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레이 컬러의 코트와 레이스 로브, 디스트로이드 진은 모두 Gucci. 아이보리 슈즈는 Converse. 화이트 컬러의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번진 듯한 프린트가 가미된 셔츠는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by Mue. 레더 재킷은 Andersson Bell.

레더 트렌치코트와 안에 입은 터틀넥은 모두 Dolce & Gabbana. 슬랙스 팬츠는 Tom Ford. 앵클부츠는 Bottega Veneta.

벨벳 재킷과 팬츠, 실키한 리본 디테일의 블라우스는 모두 Celine Homme by Hedi Slimane. 스니커즈는 Converse.
목소리도 좀 낮아진 것 같고요 그런가요? 목소리 톤은 작품에 따라 조금씩 바뀌더라고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최근작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정주행했어요. 책방 주인으로 변한 모습도 잘 어울리던데요. 내레이션 장면이 많아 목소리에 집중하게 되기도 했어요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것은 많지만 은섭이가 표현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목소리든 뭐든 꾸밈이 없고, 색이 많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많은 사람에게 힐링이 된 작품이기도 해요. 본인에게도 그런 작품이었나요 사실 작품을 찍을 땐 그런 감상을 느낄 새가 없어요. 순간순간 고민해야 할 것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렇지만 돌아보면 해방감을 느낀 순간은 분명 있었어요.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새하얀 눈이 내릴 때, 우연히 예쁜 풍경과 마주했을 때가 그랬어요.
‘북현리’라는 가상의 마을이 배경이었죠. 산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마을 풍경이 무척 아름답더라고요 지난해 10월부터 3월까지 삼척과 영월을 오가며 촬영했어요. 워낙 차분한 인물을 연기하기도 했고, 추운 계절에 촬영해서인지 묘하게 쓸쓸한 느낌이 감돌더라고요. 그래서 서울을 자주 왔다갔다했어요. 아마 매니저 형이 많이 고생했을 거예요.
어릴 때부터 짝사랑해 온 여자가 먼저 고백해 올 때도, 누군가를 구하느라 죽을 뻔했을 때도 한결같이 무덤덤한 캐릭터를 연기하느라 답답하지 않았나요 조금 더 용기를 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은섭이니까’ ‘얘는 원래 이런 아이니까’ 이해하고 나니 몰입하기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서강준은 도시 남자인가요 도시에서 시골처럼 사는 걸 좋아해요(웃음). 나만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침묵하는 시간도 필요한 사람이지만 원할 때 언제든 드라이브도 즐겨야 하고, 누군가 보고 싶을 땐 그 사람을 만나야 하죠. 그러려면 모든 게 있는 도시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윤동주의 시부터 노희경, 나태주 작가의 책까지 작품에 소개된 좋은 이야기가 많았어요. 독서 애호가의 입장에서 눈길 가는 책이 있었나요 정호승 시인의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글 내용보다 이 산문집의 제목 자체가 주는 울림이 있었어요.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인생의 진리처럼 느껴졌거든요. 누구의 인생이든 힘든 일은 닥치기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나?’ 하는 생각에 무력해질 수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게 인생이라는 생각을 해요.
멜로 이미지가 강하지만 〈왓쳐〉 속 비리를 파헤치는 경찰, 〈너도 인간이니?〉의 로봇 등 알고 보면 늘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는 배우이기도 해요 매번 다른 연기를 해야지 하고 의도한 적은 없어요. 그저 인물의 목적, 이야기의 목적이 분명한 작품에 끌릴 뿐. 목적이 분명한 작품이라면 신파극이든 플롯이 복잡한 이야기이든, 장르물이든 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치즈인더트랩〉이나 〈제3의 매력〉 모두 그래서 출연을 결심한 작품이었고요. ‘심쿵 포인트’를 만들어내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인 로맨스라면 솔직히 마음을 쏟기 어려울 것 같아요.
이제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도전적인 인물은 첫 장르물이었던 〈왓쳐〉의 영군이요. 잘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느껴지지 않아 불안했어요. 작품 준비를 할 때 인물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사람인데 〈왓쳐〉는 그것만 갖고는 안 됐어요. 수사 중인 사건을 보고하는데 거기에 무슨 감정과 이유가 있겠어요. 그냥 말하는 거지. 다른 식의 접근이 필요했고 그런 게 전부 도전이었어요.
