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반팔 티셔츠에 샌들 차림이에요. 1993. 티셔츠에 출생 연도가 적혀 있네요
아, 알아보시네요. 평소 이렇게 편하게 입고 다녀요. 옷에 정말 관심이 없어요. 몸에 열이 많아 날씨가 조금 따뜻해지면 샌들부터 꺼내죠. 와, 인터뷰 너무 오랜만이라 좀 떨려요.
그 작품 이후 잡아놓은 차기작이 많았는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두세 편이 엎어졌어요. 강제로 길게 쉬었죠. 계획된 또 다른 작품 때문에 15kg 넘게 찌우며 ‘벌크업’ 하던 중이었는데 그게 또 잘 안 됐어요. 이제 5월 말쯤 크랭크인하는 작품을 앞두고 있네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말 예측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블랙 재킷은 Alyx. 블랙 컬러의 체인 네크리스는 Xte.
불확실한 시대를 어떻게 견디고 있나요. 서킷 드라이브를 갈 정도로 차를 좋아하잖아요
차를 정말 좋아했죠. 유일한 취미이자 장난감이었는데 이젠 이동수단에 가까워졌어요. 어느 순간 ‘현타’ 같은 게 왔거든요. ‘내가 차에 이렇게까지 몰입할 필요가 있나? 그냥 기계일 뿐인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여전히 차를 아끼지만 취미생활로는 조금 시들해졌어요.
한창 타기 좋은 시즌인데 엔듀로는 산에서 타는 오토바이인데요. 어느 날 꽂혀서 무작정 타기 시작했어요. 여름밤에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사다가 상의도 입지 않은 채 하이바만 쓰고 바이크 타는 남자를 본 거예요. 정말 멋있고 섹시했어요. 어떤 스포츠인지 너무 궁금해서 바로 찾아봤죠. 1년 정도 열심히 타고 접었어요. 다칠 가능성이 큰 종목인데, 제 몸이 제 몸이 아닌지라….
겁은 많은데 위험한 걸 좋아해요. 스릴에 집중할 때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인 것처럼 느껴져요. 그런 것으로 얻은 행복감이 사라지니 조금 이상해요.
그레이·화이트 컬러의 프린티드 셋업 수트는 Maxxij. 더비 슈즈는 Bananafit.
모두를 무력하게 만드는 위기가 오니 많은 게 무의미해졌어요. 저 역시 작품이 무산되는 일을 겪었고요. 문득 차가 무슨 의미인가 싶었죠. 원래 차에 조금만 흠집 나도 마음 아파했어요. 그런 마음까지 다 내려놓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집안일 하면서 지내요(웃음). 독립해서 고양이 두 마리와 살거든요.
심바와 가을이죠? 집사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나 말고 숨 쉬는 존재가 둘 더 있다는 게 좋고요. 할 일이 생기는 것도 좋아요. 가끔 둘이 가슴 위에 올라와서 잘 때 너무 행복해요.
레드 컬러의 하프 집업 톱은 Marine Serre by Mue. 팬츠는 Officine Generale. 블랙 앵클부츠는 Humant. 네크리스는 Xte.
예전에는 인터뷰 때 “진짜 유승호를 보여주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 그게 당신에게는 오랜 화두였나요
처음엔 몰랐어요. 연기는 연기고 내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 일을 20년쯤 했는데, 할수록 나 자신이 흐릿해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6개월 정도 한 작품을 촬영하고 나면 연기한 캐릭터가 곧 나인가 싶기도 하고, 극중의 순간이 꿈에 나오기도 해요. 점점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원래 ‘끼’가 많지도, 화려하지도 않고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인데 그럴수록 더 내세울 게 없는 것 같았어요. 언제부터 그렇게 느꼈던 것인지 줄곧 그랬어요. 다른 연예인들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나는 춤을 잘 추지도, 말주변이 좋지도 않아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거나 흥미를 끌 수 있는 점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 본 적도 있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됐죠. 뭐가 잘 안 되면 일단 끝까지, 제 한계까지는 밀어붙이는 편이에요. 눈앞의 문제에 일단 손대고 풀어봐야 하는 사람이죠.
‘끼’가 없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힘들어요. 지금껏 배우로서 잘해왔잖아요
배우로서는 보여줄 게 아직 많죠.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도 가진 걸 쏟아부어 최대한 괜찮은 걸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거든요.
진짜 괜찮은 걸 만들어냈다는 느낌을 받은 때가 있나요
〈군주 - 가면의 주인〉(이하 〈군주〉) 때요. 초반부터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이었는데 ‘이선’이라는 캐릭터와 딱 맞아떨어진 순간부터는 연기한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어요.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쓰고 울고 발버둥치는데도 피곤하거나 힘들지 않았죠. 긴 대사도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고요. 빠져들었다는 느낌이 촬영하는 동안에도 계속 있었어요. 현장 분위기와 선배들, 감독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 경험은 혼자 이뤄내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모두의 도움으로 만들어지죠.
〈군주〉는 여러모로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본인이 배우로서 ‘시작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하기도 했죠. 그 작품을 경험하고 바뀐 게 있나요
맡은 역할을 그렇게까지 느끼면서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그러면서 다른 인물과 작품도 그만큼 느끼면서 해보고 싶어졌어요. 〈군주〉를 하고 나서 정말 저는 시작인 것 같았고, 열의를 불태우던 시점에 코로나19가 왔어요(웃음).
