 한번은 학교 가는 길에 버스 정류장에서 얼굴이 낯익어 인사를 건넸는데 친구들과 다니던 동네 술집의 주인 아주머니었던 적도 있었다. 교복 입은 내 모습을 보며 어이없어하던 아주머니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뭐가 그렇게 급하고 궁금해서 그런 것들을 미리미리 해치우듯 해보았는지.생각해 보니 나의 10대는 그야말로 ‘뭔가 빠진 자리’를 채우려 급급했던 시간이었다. 어려서부터 사라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남다른 소유욕이 있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나이를 한 살씩 먹는다는 것은 소중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잃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떠나가거나 없어지거나 지나가는 것들에 대한 집착 때문에, 빈자리가 생기는 것 같으면 그 자리를 바라보며 어찌할 줄 몰랐다. 그래서 매일 일기를 쓰고 사진을 찍고 시를 끄적이면서 자꾸만 무언가를 뒤에 남기며 가려고 노력했다. 흘러가는 시간들을 붙잡아서 기록해두려는 마음이었나 보다. 사람을 만날 때 특히 연애를 할 때는 상대방에 대한 마음으로 가득 채워져 내 안에 있는 근본적인 허전함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그 사람 역시 언제나 나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기를 원했고. 그러나 채우려 시작한 연애는 더욱 허전한 구멍을 남긴 채 나를 통과해 빠져나가곤 했다. 둘러보면 인연의 밖에 있기에 멀고 묽어진 자리들로 가득했다. “우리가 창조되는 과정에 뭔가 실수가 있었다네/우리에게는 뭔가 빠져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딱히 말하기는 어렵군/그렇다고 그것을 찾겠다고 서로의 내장을 파헤쳐볼 수는 없지/그것 때문에 육신을 찢어 놓아서야 되겠는가?” -게오르그 뷔히너, 게오르그 뷔히너의 희곡 을 읽으며 인연에 대해 생각하는 건 그만큼 먼 일이다. 24세에 요절한 이 천재 극작가는 우리가 품고 있는 근원적인 ‘실수’, 빈자리에 대해 따뜻한 긍정의 시선을 보낸다. 우리는 결핍 때문에 상대의 육신과 마음을 찢어놓기도 하는데 말이다. 뷔히너가 말하는 ‘무엇인지 딱히 알 수 없는’ 빈자리가 나와 상대로 하여금 서로를 파헤치고 상처내게 했던 것이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해 서로의 가슴에 구멍을 내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바람에 아픈 눈을 내줘야 했을까? 어릴 적 좋아했던 동화가 있었다. 동그라미가 자신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길을 떠나는 이야기. 그런데 막상 자신에게 맞는 조각을 찾아 완벽한 동그라미가 되고 나니, 오히려 주위의 아무것도 살피지 못한 채 그저 빠르게 굴러가야 할 뿐이었다. 데굴데굴. 데굴데굴. 결국 동그라미는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완벽한 조각을 길에 내려놓고 다시 노래하며 천천히 길을 떠난다. 사람과 인연에 관한 우화로 이 동화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우리가 통과해야 할 어찌할 수 없는 지점들을 향해 데굴데굴 굴러가는 동그라미의 이미지는 어린 나를 강하게 사로잡았다. ‘아아,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저런 것이구나.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향해 대책 없이 굴러가는 것, 더 이상 돌아볼 것도 빛나는 것들도 없이….’ 하지만 그때의 나는 동그라미가 왜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20대가 되고 나서 10대를 돌아보니 무언가를 채우고 기록하기에 급급했던 나의 마음이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헤매는 동그라미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그라미의 빈 곳은 그냥 비워둬야 할 자리였을 것이다. 그 아름다운 여행은 아이러니하게도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완벽해지는 순간 엉망이 되고 만다. 빈 곳을 빈 곳대로 놓아둘 수 있다는 것이, 무언가로 애써 채우는 것보다 더 풍요로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마음의 빈 곳은 결핍이 아니라 사람의 풍경이 들어설 수 있는 자리인데 그곳을 억지로 채우려 하거나 들어가려 하면 모든 존재가 기울어지고 말 것이다. 