작품에 임할 때 스스로를 다그치는 편이라죠 좀 그런 편이에요. 연기를 하면 할수록, 아는 게 많아질수록 부족함이 더 많이 보이는데 덩달아 책임감도 커져요. 이건 부담감이라기보다 연기가 너무 좋아서, 지금 제가 마음을 쏟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드는 욕심에 가까운 것 같아요. 견뎌내면서 성장할 거라고 믿어요.
실제 당신의 모습과 가장 비슷했던 캐릭터는 〈제3의 매력〉의 준영이가 저랑 가장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모든 캐릭터에 제 모습이 조금씩 들어 있더라고요. 대본을 읽을 때 ‘나랑 너무 다른데?’ 싶었던 캐릭터조차 막상 연기해 보면 저한테 원래 있던 모습인 경우가 많아요. 그중 하나를 꺼내 확장시켜 보여주는 게 연기라고 생각해요.
당신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운명인가요 아뇨(웃음). 어쩌다 발을 들였고, 이미 시작했고, 이왕이면 잘하고 싶은 것에 가까워요.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스스로를 더 괴롭힐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직장인에겐 자기만의 해소법이 필요하죠(웃음) 맞아요. 연기할 땐 고통스러울 때가 많지만 작품이 끝나면 여행도 가고, 사랑하는 사람도 많이 만나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충분히 휴식을 취해요. 지금은 그런 극단의 생활이 안정적으로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어요.
당신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밤늦게 혼자 영화를 볼 때. 항상 자정 넘어 영화를 보는데 가장 최근에 본 작품이 〈그녀〉예요. 많은 사람이 인생 영화로 꼽는 작품인데 저는 좀 늦게 봤죠. 〈그랜 토리노〉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 언제나 날것의 인생을 비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작품도 요즘따라 자주 찾게 돼요.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식탁요. 거실과 부엌 사이에 식탁이 있는데 거기에 자주 앉아 있어요. 대본 볼 때, 책 읽을 때, 친구들과 집에서 와인 마실 때….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거의 모든 일상이 다 그 위에서 벌어졌네요.
코로나 시대에 탄생한 문화로 재택 근무, 랜선 집들이, 랜선 파티, 스트리밍 콘서트 등이 있어요. 이 시기에 처음 시도해 본 것이 있다면 저 ‘홈트’ 열심히 하고 있어요. 백팩 네 개에 2리터짜리 물통 열여덟 개를 나눠 담고 아령도 하고, 숄더 프레스도 하고, 가슴운동도 해요. 근사한 도시 남자의 일상처럼 들리지만 사실 되게 멋없어요(웃음). 가만 보면 인간이 이렇게 적응해 가는구나 싶어요.
정말 예상치 못한 일로 혼란스러운 2020년이에요. 이제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기도 하나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확실히 생각이 많아져요. 지금까지 옳다고 여겼던 것에 대해 ‘꼭 그래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 원래 제가 세상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편이거든요. 크게 기대하는 것도 없고요. 그런데 지금은 좋은 것, 아름다운 ‘꽃밭’을 지향하며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뭔가를 바라고 바라는 마음이 삶을 활력 있게 만들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좋은 생각을 하게 되면 기록으로 남기는 편인가요 까먹는 게 아까워서 일기를 쓰려고 시도해 본 적 있는데 한 장 쓰고 바로 그만뒀어요. 공들여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정작 거기에 중요한 게 하나도 담겨 있지 않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정말 좋은 생각은 애써 잡아두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 안으로 들어오겠지’라고 생각하며 매 순간 충분히 보고, 느끼는 데 집중하려 해요.
어떤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하나요 뭐든 ‘툭’ 넘기는 사람요. 나를 둘러싼 세상에 덜 세심하게 반응하고 싶어요. 사소한 일은 사소하게 넘기면서요.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때니까요.

오버사이즈 캐멀 코트는 Solid Homme.

니트 카디건과 톱, 팬츠는 모두 Bottega Veneta.

실크 블라우스와 레더 팬츠, 벨트, 더비 슈즈는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블랙 레더 블루종과 V네크라인 아이보리 니트, 블랙 팬츠는 모두 Tom Ford. 앵클부츠는 Givenc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