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사랑해 || 엘르코리아 (ELLE KOREA)
LOVE&LIFE

너'도' 사랑해

다자연애, 폴리아모리, 오픈 릴레이션십···. 여전히 정의하기 어려운 난해한 관계 속에 깃든 진심은 뭘까?

ELLE BY ELLE 2020.05.04
 
“사람 마음이라는 게 하나가 아니잖아. 내가 미치겠는 건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거야.” 매 회 뜨거운 반응을 모으고 있는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3회에서 ‘화제의 1분’을 장식한 이태오(박해준)의 대사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청자의 원성(혹은 분노). 비슷한 주제로 자주 회자되는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에도 주옥같은 대사가 쏟아진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상황에서 덕훈(김주혁)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사랑이 반으로 나뉘니?” 그러자 인아(손예진)의 대답. “반으로 쪼개지는 게 아니라, 두 배가 되는 거야.”
 
폴리아모리. 한국어로 다자간 연애(이하 ‘다자 연애’)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상태’다. 서너 사람이 서로 사랑하든, 두 연인이 각자 서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든 모두 폴리아모리로 통칭할 수 있다. 단, 서로의 동의가 수반돼야 하기 때문에 거짓이나 배신으로 점철된 바람이나 불륜과는 결을 확실히 달리 한다. 어감 때문인지 자주 혼동되곤 하는 오픈 릴레이션십과도 구분된다. 여기서 열린 관계라는 것이 주로 성적으로 개방된 관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폴리아모리스트는 여러 파트너와의 다채로운 관계를 통해 삶이 풍요로워 질 수 있다고 믿지만 이들에겐 정신적 유대도 중요하다. 프랑스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와 지성인 시몬 드 보부아르 커플이 떠오른다. 각자 수많은 연인이 있었으면서도 평생 친밀함을 이어간 이 커플은 서로의 지성과 감성을 충분히 공유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니까.
 
에디터가 폴리아모리에 관심 갖게 된 건 ‘영화나 드라마 속에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런 관계를 실제로 경험하고 있다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두 여성 J와 P의 이야기를 접하면서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파트너는 총 몇 명인가요’ ‘파트너마다 데이트 컨셉트가 달랐나요’ 같은 자극적인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지극히 평화로웠다. J는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고민이 오히려 모노아모리(양자간 연애) 관점에서 나올 법한 말이라고 했다. “모노아모리 관점에서 벗어나 보면 그냥 당연한 일이거든요. 우리는 모두 한 사람 이상을 사랑하잖아요. 그런데 사랑한다고 해서 다 연인 관계가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연인이라서 사랑하는 것도 말이 안 되기 때문에 폴리아모리 관점에서는 중요한 주제가 아니라고 봐요.”
 
J와 P는 둘 다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며 폴리아모리에 입문했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지내는 동안 느슨해진 관계가 이들에게 기존 연애에 대한 전복적 고민을 안긴 것이다. “미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독일로 이사 갔어요. 마음 맞는 연인이 있었지만 장거리 연애는 쉽지 않았죠. 관계를 잘 이어가고 싶은 마음과 그럼에도 힘겨워하는 스스로의 모습 사이에서 갈등하며 ‘내가 꿈꾸는 연애와 사랑은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어요.” 1년 전부터 두 명의 남성과 교제 중인 P도 마찬가지다. 두 달 째 장거리 연애 중이었던 남자친구에게 다른 남자와의 교제 의사를 어렵게 밝히며 폴리아모리를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르게 된 지점이 폴리아모리였을 뿐, 그게 모든 고민의 해답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이후 세 사람의 연애는 ‘인간은 입체적이므로 각각의 면을 나보다 훨씬 잘 이해하고 사랑해 줄 또 다른 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공통된 인식 위에서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폴리아모리는 오히려 본질에 빠르게 접근하면서 내 욕구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하는 데 도움을 줘요. 상대방과의 충분한 감정 교류와 대화가 전제된다면요.” 
 
