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실히 이탈리아 여자들은 살이 찌고 있다. 내가 처음 이탈리아에 발을 들여놓았던 10여 년 전에 살찐 젊은 여자를 보는 건 꽤 드문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여자들의 몸만 훑어보고 다니는 속물은 아니다. 백패커 같은 피곤한 여행자들조차 별로 어렵지 않게 이탈리아 여자들의 피하지방량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열하는 지중해 태양 아래, 어떻게든 그 아름다운 몸을 드러내려는 여자들이 많은 까닭이다. 이탈리아 패션 디자이너들은 고맙게도 옷이란 모름지기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드러내기 용도로 쓰는 것이라고 믿는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이다. 요즘엔 한국에서조차 젖가슴의 일부를 보여주는 게 별로 요란하지도 않은 패션이 되었지만, 10여 년 전에 파격적인 디자인을 일상에 끌어들인 건 이탈리아 여자들이었다. 남자들이란 젖 떼고 나서도 여전히 여자들의 가슴골에 머리를 처박고 싶어 한다는 걸 일찍이 깨우친 멋진 여자들이다. 왜 아니겠는가. 그 바람둥이 이탈리아 남자들의 상대가 누구인지 곰곰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시뇨라’라고 부르는 아줌마들의 비만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젊은 아가씨들이 살이 찌는 건 이 사회에서도 용납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거리에는 온통 ‘살을 빼세요’라고 유혹하는 약품 광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사족인데, ‘옥외 광고’라고 부르는 거리 광고판은 이탈리아가 얼마나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나라인지 알게 해준다. 전후의 영화 <자전거도둑>에서 주인공은 거리에서 종이 광고 붙이는 일을 한다. 그런데 이게 아직도 이탈리아 거리 광고의 핵심이다. 한국에서는 그 자리를 번쩍이는 전광판이 차지했지만, 이탈리아는 여전히 뽀빠이 작업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풀칠을 하는 나무 광고판이 대부분이다. 고색창연한 로마시대나 르네상스의 건축물과 전자 광고판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까. 어쨌든 어제 붙었던 ‘프로슈토 햄 30% 할인’을 알리는 슈퍼마켓 광고 위로 오늘은 ‘베를루스코니에게 투표하세요’라는 정치 선전물이 덕지덕지 도배되는 아날로그 종이 광고가 묘한 매력을 던져주는 건 확실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다(물론 축구나 섹스에 비하면 어림도 없지만). 그래서 여자들의 비만에 대한 연구와 보도도 꽤 많이 쏟아진다. 간혹 엉뚱한 보도도 만나게 된다. 중국 식당에 그 화살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선진국 중에서 외국 식당이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다. 외국 음식을 파는 식당은 대개 관광객이 즐겨 가는 곳으로 치부된다. 입맛이 워낙 보수적이기도 하고, 이탈리아 음식만큼은 충분히 맛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 식당만은 좀 예외다. 이탈리아의 중국 식당은 중국인을 손님으로 삼지 않고 이탈리아인들이 지갑을 여는 드문 외국 식당이다. 특히 중식당에서 파는 튀긴 음식들은 이탈리아인들을 열광케 하는데, 춘권을 여성 비만의 원흉으로 모는 기사도 있었다. 굳이 <금발이 너무해>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금발이야말로 전 세계 여자들의, 아니 남자들의 로망이다. 블론디는 적당히 백치미가 있으며,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이 화룡점정을 하는 꼴이다. 남자들이 왜 그렇게 금발에 열광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마릴린 먼로나 마돈나가 흑발이었다면 그처럼 뭇 남성들의 로망이었겠는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염색약은 그래서 당연히 금색이다. 미국 금발 여자들의 3분의 1이 염색이라는 통계가 꽤 의미심장하다. 금발 백인 여자는 빼고 더할 것 없는 가장 완벽한 외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니, 남자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해야 옳다. 당연히 이탈리아 여자들이 빠질 수 없다. 슈퍼마켓의 염색약 코너는 온통 금색 천지다. 금색도 꽤 다양한 변주가 있다는 걸 슈퍼마켓에 가보면 안다. 지푸라기처럼 푸른빛이 도는 색, 물 빠진 것처럼 투명에 가까운 금색, 레몬 껍질 같은 선명한 노란색, 그야말로 24K 황금색, 구릿빛이 섞인 18K 금색까지 다양하기 그지없다. 금발을 휘날리는 이탈리아 여자들 중 최소한 7할은 염색인 게 분명한데, 그건 내 나름대로의 계산법이 있다. 거리에서 이탈리아 남자들을 한번 살펴보라. 금발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신은 유전적으로 남녀 구별 없는 머리카락 색을 주셨을 테니, 계산은 꽤 명료해진다. 