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다시 쓰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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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다시 쓰기

잦아지는 연말 술자리를 제쳐두고 혼자 연말을 보낼 만한 이유. '고독'의 진정한 의미와 기쁨을 찾을 때다.

성채은 BY 성채은 2022.12.22
 
거리에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캐럴과 장식, 수많은 사람을 뒤로한 채 집에서 홀로 보내는 연말을 상상해 보자. 처음 느껴지는 감정은 외로움일까? 편안함일까? 나는 소외감을 느끼며 외로워하는 편이었다. 지난 2년간의 팬데믹으로 거리 두기와 재택 근무가 반강제적으로 만든 칩거생활 속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꼈던 건 나만 혼자가 아니라는 감정에 기인한 것일 수도. 엔데믹을 맞아 순식간에 부활하는 각종 행사와 모임 앞에서 조금 당혹스러웠다. 다른 친구들은 어떨까? 서울로 올라와 동생과 산 지 4년째인 A는 감정을 공유할 수 없다는 점에서 혼자 하는 일이 답답하다고 했다. 혼자 영화를 본 경험이 딱 한 번이라는 A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느낀 행복을 나누기 위해 친구와 카톡을 주고받았다. 재택 근무가 장기화됐다면 동료와의 교감이 그리웠을 것이라며 자발적으로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을지도 모른다고. 또 다른 친구인 B는 나 홀로 여행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올여름에는 꼭 어딘가에 갈 것이라고 노래를 부르다가도 함께 갈 친구를 구하지 못하거나, 상대방의 사정으로 일정이 뒤틀어지면 모든 걸 조용히 포기하는 B를 가끔은 이해하지 못했다. C는 혼자 공연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말한다. 특히 페스티벌에 혼자 온 사람들을 보면 ‘대체 무슨 재미인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 그렇다면 혼자 있는 걸 어색해하는 사람은 그렇게 타고난 것일까? 이들에게 고독은 울적한 단어일 뿐일까? 그러나 〈명랑한 은둔자〉의 작가 캐롤라인 냅은 고독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돌볼 의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엘르〉 영국의 에디터 애니 서베어는 스스로 ‘즐거워지기’로 결심한 여성 중 하나다. 여섯 명의 형제자매와 조용할 날 없이 자라온 애니 서베어에게 고독은 항상 낯설었다. 고독에 관해 쓴 애니의 〈엘르〉 영국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팬데믹 이전에는 외로움을 친구들로 채웠다. 그러나 아버지의 퇴원과 봉쇄령으로 사회생활을 멈추면서 난생처음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게 됐고 슬픔과 죄의식, 분노, 그 사이의 모든 감정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궁금해졌다. 지금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에서 뒷걸음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삶이 어떻게 변할까?”라고.
 
애니가 글에서 언급한 심리학자이자 〈마음 챙김에 대한 리더의 가이드 The Leader’s Guide to Mindfulness〉의 저자 오드리 탕 박사의 말에 따르면 “외로움은 친구의 수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사람이 가득한 방이나 팔로어가 수천 명인 소셜 미디어에서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고독한 상태는 혼자 있을 때 만족을 느낀다는 점에서 외로움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애니가 가족과 친구 틈에서 살아왔음에도 외로움만큼은 예외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애니는 글에서 “재빨리 친구들과 관계를 쌓아갔기에 그저 사교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지, 혼자 있는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의문을 품어본 적 없다”고 했다. 이어서 탕 박사는 “나는 고독이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을 받았으면 좋겠다. 고독은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이 어떤 취미를 좋아하는지 재발견할 시간을 주고, 이런 휴식을 허용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탕 박사는 모임이 생기면 달력에 표시하는 것처럼 혼자 보내는 날도 달력에 표시하라고 권한다. 이렇게 사소한 행위를 통해 ‘내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관계가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인가? 어떤 친구가 나를 웃게 만들고 서로 응원하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이 시작되고, 대인관계를 새롭게 정의할 수도 있다는 것.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줄리아 베인브리지는 외로움에 따라붙는 부정적 의미에 이의를 제기하는 팟캐스트 〈외로운 시간 The Lonely Hour〉 운영자다.  애니 또한 애청하는 이 팟캐스트에 게스트로 초대된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외로움은 사람들에게 지금 향할 곳을 알려주는 이정표이자, 성장하도록 돕는 자양분이기도 하다. 줄리아는 “인간에게 고유한 감정인 외로움이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내 임무는 외로움을 ‘문제’라고 보는 사회적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팟캐스트를 통해 외로움이 얼마나 정상적인 건지 보여줄 수 있는지 궁금했다”고 말한다.
 