J는 벌써 3년 반 동안 다자 연애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이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폴리아모리가 진학이나 취업만큼 평범한 주제인 베를린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에도 쉽게 ‘쿨’해지지 못했다. 무엇보다 상대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다. “처음에는 매번 가슴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고 어지럽고 힘이 빠졌죠. 30년 가까이 몸속에 스며든 모노아모리에 적합한 행동 방식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잖아요? 이런 두려움의 반응은 시간과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무뎌지기도 하고, 더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언뜻 서로 조율할 일도, 다툴 일도 참 많은 관계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오히려 그 반대라고 J는 설명한다. “제 경험상 우리의 연애 방식이 폴리아모리라서 다투는 경우는 드물어요. 내 파트너가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든, 술독에 빠져 살던, 결국 나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아서 불만족스러운 것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폴리아모리는 오히려 본질에 빠르게 접근하면서 내 욕구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충분한 감정 교류와 대화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싸울 일이 늘어나고 더 많은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관계가 될 수도 있겠죠.” 
 
P 역시 계속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A와 함께 있을 때 B에게 연락이 오면 A가 스마트폰을 건네주며 넌지시 연락이 왔다는 걸 알려줘요.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저도 눈치를 보게 되죠. ‘이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다른 파트너와의 섹스 라이프에 대해 캐묻지 않거나 정말 친한 지인 외에는 이런 관계를 털어놓지 않는다는 소소한 규칙을 세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이들은 새로운 사랑의 형태를 열심히 만들어가고 있다. 기존의 사랑과 관계에 대한 통념을 뒤엎고, 서로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우리만의 세상’을 건설해 나가는 것이다.
 
‘무절제하거나 충동적인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기 싫어 스스로를 폴리아모리스트라 칭하고 싶지 않다는 P가 가까운 이들에게 요즘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저 꽤 진중하게 연애하고 있습니다. 젊은 기운이 뻗쳐 괜히 불장난하는 게 아닙니다.” J 역시 폴리아모리를 단순히 양자간 연애의 대안으로 보거나, 지루함을 탈피하기 위한 자극적 선택지로 보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폴리아모리스트는 당연히 결혼 반대론자 혹은 비혼주의자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편견이다. 사회적 틀을 벗어난 관계에 있는 이들이 남보다 결혼 제도에 대한 의문을 품기 쉬운 건 맞다. 하지만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하는 미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J의 생각은 심플하다. “‘우리’라는 꿈을 꿀 수 있는 좋은 사람이 있다면 ‘와이 낫’? 단지 아직은 가족을 꾸리고 싶은 큰 뜻이 없을 뿐이에요.” P의 답변은 보다 현실적이다. “두 어른이 호적으로 묶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익과 편의를 위해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제도 중 하나라 생각해요.”  
 
시간적으로나 에너지 측면에서나 ‘연애 멀티태스킹’은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고, 친구와 가족을 쉽게 이해시킬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피로감이 대단할 텐데 이들은 행복하다고 한다. J는 말한다. “조건 없이 사랑하기를 배우는 것이 좋아요. 상대가 나를 두렵고 외롭게 했음에도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내 깊은 마음과 마주할 때 인간으로서 성숙해지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사랑을 배워나가는 일에는 슬픔을 마다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도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깨달음을 얻는 게 정말 행복해요. 그러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도 배우고, 오히려 두려움 없이 마음껏 사랑하는 미래를 꿈꾸게 됐어요.”
 
다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로 돌아가자. “난 자기를 사랑하지만, 자기 건 아니다?” 자신을 품 안에 안고 ‘너는 내 것’이라 말하는 덕훈에게 인아가 건네는 말이다. 어쩌면 우린 애초에 사랑과 소유욕을 혼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서로에 대한 독점 상태가 진정한 사랑의 충분조건이라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내 것이어서’가 아니라 독점하지 않고도 사랑하며 살 수 있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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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류가영
    사진 taylor simpson on unsplash
    디자인 온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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