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도 괜찮다고? 진심이야? #엘르보이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혼자여도 괜찮다고? 진심이야? #엘르보이스

나를 완전하게 채워줄 누군가가 등장하길 바라며 평생을 결핍감 속에 사는 것보다는 혼자, 성큼성큼 나아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이마루 BY 이마루 2021.12.10
 

나를 찾아줘

2020년 2월, 세상에 나온 내 첫 책은 순정만화에 대한 이야기다. 좋아하는 한 가지를 통해 구축된 내 세계를 설명하는 에세이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순정만화가 어떻게 나라는 사람을 일궈냈는지 써 내려간 이 책은 기특하게도 그리고 귀엽게도 3쇄를 찍어냈다! 그리고 ‘쇄’를 새롭게 찍어내 내용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올 때마다 가장 버스럭거린 문단이 있다. 바로 사랑과 미래에 대해 써 내려간 다음의 내용이다.
 
‘믿음직한 동행을 찾았다면 운이 좋은 것. 하지만 나를 완전하게 채워줄 누군가가 등장하길 바라며 평생을 결핍감 속에 사는 것보다는 혼자, 성큼성큼 나아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때로는 푹푹 발목까지 빠지는 모래밭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을 때도 있겠지만 나는 혼자가 되더라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알려준 감정들이 나를 자라게 했으니.’
 
하필이면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라고 꼽아준 부분이기에 고백하긴 멋쩍지만. 사실은 책을 쓰는 도중에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이별하며 새롭게 추가한 문단에 불과한 이 표현에 대해 나는 쓰고 나서도 영 자신이 없었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진심이야? 그럴 수 있어?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은 내게는 항상 꿔온 꿈이자 당연한 미래였다. 친구들이 좋아하던 드라마 속 실장님이나 ‘츤데레’ 재벌 남주는 먼 나라 이야기였지만 ‘마음은 분명 액체일 거야. 넘쳐나니까’ ‘그러나 그 순간 우리에게 분명히 영원은 있었다’ 같은 만화 속 대사에 담긴 감정은, 내게도 충분히 할당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열심히, 부지런히, 떠들썩하게 연애를 했다. 연애의 좋고도 기발한 점은 내가 좋아할 수 있고 나를 좋아하는 단 한 명만 찾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오직 그 한 명을 찾을 확률을 늘리기 위해 소개팅도, 헌팅 포차도, 초창기 시절의 소개팅 앱도 가리지 않았다. 로맨틱한 감정을 포기하는 것은 과거의 나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쓰고도 불확실했던 문장에 대한 확신과 사고의 전환은 뜻밖에도 올해 초 진행했던 한 인터뷰 중에 찾아왔다. 아주 오랫동안 좋아하고 응원해 온 배우를 처음 만난 자리였다. 그가 출연했던 작품의 주제와 관련해 던진 “소울메이트의 존재를 기대하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즉답했다. “저는 그런 기대는 안 합니다” “그런 존재가 있다면 좋겠지만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라고. 책 원고를 마무리하던 1년 전 소강 상태였던 관계는 마침 그 인터뷰 즈음에 또 다른 형태로 부활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내 나이 36세. 누군가의 말에 이토록 큰 영향력을 받았다는 것이 다소 부끄럽지만 그의 말은 정말 위로가 됐다. 이토록 멋진, 삶의 다른 영역에서는 확고하게 행복과 만족을 말하는 사람도 포기하는 게 있다는 것.
 
관계가 완전히 끝난 건 그 후로 몇 달의 시간이 더 지난 뒤였고, 관성적으로 소개팅 앱을 설치해 만남을 도모했으나 확실히 뭔가 달랐다. 로맨틱한 관계에 대한 기대도, 성욕도, 관계 확장에 대한 의욕도 말끔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지난 이별에 상처받아 연애에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스무 살 때부터 봐왔던 사람도 나를 그 따위로 대했는데 제가 누구를 또 믿겠습니까!?’ 하고 비련의 주인공인 척할까 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과거의 연인이 나라는 인격에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았다.
 
나를 차지하던 큰 부분을 포기하고 난 뒤, 비로소 나의 다른 부분에 관심이 생겼다. 인터뷰로 만난 수많은 사람을 위해 쌓아둔, 정작 내게는 던져본 적 없는 수많은 질문의 물음표를 내게 던지는 것부터 시작해 처음으로 정신신경의학과를 찾았다. 표면적인 상담 내용은 수면 장애였지만 약 처방을 위해 기본적인 테스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항상 나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으므로 내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사춘기적 퇴행으로 여겼는데, 막상 심리학 서적과 전문의의 영상을 찾아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1:1 관계에 대한 관심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확장하니 내 이기적인 부분과 별로인 점들이 보였고, 사람들이 나를 어떤 부분에서는 관대하게 견뎌주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 외에도 전문의들이 추천한다는 5기질 테스트를 해본다거나, 성인 ADHD 검사를 받아보거나, 서점에서 ‘죽음에 관한 100가지 질문’ 같은 책을 사서 보거나…. 꽤 전문적으로 말했지만 실제로는 MBTI 관련 유튜브 영상과 철학관 사주팔자, 만세력 분석에서 나온 일주 혹은 월주 블로그를 검색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음을 고백한다. 그래도 MBTI 검사 사이트에서 추가 데이터 확인을 위해 40달러를 유료 결제한 사람은 많지 않을 테고, 그건 꽤 전문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2021년. 나는 오랫동안 중요하다고 여겨오던 정체성 중 하나인 ‘사랑꾼’을 삭제하기로 했다. 앞으로 살아가는 한 내가 계속 잘 지내야 할 대상은 나 하나뿐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돌아본 나는 생각보다 특별하지도 ‘쿨’하지도 않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가진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생각보다 꾸준히 노력해 온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와 잘 지내보려고 한다. 인생은 나이가 흐를수록 또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는,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사람들의 말에 기대어.
 
이마루 〈엘르〉 피처 에디터. 지방 도시 출신으로, 세상이 말하는 수도권 기준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풍경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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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마루
    디자인 이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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