뷔히너와 동화의 결론을 섞어 말하면 빈자리를 채워줄 완벽한 짝을 찾으려 상대를 찢어놓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상대가 나를 모두 채워주기를 바라는 것은 내가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부의 질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일 테니까. 잃어간 자리도 떠나간 자리도 아닌 그 자리는 그저 빈 곳. 그건 마치 모래시계가 자신의 반대편에 아름다운 무늬의 성을 쌓아가는 것과 같아서, 우리는 그 빈 곳으로 인연을 받아들이고 비우고 다시 채우는 것이다. 시계 숫자판이 덜컥 소리를 내며 새로운 한 해를 알릴 때, 누군가에게는 19세에서 막 20세로 넘어가는 그순간, 무슨 천지개벽이나 일어난 것처럼 한순간에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나는 ‘19’와 ‘20’이라는 숫자 사이에 분명 따스한 틈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틈은 생각의 유예(猶豫) 지점 같은 것이다. 다시 한 번 내가 발 디딘 곳을 살펴보고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그 지점을 넘어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고, 고민과 생각의 무게에 따라 자신을 더 넓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누군가를 모두 가지려 하거나 뭔가를 애써 채우려 급급해하는 버릇을 많이 버리게 됐다. 오히려 반쯤 흐린 얼굴로 안겨오는 빈 팔이 좋아졌다. 점차 파운데이션을 바르지 않게 된 것과도 관련이 있을지? 두꺼운 화장이 사라져간 자리를 대신해 마음속에 누구든 언제나 편안하게 앉았다 갈 수 있는 의자 하나를 품고 싶다. 한 점 시간에 함께 고여 있다는 것, 누군가의 물가에 앉아 함께 저녁을 보낼 수 있다는 것. 그것으로 된 것 아닐까? 그런 줄도 모른 채 음악을 나누고 한 병의 와인을 따며 그렇게 헐겁게나마 ‘이어져 있음’을 확인하려 할지라도. 우리는 모두 되어가는 중인 사람들이고, 따라서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일 수밖에 없으니까. 계절을 통과하고 사람을 건너 먼 별을 찾아가는 시간 속에서, 그저 따스하게 겹쳐지는 지점이 있다는 것에 기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자기가 애타게 찾던 잃어버린 조각(Missing place)을 내려놓고 다시 길을 떠나는 동그라미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던가. WORDS 이혜미(23세, 시인) AIN'TNO MOUNTAIN HIGH ENOUGH29, 스물아홉, 나는 행복하다“나는 목숨 거는 사랑을 할 거야.” “난 유명한 작가가 돼서 장동건이랑 작업할 거야.” “난 백마 탄 왕자를 만나서 아침마다 블루 마운틴으로 모닝 커피를 마실 거야.” 열아홉 살, 수능이 끝나고 지겨운 교복을 벗고 그렇게 마시고 싶었던 맥주를 사다놓고 우리들의 파티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야기들은 금세 새벽을 채우고 아침을 맞이했으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숙취에 우리는 해롱댔다. 그것이 숙취인지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미래 때문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계속 우리들의 스무 살은 해롱대고 있었다.스물여덞 살, 수험생들의 수능이 끝나고 술집엔 설렘에 볼 발그레한 병아리들로 가득하지만 교복 대신 분칠을 한 우리는 지겨운 맥주 대신 가격 대비 취기가 좋은 소주를 앞에 놓고 모인다. 꿈 얘기들은 접은 지 오래. 누가 며칠에 결혼한다는 얘기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오히려 그 상대가 ‘얼마나 번다더라’에 환호하며 자신을 비하하는 우리들. 그러고 보니 모이는 멤버가 부쩍 줄었다. 누가 아이를 낳았다는 말도, 누가 새 남친이 생겼다는 말도, 전처럼 흥분되거나 우리를 수다의 도가니로 몰아넣지 않는다. 술을 한 모금 넘기면 한숨 한 번.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일이 출근인 친구들은 자리를 뜨고 애주가 멤버들만 술자리에 남는다. 하나같이 연애에 실패하거나 결혼에 시달리는 친구들. 이상하고 오묘하게 그런 친구들은 꼭 애주가가 된다. “그 자식이 날 찼어. 분명히 딴 년이 생긴 거야.” “당연하지. 남자가 여자 없이 사는 거 봤어?” “남자가 문제야. 문제!” “엄마가 선보라고 해서 나갔는데 대머리 나왔어.” “ 그 남자 직업이 뭔데?” “공무원” “대머리가 문제야! 결혼해!” 한바탕 웃음. 대머리가 싫다던 그 친구는 3개월 뒤 청첩장을 보낸다. 