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집에 이사온 지 두 달 정도 됐어요. 이사 후 지금까지 정신없이 일만 하느라 새 집에서 전혀 시간을 즐기지 못했어요. 이제야 하나 둘씩 기억 나요. ‘여긴 이런 이유로 창문을 만들었지’ ‘이것 때문에 이런 바닥재를 골랐지….’ 사진 찍으며 혼자서 좀 중얼거렸네요.
방 문틈에 보이는 침대 끝부분을 찍고 있는데, 익숙한 발바닥 하나가 ‘슥’ 등장한 장면이요.
서울 신당동입니다. ‘노인보호구역’이라는 팻말이 있을 정도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동네예요. 집 옆의 성곽은 이곳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죠. 단단하고 오래된 것이 언제나 집 옆에 보인다는 게 꽤 아늑한 기분을 줘요.
처음 여자친구와 함께 살 공간을 찾기 시작했을 땐 아파트를 봤어요. 여러모로 이점이 많다고 생각해서요. 그런데 알아볼수록 나다운 공간에 대한 애정이 커졌어요. 마침 이곳을 발견했어요. 두 가지가 마음에 들었어요. 편한 옥상, 따뜻한 실내. 오래된 주택을 처음 봤을 땐 이게 대체 무엇인가 싶었습니다. 예쁜 걸 볼 줄만 알았지 아름답게 만드는 과정은 전혀 몰라서 막막했어요. 제 사수인 사진가 홍장현을 통해 건축가를 소개받아 전체적으로 다시 단장했어요.
자신과 잘 맞는 집으로 만들기 위해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일단 이 집은 굉장히 불편해요. 매일 수십 번씩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거든요. 그런데 전에 제가 살던 집과는 다르게 ‘살아 있는’ 느낌이 들어요. 계단을 오르내리다 한 번씩 위를 보면 하늘에 있는 창문의 풍경이 바뀌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성곽의 색감도 매일 변해요. 나에게 맞춘 듯 편한 집보다 편하지 않더라도 나와 함께 살아가는 집이 되길 원했어요. 오히려 불편할 수 있는 요소들을 넣었죠. 거실의 단차처럼요. 이 집은 뭔가 계속 신경 쓰여요. 그렇게 점점 애정이 생기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거나 특별하게 여기는 장소는
처음 이 집을 계획하면서 저희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해 봤어요. 저나 여자친구나 하루 중 잠자는 시간 외에는 방에 머물지 않더라고요.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내도 불편하지 않은 성격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이 집에는 방이 한 개뿐이에요. 모든 공간이 문 없이 트여 있어요. 딱 한 곳, 저만의 공간이 있죠. 작은 책상을 놓은 한 평도 안 되는 자리가 있어요. 집에 있는 시간의 80%는 그곳에서 보낸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요.
사진가로서의 감각이나 취향이 반영된 부분도 있나요
저와 같이 사는 사람의 취향이 그냥 섞여 있는 집이에요. 특별할 것 없는 가구와 오브제가 모여 있고요. 단지 집 같은 집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손을 많이 타는 편한 물건들 위주로 두려 했고요. 집착한 건 넉넉한 수납공간이요. 언제나 깨끗하게 유지하려고요. 공기 순환을 위해 곳곳에 작은 창을 냈어요.
집에서 만족감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사적인 장치는
욕조입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반신욕을 즐기는 편인데 전에 살던 집에는 욕조가 없었거든요. 언젠가부터 편안한 욕실이 무척 중요해져서 잘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욕실에 창문을 만들었죠.
집이 때로는 일터이기도 한가요? 홈 오피스에 실현된 서재의 로망이 있다면
딱 지금 상태가 좋아요. 일할 수 있는 책상이 있고, 냉장고가 바로 옆에 있거든요.
일상의 감각을 충족시키기 위해 집 곳곳에 얹은 디테일은
향 피우기를 좋아해요. 구옥을 리모델링할 때 모든 창틀에 20cm 정도의 폭을 두어 달라고 했죠. 그곳에 향도 놓고 작은 조각도 놓습니다. 개인적으로 낮에 직사광선이 곧장 들어오는 건 편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창을 반사광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냈어요.
당신이 진정으로 쉴 수 있는 공간에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적당하게 통하는 바람과, 크게 음악을 틀 수 있는 공간이요. 이 집이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