〈보고싶다〉의 형준 역을 비롯해 고독하고 뭔가를 상실한 인물을 연기할 기회가 많았어요. 혹 그런 배역이나 작품에 더 매력을 느끼나요
밝고 아름다운 것보다 ‘다크’한 걸 좋아해요. 로맨틱 코미디 보면 설렌다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일부러 로맨틱 코미디를 집중적으로 보면서 작정하고 설레는 감정을 느껴보려고도 했어요. 그런 감정을 알긴 알겠는데, 그렇게까지 재미있지는 않더라고요. 나는 오히려 감정적으로 격앙될 때 심장이 더 뛰고, 매력을 느껴요.
스릴 있는 취미를 즐기는 것과도 맥이 통하는 것 같네요
어릴 때는 액션영화를 정말 많이 봤어요. 어머니가 액션 명작을 엄청 좋아하셨어요. 〈다이하드〉 시리즈 같은 거요. 만날 같이 보다가 빠져들었나 봐요. 팬 중에는 〈로봇이 아니야〉로 ‘입덕’했다는 사람도 꽤 많은 걸 알고 있는지 전혀 몰랐어요. 몇 안 되는 ‘로코’ 중 하나이기 때문 아닐까요. 왠지 이유는 단순할 것 같아요(웃음).
블루 컬러의 스트라이프 로브는 Kimseoryong. 데님은 Officine Generale.
〈집으로〉는 2년 전 극장에서 재개봉하기도 했어요. 재개봉하는 영화의 주연인 게 흔한 경험은 아니잖아요. 감회가 어땠나요
필름으로 촬영하던 2000년대.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던 그 시절의 감성이 담긴 영화에 출연하고, 그 작품이 재개봉한 것이 상 받는 것보다 더 좋더라고요. 정말 큰 영광이죠.
그런 거 없어요. 아! 딱 하나 있네요. 거짓말하면 티 나요. 진짜 티가 많이 나요. 그래서 안 하죠. 그건 좋아요.
여섯 살에 어머니 손에 이끌려 데뷔했잖아요. 유소년기에는 줄곧 연기하기 싫어했고요. 인터뷰에서 워낙 솔직하게 밝혔기에 많이 알려진 사실이죠. 그래도 거대한 스크린에 자신의 얼굴이 담기는 순간에는 고무되기도 했나요
같이 연기하는 형들이 촬영 끝나면 PC방 데려가주고…. 정말 그런 게 좋아서 했어요. 어릴 때부터 꿈을 가지고 연기를 시작하는 친구들과는 차이가 있죠. 그런 친구들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사춘기도 촬영현장에서 보냈어요. 10대 시절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나는 학생인데 왜 일해야 하는가. 전교생이 보내는 평범한 일상이 나와는 무관했어요. 당연한 것이 내 주변에 널려 있는데, 나에게는 그런 게 주어지지 않았죠. 그렇다고 학교를 좋아했던 건 아니에요. 단체생활이 저랑은 별로 안 맞거든요.
화이트 티셔츠는 Ami. 블랙 팬츠는 Magliano.
여섯 살에 어머니 손에 이끌려 데뷔했잖아요. 유소년기에는 줄곧 연기하기 싫어했고요. 인터뷰에서 워낙 솔직하게 밝혔기에 많이 알려진 사실이죠. 그래도 거대한 스크린에 자신의 얼굴이 담기는 순간에는 고무되기도 했나요
같이 연기하는 형들이 촬영 끝나면 PC방 데려가주고…. 정말 그런 게 좋아서 했어요. 어릴 때부터 꿈을 가지고 연기를 시작하는 친구들과는 차이가 있죠. 그런 친구들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사춘기도 촬영현장에서 보냈어요. 10대 시절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나는 학생인데 왜 일해야 하는가. 전교생이 보내는 평범한 일상이 나와는 무관했어요. 당연한 것이 내 주변에 널려 있는데, 나에게는 그런 게 주어지지 않았죠. 그렇다고 학교를 좋아했던 건 아니에요. 단체생활이 저랑은 별로 안 맞거든요.
유소년기의 직업적 경험에서 얻은 것이 있는지 또래에 비해 일찍 사회인으로 자리 잡은 건 좋아요. 하지만 학생 때만 느낄 수 있는 것을 놓쳤다는 생각은 들죠. 난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누구나 20년 동안 연기하면 이 정도는 할 거라고 생각해요.
스무 살 초반에는 서른 무렵이면 뭔가 해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도 새해가 될 때마다 ‘올핸 뭔가 이뤄내고 싶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아역 느낌을 벗어내자. 성인 연기를 하자’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게 뭔지도 모르겠어요. ‘성인 연기’라는 게 대체 뭔가 싶은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누군가의 어린 시절 역할을 맡다 보면 그 경계가 크게 느껴지거든요. 주변에서도 그 선을 넘어서기 쉽지 않을 거라고 했고요. 인터뷰에서 늘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되면 되는 거고 말면 말자는 마음도 있었어요. 제 진짜 멘탈은 상하지 않도록. 현장이 너무 힘들어서 ‘대체 나는 어느 순간에 좀 편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런 마음을 동력 삼아 뭔가를 오래 지속하는 사람도 많아요. 버티는 게 살아남는 거니까
생각해 보면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떻게 매 순간 본인이 만족할 만큼 노력하고 그만큼 얻으면서 살 수 있겠어요. 어려 보인다는 이미지를 탈피하려고 일부러 교복 입는 역할을 피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다고 제가 어른스러워 보이지는 않았을 거예요.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 과정을 지날까 생각하다가 스물아홉 살이 됐죠. 이제는 생각해요. 의도하지 않아도 그런 때는 자연스럽게 온다고요. 이젠 때가 왔다고 느끼나요 아직요. 언젠가는 오겠죠. 서른이든, 마흔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