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Ordinary
WOMAN

절친한 디자이너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의 2009년 리조트 컬렉션에 참석한 프랜.
마틴 스코세이지가 제작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도시인처럼 Pretend It's a City〉에 출연한 프랜 레보위츠의 말을 듣고 있으면 짜릿한 쾌감에 젖는다. 프랜은 정말 재미있는 여자다. 그녀는 모든 주제에 자신만의 의견을 가지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그녀의 말은 거의 맞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그녀의 오랜 절친이자, 프랜의 이야기에 늘 박장대소하는 열성 팬이다. 〈도시인처럼〉에서 프랜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은 자유롭고 위엄 있다.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곧은 자세로 뉴욕의 도심에 서 있는 그녀에게선 강한 자기애가 느껴진다. 유대인 출신의 뉴요커이자 지식인으로 알려진 프랜 레보위츠는 여러 개의 직업을 가졌다. 문화비평가이자 세 권의 동화책을 쓴 작가이며, 1990년대부터 활동한 미국의 대표 배우들과 함께 그 시대를 살았던 연기자다. 또 그녀는 개그맨 뺨치는 유머 감각을 가졌고, 동성애자이며 민주당 지지자다. 〈엘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프랜 레보위츠는 단호하면서도 예의 바른 어조와 투덜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1989년 뉴욕에서 있었던 에이즈 퇴치를 위한 자선 파티 ‘러브 볼’에 참석한 모습.
기꺼이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할 줄 아는 그녀는 살면서 겪은 소소한 에피소드를 맛깔 나게 털어놓았다. 프랜은 맨해튼에서 멀리 떨어진 뉴저지 모리스타운의 깔끔한 교외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해럴드는 가구점을 운영했고, 어머니 루스는 가정주부였다. 어린 시절의 프랜은 사탕을 많이 먹는 독서광이었고, 하지 말라는 부적절한 행동을 자주 했다. “거의 모든 이에 충치가 있었으니 말 다 했죠. 숙제는 안 하고 책을 읽는다고 자주 혼났던 기억이 나요.” 프랜의 유년기는 그럭저럭 행복했지만, 그녀는 숨 막히는 사회적 틀에서 하루빨리 해방되길 꿈꿨다. 1950년대, 여느 부모들이 딸에게 기대하는 보편적 관습인 ‘현모양처’처럼 누군가의 착한 아내로 사는 운명은 결코 그녀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곱 살 때 이미 염세적인 가치관이 생긴 프랜은 자신의 반항 정신을 적나라하게 표출했다. 신을 믿지 않기로 결심하며 무교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녀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말했다. “난 깨달았어요. 종교가 말하는 모든 것이 방대한 양의 동화 속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걸요.”
열일곱 살 때, 프랜은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때 그녀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생긴 건지도 모른다. “요즘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거예요.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교장이 날 엄청 싫어해서 꼬투리를 잡아 퇴학시켰어요. 당시 부모님은 교장의 의견을 전적으로 믿었고, 이 결정에 반박하지 않았어요. 학교에서 잘리는 신세가 되다니, 내게는 세상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처럼 무서운 일이었어요.” 퇴학당한 후 시궁창 같은 인생에서 벗어나겠다고 결심한 프랜은 중졸인 상태로 열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무작정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에서 그녀는 생계를 위해 택시 운전사, 청소부에 이어 허리띠(벨트)를 팔았다. 심지어 포르노 소설을 쓰는 일도 했다. “날 퇴학시킨 고등학교 교장 이름을 필명으로 썼어요. 내가 한 복수 중에 가장 멋진 한 방으로 기억나네요.” 스무 살이 되었을 때, 프랜은 여전히 작가나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녀는 재즈 뮤지션, 찰리 밍거스가 만든 언더그라운드 잡지에서 칼럼 쓰는 일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쓴 칼럼 기사들을 모아 책으로 출간했다. 책은 큰 호응을 얻었고, 앤디 워홀이 창간한 잡지사 〈인터뷰〉 편집장이 그녀에게 미팅을 제안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프랜 레보위츠는 〈인터뷰〉 사무실에 갔던 날을 회상하며 말했다. “엘리베이터를 탔고, 문이 열려서 내리니 금속 문이 보이더군요. ‘노크 후 당신이 누구인지 말하시오’라고 적힌 카드가 문 위에 붙어 있었죠. 앤디 워홀이 총에 맞은 지 좀 지난 때였어요. 나는 문을 두드렸고, 안에서 누구냐고 물어서 ‘발레리 솔라나스’라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앤디 워홀이 문을 열더라고요.”(발레리 솔라나스는 앤디 워홀에게 총을 겨눴던 인물이다.) 〈도시인처럼〉에서 프랜이 밝혔듯 앤디 워홀과 그의 회사에서 기자로 활동한 프랜 레보위츠 사이에는 긴장감이 있었다. “그는 날 좋아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많은 젊은이가 그의 ‘팩토리’에 열광했고, 그래서 그가 예술계의 전설이 되었다는 건 인정해요.”

