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여객선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 〈나일 강의 죽음〉에서 맡은 재클린 드 벨포르(이하 ‘재키’)는 어떤 인물인가
극 중 등장인물인 리넷(갤 가돗)의 친구이자 리넷의 남편 사이먼(아미 해머)의 약혼자였던 재키는 자신감 넘치는 여성이지만 연약하고 상처받은 모습도 보여준다. 감독이자 극중에서 명탐정 에르큘 푸아로로 출연하는 케네스 브래너는 재키가 재치 있는 성격이기를 원했다. 질투보다 회복탄력성과 강인함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복잡한 캐릭터인데 연기하면서 제대로 된 도전처럼 느껴져 완전히 빠져들었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의 메이브와는 전혀 다른 시대의 인물인 재키를 연기하는 것은 어땠나
캐릭터의 배경을 생각해 보라는 감독의 조언을 따랐다. 이 작업을 통해 어떤 장면이든 캐릭터의 생각과 목표, 의도를 확고하게 알고 연기할 수 있었다. 어두운 스튜디오에서 5분간의 명상 지도를 통해 다들 비슷한 감정 상태로 맞추고 심호흡을 한 뒤 전체 리딩을 시작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어진 듯한 특별한 순간이어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또 보이스 레슨을 받으면서 목소리를 다르게 사용하는 법도 배웠다.
리넷 역할인 갤 가돗과 촬영이 시작되기 전 3주 동안 일주일에 3회씩 댄스 리허설을 했다. 관능적이고 욕망으로 가득한 면을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 춤추는 장면뿐이어서 무척 중요한 시간이었다. 춤의 기술적인 부분에 자신이 붙고 나서부터 재미있어졌다.
케네스 브래너, 〈원더 우먼〉으로 유명한 갤 가돗, 아네트 베닝 등 화려한 출연진 사이에서 주눅 들지는 않았는지
대본 리딩을 할 때는 압도되기도 하고 무서웠지만, 사실 처음에는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걸 알았기에 오래가지는 않았다. 머릿속의 장애물이 사라지니 다른 배우들을 대하기가 편해졌고, 따뜻하게 서로 환영하는 분위기가 됐다.
요즘은 특수효과를 합성하기 위한 그린 스크린 촬영이 많다 보니 세트를 만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제작진이 직접 만든 세트를 보고 정말 감탄했다. 증기선 카르낙호 세트에 처음 들어가는 순간 너무나 웅장해서 곧바로 눈물이 나왔다.
영화 〈레미제라블〉, 〈대니쉬 걸〉, 〈캣츠〉에서 의상을 맡은 디자이너 파코 델가도의 옷도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재키의 의상을 입으니 자신감이 커지고 주도권이 생긴 기분이었다. 나를 위해 내 몸에 딱 맞게 만들어진 옷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이라서 황홀했다.
배우, 영화감독, 영화 프로듀서, 각본가로도 맹활약하는 그의 능력은 정말로 존경스럽다. 그는 배우들이 편안해질 수 있도록 토요일마다 스태프들과 모든 장면의 동선을 파악하는 리허설을 했고, 캐릭터의 행동 의도에 관해서도 토론했다. 사건이 진행되는 순서대로 따라가는 촬영 방식에서도 안정감을 느꼈다.
〈나일 강의 죽음〉은 한국에서 2월 9일에 개봉한다.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이 영화가 꼭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경험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