금발 염색이 치명적인 것은, 금세 솟는 흑발 때문이라는 건 해본 사람은 다 안다. 새로운 검은 머리는 왜 그리도 쑥쑥 자라는지 짜증이 날 것이다. 이탈리아 여자들은 이젠 더 이상 가족을 위해 밀방망이로 프레시 파스타를 밀지 않는 대신 염색을 한다. 미용실에서 하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집에서 까다로운 자가 염색을 한다. 금발을 향한 치열한 이탈리아 여자들의 노력에 경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탈리아에 없는 건 이태리 타월만은 아니다. 피클이 없다는 건 이미 얘기한 적이 있다. 귀찮아서 피클을 안 담글 리는 없으니 제발 식당에서 피클을 찾지는 마시라. 이탈리아 음식과 피클이 별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음식은 생각보다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우며, 섬세한 향을 강조한다. 우리는 그냥 ‘올리브유’라고 알고 있는 걸 그들은 수십 종을 구별해 쓴다. 지역별, 품종별로 나눠 거기에 맞는 요리를 해 먹는 걸 즐긴다. 텔레비전 요리쇼의 진행자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자, 스파게티를 삶으세요. 스파게티가 끓고 있는 동안 소스를 만들어보죠. 팬에 올리브유, 잠깐! 아무거나 부엌에 있는 걸 쓰지 마세요. 가능하면 리구리아산을 골라보세요. 아주 부드러우며 톡 쏘는 뒷맛이 일품이랍니다.”우리가 백령도 까나리젓이나 추자도 멸치젓을 골라 쓰고, 순창 고추장을 쓰듯이 말이다. 그건 이탈리아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보이는 건 온통 올리브나무이니까. 이렇게 까다롭고 섬세한 이탈리아 요리가 한국에서 고생 좀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건 다 미국 때문인 것 같다. 이탈리아 요리가 한국으로 직수입되지 않고, 미국을 통해서(아마도 미군부대도 거기에 큰 몫을 했을 거다), 그리고 미국 교포 사회나 유학생을 통해서 전래되다 보니 원형질이 사라져버렸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식 자장면이나 짬뽕이 중국과 일본에는 없듯이. 이태리 타월도, 피클도 없는 것처럼 없는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이탤리언 드레싱이다. 일본 사람들이 ‘이타리아풍’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드레싱이다. 이름부터 수상하지 않은가. 원래 ‘~풍’이라는 건 이미 원형이 사라졌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물 건너온 것을 내 식대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탈리아에서 이탤리언 드레싱은 찾을 수 없다. 간혹 내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이 드레싱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 나도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다. 맙소사. 이건 이탤리언 드레싱이 아니라 잡탕 드레싱이라고 불러야 맞을 것 같다. 올리브유에 피클과 할라페뇨, 마늘, 닭 육수가 들어간다. 피클과 할라페뇨는 미국 사람들이 먹는 것이고, 신선하고 산뜻해야 할 드레싱에 닭 육수는 또 뭐람. 게다가 아무리 이탈리아 사람들이 마늘을 좋아한다고 해도 샐러드 드레싱에 생마늘을 넣는 경우는 없다. 하긴 내가 일하던 한 식당에서 나를 꾸중하던 손님도 있었다. “아니, 이탈리아 식당에 왜 타바스코 소스도 없어요?” 뭐, 죄송한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타바스코 소스를 가져다 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가 만든 샐러드나 스파게티 위에 그 소스가 뿌려지는 광경을 보는 건 내 정신 건강에 별로 좋을 것 같지 않아서다. 당신도 내 식당에서 정신 나간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 나오는 걸 바라지는 않겠지? 한국의 슈퍼마켓에서도 이탤리언 드레싱이라는 걸 파는데 더 황당하다. 성분표를 보면 올리브유 대신 더 싼 다른 식물성 기름이 들어간다. 아무튼 이탈리아 사람들은 먹지 않는 드레싱을 이탈리아라고 이름 붙여 파는 이 상술의 근거는 뭘까. 그래서 이탈리아의 식당에서 샐러드를 시키면 왜 이탈리아 음식을 ‘간결’이라고 규정짓는지 알게 된다. 올리브유와 식초, 소금만 뿌려서 나온다. 밋밋할 것 같지만, 그런 간결한 드레싱은 채소 고유의 맛에 더 집중하게 한다. 왜 전통적인 이탈리아 음식이 건강 요리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이탈리아와 한국 음식은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다. 매운 고추와 마늘을 많이 쓴다는 오해는 제쳐두고 말이다-‘많이’ 와 ‘즐겨’는 상당히 다른 뉘앙스다. 이탈리아에서 마늘은 즐겨 쓰는 재료지 ‘많이’ 쓰는 건 아니니까. 