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낫서른〉 〈마녀식당으로 오세요〉 그리고 〈구경이〉의 산타까지. 연기자 데뷔와 동시에 2021년을 달렸습니다
잘 달린 걸까요?(웃음). 너무 신인이기 때문에 달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열심히는 했지만요.
모델로 먼저 데뷔했죠. 배우라는 호칭과는 조금 친해졌나요
정말 조금씩, 천천히 친해지고 있어요. 퍼센트로 표현하면 15% 정도라 할까요. 너무 낮은 수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괜찮아요. 이 퍼센티지는 계속 늘어날 테니까요.
수트는 Raf Simons by G.Street 494 Homme. 셔츠는 Maison Margiela.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구경이〉 이야기를 할 때 많은 사람이 “거기 귀여운 애 나오더라”라고 하더군요. 이처럼 신인에게는 직관적인 이미지도 중요해요. 스스로 생각하는 장점은
제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러운데…. 눈이요. 초롱초롱 순한 동물의 눈 같다는 말을 들어요.
학교폭력 가해자 고현우 역할을 맡았던 〈마녀식당으로 오세요〉에서는 눈빛이 또 달라지던걸요
악역도 잘해낼 수 있겠다고, 눈빛이 바뀌는 게 장점이라고 느꼈던 적은 없어요. 현우를 연기하는 제 모습이 정말 낯설었거든요. 잘해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산타는 종종 ‘구경이(이영애)의 키링남’이라고 묘사됩니다. 원래 알고 있던 단어인가요
아뇨, 몰랐어요. 그렇게 불리길래 무슨 의미인지 찾아봤는데 ‘주머니에 넣고 다닐 만큼 귀여운 남자애’라는 뜻이더군요. 산타라는 캐릭터를 그렇게 이해하고 또 좋아해주는 거니까 고마운 일이죠. 사실 〈구경이〉에 대한 건 뭐든지 다 좋아요.
〈구경이〉의 세계관에서 산타가 목소리 대신 AI 음성으로 말하는 데 캐릭터들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아요. 연기하는 입장에서 이런 설정이 어땠나요
저도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간병인 시절 마음의 상처 때문에 말을 하지 않게 됐다는 설정 외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죠. “산타는 대사가 거의 없고, 그래서 힘들 수 있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라”던 첫 미팅 때 감독님의 말씀을 믿고 갔어요.
대사가 없는 역할이 신인 배우에게 오히려 장점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어려웠어요. 마임을 배워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고, 동작을 조금 더 크고 확실하게 표현하며 방법을 찾아갔죠. 항상 주변을 청소하거나 화초에 물을 주고, 구경이 머리에 드라이 샴푸를 뿌려주는 등 산타의 세심한 행동 묘사를 통해 주변을 챙기는 데 익숙한 산타의 성격을 전하려고 했어요.
1999년생이잖아요. 처음 접한 이영애 배우의 작품은
어릴 때 아버지와 〈대장금〉을 같이 본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이영애 선배님을 항상 좋아하셨어요. 광고 속 모습만 봐도 “정말 예쁘다” “너무 우아하다”며 감탄하시곤 했죠.
구경이와 산타는 기본적으로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사이예요. 실제로 게임 팀원의 동지애를 경험한 적 있는지
그런 끈끈한 감정을 느끼기에는 제가 게임을 너무 못해서…. ‘리그 오브 레전드’를 했는데 제대로 못하면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는 게임이에요. ‘멘탈’에 좋지 않죠. 이제 게임은 더 안해요. 일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오면서 나태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그만뒀어요.
니트는 Marni by Yoox.com. 네크리스는 Raf Simons. 네크리스는 Bulletto.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축구와 농구를 즐겨 했어요.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20cm 넘게 크는 바람에 고등학교 입학할 때 친구들이 깜짝 놀랐죠. 그리고 뷔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당시 팀장님께 많이 혼났던 게 기억나요. 제가 일을 못했나 봐요(웃음). 칭찬을 받았으면 더 잘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구경이〉 촬영장에서는 칭찬을 많이 받았나요(웃음)
그럼요.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나이 차이가 덜 나는 김혜준 선배뿐 아니라 다른 선배님들도 정말 편하게 대해주셨죠. 자신감이 없다가도 “잘했어 산타”라는 한 마디에 안심과 기쁨이 찾아오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감사하게도요.
각기 다른 작품과 역할을 통해 매 순간 다른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자꾸 생기더라고요. 그때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서서 뭔가를 하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일하면서 내성적인 면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도 싫지 않았고요. 연기 폭이 넓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노력해야죠.
영화 〈내 사랑〉이요. 캐나다 화가 모드 루이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인데, 몸이 불편한 여주인공 모드(샐리 호킨스)가 괴팍한 어부 에버렛(에던 호크)과 결혼하고 함께 살아가죠. 마음이 울컥하는 지점이 곳곳에 있어서 자꾸 보게 돼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혼자 끙끙 앓으면서 좋은 면을 보려고 노력하죠. 지금까지는 혼자 해소할 만했지만 쌓아두면 악화될 수 있으니 가까운 사람에게는 털어놓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청소하거나 집 구조를 조금씩 바꾸면서 소소하게 풀기도 하고요.
배우로서 어떤 것을 지키고 싶나요. ‘초심’일 수도 있겠네요
초심에 대해 말하는 게 어색할 정도로 너무 신인인데요(웃음). 잔꾀 부리지 않고 항상 노력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과장해서 말하고 싶지 않은데, 사실 노력한다는 건 자신만 아는 거잖아요. 그래도 배우로서 노력한다는 건 시청자나 관객들이 알아볼 것 같다고 생각해요.
6월부터 촬영을 시작해 반년 가까이 함께했기에 이전 작품과는 다른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직 기분이 좀 이상하지만 산타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곧 또 다른 작품으로 인사드려야죠. ‘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 사람이 하고자 하는 뜻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라는 뜻인데요. 제가 열심히 노력하면 결과는 따라 온다는 의미 같아서 늘 마음에 품고 삽니다.
만약 ‘케이’(김혜준)처럼 자신의 기준으로 나쁜 인간을 처벌하는 인물이 실재한다면? 백성철은 그런 히어로를 기대할까요
음…. 살인은 극단적이지만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살짝 혼내 주는 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요. 저는 ‘구경이’ 편에 설래요. 산타는 구경이 바라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