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디올의 첫 번째 여자,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옷이란 자유롭기 위한 방식이지 누군가에게 특정 룩을 강요하기 위함이 아니에요." 지금의 디올을 만든 그녀와의 인터뷰.

BYELLE2020.01.19
 
파리 마리냥 거리에 있는 도서관 안, 어둑한 불빛이 크리스찬 디올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비추는 그곳에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속세를 초월한 듯 무심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지난 3년간 패션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며 놀라움을 선사한 주인공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여성복이 갖춰야 할 새로운 조건을 제시한 2019 F/W 오트 쿠튀르 쇼를 비롯해 다문화에 대한 패션계의 인식을 재조명하며 불꽃 튀는 논쟁을 불러일으킨 2020 크루즈 컬렉션까지, 이 모든 것은 바로 모기업인 LVMH의 든든한 후광을 등에 업고 일어난 일이다. 인터뷰 전날 발표된 바에 따르면 치우리가 만들어낸 높은 순이익은 예외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치우리가 만들어낸 예외는 실적만이 아니었다. 패션과 정치, 접점이 없을 법한 관계에서도 그녀는 예외를 두었다. “처음 디올에 왔을 때 관계자들이 ‘오! 디올은 페미닌 브랜드예요’라고 했죠. 그래서 ‘알겠어요, 하지만 난 오늘날의 페미니티에 대해 이야기해야 해요’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녀는 수많은 이들이 주목한 디올의 데뷔 쇼에서 소설가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의 에세이 〈We Should All Be Feminists〉 제목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선보이며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리스식 고전 연극에서나 나올 법한 사회 비판 목소리는 패션 인사이더를 향한 것이다. 이 일이 뜨거운 감자가 된 이유는 단지 인용문 때문만은 아니다. 발표한 자리가 판타지와 럭셔리가 만연한 쿠튀르 쇼였다는 점이다! 상업적인 디자인과 하이패션에서 다루는 페니미즘은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하며 절대 만나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을 깬 것이다. 그렇다면 치우리는 무슨 권리로 그것을 섞었을까? 그녀는 권위와 겸손이 공존하는 미소를 지으며 당시의 반응에 대해 놀라기는 했지만 흔들리진 않았다고 말했다. “절 만나면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하죠. ‘당신은 정치적 성향을 가진 디자이너예요’ 그럼 전 이렇게 얘기하죠. ‘제 생각엔 모든 사람이 정치적이에요. 정치적이란 말은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물건을 사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는 것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정치적 성향을 지니고 있죠. 디자이너라고 그렇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한편에서는 상업 브랜드가 사회 비판의 실천주의적 자세를 갖춰도 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저 곧 사라질 하나의 비현실주의적인 현상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이번 크루즈 컬렉션에서 컬래버레이션한 아티스트 미칼린 토머스(아프리카계 여성 미국인의 정체성을 다룬 작품으로 유명한)는 치우리를 페미니스트 겸 혁명가라고 불렀다. 그에 대해 치우리는 그저 본능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디자이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얘기합니다. 그런 것들을 패션에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고딕 스타일의 커다란 반지를 낀 손을 열심히 흔들며 설명했다. 55세의 치우리에게는 지금껏 재능 넘치는 삶을 살아온 여성 특유의 호기심과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현 패션 인더스트리가 디자인 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스타로 가득한 것에 비해 치우리는 몇 십 년 동안 한길을 걸어왔다(디올의 수장직을 맡기 전 17년을 발렌티노에서 보냈다). 나는 그녀와 여행과 책, 컬래버레이터,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해준 두 아이들,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어린 시절에 어떻게 자랐는지, 사적 경험들이 대화 내내 불쑥 나왔고, 이는 오늘날 그녀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그때와 전 다른 여성이에요. 지금의 이 시간도 그때와 다르죠.” 인터뷰 내내 우리는 디올 하우스의 아이코닉한 결과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결과물을 만들어낸 이들은 브랜드 창시자인 무슈 디올을 포함해 모두 남성이었다. 과거 남성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자수를 놓은 튤과 꽉 조여진 허리로 대변되는 아름다움, 현실도피적 패션의 역할이 이제 바뀌고 있다. 이는 최근 들어 프랑스의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들이 여성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과 같은 현상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성 패션은 훨씬 더 입기 편하고 다양한 목적에 어울리는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의 디올은 여성에 대해 정의하길 좋아했지만, 그건 제 관점이 아니었어요. 여성에 대한 정의는 여성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규정해야 합니다. 저에게 옷이란 자유롭기 위한 방식이지 누군가에게 특정 룩을 강요하기 위함은 아니에요. 누구나 디올과 같은 거대한 아카이브를 지닌 하우스에 발을 들이게 되면 그 전통을 바꾸었을 때 오는 위험을 감당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여성은 달라졌죠. 미스터 디올이 클래식한 패턴의 투알(Toile)을 덧대 몸에 딱 맞는 재킷을 만들었지만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은 많이 변했어요. 디올 특유의 라인이 살아 있는 재킷이지만 웨어러블해야 하죠. 다르게 만들되 하우스의 역사를 인지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박물관에나 전시될 것 같은 피스를 만들어서는 안 되죠.” 디올에게 있어 또 다른 변화는 패션의 의미가 더욱 심오해졌다는 것이다. 동시대의 옷이란 그 자체에 문화와 정치적 의미를 가득 담고 있는데 이런 적극적인 변화에 치우리가 앞장섰다. 그리고 많은 패션계가 그녀의 방식을 참고하기 시작했다. 럭셔리와 하이 스트리트 브랜드가 환경 문제부터 총기 폭행까지 다양한 이슈와 관련된 문구를 사용하고 의도적으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실천주의를 뜻하는 액티비즘은 신조어가 됐다. 그리고 이제 치우리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특권층이 아닌,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패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2020 크루즈 컬렉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정체성과 자연 환경, 문화적 유용성 등 평범한 공통점에 대한 프로젝트였어요. 보통 사람들은 특정 옷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죠. 여기에 패션을 바라보는 대중에는 전혀 다른 접근방식을 지닌 스무 살도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죠. 제가 어릴 때는 옷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을 느끼며 자랐어요. 데님 팬츠와 밀리터리 재킷을 사기 위해 플리마켓을 처음 방문했을 때를 생생히 기억해요. 하지만 지금의 패션은 다르죠. 특히 어디에서든 패션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패션은 전혀 다를 겁니다.” 치우리는 이번 크루즈 컬렉션에서 특히 아프리카를 둘러싼 럭셔리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제안했다. “아프리카에서 온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지 않다는 편견을 지니고 있어요. 특히 패션에서는 유럽 제품을 더 좋다고 생각하죠.” 그녀는 자신의 컬렉션을 함께할 수많은 아프리카계 아티스트들과 현지 장인의 리스트를 추려냈다. ‘뉴 룩’을 재해석한 미칼린 토머스와 영국 디자이너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 디자이너 무슈 파테오를 초청했다. 치우리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미국 모델인 애드수와 아이게위가 등장한 영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전하기도 했다. 2016년 데뷔 때와는 달리 치우리의 메시지는 더 이상 역풍을 불러오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승인을 받은 듯하다. 결국 대중 또한 의복의 의미가 변화하는 것과 함께 진화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패션이 아닐까. 삶과 함께 흘러가는 것. 인터뷰를 끝내고 치우리는 미소와 포옹으로 우리를 배웅했다.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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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MARCIN KEMPSKI
  • 글 KENYA HUNT
  • 에디터 방호광
  • 디자인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