신랑은 그렇게 싫다던 대머리 공무원.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배신자가 돼버린다. 열아홉 살 파티에서 부풀었던 꿈들은 해롱대던 20대 청춘 속에서 헤매고 있다. 나이는 스물아홉 살인데 열아홉 살처럼 술을 진탕 마셔댄 다음날 아침. 아직도 엄마와 살고 있는 나에게 알람 시계보다 더 좋은 알람이 있다. 엄마가 나가는 소리. 나는 초속 300km를 넘나드는 속도로 현관을 향해 질주한다. 그리곤 나가는 엄마의 옷을 붙잡고 장렬하게 한마디한다. “만원만.” 하루에 교통비 포함, 점심식사까지 하려면 만원도 턱없이 빠듯하다. 그러나 엄마에게 이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매일매일 깎여지는 내 자존심도 점점 빠듯해진다. 뒤이어 가열차게 날라오는 엄마의 핸드백 스윙. 교묘하게 피해 보지만 결국 한 대는 맞아주는 게 예의다. 그리곤 만원짜리 한 장과 함께 날아오는 엄마의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 “언제까지 이러고 살래? 엄마 친구 딸은 저번 달에 승진해서 어쩌고저쩌고. 네가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만원만이니? 이럴 바엔 차라리 시집을 가라. 엄마 친구 아들이 있는데 어쩌고저쩌고” 이런 말들이 상처가 돼 가슴을 후벼팔 만도 한데 나는 이미 만원을 받았다는 성취감에 젖어 있을 뿐 그런 것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전철을 타고 생계전선이 한참인 사람들 사이로 몸을 던진다. 나도 분명 생계전선으로 나가고 있는데 왜 집에서는 늘 백수 취급을 받는 것일까? 향후 10년간 내가 풀어야 할 숙제.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때때로 비참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극장에 나와 있는 순간이 좋다. 내가 살아 있고,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곳, 공연이 시작되고 관객들이 입장한다. 배우들이 무대에서 숨을 쉬고. 내가 쓰고 내가 만든 세상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라는 인간이 백수에서 인간으로 탈바꿈되는 순간이다. ‘그래. 이 순간 때문에 나는 떠나지 못하는구나.’ 무대에 펼쳐져 있는 분신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사람이 이룬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은 나 같은 잡지에 실릴 만한 것들이 아니어도 된다고.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파도처럼 밀려 나간다. 사람들이 주식하는 마음이 이럴까? 연극을 보고 나가는 관객들의 표정을 확인하는 순간은 정말 살이 떨린다. 관객들의 행복한 표정. “또 보러오자. 진짜 재밌지?” 가끔은 주책맞게 눈물도 난다. 마치 아침에 엄마에게 받았던 설움이 한순간에 씻겨나가는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휴대전화 전화부를 검색한다. 내가 부르면 언제든 자리를 잡아주는 애주가 친구들. “내가 쏠게 나와라!” 거하진 않아도 기운 충만한 술자리가 마련된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나는 친구들에게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나 돈 없는 거 알지? 네가 쏴라.” 욕이 한 바가지 쏟아진다. 그렇지만 흔쾌히 술값을 내는 친구들. 쟤네들마저 남친이 생기면 난 어쩌지? 쟤네들은 결혼 안 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술은 어찌어찌 얻어먹었지만 오늘은 버스가 다닐 때까지 걸어가야 한다. 날이 부쩍 추워졌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난다. 난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술 사주는 친구도 있고, 내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무대도 있다. 30대의 우리들,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앞뒤로 애를 들쳐 안고 모여서 애인 대신 남편 얘기를 하며 엄청난 수다를 떨어댈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은 취기가 올라야 겨우 꺼내는 섹스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큰소리로 떠들어댈지도 모를 일이다. 가끔 우린 지금 이야기한다. 그런 자신들의 모습이 두렵다고 혹은 그렇게 살지는 않을 거라고. 