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한살 더 먹을 뿐인데 왜 30살은 29살과 다를까? #엘르보이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그냥 한살 더 먹을 뿐인데 왜 30살은 29살과 다를까? #엘르보이스

나잇값이라는 말이 '훅' 와닿았다. 젊어서 슬픈 ADHD, #정지음 작가의 솔직한 나이고발.

이마루 BY 이마루 2022.01.20

서른 판타지

 
너도 이제 ○○ 살인데 정신 차려야지.
 
나는 또래보다 철딱서니가 없어 이 말을 매년 들으면서 자랐다. 20, 25, 27, 28…29세까지는 괜찮았다. 진짜로 정신을 차리는 것보다 정신 차리라는 말이 주는 스트레스를 감내하는 게 더 쉬웠다. 그러나 30은 달랐다. “너도 이제 서른인데 정신 차려야지”는 “너도 이제 스물아홉인데 정신 차려야지”보다 훨씬 타격감이 컸다.
 
나는 겸손한 척하면서 겸손 아닌 이유로 자주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대책 없는 자신이 비렁뱅이 같고 창피했다. 그동안 어린 나이로 얼버무려온 여러 가지 격차가 점차 분명해지고 있었다.
 
서른이지만 아무것도 아닌 나. 서른밖에 안 됐는데 이미 무언가가 돼 있는 사람들.
 
우린 종이비행기와 우주 로켓처럼 생애 추진력이 달랐다. 끝도 없이 비교하다 보면 내가 자산과 커리어, (정신)건강, 인맥 등의 장르에서 골고루 비루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패배였고, 내 처지의 범인이 바로 나임을 깨닫는 굴욕스러운 과정이기도 했다.
 
공자가 말하길 30세란 곧 ‘이립(而立)’이다. 마음이 확고하여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 나는 그 사람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데도 스물여덟 살부터 이립이란 단어를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들 조금도 확고해지지 않을 내 모습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층 더 부도덕하고 부산스러운 서른이 됨으로써 마침내 자기예언을 이뤘다. 부모님이 나를 종종 떠보면서도 안심하지 못하는 걸 보면 밖으로도 어설픈 티가 다 나는 것 같았다.
 
“너 혹시 사고 친 거 있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해. 안 혼낼 테니까!” “무슨 소리, 나는 일단 결백해! 앞날은 새카맣지만.” “진짜 문제없는 거지? 정말이지?” “우웅.” “너 돈은 얼마나 있어?” “몰라. 한 십에서 십오만 원.” “그게 어떻게 문제가 없는 거니. 아우, 정말 너 때문에(이하 생략)….” 나는 입이 작고 볼살이 통통해 뭘 말해도 웅얼거리는 것 같고, 이 점이 다시 부모님께 불신을 드린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버릇도, 통장 잔고도 시정되지는 않는다.
 
그런 내가 〈젊은 ADHD의 슬픔〉이라는 생애 첫 책을 펴낸 후 갑자기 여기저기서 정중한 대우를 받게 됐다. 책을 내긴 했어도 작가라는 호칭은 아직 어리둥절한데, 동갑인 1992년생 독자들의 고민 상담 메시지가 이어졌다. 그들 중 상당수가 작가님에 비해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며 슬퍼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동된 SNS 계정을 눌러보면 이미 나보다 훌륭히 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오히려 어떤 분께는 인생 알차게 사는 꿀팁을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확실히 서른에는 요상한 마력이 있는 모양이다. 그저 30세를 달성했을 뿐인데, 각자 대단하고 고유한 우리 중에서 충만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서른에 공격받는 선량한 이들을 떠올리다 보면 결국 그들의 가치보다 서른의 가치를 의심하게 된다. 서른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 애초에 나이 자체가 사회적 합의의 탈을 쓴 사회적 판타지는 아닌지. 곰곰이 따져볼수록 역시 모든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내가 설계한 환상도 아니기에 매력도 없었다.
작은 고난에도 쉽게 꼬마가 되는 나는 서른이 어른이라는 데 동의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내 생각에 서른이란 그저 3과 0이 갑작스레 한편을 먹고 내게 민망을 세뇌하는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서른에 당당하긴 어렵고, 수치심에 사로잡히긴 쉽다. 때로는 서른에 부과된 의무가 오히려 서른의 묘미를 망치는구나 싶기도 하다. 서른이 보장하는 것은 겨우 서른하나뿐일진대 어차피 올 순간들이 두려워 손톱만 씹게 되니 말이다.
 
서른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내가 겁이 많아 오히려 무리수를 둔다는 것도 알았다. 내게는 불안할 때마다 인생을 다 아는 척하는 습관이 있었다. 어떤 나쁜 일이 닥쳐올지 전부 안다고 소리쳐두면, 스포일러에 김이 샌 불행이 나를 포기하리란 계산이었다. 그러나 사실 아는 바가 없다. 나는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에 따라 그저 신명 나게 덜그럭거릴 뿐이었다. 이런 방법은 파이팅이 넘쳐 보여도 나약하고 조악한 처세라 오히려 불행의 먹잇감이 되곤 한다. 따지고 보면 나의 얼룩진 1년이 그 증명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부터 서른을 평가하지 않으려 한다. 후회한다거나 후회하지 않는다거나, 좋았다거나 나빴다는 식의 감상도 덧붙이지 않고 넘어간다. 혹여 칭찬만 허용하더라도 그것 또한 다그침이 될 것이기에 차라리 전부 멈추는 것이다. 2021년을 미리 종료한 채 2022년으로 넘어가는 중이란 생각이 든다. 조금 더 가뿐한 심정이 마음에 든다.
 
정지음 싫은 것들을 사랑하려고 글을 쓴다. 25세에 ADHD 진단을 받은 이후 질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1992년생. 〈젊은 ADHD의 슬픔〉으로 8회 브런치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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