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엄마가 장례식날 플레어 스커트를 입어달라 한 이유는 #엘르보이스

타고난 '방뎅이' 크기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진 비혼세 곽민지 작가의 엉덩이 이야기

BYELLE2021.05.10
 
막내딸의 ‘방뎅이’  
 
우리 민지는 엉덩이가 조선 땅 반만 하네.
나는 어릴 때부터 엉덩이가 참 컸다. 깡마른 상체에 펑퍼짐한 엉덩이. 부모님은 내 엉덩이가 ‘조선 반만 하다’고 했고, 언니는 내게 태풍이 불어도 가부좌를 틀고 앉기만 하면 안전하니 걱정이 없을 거랬다. 신이 나를 빚을 때 누가 밥 먹으러 오라 해서 ‘알았어!’ 외치며 찰흙을 꽉 쥐는 바람에 상체는 가늘고 하체는 큰 아이로 태어났을 거라는 창의적인 추측도 있다. 많은 딸이 경험하듯 나도 ‘보디 셰이밍(Body Shaming)’을 집에서부터 겪은 셈인데, 운 좋게 엄마 아빠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아이로 큰 나는 같은 이유로 그냥 엉덩이 사이즈가 유별나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거기에 태생적인 개그 욕심까지 더해 내 엉덩이를 스스로 희화화하며 살았다.
 
나는 아빠보다 키가 크고, 가족 중에서 엉덩이도, 발 사이즈도 제일 크다. 학생시절 백화점에 가면 “제일 큰 사이즈 주세요”라고 했고, 그 옷이 맞지 않으면 어쩔 줄 몰라 원래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나왔다. 상체는 55 사이즈였는데 하체만 그랬기 때문에 점원은 “그 정도로 안 뚱뚱해 보이시는데”라고 했다. 상체가 55지만 하체는 88 사이즈인 사람이 있다는 걸 상상하지 못한 점원은 실제로 엉덩이가 ‘그 정도로 뚱뚱한’ 나를 위로하느라 내 얼굴에 대놓고 보디 셰이밍을 한 셈이었다. 가정 내에서 들은 내 엉덩이에 대한 평가는 바깥에서 더 혹독했으므로, 나는 내 엉덩이를 끌어안고 여러 가지 모험을 했다.
 
한번은 키 174cm인 내 몸을 55kg까지 작게 만들어보았지만, 그래도 내 엉덩이는 겨우 백화점 옷걸이 끄트머리 사이즈에 진입할 뿐이었다. 몇십 킬로그램을 빼고 나니 더더욱 앙상해진 상체는 오히려 내 엉덩이를 다이어트 전과 비슷한 크기로 보이게 만들었다. 이 엉덩이는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 다음에야 작아질 것 같았다. 비혼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쓰게 된 ‘비혼세’라는 닉네임은 언니가 오랫동안 불러준 별명 ‘비욘세’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모두가 말라야 한다고 외치는 사회에 사는 동양인 여성에게 엉덩이만 비욘세인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차츰 튼실한 엉덩이와 허벅지라는 새로운 미적 기준이 생겼다는 점에서 찰나의 위안은 얻었다. 비록 엉덩이‘만’ 비욘세이긴 했지만.
 
자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우리 가족은 내 ‘방뎅이(엉덩이의 어감으로는 이 규모감이 표현되지 않는다. 부모님의 고향인 충청도에서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하고)’의 대모험을 함께했다. 그러면서 내가 마르면 기력 없는 방뎅이가 되고, 근력운동을 하면 힘찬 방뎅이가 된다는 차이만 있을 뿐 내 방뎅이는 어디 가지 않는다는 것을 함께 목격했다. 먹는 것에 진심인 먹보 가족으로서 이래도 저래도 세상 틀에 맞추지 못할 거면 행복한 방뎅이가 낫다는 것을 모두 받아들였다. 그리고 ‘요즘은 엉덩이 큰 게 매력’이라는 말은 더 이상 막내딸에게 위로가 되지 못하며, 방뎅이에 대한 유일한 예의는 그 방뎅이를 함부로 묘사하거나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공유하게 됐다. ‘조선 반만 한 엉덩이’는 그렇게 우리 가족의 역사 속으로 구전설화처럼 사라지나 싶었다.
 
우리는 지난해에 아빠의 엄마를 잃었다. 할머니는 내게 큰 방뎅이를 물려주신 분임과 동시에 큰 키를 물려주시기도 했다. 좋은 것 하나, 나쁜 것 하나를 물려주셨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저 할머니의 몸은 여기 없고 내 몸은 존재한다는 것 외에 이게 어떤 유산인지에 대한 평가는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불면의 장례식 일정을 거치면서 나는 가족을 애도하는 일이 얼마나 촉박한가를 체험했다. 엄마 아빠에게 각자가 꿈꾸는 장례식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는데, 엄마는 오랜 고민을 거쳐 입을 열었다. “민지가 소복 같은 거 말고 검정색 ‘후레아’ 치마를 입었으면 좋겠어. 상체는 들어가고 하체에서 팍! 퍼지는 그런 걸로. 민지는 그런 걸 입어야 체형이 커버되거든.”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순간, 엄마의 정겹고 못난 욕망이 다시 존재감을 과시한 것이다! 세상엔 숨길 수 없는 게 세 가지 있다. 사랑, 재채기 그리고 내 방뎅이에 대한 엄마의 불만. 그래, 마지막으로 엄마를 보내는 순간이 온다면 핼러원데이 코스튬처럼 내 한번 입을 수 있고 말고. 대신 추도사에서 엄마를 설명할 때 엄마의 장점을 신나게 열거한 후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정명자 님은 딸에 대한 보디 셰이밍을 서슴지 않았던 우리네 어머니이기도 했지요. 특히 제 거대한 엉덩이가 사람들에게 탄로 날까 봐 걱정하시며 제가 지금 입은 이 옷을 직접 지정하셨습니다. 엄마, 보고 있나요? 제 완벽한 코디를요(하늘을 한 번 보고 눈물을 훔치며). 여러분, 안 보이시죠? 제 거대한 엉덩이가요!”
 
아마 이 글의 존재를 안다면 엄마는 또 엄마 흉을 대중 앞에서 본다고 분개할 것이다. 하지만 이게 고유한 우리 가족의 사이클임을 어쩌겠는가. 지적을 멈출 수 없는 어머니와 툭하면 편파적인 자세로 가족의 결함을 일러바치는 막내딸. 우리는 이 습성을 끌어안고 함께 모험하며 진화하고 있고, 이는 분명히 고무적이다. 가정의 달, 조선 반만 한 내 방뎅이를 과시하여 받은 원고료로 가족끼리 모여 앉아 치킨이나 시켜 먹을 것이다. 그중 일부는 내 방뎅이로 편입될 것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우리 계속 이 모양으로, 고유한 결함들을 어찌저찌 끌어안고 잘 지내보기로 해요. 한 꼬집이라도 나아진 점에 경주마처럼 집중하면서. 그런 게 사랑이니까.
 
곽민지 다양한 비혼자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예능 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이자 출판 레이블 ‘아말페’ 대표. 〈걸어서 환장 속으로〉 〈난 슬플 땐 봉춤을 춰〉를 썼다. 여성의 몸과 사랑, 관계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