결혼, 일, 성공, 연애. 이걸 빼고 나면 우리 20대에 무엇이 남을까? 그리고 우린 앞으로 30대에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까? 그렇게 두렵고 불안한 스물아홉 살이 지나고 나면 또 어떤 서른이 다가올까? 열아홉 살에 꾸었던 꿈들이 스물아홉 살의 현실에게 배신당했던 것처럼 또 서른 살의 현실은 날 배신하겠지만 그래도 결국에 남는 건 희망. 그것이 열아홉 살에 꿨던 꿈들처럼 거창하고 부풀어 있진 않겠지만 내년엔 책 한 권을 낼 거라든지 돈을 모아서 혼자 배낭여행을 간다든지 하는 꿈들이 소중해지는 30대가 설레고 사랑스럽다. 그리곤 우린 서른 살이 다가오는 연말에 또 애주가로 변신할지 모른다. 변변한 애인 하나, 변변한 집 한 칸 없어도 내일도 꿈꿀 수 있고 그것이 소소할 뿐 사소하지 않은 우린 행복하니까! Words 홍영은(감독) STAIRWAY TO HEAVEN39 비로소 인생을 조금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서른아홉의 어느 날에 내 서른아홉 살 끝물에 선배가 “마흔이 되면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이냐?”는 바보 같은 질문에 명쾌한 답을 하사했다. “음식을 흘려.” 턱에 구멍난 것도 아니면서 식탁 위에 줄줄이 철도를 그리는 나이. 손가락 발가락의 밑단부터 내 말을 안 듣게 되는 나이. 수저질처럼 익숙하게 해왔던 모든 일들의 어려움을 새삼 깨닫게 되는 나이, 다시 말해 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나이라는 기나 긴 설명을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해준 것이다.서른에서 마흔으로 넘어갈 때 나는 일종의 흥분 상태에 있었다. 불안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십 년이나 살다보니, 나이를 먹는 데 이골이 났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평생 해온 게 ‘나이를 먹는 일’이었으니 불안할 게 무에 있겠는가. 물론 40년이나 살았지만 마흔 살이 되는 건 첫 경험이었으니 그리 자신할 만한 일도 아니긴 하다. 때문에 수많은 선배들을 쫓아다니며 “마흔이 되면 뭐가 달라져요?”라고 물었던 것이겠지. 이제 곧 마흔 살이 되는 후배에게 갓 마흔 살이 된 선배들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줬는데 1년이 지난 지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마흔 살이 된 첫 해에 나는 말머리마다 “내 나이 마흔에…”를 달고 살았고, ‘불혹간지’라는 별명도 얻었다. “마흔이 돼서 기뻐. 마흔이라니, 간지 나잖아!”라는 철없는 의기양양함에 대한 보답 같은 것이었다.1년이 지난 지금, 갓 마흔에 들어서는 후배가 그때의 나와 똑같은 질문을 내게 던진다면 난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신체적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는 건 맞다. 음식을 흘리는 것 외에 주량이 줄고 술 마시는 재미가 줄어드는 게 가장 현격한 변화다. 그 이외에는 그다지 변하는 게 없다. 내가 서른 살 때 그러했듯이, 내가 스무 살 때 그러했듯이. 또 10대 때 그러했듯이. 뒤돌아 생각하면 아득히 먼 얘기지만 시간은 20대, 30대, 40대를 겅중겅중 건너뛰는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천천히 흘러간다. 그 리고 변화는 미미하다.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내가 다른 만큼.물론 변화의 미미함은 집요해서 10대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굉장히 다를 것이다. 한때 나이를 먹는 것만이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듯 여겼던 적도 있었고, 또 한때는 “늙으면 죽어야지”를 되뇌는 할머니들만큼이나 한가롭고 절박하게 “서른이 되면 죽어야지”라며 중얼거렸던 적도 있었다.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는 게 대안이 될 수도 없고 해탈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언제 깨달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면과제들이 내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먼 훗날로 그리운 눈길을 돌려보는 건 사실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나이를 먹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돌이켜보면 나는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뀌는 것에 대해 마흔 살이 되기 전까지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10대에서 20대가 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20대가 되는 것보다 더 강력한 이벤트인 ‘대학 입학’이 바로 그 이전해에 있었던 까닭이다. 