그중 하나가 소 내장 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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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슈퍼마켓에 들러 장을 보고 있었다. 뭘 해 먹을까 고민하던 내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정육점 코너의 진열장에 양털로 짠 담요 뭉치 같은 ‘무엇’을 발견했다. 내 일행은 호기심을 갖고 그걸 보았다. “요리해줄까”라는 내 제안에 그들은 뚱하게 바라보고 말았는데, 저걸 어떻게 먹느냐는 뜻이렷다. 나는 그걸 샀다. 값도 통쾌하게 쌌다. 그렇다. 이런 부산물은 가격이 착하다고 하기에도 민망하게 싸다. 그렇게 산 담요 뭉치를 가볍게 손질했다-소의 어떤 위냐고는 묻지 마시라. 네 개의 위 가운데 하나일 텐데, 희한하게 외워도 외워도 매번 틀린다. 벌집처럼 생긴 녀석, 까칠한 흑색 담요, 어린 양털 같은 부드러운 노란 담요, 그리고 붉은색 오줌보처럼 생긴 녀석까지 제각기 다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애꿎은 소에게 화풀이를 하곤 한다. ‘남들은 하나밖에 없는 위가 왜 여럿 달려서 나를 애먹이니’ 하고. 이탈리아의 소 내장은 고맙게도 손질이 잘 되어 있고, 게다가 익혀서 판다. 이건 다시 말해 소비자는 그냥 사서 대충 씻은 후 바로 요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 이 내장으로 맛있는 한국식 곱창 요리를 해 먹는 법을 알려드리겠다. 미리 경고하건대, 제발 음식 찌꺼기는 화장실 변기에 버리지 말자. 지난 호에도 말씀드렸듯이, 다음에 들르는 한국인이 당신 몫의 욕까지 한꺼번에 다 얻어먹는다. 먼저 닭 육수를 끓인다. 닭 한 마리에 마늘 5톨과 화이트 와인 ½컵을 넣어 푹 끓인 후 육수를 받아둔다. 내장은 먹기 좋은 크기로 숭덩숭덩 썬다. 호박, 양파와 대파도 썰고 마늘은 다진다. 냄비에 물을 약간 넣고 끓여서 화이트 와인을 살짝 치고 썰어둔 소 내장을 한 번 데친다. 이렇게 하면 냄새가 다 빠진다. 독일산 양배추 김치(사워크라우트)를 적당히 넣고 모든 재료를 함께 넣어 끓인다. 마지막에 이탈리아산 고춧가루를 약간 넣어 매운맛을 낸다. 특별한 비결도 없지만 야들야들하게 씹히는 소 내장이 알차고, 국물은 시원하고 새콤해서 아주 맛있는 소내장탕이 된다. 물론 내 일행은 열광적으로 이걸 즐겼는데, 그게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 진짜 그 음식이 맛있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이탈리아식으로 요리할 수도 있다. 양파, 당근, 셀러리를 잘게 썰어 올리브유에 볶는다. 이탈리아 고추(페페론치노) 말린 것을 넣어 슬쩍 볶는다. 매운 연기가 나서 눈물이 나면 딱 좋은 거다. 여기에 썰어둔 소 내장을 넣고 한 번 더 볶는다. 너무 오래 볶으면 질겨진다. 타임이나 로즈메리 다진 것을 조금 넣고 토마토 소스를 부어 뭉근하게 한 번 끓이면 완성되는 간단한 요리다. 여기에 파르메산 가루 치즈를 뿌려 내는데, 겨울밤 이탈리아의 서민들이 즐기는 전통 요리다. 레드 와인을 곁들이고 마른 빵을 찍어 먹어야 제맛! 이탈리아는 생선이 흔한 나라지만 생선 요리가 발달한 것 같지는 않다. 굽고 찌고 튀기는 기본 요리법이 대부분이다. 요란한 소스나 곁들이는 부재료도 별로 없다. 올리브유를 듬뿍 바르고 소금을 치는 것이 요리의 전부가 아닌가 생각될 때도 있다. 이탈리아에서 매주 금요일은 생선을 먹는 날이다. 금요일이면 허술한 동네 식당에서도 특별한 생선 요리를 부탁한다. 우리 같은 여행자라면 금요일 저녁에 식당에 들르면 스페셜한 생선 요리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나폴리나 베네치아 같은 해안 도시에 가면 일주일 내내 맛있는 생선 요리를 고를 수 있다. 대부분 관광객을 겨냥한 식당이나, 솜씨도 좋고 바가지 같은 건 씌우지 않으니 믿고 들러도 좋다. 식당 밖에 얼음을 채워둔 진열대 안에 생선이 나란히 누워 있다. 간혹 당신이 좋아하는 게나 새우가 있는 경우도 있는데 값이 만만치 않으니 섣불리 시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어쨌든 적당한 크기의 생선 한 마리를 골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조리법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그릴할 것이냐, 찔 것이냐를 묻는다. 한국 사람은 굽는 걸 좋아하므로 그릴을 부탁하는 게 좋다. 구운 생선은 웨이터-카메리에레라고 부른다-가 접시에 담아 당신 테이블로 가져온다. 그리고 멋진 도구를 이용해서 생선의 살을 정말 기막히게 발라준다. 생활의 달인에 나올 만한 솜씨다.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포크와 숟가락을 들고 정확하고 재빠른 기술로 살을 잘라내는데 한 치의 오차도 없다. 머리에 포마드를 바른 나이 든 웨이터가 스윽 슥, 도구를 놀리는 걸 보면 경탄을 하게 된다. 당연히 당신은 약간의 팁을 준비하는 게 옳다. 쇼를 봤으면 돈을 내야 하는 거 아닌가. 주방에서 미리 자르거나 살을 떠서 요리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할 일을 준다는 건 모두에게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 호에 연재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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