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라이프>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만난 폴 다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아름다운 마무리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시네마 <와일드 라이프>. 김모아 작가의 '무엇이든 감성 리뷰' 열두 번째.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래 기다리고 기대했던 배우 폴 다노의 감독 데뷔작 〈와일드 라이프〉. ‘이 영화는 훌륭한 데뷔작이 아니라 훌륭한 시네마’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인생 영화 중 하나인 〈유스(Youth)〉로 거의 처음 그를 알게 되었고 〈옥자〉 서울 촬영 때 아주 잠깐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매우 차분했지만 예리한 눈빛을 지녔고 두툼한 철학 서적을 손에 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저녁, 남편과 함께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 시작 전 기대에 부풀었던 가슴이 극장에서 나올 때는 활활 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도 영화 속 몬태나의 산불처럼 좀처럼 여운이 잦아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화면 구도, 표정을 담는 각도, 카메라 워킹, 미술, 의상, 음악, 색감 등 어느 하나 빼먹지 않은 폴 다노의 내밀한 연출은 가족을 이루는 세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고 영화를 보는 나를 직접적인 관찰자로 만들었다. 느린 호흡 안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숨이 막혔다. 현란함 없이 소박한데 너무나 세련됐다. 요즘 말하는 '꾸안꾸'라고 할까?
정말이지 아름다운 성장 영화다. 1960년대 미국의 경제 정치 혼란기 속의 한 가족, 아들 '조(에드 옥슨볼드)'와 엄마 '자넷(캐리 멀리건)', 아빠 '제리(제이크 질렌할)'는 자신들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리며 각자 ‘자신'의 정체성, 새로운 ‘제자리’를 찾아간다. 아들 조는 엄마와 아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인물이자 가장 가까이 혹은 멀리에서 지켜보는 관찰자다. 엄마 자넷은 자존심이 센 남편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거듭되는 이주와 불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덕적으로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아들에게 이 모든 것을 ‘차분하게 경험하라’는 명언을 남긴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대사다) 아마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실수를 저지르니까….
아빠 제리는 부당한 해고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그 상처로 끓은 화를 화로 덮기 위해서인지 아들과 아내를 버려두고 산불 진압 현장으로 향한다. 자신의 가슴에 인 불은 머리보다 가슴이 앞선 행동을 하게 만들고 가족에게까지 점차 걷잡을 수 없이 크게 번져 간다. 결국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을 잃게 될 정도로 말이다. 첫눈이 내리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올 거란 조의 희망은 첫눈과 함께 그대로 덮였다. 혼란을 겪고 난 후 바로 선 그곳은 또 다른 ‘제자리’이지 본래의 ‘제자리’일 수 없다. 조는 영화의 마지막에 온전히 자신을 위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 예전의 제자리를 사진으로 남긴다. 내내 부모들의 행동과 벌어진 상황을 지켜만 보던 조는 이 장면에서 처음으로 자기 생각을 스스럼없이 말한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조가 되어 영화를 보았다. 두 번, 세 번 다시 보며 각 인물도 다시 헤아려 보고 싶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자넷이 조에게 학교를 가지 말라고 한 후 다음 날 차를 타고 아빠가 뛰어든 무시무시한 산불 현장을 보여주는 장면인데, 조가 차에서 내릴 때 타닥타닥 마른 가지들이 타는 소리가 조금씩 들리다가 조의 표정과 뒷모습 너머로 아주 천천히 산불이 보인다. 소리도 점차 커진다.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한다. 많은 고민과 생각을 신중하게 고르고 가지치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이 모든 장면이 된 듯하다.

분명 손바느질인데 미싱으로 박은 박음질 같은 영화. 폴 다노는 7-8년 전 원작 소설을 읽고 마지막 장면이 떠올라 영화화하겠다고 마음먹고 아내 조 카잔과 시나리오를 번갈아 가며 썼다. 좋아하는 것을 만드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고 한다. 그의 기분이 느껴진다. 그의 다음이 기대된다.

*촬영 현장 모습, 감독 폴 다노와 제이크 질렌할
무비라는 단어보다 시네마가 잘 어울리는 영화 ‘와일드 라이프’는 연초의 다짐에 기름을 부었다. 우리는 지금도 저마다의 ‘Wild Life’를 살고 있다.


*김모아 작가의 '무엇이든 감성 리뷰'는 매주 화요일 만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시네마 <와일드 라이프>. 김모아 작가의 '무엇이든 감성 리뷰' 열두 번째.