애니는 아버지의 장례식 준비와 엔데믹이 겹치면서 견디기 힘든 슬픔과 함께 커져가는 외로움을 겪었다. 이 시점에서 그는 ‘혼자 하기 두려워서 못할 것 같은 활동 리스트’를 꺼내들었다. 첫 번째는 혼자 영화 보기. 바쁜 친구들과 시간을 조율할 필요 없이 즉흥적으로 영화관에 갔다. 고향을 떠나 교외에서 혼자 휴가를 보냈고, 혼자 외식을 했다. 아무 계획도, 다른 사람의 기분을 고려할 필요도 없는 기쁨을 만끽했다. 이 여정의 마지막 순간에 애니는 근처에서 진행하는 공연의 티켓을 구입했다. 굳이 친한 사람들이 곁에 없어도 붐비는 공간에 혼자라는 게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를 느꼈고, 심지어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는 고독이 정신 건강과 행복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깨달았다. 항상 형제자매와 함께였던 10대와 친구들과 함께였던 20대를 지나 20대 후반에서야 혼자 깨닫게 된 느린 변화는 놀랍다. 이제 애니는 정확하게 안다. 무엇이 자신을 기쁘게 하는지, 나를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지. 결과적으로 그는 고독을 수용하게 되면서 더 주도적이고 자율적인 사람이 됐다. 애니의 삶에서 내가 보이는 것 같았다. 친구들과 무리 지어 다니는 게 익숙했던 학창시절을 지나 사회초년생으로 거듭나면서 바쁜 친구들과 약속을 조율하는 대신 혼자 움직이는 일이 익숙해졌고, 팬데믹으로 인한 거리 두기는 이런 나의  ‘자발적 고립’을 부추겼다. 이제는 메뉴판을 놓고 둘이 만족할 만한 음식을 고르는 것보다 나를 위한 한 끼를 정성스럽게 차리는 것이 더 즐겁다. 간혹 요리조차 힘든 날에는 혼자 먹기 좋은 바 테이블이 있는 식당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혼밥’ ‘혼술’ 등은 이제 익숙한 단어가 됐지만 혼자 하는 행위를 새롭게 명명하는 것은 오히려 혼자인 사람이 유별나다는 사회적 시선을 반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시시각각 전해지는 소식은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착각을 선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진정한 성찰을 방해한다. 공연이나 캠핑처럼 꼭 누군가와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을 혼자서 불쑥 시도해 보는 건 애니의 경험처럼 인생을 뒤바꿀 만한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연초에 세웠던 계획과 올해에 이룬 일들을 정리하고, 자신을 칭찬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다행히 친구들과 함께 시도해 보고 싶은 방법을 덴마크의 유명 심리상담가 일자 샌드의 저서 〈센서티브〉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일자 샌드는 몸에 유익한 활동을 하라고 조언한다. 가벼운 스트레칭과 족욕, 양초를 켜고 음악을 들으며 하는 마사지…. 외부 자극을 최소화하고 혼자 했을 때 오히려 내면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도 좋다. 멀리 떠날 수 없다면 집이나 근처 카페에서 화분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림을 그리거나 꽃꽂이를 배우며 창의력을 표출하는 일은 일상에 활력을 더한다. 올해를 돌아보는 일기를 쓰거나, 고마운 사람에게 카드를 써보는 건 어떨까? 반복되는 업무로 몸의 감각을 느낄 틈이 없다면 아로마 램프 혹은 따뜻한 햇빛으로 오감을 되살려보자. 마음 챙김 명상을 하거나 생각이 흘러가도록 뇌를 쉬게 하는 것도 좋겠다. 고독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은 이뿐 아니다. 미국 로체스터 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단지 혼자 있는 것만으로도 분노와 들뜸, 슬픔 같은 감정이 줄어들고 마음이 평온해지며 스트레스가 감소한다고 한다. 차분한 고독 속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가오는 2023년을 평화롭게 맞이해 보자. 그 어떤 타인도 아닌, 나와 가장 가까워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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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성채은
    일러스트레이터 규하나
    번역 UNJ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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