어른이 되는 것은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로 넘어가면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고등학생이 대학생으로 신분을 바꾸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된다는 건 기껏해야 술집에 당당하게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것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 사실 무슨 상관이랴. 10대든 20대든 간에 ‘꽃다운 나이’기는 마찬가진데.오히려 충격은 20대 초반에서 20대 후반으로 넘어갈 때 일어났다. 그때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잘 적응하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와 다르지 않다. 대학을 졸업한 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또다시 대학에 들어갔던 나로서는 허허벌판 사회에 톡 뱉어지기에는 2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너무 무거웠다. 그러니 20대가 된다는 게 큰 충격일 리 없었다. 이미 나의 30대는 어느 정도 사회에 자리를 잡았다는 여유가 슬슬 생겨날 때였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때까지 살 리 없다고 생각했던 나이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뿐이다.이렇게 ‘아홉수앓이’를 건너뛸 수 있었던 데는 미리 앓아준 선배들의 도움이 없었다고는 감히 말 못하겠다. 최영미 시인은 는 시집으로 서른이 되기 직전의 우리 심정을 대신 늘어놓아 주었다. 최승자 시인의 절박함은 또 어떠한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며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을 노래했다. 그렇다. 우리는 그녀의 말대로 “기쁘다 우리 철판 깔았네”라며 행복(?)하게 서른에 투항했더랬다. 사실, 미리 철판 깔고 살아온 세월 때문에 그 밑의 얼굴이 스무 살에서 서른 살로 바뀌는 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그리고 마흔이다. 심지어 아무도 노래해주지 않는 마흔 살이다. 얼마 전에 들은 얘기에 따르면 마흔을 뜻하는 ‘불혹’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유혹이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사실, 아무도 마흔 살이 된 여자는 유혹하지 않는다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요즘의 마흔은 예전과는 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동안은 이미 ‘트렌드’가 아니라 ‘대세’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젊은 날’도 주욱주욱 늘어난 것이다. 그런 만큼 내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느낌은 더 충격적이다. 얼굴, 마음가짐, 옷 입는 스타일, 남자에 대한 선호도, 어느 하나 변한 게 없는데 이제 “유혹 없는 나이”란다. 음식을 흘리는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좀 충격적이지 않은가?이제 갓 마흔이 되려는 후배들이 내게 마흔의 삶을 물어온다면 사실 해줄 말은 없다. 40대라는 시기의 딱 1년만 살았을 뿐이잖은가. 분명한 것은 그 1년이 내가 마흔이라는 걸 가장 잘 자각하고 있는 시기라는 것이다. 마흔 살의 나는 마흔두 살의 나보다 서른아홉 살의 나와 더 닮았겠지만 그래도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의 명료한 자각은 10년에 한 번 오는 소중한 기회다. 그래서 나는 아홉 수를 치열하게 앓지 못한 게 아쉽다. 앓을 만큼 앓고 나야 얻을 수 있는, 나이에 걸맞은 ‘연륜’. 그건 나이처럼 주는 것 없이 꼬박꼬박 찾아오는 게 아니지 않나. Words 박사(북칼럼니스트) *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