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저트 코스나 페어링은 선택하는 음료에 따라 어울리는 디저트를 단계별로 제안하는 형식이다. 이때 바에서 코스 혹은 페어링의 형식으로 판매되는 디저트는 그다지 달지 않다. 쌉싸래한 커피뿐 아니라 다채로운 풍미의 음료와 합을 맞추거나, 한자리에서 여러 디저트를 순차적으로 맛봐야 하기 때문에 마냥 달다면 합이 깨지거나 물리기 마련. 어떤 디저트 메뉴들은 애피타이저를 연상시킬 정도로 상큼해 입맛을 돋우며, 어떤 메뉴는 메인 디시처럼 감치고 복합적이며 묵직하다. 이미 완성형인 디저트를 쇼케이스에서 꺼내는 종류가 있는가 하면 주문과 동시에 후반 작업을 거쳐 즉석에서 완성하는 디저트도 생겼다. 전자를 쇼케이스 디저트, 후자를 플레이트 디저트라고 부른다. 파티시에가 새하얀 그릇을 즉흥적으로 채우는 플레이트 디저트는 주로 파인다이닝에서 활용하는 방식이다. 물론 쇼케이스 디저트들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눈앞에서 셰프의 마지막 터치를 감상할 수 있는 플레이트 디저트가 더 특별한 요리를 대접받은 듯한 기분을 안긴다.
파인다이닝이나 호텔, 카페 디올 등에서나 접하던 플레이트 디저트를 일반 카페에서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2016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이 발간되고 이에 힘입어 서울의 파인다이닝 시장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면서부터다. 파인다이닝이 많이 생겨나며 국내 파티시에들이 플레이트 디저트를 다룰 기회가 그만큼 늘어난 것. 실제로 지금 서울에서 완성도 높은 플레이트 디저트를 선보이는 디저트 카페 중에는 파인다이닝 출신의 파티세리 셰프가 운영하는 곳이 많다. 신사동의 디저트 바 ‘핀즈’ 셰프는 ‘밍글스’, 서초동의 디저트 카페 ‘10월19일’ 셰프는 ‘권숙수’, 연희동의 디저트 전문점 ‘재인’ 셰프는 ‘정식당’ 출신이다. 정식당은 아예 같은 건물에 ‘정식 카페’를 열고 보다 캐주얼한 디저트를 선보인 지 오래다.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고가의 파인다이닝을 찾지 않아도 수준 높은 디저트를 맛볼 수 있으니 반길 일이다.
한편 전혀 다른 분야에 속한 기업들이 디저트 사업에 뛰어든 것도 이색적인 결과를 낳았다. “먹는 것도 패션”이라고 선언한 패션 브랜드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 몬스터’가 선보인 디저트 브랜드 ‘누데이크’는 기존의 디저트가 지녀온 형태적 전형에서 완전히 벗어난 파격적인 비주얼로 눈길을 끈다. 패션 &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아더에러’가 론칭한 ‘텅플래닛’의 혓바닥 쿠키와 이모지 케이크도 특유의 모양으로 시선을 붙든다. 그런가 하면 외식 브랜드 GFFG가 운영하는 도넛 브랜드 ‘노티드’의 디저트는 누데이크나 텅플래닛처럼 기이한 비주얼이 아니지만 수년간 꾸준히 팬덤을 모으며 오픈 런 행렬을 이끌어왔다. 프랑스 퓌레 제조사 브와롱코리아 우재연 총괄은 그 저력의 원천을 신선한 컨셉트와 실력 있는 셰프의 조합에서 찾는다.
“디저트는 가격 저항력이 낮고 그 자체로 눈길을 끕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지향점을 담은 공간으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유입하기 좋은 아이템이죠. 많은 브랜드가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정체성을 소비자에게 성공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디저트 사업에 욕심을 냈어요.” 우 총괄은 지금 서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브랜드로 신세계그룹의 ‘유니버스 바이 제이릴라’를 손꼽는다. “화성에서 온 고릴라가 우연히 자신과 외모가 닮은 정용진 부회장을 만난 후 친밀감을 가지고 따라다니다가 빵집을 차린다는 스토리가 화제예요. 사실 스토리 자체는 다소 유치하지만, 그럼에도 ‘부캐’가 워낙 유행이고 정 부회장이 젊은 세대에게 인지도가 높아 오픈과 동시에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브랜드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 스토리를 찾아보고 굿즈를 모으는 소비 행태를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파인다이닝 출신의 파티시에가 거리로 쏟아지며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맛보던 플레이트 디저트를 카페와 바에서 즐길 수 있고 새로운 기업과 인력이 유입되면서 무경계의 컨셉추얼한 디저트들이 등장하는 지금, 서울의 디저트 신은 다이내믹한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