뉴욕에서 앤디 워홀과 함께.
1970년대의 뉴욕은 더럽고 위험하고 평판이 좋지 않은 도시였다. 앤디 워홀과 뉴욕 돌스의 ‘무대’였던 클럽 ‘스튜디오54’가 떠들썩한 인기를 얻었다. 뉴욕에서 프랜은 위트 넘치는 영화 비평 칼럼으로 화제가 됐다. 그녀는 매달 최악의 영화를 선정하며 신랄한 독설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뉴욕에서 활동하는 보헤미언 예술가와 음악가, 지식인을 두루 만났다. 멋진 공간과 좋은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파티에는 늘 그녀가 있었다. 솔직한 입담, ‘돌직구’지만 언제 들어도 참신한 언변으로 프랜은 점점 인기를 끌었다. 프랜 레보위츠는 뉴욕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산증인이 됐다. 또한 인생 친구를 만나기도 했는데, 바로 미국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토니 모리슨이었다. 프랜은 1990년대 하얀 페이지에 극심한 공포증을 느낀다고 고백한 이후 더 이상 새 책을 출간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말 잘하는 작가로 유명해졌다. TV 쇼에 자주 출연하며 높은 시청률을 보장하는 완벽한 스타 이미지를 굳혔고, 잡지사에 글을 기고하며 생활했다. 프랜은 2007년 〈베니티 페어〉에서 주최한 베스트 드레서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댄디한 남성복을 파티 룩으로 입으면서 중성적 매력을 지닌 신화적 아이콘이 됐다. 앤더슨 앤 셰퍼드에서 맞춘 남성복 재킷과 힐디치 앤 키의 와이셔츠, 뒤집어서 다림질한 리바이스 501 청바지, 캐시미어 스카프, 맞춤 제작한 카우보이 부츠, 커프스 단추, 빈티지 스타일의 톨토이즈 셸 안경은 그녀의 대표 룩이었다. 사실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톨토이즈 셸 안경은 매우 비쌌다. 안경 하나가 당시 중고차 시세와 맞먹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개성을 잘 살리는 스타일보다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를 좇는 일에 몰두하고 있어요. 옷을 잘 입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는 것 같다니까요. 집에 들어오면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재킷을 옷걸이에 거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커프스 단추를 상자에 담아요. 일주일에 한 번씩 부츠에 구두약을 바르고 광이 나게 닦는 일도 빼놓지 않는 일과예요. 나는 이 도시에서 가장 비싼 세탁소에 옷을 맡기는 사람인 걸요!”
프랜은 패션만큼이나 책에 대해서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그녀의 서재에는 그동안 읽은 수만 권의 책이 있다. “전부는 아니고 대부분 읽은 책들입니다. 전에는 책을 사거나 선물로 받으면 무조건 다 읽으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읽다가 재미없으면 그냥 안 읽어요. 공연도 마찬가지예요. 일단 극장에 들어갔다가 영 재미없다 싶으면 나와서 다음 계획을 짜고는 하죠.” 해마다 12월 31일이 되면, 마틴 스코세이지는 프랜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탈리아식 식사를 하고 35분가량의 고전 단편영화를 두 편 정도 본다. 2010년에 마틴 스코세이지는 공개 연설을 하는 프랜을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퍼블릭 스피킹〉을 선보였고, 자신이 감독한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에게 맞서는 판사 역할을 프랜에게 맡겼다. 또 그는 이따금 밀레니얼 세대의 젊은 관중 앞에 서는 토론회에도 프랜과 함께 참석한다. 젊은 관중들은 모든 주제에 대해 거침없이 털어놓는 프랜 레보위츠의 말을 델포이 신전의 영험한 여성 예언가가 하는 이야기처럼 경청한다. 프랜은 젊은이들에게 별로 관심 없었다는 듯 말했다. “나는 순진함을 미덕으로 보는 부류가 아니에요. 성적으로 끌려서 작업 멘트를 날리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면 내가 왜 굳이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거죠?” 프랜 레보위츠는 정말 만능 이야기꾼일까? 돈, SNS, 정치, 뉴욕, 종교, 가족 등 그 어떤 주제에 대해 물어도 모두 대답할까? 프랜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솔직히 사랑을 주제로 한 얘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내 사생활에 대해 까발리는 걸 싫어하는 데다, 사실상 연애 전문가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죠. 사랑은…. 글쎄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중독성 강한 일종의 정신병 아닐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무슨 짓이든 다 하려고 드는 거겠죠. 물론 저도 한번 사랑에 빠지면 제정신이 아닌지라 조심하려 합니다. 상대에게 좋은 여자친구가 돼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요. 지금껏 나와 오랜 기간 깊은 관계를 맺은 한 대상을 꼽으라면, 그건 바로 내 자동차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